프랜차이즈 갓 563화
140장 감사와 검사 듀오 (4)
빈민석 부장은 살이 떨렸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하수영의 눈빛이 더욱 마음을 옥죄고 있었다.
'이 권고안을 받아야 내가 산다고?'
중간에 말이 끊겼지만, 분명히 들었다.
삼대가 멸, 어쩌고 하는 부분 말이다.
빈민석 부장은 없는 용기까지 모두 쥐어짜내서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에 하시려다가 멈춘 말씀, 뒷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건 내 실수입니다. 아무튼 이 권고안을 받아야 부장님, 사십니다."
"저는 괜찮으니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
"혹시 삼대가 멸망한다, 그런 내용이었습니까?"
하수영이 빤히 바라본다.
조용한 시선을 받아내며, 빈민석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가슴을 휩쓴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폭탄의 전자 타이머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네."
"그 안에 뭐가 담겼는지 굳이 확인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열어보십시오. 저는 다만 경고할 뿐, 말리진 않습니다."
조용한 웃음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팍을 후벼팠다.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공포로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보이지 않는 정수리에 식은땀이 흐른다.
"감사님의 귀중한 충고, 몸에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선택하신 일입니다. 두고두고 오늘 일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칭찬하실 겁니다."
그제야 하수영은 옅은 미소를 보였다.
***
빈민석 부장은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사유에는 비록 시효가 지났지만 오래된 회사 비위에 책임이 있음을 통감한다는 내용으로 적었다.
회사에 대한 책임으로 퇴직금을 포기한다는 약정서도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러나 모든 실무진이 빈민석 부장 같은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수영 감사가 아무리 강남에서 알아주는 부자라고 해도, 우리는 엄연히 식약처 산하 조직이야. 감사 한 명이서 모든 것을 뒤집어엎을 순없어."
"이미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났어. 법적으로 우리를 어쩔 순 없어."
"인사 보복 조치? 감사한테 그럴 권한은 없지. 다들 그걸 기억해야 해."
그렇게 다른 부장 이하 인물들은 하수영의 경고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앞에서만 죄송스러운 듯 고개를 조아렸을 뿐, 끝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퇴직금을 포기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이는 빈민석 부장과 그와 친한 고창윤 부장, 이 둘뿐이었다.
같이 사직서를 제출한 다음 날, 둘은 대낮부터 술집에서 술잔을 나눴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남들은 어차피 시효 지난 거라고 다들 버티고 있던데……."
"꼭 시효 지난 것만 걸리는 건 아니잖나?"
"그렇긴 하지만……."
"됐어. 우리는 먹은 돈도 토해냈고 조사에도 성실히 임했어. 퇴직금도 포기했어. 그것으로 완전히 용서받은 거야."
용서의 증명으로, 하수영 감사는 배상금이나 이자 책임은 면제해 주었다.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자면 돼. 다른 친구들 망하는 거 구경이나 하면서."
"근데 망하게 할 순 있을까? 결국 회사에서 쫓아내는 게 전부인데……."
감사 입장에서 쳐야 할 곳은 크게 세 부류다.
하나는 실무진 출신에서 부장급으로 올라선 인사들.
둘은 현재 대한외식업중앙회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임원들 인사들.
셋은 박정빈 회장과 최측근.
"우리처럼 실무진 먼저 교통정리한 걸 보면 다음에는 아마 임원들일거야."
"감사 입장에서도 회장님을 바로 치는 것은 부담스럽다, 이거인가."
"그렇겠지. 아마 차근차근 그림을 만들어 나가는……."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동시에 진동하며 알람이 울렸다.
실톡에서 보낸 긴급 속보 알람이었다.
"응? 속보네?"
"나 속보 알람 꺼놨는데 이게 무슨…… 어이거 뭐야?"
"박정빈 회장하고 임원들이 횡령배임 혐의로 죄다 구속이라고?"
둘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서로를 마주봤다.
얼큰하게 올라 있던 취기가 싹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
중앙회 회장 포함 임원진 전원 구속.
대한외식업중앙회가 창립된 이후로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서울구치소도 아니었다.
구속된 이들 전원이 제주교도소 유치장으로 호송된 것이다.
"이건 우리 제주지검 관할 사건입니다."
변호인들은 서울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주장했으나, 임탁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그들 전 원을 제주도로 끌고 와서 유치장에 넣어버린 것이다.
명분은 있었다.
제주도 소재지 법인을 이용한 범죄였고, 제주지검에서 수사 중이었으니.
"이건 누가 봐도 피의자들을 고의로 괴롭히기 위한 공권력 남용입니다!"
변호인들의 그런 항의를 깡그리 무시한 채, 임탁정은 기소를 진행했다.
"이 나라에서 검사가 작정하면 사람 인생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지."
서울에 있을 때 선배나 동료 검사들 중에는 무고한 이들을 상대로 그런 공권력 폭행을 행사한 검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임탁정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다만 그는 수사 담당인 마약범죄에 관해서는 정말이지 가차 없었다.
"이렇게 범죄 사실이 뚜렷한데 수사 기소를 봐줘 가면서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박정빈 회장만 해도 드러난 배임횡령 혐의가 당장 100개가 넘어갔다.
그가 관여한 배임횡령 규모는 자그마치 120억 원대.
물론 120억 원을 전부 그가 홀라 당 먹은 게 아니다.
협조한 임원들과 적당히 나눠서 먹은 것이다.
서로 어떻게 횡령배임을 주도했고, 어떻게 이익을 분할했는지, 그 관계는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가운 유치장신세를 지게 된 박정빈 회장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변호인을 붙들고 호소했다.
하다못해 서울구치소로 이송돼서 가족들이 면회라도 쉽게 올 수 있게 끔 해달라고,
"제주법원에서 이송 신청을 받아주질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제주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니 여기에서 구속생활을 보내라는 겁니다."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 자회사 법인을 설립해서 돈을 빼먹은 게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으면, 다른 지역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성남이나 수원 같은 경기도 내였다면…….
'아니, 경기도에도 비슷한 위장 자회사들이 몇몇 있었는데? 왜 하필 제주도지?'
정말 일부러 최대한 괴롭게 만들기 위해서 제주도 유한회사를 콕 집어서 고른 것인가?
박정빈 회장은 하수영을 떠올리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왜 멀쩡히 잘 지내고 있는 우리 중앙회에 들어와서 이렇게 난장판을 피우는 건가!'
다른 임원들과 말이라도 맞추고 싶지만, 개별적으로 격리된 탓에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렇다고 변호인을 통해서 말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막말로 변호인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박정빈 회장의 구속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때가 되면 검찰의 조사와 심문을 받아야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쌍팔년도에는 조폭 같은 검사들이 발길질도 하고 욕설도 하고 그랬다는데, 저는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검사입니다."
임탁정 검사는 차가웠지만, 절대 선을 넘거나 하진 않았다.
밤샘 조사 등으로 무리해서 밀어붙이지 않았고, 고변하라며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조사를 받을 때 수갑을 채우지도 않았고, 딱딱한 철제 의자에 쿠션방석까지 배려했다.
박정빈 입장에서는 제주도에서 구속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이미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리하여 첫 공판기일이 되었다.
제주법원에 출석한 박정빈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 명의 판사들의 시선에서 두려움을 맛보았다.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과거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임탁정의 열변을 들을 때마다, 이게 정말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에 본 검사는! 징역 25년과 벌금 20억 원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변호인으로서 검사 측이 주장하는 구형은 피고에게 너무 가혹한 바……."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한 대립을 벌이는 걸 들으면서, 박정빈은 자신이 왜 여기 있나 하는 환청까지 듣곤 했다.
"징역 25년에 벌금 20억 원이라고? 그게 말이 돼?"
"아직 선고 떨어진 건 아니고, 구형. 선고기일까지는 좀 남았어."
"그리고 2심, 3심도 남아 있지. 설마 회장님이 순순히 물러날 거 같진 않은데."
대한외식업중앙회 분위기는 매일같이 살벌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공기였다.
감사를 제외한 임원진이 모두 구속된 탓에, 지금 조직의 행보를 결정할 인물이 없었다.
그런데도 중앙회는 신기하게 잘 굴러갔다.
"임원들이 죄다 구속됐는데, 대체 누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임원들이 왜 전부 구속이야? 한 분 있잖아?"
"하수영 감사님? 하지만 그분은 감사잖아?"
"감사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임원들 직무를 보존적으로 대리할 수 있는 거야."
"근데 예전보다 회사가 더 매끄럽게 굴러간다는 느낌 받고 있지 않아? 나만 그런가?"
"아니, 나도 그래."
임원이라고는 감사 한 명뿐인데, 이상하게 회사는 잘 굴러갔다.
[공지 : 금주 토요일 외식업 자영업자 대상 세미나에 관하여.]
-기획팀 6인을 상대로 개별 통지 발송. 확인하고 이행할 것. 진척 내용은 통지 반송으로 처리하면 됨.
-총무부는 장소 섭외(통지에 별첨) 진행, 일정은 개별 통지를 확인할것.
-개별 통지 받은 인원은 서술한 업무 협조 인원들과 적극 협력할것. 추후 확인함.
"무슨 일을, 누구랑, 어떻게, 언제 해야 할지 아주 세세하게 정리를 해줬네."
"뭐야, 김 대리도 그거 받았어? 어? 나하고는 내용이 전혀 다르잖아?"
업무 통지를 받은 직원들은 서로 통지 내용을 비교해 보고 깜짝 놀랐다.
"감사님이 우리 회사 업무를 이렇게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고? 우리 회사에서 일해본 적도 없으시잖아?"
"제 업무인데도 저보다 더 자세하게 꿰뚫어 보고 계시는데요? 그냥 이번 세미나는 이대로만 하면 다른 거 생각할 필요는 없겠어요."
"권한의 범위하고 협력 대상, 협조요청 권리와 의무까지 자세히 해놔서 나중에 책임 소재 따질 일도 없겠네."
"정말 그냥 이대로만 진행하면 되는 거네요."
신임 감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능하고, 또 회사 업무를 너무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
게임 던전을 단체로 공략해야 하는 데, 구성원 개별 임무를 이유와 분석까지 곁들여서 세세하게 풀어준 공략집을 받은 느낌이다.
그렇게 하수영 감사 지휘 아래 외식업 자영업자 세미나는 무사히 끝났다.
[공지 : 이달 마지막 주 목요일 실시 예정인 식약처 보고 일정에 관하여.]
"또 개별로 업무 지시 내려왔어?"
"네, 저번하고 양식만 같고 세부 내용은 전혀 달라요."
"……설마 임원들 복귀할 때까지 모든 업무를 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건 아니겠지?"
"왜요, 이게 더 훨씬 효율적이고 좋은데요. 업무 진행하면서 스트레스나 갈등이 확 줄어서 직원들도 다 좋아하더라고요."
완벽한 업무 공략집.
직원들은 개별 통지서를 가리켜 그렇게 불렀다.
게다가 통지서는 한 번 보내고 끝이 아니었다.
업무 진행 과정에서 혹 변수가 생기면 곧바로 그것을 반영해서 새로운 지시가 업데이트되었다.
그것도 무려 실시간으로,
"우리 감사님, 진짜 혼자서 이 많은 것들을 다 작성하고 지휘하시는 건가요? 정말 대단해요."
"이 정도면 천재 경영가…… 아니, 경영가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인데?"
"일하는 스타일이 마치 회사 그 자체 아니야?"
"아, 맞아. 회사 그 자체. 그 표현이 딱 맞는 거 같아."
사실은 모두 프리덤이 했다.
***
하수영의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부장급 이하 인사들은 박정빈 회장 및 임원들의 재판 진행을 마음졸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저들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도 바뀐다.
회장 및 임원들이 건재해야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고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침내 박정빈 회장의 첫 선고기일이 됐을 때, 그들은 선고 내용을 듣고 환호했다.
"우와! 집행유예 떴다!"
"나이스! 나이스!"
"됐어, 이제 된 거야!"
부디 일이 잘 풀리기를 빌었지만, 이렇게 대박으로 잘 풀릴 줄이야.
다들 얼싸안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물론 모두가 마냥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너무 이상한데요? 이건 하수영 감사의 일방적인 패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고? 오히려 잘된 일이지."
"뭔가 저희가 알지 못하는 함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해서 불안합니다. 이렇게 맥없이 패배할 거였으면서 제주지검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재판을 밀어붙인 것도 이상하고요."
"음……."
그제야 다른 이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때 스마트폰 연락을 확인한 과장 급 인물 한 명이 당황해서 얼굴을 들었다.
"회장님께서 본가 저택 처분하셨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저택을 왜 처분해?"
"그거 회장님 3대째 물려받은 본가라 죽었다 깨어나는 일이 있어도 쥐고 있는 자산인데?"
"그걸 팔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