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65화
141장 안과 킬러 (1)
가장 큰 대마인 박정빈 회장이 손도 제대로 못 쓰고 꺾여 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기껏해야 식약처 산하 사단법인의 장.
중앙 정치무대에 끈이 있다고는 하나 여의도에서 보면 코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었고, 비록 제주지검으로 좌천되긴 했으나 차장검사가 작정하고 횡령배임을 물고 늘어지는 데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재벌들처럼 방어 비용으로 수백억원을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범죄 사실 또한 뚜렷하고 명확했기에, 박정빈은 울며 겨자 먹기로 편안한 말년을 받아들인 것이다.
평생 구치소에서 재판만 받다가 늙어 죽을 수는 없었으니.
박정빈 회장이 무너지자 기소 중인 다른 임직원들도 뒤따라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대부분 임탁정 검사가 제시하는 '사법거래'를 받아들였다.
전 재산을 팔아서 중앙회에 물어내고, 양형에서 참작을 받은 것이다.
임탁정은 전 재산을 싹싹 긁어서 물어낸 이는 항소를 포기했다. 1심에서 깔끔하게 끝낸 것이다.
그러나 고의로 숨겨둔 재산이 조금이라도 발견된 이는 가차 없이 물어 뜯었다.
1심보다 오히려 구형을 한껏 높여서 항소를 신청한 것이다.
"피고인은 모자라는 배상액은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보충한다고 법정을 거짓 기만했습니다. 이 외에도 숨겨둔 재산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법원 역시 그런 주장을 받아들였고, 피고인을 한층 더 괘씸하게 여겼다.
전 재산을 팔아서 합의금을 냈으니까 이제 용서해 달라는 말이 법원을 기만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임탁정 검사가 물고 늘어지는 선배, 동료들의 소식을 들은 임직원들은 바짝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절대 1심에서 끝내야 한다. 이거 한 번이라도 늘어졌다가는, 정말 그 검사가 평생 동안 우리를 물고 늘어질지도 몰라."
"차장검사라서 이거 말고는 공판 진행하는 것도 없다더라."
어떻게든 1심에서 모든 걸 끝낸다.
전 재산을 포기해야 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구치소에서 재판만 받으며 살 수는 없었으니까.
죄수가 아닌 법정구속자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징역 생활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뭔가.
***
대한외식업중앙회.
수십 명이 넘는 수뇌부가 깔끔하게 날아가자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직원들의 표정은 예전보다 한층 밝아졌다.
그들은 세 명만 모이면 지금 공판 진행 중인 임원들 뒷담을 했다.
"근데 시효 지난 건 원래 안 토해내도 되지 않아? 그런 것까지 전부 싹싹 토해낸 거야?"
"시효 안 지난 건수 가지고 검찰에서 피라냐처럼 물고 늘어지고 있었으니까. 임원들도 어쩔 수 없었겠지."
"보니까 징역 확정판결이 문제가 아니더라. 범죄 건수 쪼개서 검사가 계속 공판 진행하면 이게 인생 그냥 날아가겠던데?"
"검사권력이 무소불위라더니……."
"그래도 이건 사심 없이 올바른 쪽으로 발동한 거라서 다행이지."
수뇌부의 운명은 얼추 결정이 났다.
중앙회에 전 재산을 배상하면 '밖에서' 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안에서' 살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회사에 자리가 대체 몇 개나 난 겁니까?"
"이거 대규모 승진을 기대할 수 있겠는데? 설마 외부에서 영입하지는 않을 거 아냐?"
"일단 하수영 감사님이 먼저 회장으로 취임하시지 않을까?"
다들 하수영의 회장 취임을 기대했다.
회사의 적폐를 검찰에 고발하여 한번에 들어낸 것.
임원들의 큰 공백도 상관없이 오히려 이전보다 효율적이고 잡음 없이 회사를 운영한 경영 능력.
그런 것들을 지켜보며, 하수영이야말로 회장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하수영은 초대형 요식업 프랜차이즈 오너가 아닌가.
이보다 대한외식업중앙회 회장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은 없으리라.
[공지 : 새로운 이사회 구성에 관하여.]
-알립니다. 현재 본 중앙회는 임원들의 조속한 대량해임이 예상되는 바… 이에 따라 이사진 구성을 위한 총결의가 필요함에 따라…….
-별첨한 일정표에 따라 이사회 입후보 과정을 공지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의 예상을 넘는 추신이 있었다.
-추신 : 본 감사는 감사 및 평회원 외의 다른 직위에는 입후보하지 않습니다.
"이거 뭐야? 하수영 감사님이 그럼 회장에 출마를 안 하신다는 거야?"
"말도 안 돼. 하수영 감사님이 회장직을 맡아주셔야 우리 중앙회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데……!"
"그래도 감사를 그만둔다는 건 아니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비교적 오랫동안 중앙회에 몸을 담았던 이들은 몸이 달았다.
그들은 설득을 위해 하수영을 찾아갔다.
그가 회장, 하다못해 최소한 이사회 의결권 하나만큼은 맡아주기를 바랬다.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동하면, 임시로 경영대리를 맡은 감사는 다시 본래의 업무로 돌아가야 하므로,
"여러분들의 뜻은 알겠지만, 저는 이사회 자리를 맡기에 맞지 않습니다. 아, 제가 경영에 자신이 없거나 잘 못해서 그런다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사실 제가 발로 해도 웬만한 경영자들보다는 낫죠."
'감사님보다 더 뛰어난 경영자는 없습니다!'
'감사님의 경영 능력은 이번에 제 희 모두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제발 부족하다는 말씀은 마십시오!'
라는 열변을 토하려던 직원들은 포문을 열지도 못하고 막혔다.
"이사회가 새로 구성되고 제가 긴급 경영대행을 그만두면 중앙회가 지금보다 심하게 삐걱거리긴 할 겁니다. 원래 요즘 회사들 대부분 비효율적으로 돌아가잖아요."
"……."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저 개인의 이익과 중앙회 방향성은 충돌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사직을 맡으면 안 됩니다. 감사직만 맡는 게 공정합니다."
하수영의 차분한 설명에 직원들은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중앙회를 위해서 자신이 이사를 하면 안 된다는 말에는 모순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저는 따로 할 일이 많습니다. 경영이 잘 돌아가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정도가 족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수영은 사교적인 웃음으로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누가 오는 간에 한 푼이라도 비리를 저지르면 바로 조치할 거니까요. 전 '제 눈에 띈' 비리 같은 건 봐주고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차분한 단호한 한마디가, 직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제 평생 본업이 요식업입니다. 주변에 친한 동종업자도 많죠. 그러니 대한외식업중앙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항상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해야 할 강력한 동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수영은 천천히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둘러보았다.
"적어도 그런 동기만큼은 저를 능가하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태산이 바로 뒤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직원들은 하수영을 더 이상 설득할 엄두가 안 났지만, 이전보다 한층 더 안심해서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
"그래도 회장 자리는 요식업에서 오래 일한 사람으로 채워 넣었으면 하는데……."
요식업계를 대표하는 자리다.
당연히 요식업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이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게 맞다.
선수 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이를 감독으로 앉힐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그런데 자영업 하는 양반들이 보통 바빠야 말이지. 회장 감투 같은 거 쓰고 다닐 시간이 없으니."
한 달에 한 번 쉬는 것도 아쉬운게 바로 자영업이다.
하루만 쉬어도 사라지는 매출이 눈에 아른거려서 쉴 수가 없으니까.
그런 와중에 중앙회 이사 직위까지 맡아서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일단 회사 직원 중에서 경력이 깨끗한 사람들 위주로 선별을 하고…… 외부 인사도 영입을 해야겠군."
하수영은 자신이 알고 지내는, 6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들에게 일단 공지를 돌렸다.
수영레스토랑, 수영오세안, 수영치 킨만 합쳐도 6만 명은 가볍게 넘어간다.
"6만 단위 가구를 부양하고 있으니 내 어깨가 무겁구나."
수천억이 넘어가는 은하 주민들 위에 군림했을 때보다 훨씬 더 무거운 기분인데?
"슬슬 나도 협회를 하나 만들 때도 되긴 했는데…… 이제는 여유가 괜찮으려나?"
가칭 수영협회라고 가정하자.
레스토랑, 참치, 라면 등 수영이라는 브랜드의 요식업 가맹주들을 회원으로 받아서 운영하는 새로운 프랜차이즈 협회.
예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구상을 이제 실천으로 옮길 때가 된 것 같다.
대한 외식업 중앙회와는 존재의 목적성 자체가 다르다.
'가칭 수영협회'는 하수영이 출시한 요식업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확장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단체로 세팅할 생각이다.
당연히 협회장은 자신이 맡고,
"좋아, 중앙회 이사회 세팅 끝나면 '내 협회' 결성도 차근차근 진행을 해야지. 육류 사업도 먹거리 사업이니까 추가해야겠다."
하수영은 오늘도 평화로운 힐링 라이프 구상에 열심히 몰두했다.
***
청담 스코프,
육안을 대체하는 완벽한 인공 안구장치는 전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었다.
청담수영병원의 이름과 존재감을 단숨에 전 세계에 떨치는 킬러 타이틀이었다.
"청담 스코프는 단순히 안구를 대체하는 인공 안구 수준이 아닙니다. 청담 스코프를 장착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더 또렷하고,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청담 스코프의 수혜를 입은 사람은 총 9명이다.
1호 수혜자, 서준식.
2호 수혜자, 사우디 국왕의 숙부.
3호 수혜자, 세계적인 뮤지션 티스애던.
그리고 4호에서 9호 수혜자는 티스 애던이 자비로 시술을 해준 어린 시각장애자 팬들이었다.
총시술비가 1,520억이라는 무시무시한 가격 덕분에, 10호 수혜자는 아직까지 선뜻 나오지 않고 있었다.
1,520억 원의 치료비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거의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요즘에는 우리 병원 앞에서 시위를 안 해서 조용하네요."
"초반에는 엄청 시끄러웠지."
"이사장님이 정말 잘 대처하셨어요. 청담 스코프 시술해서 우리 병원이 버는 돈은 전혀 없다, 부품값만 1,500억 원이라서 그런 거다, 그렇게 자세히 밝히니까 시위 목소리가 쏙 들어갔잖아요."
처음에 시위대는 행복을 위한 기술로 돈벌이를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병원이 신 의료기술로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오인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품값만 1,500억 원이고, 공임비가 20억 원이며, 병원은 오히려 적자라는 설명에 그런 여론은 쏙 들어갔다.
"그런데 맹인이 완전히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쉽게 포기는 못할 텐데요. 제가 본인이거나 가족이라면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비벼보려고 할 거 같은데……."
"아, 그 사람들 요즘 보건복지부 앞에서 시위하고 있어."
"아, 그래요?"
"그래. 거기 분위기 장난 아니래잖아. 보건복지부 직원들 출퇴근하는 게 첩보전 수준이라고 하더라."
"그 사람들 기댈 곳은 결국 보건복지부에서 시술비 지원해 주는 것밖에 없군요."
"그런데 못 해주지. 한 명당 들어가는 지원비가 1,520억 원인데 그걸 무슨 돈으로 해줘?"
안과 교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냥 부품값 싸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거 위성이나 우주망원경, 조기 경보기 그런 거에 들어가는 부품들이라서, 아무리 싸져도 절대 수십억원대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들은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