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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570화 (570/1,270)

프랜차이즈 갓 570화

142장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 (3)

골든 트러플이 서식하는 한국 토양연구를 위해 '수영리'에 아예 연구도시를 차린 안살린 왕자도 서울로 올라왔다.

알고 보니 아부다비 왕실 어른들을 서울로 부른 게 바로 안살린이었다.

안살린이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모든 직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바짝 긴장해서 맞이했다.

로비를 돌아다니는 환자와 가족들은 평소와 다른 병원 분위기에 당황했다.

"저분, 무슨 중요한 손님이라도 돼요? 경호원들이 왜 저리 많아……."

"무슨 아랍 왕족이라도 되나요? 분위기가 엄청 살벌한 거 같아요."

그런 환자들의 질문에 간호사들은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랍 왕족 맞으세요. UAE 아부다비 안살린 왕자님이라고, LA다저스구단주이기도 하세요. 세계 제일의 부자라고 하네요."

"세계 제일의 부자라고요?"

"네, 알려진 개인 자산만 5조 달러가 넘는데요, 5조 달러."

"우와, 세상에."

"그럼 우리 병원 이사장님보다 더 부자 아니에요?"

"그런 분까지 찾아올 정도라니…… 역시 수영병원은 대단한 거 같애."

일반 직원이나 환자들은 안살린과 하수영의 사적인 관계까지는 잘 몰랐다.

그저 병원의 유명세 때문에 안살린이 찾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왕세경 부이사장은 의연한 태도로 안살린 왕자를 맞이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역시 속으로 바짝 긴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재벌 창업주라고 하나, 국제자원투자회사의 위명앞에서는 초라할 뿐이니.

하지만 저승차사와 저승대왕까지 만났던 몸이다.

이제 그는 사람을 볼 때, 재물을 얼마나 가졌는지는 초연해서 본다.

많은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자를 중하게 볼지언정, 그저 재물을 많이 가졌다고 중하게 보지는 않는다.

"청담 스코프에 관해 전권을 갖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안살린 왕자는 절제 있는 정중한 태도를 갖추고 있었다.

"병원 재단 운영 전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청담 스코프가 일단 재단 관리로 되어 있다 하니, 결국 청담 스코프판매도 혼자서 결정하실 수 있으시죠?"

"일단 그렇긴 합니다."

"안경 형태로 15개를 구매했으면 합니다. 주문 가능합니까?"

개당 1,520억 원짜리를 마치 슈퍼카 주문하듯이 쉽게 말한다.

"원가 외에 따로 15억 달러를 재단에 기부하겠습니다."

"음, 그런데 청담 스코프가 개별 귀속 형태라는 것은 아십니까?"

"듣긴 했습니다. 사람의 뇌마다 고유값이 있어서 동기화 작업을 해야 한다지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안살린 교수님께 세팅한 청담 스코프는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런 풍경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때문에 양도를 위해서는 소유자와 양도받을 자가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온전하고 합법적인 양도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소정의 시술비만 받고 양도를 해준다.

"상관없습니다. 만들어 주시죠."

"지금부터 주문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걸립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럼 왕실 어른들은 언제 병원을 방문하면 될까요?"

"모듈 제작이 끝나고, 최종 동기화 작업을 하는 날에만 방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그럼 천천히 오시라고 할 걸 그랬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국 구경이나 느긋하게 하시라고 해야겠군요. 그나저나."

안살린은 왕세경을 보고 작게 웃었다.

"저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분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최근에는 하수영 농민회장 그분 외에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 왕자님이라고 불러드릴 걸 그랬을까요?"

"감사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도 교수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왕자님, 회장님, 구단주님, 이 중에 하나로만 부를 뿐이다.

왕세경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왕실 웃어른들 것을 전부 개인 돈으로 사주시는 겁니까?"

"네, 선물입니다. 뭘 드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청담 스코프를 안경 형태로 만들어서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더군요."

"매우 좋아하실 겁니다."

"겸사겸사 저도 써보려고 합니다.

시력이 향상되면 연구 활동에도 도움이 될 테지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양산화 구축에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혹시 외부 투자도 받습니까?"

왕세경의 눈빛이 달라졌다.

상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물론 독재자를 제외하고) 심지어 가진 재산의 99.9%는 물려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쌓은 것이다.

그가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파는 땅마다 석유나 금, 다이아몬드, 각종 천연자원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다만 의결권은 나눠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이렇게 확실한, 이미 완성된 사업 아이템인데 뭐하러 남에게 의결권을 양보합니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설투자비와 시간뿐인데요."

기술 자체는 이미 완성됐고, 그 효능도 입증이 되었으니.

단가 절감만 남은 아이템을 미쳤다고 남과 의결권을 나누겠는가?

"무엇보다 저도 더 많은 실명 환자들이 청담 스코프의 혜택을 받기를 바랍니다. 양산 체계가 더 빨리 자리 잡힌다면 좋겠지요."

안살린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6조 달러 전부 조달하고 싶지만, 저도 요즘 현금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서……."

재물이라는 것에 완전히 초연해진 왕세경조차도 속으로 '플렉스!'를 외칠 뻔한 혼잣말이었다.

6조 달러를 가지고 '요즘 지갑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개인이 또 있을까?

'우리 이사장도 그렇게는 못 하는데.'

"일단 1조 달러 정도는 어떻게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우선주 7만 주를 발행해서 1만 주를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보통주 발행 수는 우선주 전체 수와 똑같이 갑니다."

"1주당 가격이 정말 비싼 주식이로군요."

1조 달러를 따로 조달했다고 해서, 정부 할당치 6조 달러를 줄여줄 마음은 없다.

외부에서 얼마를 수혈받든 간에 정부한테 무조건 6조 달러를 받을 것이다.

[아부다비 왕실, 청담 스코프 15세트 주문!]

[안구 적출 없이 탈착식 안경형으로 주문하다!]

[세계 제일의 거부 안살린 왕자, 왕실 어른들을 위해 청담 스코프 15세트를 쏘다!]

[22억 8,000만 달러의 제작비 외에 따로 15억 달러 재단에 쾌척하기로. 실질적 공임비?]

[청담수영병원, 청담 스코프로 올린 기증수익만 무려 17억 달러 이상!]

[안경 사용자들, 천만 원 미만 가격으로 떨어지면 진지하게 구매 고려할 것.]

[청담 스코프, 떡상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 이래도 탑승 안 할 텐가?]

[모두 스코프 코인에 올라라!]

아부다비 왕실의 집단구매는 기획재정부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청담수영병원을 샅샅이 털어서 회계상 문제점을 찾아내려 했는데, 하필 이런 일이 터졌으니.

온 나라는 이미 청담 스코프가 양산되면 벌어들일 수익을 계산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안경 교정시력이라고 해봤자 보통 1.0 정도인데, 청담 스코프는 2.0은 가볍게 나온다지?"

"2.0은 그냥 기본이라는데? 그리고 선명도가 장난 아니고 먼 풍경도 줌인하듯이 볼 수 있다나 봐."

"노안인 사람들 안경과 돋보기 바꿔 가면서 낄 필요도 없겠네. 청담스코프 안경 하나만 있으면."

"정말 그렇네? 이거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잖아?"

"눈을 적출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동안 생각을 못 했던 것뿐이지. 굳이 적출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실명자들이야 아예 눈대신 박아 넣는 게 벗겨질 염려 없고 해서 그렇게 하는 거지만, 좀 편하자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냥 안경처럼 쓰면 되니까."

"전문가용 루뻬 시장도 완전히 대체할 수 있겠는데?"

"맙소사, 수영병원에서 대체 뭘 만들어낸 거야?"

"당연히 병원에서 직접 만든 건 아니지. 재단에서 권리를 갖고 있긴한 모양인데."

대중은 청담 스코프의 무궁무진한 시장 잠재력을 깨달았다.

-실명자들이 안됐긴 했지만, 일부 소수를 위해서 국가 10년 치 예산을 쏟아붓는 건 심한 거 아니야?

그런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대신에.

-실명만 퇴치하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의 질 그 자체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혁신 그 자체다.

-실명자들만 생각할 게 아니다. 국가 경제산업이 크게 발전하는 거다.

-이 정도면 6조 달러 쏟아부을 만하다. 어차피 한 번에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 투자라면서?

-아직도 스코프 코인 안 탄 흑우없제?

-스코프 코인에 탑승하고말고 간에, 애초에 시중에 나오지 않는 지분이잖아…….

아부다비 왕가의 15세트 집단구매만 해도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을 이벤트였는데.

여기에 안살린 왕자가 핵폭탄까지 떨어뜨렸다.

[국제자원투자회사 오너 아부다비안살린 왕자, 청담 스코프에 1조 달러 쾌척!]

[계약 즉시 일시불로 입금될 것.]

[전량 의결권 없는 우선주!]

[한국 정부 지분율의 행방은 어디로?]

자그마치 1조 달러의 투자금이었다.

정부가 투자를 하니 마니, 우리가 그럴 없니, 하는 사이에 한 개인이 선뜻 1조 달러를 쾌척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여론에 불이 크게 붙었다.

-아니된다! 청담동 눈깔을 절대로 오일 머니에 빼앗길 순 없다!

-오일 머니 파워가 여기까지 온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랏!

-1차로 1조 달러 선뜻 내놓을 정도면, 나머지 5조 달러도 국자투에서 다 부담하는 거 아니야?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국민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안살린이 정부를 제치고 오롯한 투자자로 자리 잡는, 그래서 청담 스코프가 UAE에 넘어가는 미래를 상상하며.

정부에서는 안살린이 얻는 지분도 의결권 없는 우선주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안살린이 1조 달러만큼 회사의 가치를 독점한다고 인식할 뿐이었다.

거기에는 언론사가 세경그룹에서 받아서 풀어대는 기사의 논조가 한 몫했다.

-내가 안살린이라고 해도 청담 스코프 이거 무조건 잡는다. 돈이 없어, 미래가 없어, 뭐가 없어?

-맞아. 일단 이런 건 잡고 보는지.

-대체 정부는 뭐 하는 거야? 빨리 특별법 밀어붙여서 청담 스코프에 통 크게 지원해랏!

-애초에 우리가 어리석었다. 겨우 장님들한테만 쓸모 있는 아이템이라고 멋대로 치부했으니.

***

안살린이 부른 1조 달러는 정부를 극한의 지경까지 몰아넣었다.

기재부는 관련 행정 각부와 매일같이 언쟁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국민들이 이렇게 크게 기대하고 있는데, 기재부는 대체 뭐합니까?"

"아, 장관님. 아시잖습니까. 우리 정부 돈 없습니다, 없어요. 6조 달러가 누구 애 이름도 아니고."

"안살린 왕자는 개인 돈으로 1조달러나 투척했잖습니까."

"그거 우리나라 2년 치 국가 예산입니다. 그 사람이 어디 보통 개인입니까? 개인의 탈을 쓴 국가 그 자체지."

"그렇다고 돈 안 풀 겁니까?"

"아무튼 6조 달러는 무리입니다. 20년간 5,000억 달러 정도라면 모를까요."

"이봐요, 정 차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예상치 못한 폭탄을 맞은 기재부는 어떻게든 국고를 사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여기저기 들어오는 압박을 버티면서, 동시에 우군을 찾아 여론 전환에 힘썼다.

"빨리 수영 재단 뒤져서 큰 거 하나 찾아내! 그러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횡령 건수 큰 거 하나만 찾아내면 지금의 여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에게 어떻게 생선을 맡기느냐고 여론에 호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부총리님,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는데요?"

"뭐야?"

"정말 집요하게 탈탈 털었는데 어떻게 된 게 먼지 하나 안 나옵니다. 국세청 특수팀 애들도 질렸다는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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