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86화 (586/1,270)

프랜차이즈 갓 586화

147장 엔터계의 황제 (2)

하수영이 께름칙하다고 했다.

물론 아무것도 정보가 없고, 근거도 없이 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주환은 그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천운을 타고 난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의 말 못 할 예감은 전문가들의 장편 논문보다 훨씬 정확할 수 있으니.

'그쪽에서 제작 협조 요청 들어왔는데… 우리도 그건 깔끔하게 거절을 해야겠어.'

촬영, 편집 지원 등 제작에 필요한 작업을 유료로 해달라는 요청.

부활의 이순신 시즌2 제작이 거의다 끝났으니, 회사 용돈벌이 겸 할까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하수영의 말을 들으니 그런 생각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

'거리를 딱 둬야지.'

"그럼 총제작비는 5,253억 원인가요?"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케팅비로 2,000억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동시에 뿌릴 생각입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초대형 급 영화에 버금가는 예산 집행이다.

고주환은 한국 영상 컨텐츠 제작계의 신화가 써내려가는 무대에 한몫한다는 것이 뿌듯했다.

"넷플렉스는 물론이고, 50개국 이상의 나라의 지상파 채널로 동시 송출이 될 예정입니다."

"수익이 꽤 남겠네요."

"송출료에 광고비 정산까지 생각하면 적어도 2, 3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거둘 겁니다."

하수영은 부활의 이순신 시즌1에 투자해서 많은 수익을 냈다.

하지만 그 수익은 고스란히 시즌2제작에 재투자했다.

"이번 투자수익도 회수하지 않고 다른 컨텐츠 제작에 재투자할 생각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지출 종류를 한 번 결정한 돈은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는 안 옮기거든요."

농사에 투자한 돈은 끝까지 농사부동산에 투자한 돈은 끝까지 부동산에.

요식업에 투자한 돈은 끝까지 요식업에.

한 번 길을 찾아간 돈은 웬만하면 거기서 뼈를 묻게 하는 게 하수영의 취향이다.

부활의 이순신에 투자한 자본은 계속 미디어 컨텐츠 제작에 쓰일 것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넷은 식사를 계속했다.

"잠시만요. 구의회 일이라서 전화 안 받을 수가 없네요."

"아유, 어서 다녀오십시오."

하수영이 통화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고주환은 장효주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때, 의원님하고 요즘 잘 되어가?"

"글쎄요."

"천하의 장효주한테 여태 안 넘어오는 남자가 있을 줄이야. 벌써 인연 닿은 지 2년은 되지 않았어?"

"그렇죠. 황비라면 CF로 시작했으니까."

"그때도 예사롭지 않았지?"

"보통 분은 아니었죠."

장효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효주 너 아니었으면 우리 스튜디오 지금 어땠을까 싶다. 네 덕분에 의원님하고 인연 맺어서 이렇게 글로벌하게 활동할 수 있게 돼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렇게 기름 안 쳐도 이따가 수영씨한테 말해볼 거예요."

"아유, 부담 주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럼 아시죠? 눈치껏 식사 다 하셨으면……."

"알았어, 알았어. 거의 다 먹었으니 이번에 오시면 얼른 비켜드릴게."

이윽고 하수영이 돌아왔고, 고주환과 장기석은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럼 투자자님,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밥도 다 먹었고요."

"식후 커피라도 한 잔 하셔야지, 이거 다 드셨다고 벌써 가시게요?"

"얼른 들어가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입니다. 부활의 이순신 시즌2 잘 만들어서 팔아야 투자자님께 면목이 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고주환과 장기석은 도망치듯이 자리를 비켜 주었고, 이제 하수영과 장효주 둘만 남았다.

"옮길까요?"

"그냥 세팅만 새로 해요. 디저트코스 먹을 거잖아요, 이제."

"그럽시다."

하수영은 직원을 호출했고, 테이블이 깔끔하게 치워지고 디저트 코스가 시작되었다.

넷이서 앉았다가 둘이 사라지니, 서로 나란히 앉은 구도가 되었다.

파파라치가 보면 흥분하기 딱 좋은 광경.

하지만 이 레스토랑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완벽하다. 하수영이 건물주이자, 이 지역구 기초정치인이었으니.

"고주환 대표님이 수영 씨가 회사 지분을 좀 인수해 줬으면 하는 눈치예요."

"재정이 안 좋습니까? 부활의 이순신으로 돈 많이 벌지 않았어요?"

"원래 드라마 영화 대박 나면 영화관, 방송국, 배급사, 투자자가 제일 많이 벌어요. 제작사는 가장 끄트머리죠."

"그랬군요."

"제작 대가에 약간의 인센티브 정도? 제작사도 자체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렇게 많이 못 건져요."

"KI스튜디오는 투자 안 했나요?"

"제가 알기로는 5억 정도 넣었을 거예요. 그것도 진짜 큰마음 먹고 한 거죠."

"재주는 곰이 부렸는데 돈은 사람이 챙겼군요."

"그래도 제작사로서 이름을 널리 떨친 덕분에 여기저기서 묻지 마 투자가 들어오고 있어요."

"기왕이면 제가 투자해 주길 바라는 거군요."

"시즌2는 수영 씨가 혼자서 전부 투자했잖아요. 못해도 2, 3조 원은 들어올 텐데, 거기서 제작홍보비 제외해도 수익이 1, 2조는 넘을 거 아니겠어요?"

하수영은 미디어컨텐츠 제작에 넣은 돈은 계속 거기에 묻어둘 거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막말로 그 돈이 다른 제작사로 옮겨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감독들이 얼마나 수영 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알아요?"

하수영은 말없이 어깨만 으쓱했다.

"나한테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스팸 피싱처럼 연락이 들어와요. 세상에 몇천억을 투자하고 재밌게만 만들라고 노터치하는 투자자가 어딨어요? 아, 넷플렉스가 있구나."

장효주는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KI스튜디오 좋은 회사예요. 한 번 지분 인수도 생각해 봐요."

"추가 인센티브로 시즌2 수익의 10%."

순간 장효주의 손끝이 멈칫했다.

10%면 1천억, 2천억 단위의 금액이다.

그걸 제작사 몫으로 주겠다고?

"800억에 지분 80% 인수."

회사의 가치를 1,000억으로 봐주겠다는 의미.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전하세요."

"얼마 안 되는 제작 인센티브 외에 추가로 천억을 더 받겠니, 지분 8할을 800억에 팔겠니, 선택하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경영권은 당연히 보장할 테고요."

"제가 제작을 뭘 아나요? 할 일도 산더미입니다. 농장, 부동산, 프랜차이즈, 펜션, 관리해야지, 의회 출근해야지, 학점도 따야지. 어휴, 바쁘다, 바빠."

"고 대표님이 들으면 고민이 깊어 지겠는데요. 불면증 걸릴지도 몰라요."

어느 것 하나를 선뜻 고르기 어렵다.

뭐가 더 나은지 헷갈린다.

인센티브 10%를 받는 게 당장 더 큰돈이 들어오긴 하는데, 지분을 팔면 하수영과 길게 가는 끈끈한 관계가 된다.

"짓궂은 선택지를 줬네요."

"직접 말 안 하고 효주 씨 우회한 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전할게요. 저도 궁금해요. 고 대표님이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지."

"머리 좀 빠지실 겁니다."

"그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안 그래도 탈모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으시던데."

***

도우야 히데키.

일본의 스시 대형 프랜차이즈, '도우야 초밥'을 운영하는 요리사 출신의 기업가다.

수영참치를 수입하는 거래처이기도 했다.

도우야 초밥은 수영참치의 품질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통영 참치양식장에서 출하되는 참치의 대부분은 도우야 초밥이 가져간다.

수영오세안은 아직 매장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도우야 히데키가 서울을 찾아왔다.

"수영참치를 본격적으로 일본에 유통해 보고 싶습니다."

도우야 히데키는 처음에는 프랜차이즈 최고관리자 주희도를 찾았다.

하지만 주희도가 참치 유통은 뉴월드마트 관할이라며 박태규 사장을 안내해 주었다.(황태진은 부회장) 박태규는 먼 길을 온 손님을 깍듯하게 접대했다.

"양식장을 늘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 참치 고정 출하량이 그리 많지 못합니다. 일본의 참치 수요를 생각하면 전면적인 유통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거절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소리였다.

지금 도우야 초밥 일본 매장에 공급하는 양도 벅찰 지경이니.

무공해 참치를 찾는 소비자는 많지만, 대부분의 매장에서 오후가 되면 떨어져 버린다.

아예 며칠씩 물량이 안 들어오는 매장도 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중금속이 함유된 참치를 먹어야 한다.

"고객의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무섭더군요. 고객들은 그전에는 일반 참치를 아무런 걱정 없이 잘 드셨습니다. 하지만 중금속 0의 참치를 한 번 접하게 되니, 그 뒤로 일반 참치를 꺼리게 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한 번 높아진 눈은 다시 낮추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부탁드립니다. 우리 회사에 일본 유통독점권을 주십시오."

"유통권을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물량이 부족해서 의미가 있을지 염려됩니다."

은근슬쩍 빼는 척하다가, 박태규사장은 원하는 바를 꺼냈다.

"도우야 초밥은 일본 최대의 스시프랜차이즈 브랜드입니다. 그렇지요?"

"물론입니다. 가장 많은 초밥 매장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도우야 히데키는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도 도우야 초밥의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쌀 소비량도 엄청나 시겠군요."

"쌀 소비량……."

그제야 도우야 히데키는 박태규 사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일본 특유의 간접화법보다 훨씬 직설적이기에, 원하는 바를 캐치하기가 쉬웠다.

도우야 히데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하다가 질문했다.

"도우야 초밥의 모든 매장에서 귀사의 쌀을 써주시길 바라는 겁니까?"

"정확히는 모기업인 수영농장에서 난 쌀을 사용해 주길 바랍니다."

"……."

"잘 아시겠지만 수영농장의 쌀은 품질이 매우 좋습니다. 한 번 드셔보시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심지어 무척 저렴합니다."

"저렴하다면, 어느 정도나……."

"운송 비용을 생각하더라도, 귀사가 지금 매입하는 일본쌀보다는 20% 이상 저렴하게 들이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도우야 히데키는 화색이 돌았다.

기업가는 무엇보다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수영농장의 쌀을 들이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네, 그리고 귀사도 국제적인 당근양파 파동에 고생하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미국 푸드업체들이 긁어가는 바람에 가격이 너무 치솟았습니다. 물량도 귀해졌고요."

"그것도 우리가 공급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도우야 히데키는 깨달았다.

이것들은 하나하나가 개별이 아닌, 한데 묶인 패키지라는 것을.

"좋습니다. 귀사의 너그러운 제안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 계약하지요."

그렇게 해서 뉴월드마트는 수영참치 일본유통권을 도우야 초밥에 준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 대가로 도우야 초밥은 모든 매장에서 수영농장산 쌀, 양파, 당근만을 사용한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여기에서 참치는 빠졌다.

수영참치의 공급량이 도우야 초밥의 수요량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계약을 마친 박태규 사장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회장님을 위해 겨우 작은 거래 하나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수영농장 쌀은 돈이 안 된다.

작년 비축미 폐기로 인해 몇 차례 대량 공급을 하면서 10조 단위의 돈을 만지긴 했지만, 그 뒤로는 수입이 없다.

엄청난 양의 쌀을 생산하지만, 배합사료, 저소득층 가정, 사내복지 수영몰에 무상 수준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

고주환은 머리가 빠져라 고민 중이었다.

장효주가 건넨 이야기 때문이었다.

"허참…… 추가 인센티브를 생각하면 당장 천억이 넘는 돈이 회사에 들어오긴 할 텐데……."

그런데 만약 그것을 선택하면?

하수영의 KI스튜디오 지분 인수는 영영 없을 것처럼 보인다.

800억 원에 80%를 팔면 당장 돈의 규모가 심하게 차이 난다.

그러나 하수영이 오너 대주주로 들어옴으로써, 든든한 후원자를 얻게 된다.

예술문화는 결국 든든한 물주가 있어야 활발해진다는 것은, 르네상스시절부터 증명된 법칙 아닌가?

"에이, 이런 걸로 고민하는 게 바보지. 무조건 투자받는다. 의원님과한 가족이 되는 거야!"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더 이상 머리가 빠지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하고 있을 때, 장기석 실장이 급히 찾았다.

"대표님, 적토마 스튜디오가 받은 투자금이 1,500억 원이라는데요? 공시 떴습니다."

"뭐? 아니, 누가 그 별 볼 일 없는 제작사에 그런 큰돈을 투자해? 오일머니라도 들어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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