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91화 (591/1,270)

프랜차이즈 갓 591화

147장 엔터계의 황제 (7)

하수영은 위대한 태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피땀 흘려 구르면서 광개토대왕 업적을 도왔는데, 그 역사를 감히 뺏어가려고 해?'

무한전생 중 광개토대왕의 밑에서 장수로 일한 적도 있었다.

물론 역사에는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무명장수였지만…….

그래도 영토 확장 업적에 당당히 기여했다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장효주가 옆에서 말했다.

"예전부터 국내 컨텐츠 기업 싹쓸이한다고 말이 많았거든요. 이미 팔린 회사도 꽤 되죠."

"그런가요?"

"국내 제작사 중에서 절반 가까이는 이미 중국에 팔렸거나 자본 받았거나 그럴 거예요."

"제주도 땅도 싹쓸이하더니 이제는 컨텐츠 시장도 싹쓸이하는군요."

"근데 적토마 스튜디오까지 팔렸을 줄은 몰랐네요. 거기 대표님은 절대로 중국 돈 앞에 굴하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돈으로 해결을 못 한다면 돈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말이 있죠."

"이번에는 중국이 거기 대표님 마음을 살 만한 돈을 제시했다는 건가요?"

적토마 스튜디오는 상장된 주식회사가 아니다 보니, 외부에서 지분구조를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알음알음 중국 자본에 팔렸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마침 부활의 이순신 방영 중에 잠시 광고 타임으로 넘어갔다.

엘릭서 드링크를 마시는 장효주의 CF가 화면에서 흘러나왔다.

"……시청자들이 질려 하겠어요. 드라마에서도 제 얼굴 보는데, 중간 중간 광고 타임에서도 제 얼굴 보잖아요."

황비라면 장효주 CF는 이미 드라 마 시작하기 전에 나왔었다.

"그래도 효주 씨는 예쁘니까 괜찮습니다. 예쁜 건 아무리 봐도 안 질리거든요."

"흐응, 수영 씨도 나 볼 때 그래요?"

"질릴 리가 있나요. 저도 예쁜 걸 좋아하는데요."

"그럼 왜 안 잡혀줘요?"

"자, 적토마 스튜디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죠."

냉정한 화제 전환이지만 장효주는 적응이 됐는지 그러려니 넘어갔다.

"우리나라가 드라마는 잘 만드니까 중국 미디어그룹에서 탐을 많이 내요. 이번에 적토마 스튜디오에서 위대한 태왕으로 세계 진출을 결심했던 거 같아요. 제2의 부활의 이순신이 될 거라고 믿었나 봐요."

"그래서 아랍계 자본으로까지 위장해서 제작을 지원했다……."

"적토마 스튜디오도 대놓고 돈을 받기에는 부담스러웠겠죠."

"그럼 드라마나 잘 만들어서 가져가면 되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넣었는지, 참."

하수영은 혀를 끌끌 찼다.

"하여튼 꼼꼼한 나라라니까.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착실하게 동북공정 준비하고 있군. 달라진 게 없어."

"방영도 중지됐는데 제작 강행한다고 하니, 더 이상 압박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적토마 스튜디오는 실제로 인터넷에서 뭐라고 하든 간에 자기 갈 길만 가고 있었다.

배우들은 불만이 엄청났지만, 위약금을 내고 하차할 만한 배짱이 없었다.

아무리 애국심이 크다고 한들,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물어내면 톱스타라고 해도 파산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 현실적으로 제작을 중단시킬 방도가 없는 것이다.

"저라면 효정 언니처럼 위약금 내더라도 빠져나왔을 텐데. 이해는 조금 해요. 효정 언니가 그런 큰돈을 물어주는 걸 봤으니 겁이 나겠죠."

"잘못이야 배우들을 속인 제작사에 있죠. 이런 설정 전개를 넣을 거라고 미리 고지하지 않았잖아요."

"소송 걸어도 힘들 걸요?"

"원래 소송이라는 것은 세레머니입니다. 갈등 문제는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태어나고 내가 사는 영지를 어지럽히는 것은 두고 보면 안 되죠."

"수영 씨가 나설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요?"

장효주는 설마 하는 상상을 품었다.

"혹시 위약금을 전부 대신 내주시려고요? 그건 안 돼요! 아무리 수영씨가 돈이 많아도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잖아요!"

"배우들 위약금 대신 내주면 적토마 스튜디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건데 제가 뭐 하러 그렇게 합니까."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하수영은 작게 피식거렸다.

"꼭 배우만 제작 중단을 시킬 순있는 건 아니죠."

***

강대승 카메라 조감독은 하루하루 진한 회의감을 품고 살고 있었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이따위 드라마를 찍고 있어야 돼?'

마음 같아서는 주효정처럼 촬영장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로막았다.

생활고 문제는 괜찮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니까.

문제는 촬영장 이탈시 몇 천만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어쩐지 웬일로 스태프 고용계약에 그런 조항을 넣는다 싶었다.'

적토마 스튜디오는 조감독은 물론이고, 말단 스태프까지 꼼꼼하게 고용계약서를 작성했다.

원래 말단 직원까지 고용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없는데, 그때 이상하다고 느껴야 했다.

계약서에는 손해배상조항도 있었다.

천재지변 같은 불가항력적 상황이 아닌 이유로 일을 중단하면, 그때까지 받은 급여의 열 배를 배상해야 한다.

톱스타한테는 몇천만 원 정도에 달하는 배상금이 별거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역이나 스태프한테는 도저히 물어낼 수 없는 돈이었다.

'처음부터 작정을 한 거야. 그러니까 꼼꼼하게 그런 조항까지 넣어둔 거지.'

그냥 요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서명했다.

천재지변 등의 면책 사유도 있었으니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여겼다.

'난치병 걸렸다고 걸렸다고 거짓말이라도 해? 아니야, 분명히 병원 진단서까지 끊어오라고 할 놈들이야.'

감독과 메인 작가는 처음부터 다 알고 참여한 거니 상관없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자신 같은 이들은 억울했다.

그때였다.

실톡 메신저를 통해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하고 발신자를 확인한 강대 승 조감독은 깜짝 놀랐다.

"하수영? 혹시 KI스튜디오 그 하수영인가?"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신흥 황제로 등극한 하수영.

가수고, 배우고, 제작자고 간에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하수영입니다.

영상통화를 받자 과연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강남구의회 홈페이지에 걸린 사진 하고 똑같았다.

-위태한 태왕 촬영진 강대승 조감독님 되시죠?

'지금 위대한이 아니라 위태한이라고 한 거 맞지?'

"네, 제가 강대승입니다만, 처음 뵙겠습니다."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우리 KI스튜디오 새 드라마 제작에 합류하실 생각이 없습니까?

"KI스튜디오 말입니까?"

-네, 지금 당장이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안이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당장은 곤란합니다. 제가 지금 위대한 태왕에 묶여 있어서……."

-당장 나오시죠. 책임은 제가 집니다.

"책임을 지신다고요?"

-네, 만약 소송 들어오면 제 법무팀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해결할 겁니다. 혹 패소해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 역시 제가 책임집니다. 그냥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시고 드라마 제작에만 열중하시면 됩니다.

귀가 절로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

-지금 당장 위태한 태왕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습니까? 무단이탈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도 없습니다. 과감하게 저지르세요.

"정말 모든 걸 책임져주시는 겁니까?"

-저도 정치하는 사람입니다. 허언은 안 합니다. 구두계약이지만 계약은 계약이니 반드시 지킵니다.

하수영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믿어지지 않는 제안이라서 한번 더 확인이 필요했을 뿐.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 중에서도 같이 탈출할 사람들을 모으세요. 그들도 전부 제가 책임질 테니까 설득해주시고요. 원하신다면 오늘 당장 자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제야 강대승은 하수영이 진짜 원하는 게 자신의 섭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동아줄을 내려준 게 그저 감사했다.

"위대한 태왕이 제작 중단되기를 바라시는 거군요."

-네. 스태프가 다 빠져나가면 배우들을 붙잡아둬도 아무 소용 없지요.

다시 촬영팀을 꾸리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전 국민 앞에서 손가락질당할 게 뻔한데.

스태프가 전부 빠져나가면 결국 촬영은 엎어지게 된다.

촬영장 이탈했다고 욕할 사람은 적토마 스튜디오 관계자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배상금까지 전부 책임져주신다고 하셨으니…….'

그럴 만한 재력이 넘쳐나는 사람이고.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없다.

그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저, 그럼 오늘 당장 자리를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직접 말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얼굴 한 번 보여주시는 게 스태프들 안심시키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지요. 신논현 르주블랑 호텔로 오세요. 연회장 세팅해 놓겠습니다.

영상통화를 끊자마자 그는 얼른 불만 있는 스태프들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대부분 반신반의했다.

"그분이 엔터계 황제인 건 알지만, 뭐 좋을 게 있다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제작을 중단시켜요? 이미 방영은 중지됐는데."

"괘씸하신 거지. 그분도 엄연한 한국인이잖아."

"……."

"그리고 강남구의원이신데 그런 지위에서 오는 책임감도 있을 거고, 아무튼 진지하게 도와주기로 하셨으니 가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촬영은 다 끝나고 가는 거죠?"

"새벽까지 촬영해야 하는데 미쳤어? 그냥 지금 당장 이탈할 거야."

"네? 그래도 돼요?"

"아니, 그럼 그분을 기다리게 하려고? 우리도 그분한테 이 정도 각오는 보여드려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설득당한 스태프들은 촬영을 하다 말고 일제히 우르르 빠져나갔다.

식사가 끝나고 돌아온 PD는 썰렁한 촬영장을 보고 당황했다.

"뭐야? 다들 어디 갔어?"

"모르겠습니다. 아까 다들 우르르몰려서 급히 가던데요."

"전 피디님이 뭐 시키신 줄 알았어요. 다들 뭉쳐서 이동하길래요."

"다들 연락해! 얼른 튀어오라고 해!"

서둘러 전화를 돌렸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들 연락을 무시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톡 메시지를 보내도 읽지 않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남은 스태프들은 차라리 후련했다.

"아유, 그냥 이렇게 촬영 파토 났으면 좋겠다. 역사매국 드라마 더러워서 못 찍겠는데."

인력의 7할 이상이 빠져나갔으니 촬영이 가능할 리가 없다.

배우들은 무제한 대기에 들어갔고, 성난 피디는 아랫사람들을 닦달하며 무단이탈한 스태프들을 찾으라고 노발대발했다.

"이 새끼들, 이렇게 튄다고 해결될 줄 알아? 로펌 보내서 지옥 끝까지 배상금 받아내고 말 거다!"

배우들과 남은 스태프들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했다.

합법적으로 촬영이 중지된 상황이었으니.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집단으로 촬영을 거부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먼저 나서준 이들이 고마웠다.

'자유의 몸을 찾아 떠났구나, 도비들아…….'

***

탈출한 스태프들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은 전혀 닿지 않았으며, 다음 날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제작진은 부랴부랴 새로운 촬영팀을 꾸리려고 애썼으나,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반 스태프한테 두 당 몇억씩 줄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결국 두 손 놓을 수밖에.

사실상 제작이 중단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제작진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KI스튜디오에서 빼돌렸다고?"

"네, 확실합니다."

"그 새끼들, 우리하고 한 번 해보자는 거지? KI스튜디오하고 탈출한 노예들 전부 싹 다 소송 걸어."

결국 제작이 엎어진 적토마 스튜디오는 소송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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