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99화
150장 광고계의 큰손 (1)
부활의 이순신 시즌 2는 주 1회 방영한다.
첫 방영일부터 TV 광고 매출만 100억 원을 넘기며 기세 좋게 쏘아올렸다.
원래도 광고주들이 너도나도 돈 싸짊어지고 찾아올 작품이지만.
하수영이 작정하고 모든 광고를 밀어줬으니.
농장, 프라임컴퍼니, 프라임웰빙, 프라임오일, 프라임건설…….
수영라면, 치킨, 참치, 펜션, 호텔, 목장, 사료, 병원, JM식품, 효원식품, JS그룹,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등…….
이대로 가면 종영까지 TV 광고 매출만 2,000억 원은 확실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내 돈으로 드라마도 만들고, 내 드라마에 내가 광고도 붙이고,
"부활의 이순신을 잡은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어."
"시즌 1 방송국이 멍청한 짓을 했죠. 시청률 55%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는 작품을, 무슨 깡으로 시즌 2에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덕분에 우리한테 이렇게 더 좋은 기회가 돌아왔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드라마 작품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본방송과 재방송 송출 권한만 있다.
1년 단위 계약이며, 오직 TV 광고수입만 기대할 수 있는 상황.
"우리도 KI스튜디오에 제작 투자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이순신 2에 돈 다 밀어 넣어서 지금 당장은 제작비가 모자라지 않을까?"
"시즌 2에만 5,000억 원 넘게 밀어 넣었으니, 당장은 돈이 없긴 할 겁니다."
국장과 부국장의 대화에, 과장 직원이 어림없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하수영 제작자님이 이번에 KI 인수하면서 추가 제작비로 1조 원 입금했대요."
"뭐? 1조 원?"
과장은 소식이 참 느리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표정을 관리했다.
"네, 아마 외부 투자를 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자체 제작비가 넘쳐나는데 뭐하러 외부 투자를 받겠어요."
"끄응……."
"안 그래도 컨텐츠 잘 만드는 업체가 요즘 갑으로 떠오르는데, 심지어 초대형 광고주이기도 하잖아요."
제작비 5,000억대 잘 빠진 작품제작사.
그 작품에 광고비로 2,000억 원넘게 쓰는 광고주.
그 둘이 한 몸이라니.
"미국에서 이러면 반독점법 위반이라고 회사 강제 분할되는 거 아니냐?"
"재밌으라고 하신 농담은 아니겠죠?"
"으음, 재미가 없었나."
그때 부국장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어, 무슨 일이야?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뭐라고! 지금 하수영 제작자님이 우리 방송국에 오셨다고?"
-네! 독일제 퍼포먼스 캠핑카 타고 오셨어요! 우리나라에 몇 대 없는 차인데 뻔하잖아요!
"이런! 얼른 나가봐야겠……!"
부국장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미 국장과 과장은 회의실을 벗어나 달리고 있었다.
"국장님! 같이 가요!"
셋은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렸다.
복도 저 멀리, 청바지에 흰 면티를 입은 청년이 혼자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전화로 알려준 직원이 달라붙어서 쩔쩔매며 안내하고 있었고.
주변을 지나치는 연예인들이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눈빛으로 자꾸만 훑어본다.
공개 복도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국장과 부국장이 동시에 나타나자, 연예인들과 매니저들은 저마다 놀랐다.
'국장님과 부국장님이 여기까지 같이 내려오셨다고?'
'무슨 일이지?'
'어쩌지? 가서 인사라도……."
드라마 업계 최상위 포식자인 CVN 케이블의 드라마 최고 권력자들.
배우를 거느린 매니저들은 눈알을 굴리며 어떻게든 접근하려고 타이밍만 했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저는 장스타엔터테인먼트의 ……."
"아아, 나중에."
용기를 내어 접근한 실장매니저가 가차 없이 까이자, 다들 접근할 마음을 잃어버렸다.
"아이구, 제작자님. 어떻게 여기까지 이렇게 오셨습니까."
"연락 없이 와서 죄송한데, TV 광고 때문에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그럴 리가요! 제작자님이라면 새벽 3시에 저희 집에 오셔서 초인종을 눌러도 제가 웃으면서 맨발로 맞이해야죠! 이쪽으로 오십시오!"
국장과 부국장은 사근사근 웃으며 좌우로 하수영을 에스코트하듯이 안내했다.
그 뒤로는 벙찐 얼굴의 연예인과 매니저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지?"
"혹시 여기 방송국 회장 아드님 아니야?"
"맞는 거 같네. 그렇지 않고서야 국장님과 부국장님이 저렇게 신줏단지 모시듯이 맞이하겠어?"
입구에서 하수영을 안내했던 방송국 직원은 수군거림을 듣고 에헴 헛기침을 한 뒤 나섰다.
"저분이 바로 영원한 제독의 아버지, 부활의 이순신 제작자님이셔."
"꺅, 정말요?"
"와, 대박. 완전 대박."
엄밀히 말해서 드라마를 제작한 것은 아니고 제작비를 모두 댄 소유자이지만, 꼭 정식 회장 타이틀이 있어야만 회장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저분이 이분에 KI스튜디오인수했다는 하수영 제작자님? 와, 나 처음 봐."
"어떡해. 가서 인사라도 드릴걸. 아, 왜 멍청하게 가만히 있었지?"
"인사한다고 귀찮게 하는 게 더 찍히는 거 몰라? 와, 근데 되게 말끔하게 잘생기셨네. 피부 완전 좋은 거 보고 깜짝 놀랐어."
"원래 농사가 주업이시라고 들었는 데, 전혀 흙 느낌은 안 났어. 햇볕오래 쬐고 그러다 보면 피부가 어느 정도 그을려지지 않나?"
"내가 사진을 봤었거든? 긴가민가 했는데 수행원 없이 혼자 방송국 올리가 없으니 닮은 사람인가 보다 했어. 근데 정말 본인인 줄이야."
엔터테인먼트의 신흥 황제.
시장 한복판을 거닐다가 잠행 중인 황제를 맞닥뜨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저분 눈에 띄기만 하면 대박 나는 건 정말 일도 아닌데…….'
'여자 친구가 있을까? 장효주 배우하고 그런저런 이야기는 많던데.'
***
"제가 귀사의 채널 광고 단가보다 일부러 더 많은 광고비를 드리는 이유는 잘 아실 겁니다."
하수영이 덤덤하게 말을 꺼냈고, 황기주 국장은 얼른 말을 받았다.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른바 이순신 드라마 띄워주기 작업이다.
국내 첫 방영일에만 TV 광고 매출이 100억 원이 났다.
눈을 잡아끌 수밖에 없는 실적이자, 성과요, 자랑거리 아닌가.
안 그래도 빠질 것 없는 좋은 작품이지만, 첫 방영부터 이런 거대한 버프를 받으면 더욱 빠르고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으니.
"원래는 2,400억 원을 집행하려고 했습니다. 24회 종영이니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잖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국장과 부국장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예상은 했지만, 본인한테 직접 확인을 들으니 입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런데 CF 영상 다 찍고 집행 예정인 광고비를 다 계산해 보니 총 3,400억 원이네요?"
"3,400억 원!"
"1,000억이 남는데, 이미 광고비로 내역이 잡힌 것을 다른 데로 돌리기도 귀찮고…… 그래서 하는 김에 몰아서 집행할까 하는데요."
국장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물론 3,400억 원을 방송국이 다 먹는 게 아니다.
제작사인 KI에도 수익을 정산해 줘야 한다.
참고로 KI의 몫이 방송국보다 많다.
다른 제작사는 어림도 못 내는, KI만 받는 특별대우다.
"1,000억은 부활의 이순신에 붙이지 않겠습니다."
"그 말씀은, 이순신과 상관없이 오롯이 저희 방송국에 발주하시는 광고라는 겁니까?"
"네, 그러니 조건도 다른 광고주와 동일하게 하면 됩니다. 이순신 2 잘대해주셨으니, 제가 드리는 보너스라고 생각하세요."
제작사 광고 수익을 팍팍 늘려주길 잘했다!
이렇게 1,000억이라는 보너스가 굴러들어올 줄이야.
사장 앞에서 큰소리를 떵떵 칠 기회가 생긴 국장은 뛸 듯이 기뻤다.
"1,000억 원어치 광고를 전부 소진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습니다."
"광고 잘 안 붙는 시간대에도 팍팍밀어 넣어서 빠르게 소진시키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국장은 아끼고 아껴두었던 값비싼 선물용 위스키를 꺼내 왔다.
하지만 하수영은 단번에 거절했다.
"제가 이런 거 받고 다니면 제 밑의 직원들도 하나둘씩 챙기려고 해서 안 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감사하고 좋은 마음에……."
"제 사업체 분위기 유지 때문에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마시구요. 저와 관련 직원들한테는 주지도, 받지도마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소문 팍팍 내세요. 이번에 1,000억 별도로 받은 거요."
"네, 알겠습니다! 소문 팍팍 내겠습니다!"
국장은 맡겨만 두라는 듯이 가슴을 팡팡 쳤다.
***
김상범 주필은 흐느끼고 있었다.
빈 술병과 노출도가 높은 홀복을 입은 아가씨들을 좌우에 낀 채로.
"그게 어떤 돈인데, 그게 대체 어떤 돈인데, 엄한 케이블이 홀라당다 처먹었다고? 흐흑……."
이순신 2에 총 2,000억 원가량의 광고비를 집행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총 집행 금액이 3,400억원이라니.
게다가 1,000억 원은 이순신 방영시간하고 상관없이 내보내는 광고였다.
아마 CVN에서는 이제 하루 종일 라면, 치킨, 목장, 병원, 반도체파운드리 등등의 CF 영상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어흑, 어흑, 어흐흑……."
김주필이 이렇게 흐느끼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만약 자기 힘으로 밑작업을 해서 광고를 물어오면,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이다.
인센티브는 3% 남짓.
즉 앉은 자리에서 개인돈 30억 원을 날린 셈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배가 찢어지게 아픈 것이다.
"우리 사장님, 그만 울어요. 뭐가 그렇게 가슴이 아프실까."
"30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고! 그 돈이면 강남에 아파트가 한 채야! 너희 같으면 가슴이 안 찢어지겠냐?"
"어머, 그럼 울 만하지."
"아유, 듣기만 해도 제가 가슴이다 아프네요."
"근데 홍 사장은 어디 갔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이 김주필이가 왔는데 무시해?"
"사장님은 백 대표님 면회 갔어요."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이 시간까지 면회를 한다고? 말이 되냐?"
"면회 가는 날에는 사장님 출근 안하세요. 집에 가서 혼자 술 드시지. 마음이 안 좋으신가 봐요."
바로 그때 룸 문이 열리면서 40대의 퉁퉁한 체격의 남자가 들어섰다.
남자, 도문규는 김상범 주필의 모습을 보고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앉았다.
"우리 선배님, 벌써 만취하셨네요."
"인마, 오항윤이 그놈은 찾았어?"
"찾는 중입니다. 근데 아주 잠적을 해버렸어요. 휴대폰 마지막 위치도 자기 집이더라고요."
"이 새끼 대체 뭐 하자는 놈이지? 설마 반대쪽에 붙은 건 아니지?"
"그럴 배짱도 없는 놈입니다. 그런데……."
도문규가 슬그머니 눈치를 주자 여자들은 알았다는 듯이 일어나서 룸을 나섰다.
"이번에 프라임에서 총 3,400억 원을 쓰기로 했잖아요?"
"그 이야기는 왜?"
"알아보니 그게 맛보기랍니다."
"맛보기라고?"
김상범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3,400억 원이면 분기 광고비로 따졌을 때,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거기 회사들 덩치를 보세요. 3,400억 원이 어디 돈입니까? 그동안 광고선전을 잘 안 하다가 한 번 하니 그 맛에 들린 모양입니다."
초대형 광고주로서 이리저리 거들 먹거리며 대접받는 것도, 광고에서 뺄 수 없는 중독성이다.
"앞으로 연간 광고비로 1조 원 이상, 꾸준히 집행할 게 확실하다는데요?"
"1조 원!"
김상범은 술이 확 깨는 것만 같았다.
그 막대한 광고비를 다른 TV와 언론사와 나눈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배가 파열될 것만 같았다.
"수영레스토랑, 요즘 매출 어때?"
"정상화로 거의 돌아온 거 같습니다. 이상합니다. 사방에서 그렇게 벌레 다리 기사를 내보냈는데도, 소비자들은 도대체 개돼지들이랍니까?"
***
"프리덤, 내가 그 벌레 다리 나온 거 말이야. 온 사방에서 이렇게 욕하는 거 보면 확실히 뭔가 있는 거겠지?"
-사실이 아닙니다.
"뭐? 사실이 아니라고?"
-네, 여기 해명자료가 있습니다. 수영레스토랑 홈페이지에 공식 올라온 해명글입니다.
"너무 길어. 요약 좀 해줘라."
-최초 리뷰어가 타격을 주려고 일부러 벌레 다리 넣고 찍은 겁니다.
"아니, 왜 그런 거야? 그냥 짧게 말해줘."
-30억을 주면 모든 걸 사실대로 밝히겠다는 최초 리뷰어의 음성 녹취 기록이 있습니다.
"그게 진짜야? 와, 지금까지 괜히 참았네. 야, 지금 당장 예약해."
-네, 알겠습니다.
"두 그릇 먹을 거니까 5분 간격으로 나올 수 있게 예약해."
-네.
"프리덤.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빨리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자료를 찾아서 나한테 보여 줘. 아, 세 줄 요약 잊지 말고."
-레스토랑 홈페이지에 해명글 올라왔습니다.
-리뷰어가 돈을 목적으로 조작한 거라는 녹취 내용이 있습니다.
-30억을 불렀습니다.
"야! 그걸 진작 말해줬어야지!"
-먼저 지시하시지 않았는데 제가 임의로 사용자를 충동질할 수는 없습니다. 시스템 구조지배권능이 막고 있습니다.
"당장 예약이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