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27화
156장 람보르기니 VIP (2)
하수영은 한국대를 방문했다.
로봇 수영의 가동 중지 덕분에 하수영의 방문을 알게 된 교수와 학우들은 일찍부터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당연히 독일제 캠핑카를 타고 올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볼보예요! 볼보 타고 오셨어요!"
"와, 우리 하수영 학우님, 볼보도 타시는구나."
"차 구경하러 가고 싶은데…… 수업 중에 나가면 하수영 학우님이 별로 안 좋아하시겠지?"
정찰을 보낸 학생이 헐레벌떡 강의 실로 들어와서 보고했고, 남상진 교수는 속으로 흐뭇했다.
'그래, 볼보 스포츠카 정도는 타고 다니셔야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매일 캠핑카만 타고 다니시는 것은 별로야.'
남상진 교수는 하수영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하수영이 학교에 올 때만큼은 멋들어진 슈퍼카를 타고 왔으면 했다.
물론 캠핑카 퍼포먼스도 그 자체로 대단한 박력이 있지만, 날렵하고 멋있는 슈퍼카만의 매력이 또 있지 않겠는가.
"볼보가 그렇게 큰 줄 몰랐어요! 전 그런 볼보는 처음 봤어요! 와씨, 탱크도 부딪치면 그냥 한 방에 날아 가겠던데요?"
"무슨 소리야? 탱크가 왜 날아가?"
"볼보가 아무리 커봤자 볼보지, 탱크하고 부딪치면 무한궤도 아래 깔려서 납작해질걸?"
'저게 무슨 소리야?'
남상진 교수는 황당해서 체면도 잊고 얼른 창가로 달려갔다.
교수가 달려가자 학생들도 우르르창가로 달려가서 확인했다.
차에서 내리는 하수영을 본 순간, 남상진 교수는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보, 볼보? 저게 볼보라고?'
크고 선명한 볼보 마크가 눈에 확들어온다.
하지만 저건 자신이 알던 볼보가 아니었다.
날렵한 2인승에, 양측 버터플라이 도어가 나비 날개 펼치듯이 위로 쫙 열리는 그런 차가 아니었던 것이다.
"트럭이잖아? 아니, 볼보가 트럭도 만들어?"
"저건 일반 트럭은 아니고 컨테이 너 트랙터라는 거야.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끄는 용도지. 저 모델은…… 으억! 저거 국내에 출시되지도 않은 신제품인데!"
"자세히 좀 설명해 봐!"
"내가 알기로 허용 총중량이 400톤이나 되는 괴물 중의 괴물이야. 항만 같은 컨테이너 차량 많은 곳에 저거 끌고 가면 단번에 인싸 될걸?"
"……."
"……."
"와, 저거 6억은 할 텐데 저 비싼걸 타고 다니시다니. 역시 수영 학우님 대단해. 저런 차에서 내리면 하차감이 얼마나 쩔까?"
"사람들이 쳐다보기는 쳐다보네.
근데 트레일러트럭이 캠퍼스에 있으니 신기해서 그러는 거 같은데."
"저건 보통 트럭이 아니라고, 트레일러 기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가슴속의 야망이라고, 우리 삼촌이 화물운전수이신데 저 트레일러 한 번 가지시는 게 꿈이었어."
"이야, 근데 트럭인데 디자인도 멋지고 광택도 장난 아니네."
남상진은 얼이 빠진 채 하수영이 타고 온 볼보트럭을 바라봤다.
확실히 멋지긴 했다.
네모나게 각졌으며 높은 차체는 거인처럼 튼튼히 보였고, 굵고 커다란 바위는 일반 승용차 따위는 그냥 깔아뭉갤 듯했다.
잠시 후 하수영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아, 마침 수업이 끝났나 보네요?"
"네, 끝났어요. 하수영 학우, 실물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요. 학교에도 좀 자주 놀러 오고 그래요."
사실 수업이 끝난 게 아니라 중단된 것이지만, 누구도 남상진의 거짓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요즘에 쇼핑 좀 하느라고 많이 바빴어요. 슈퍼카를 좀 사기로 했거든요."
"오, 슈퍼카요? 어느 브랜드입니까? 부가티? 맥라렌? 페라리?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요."
"오, 람보르기니. 역시 수영 학생과 매우 잘 어울리는 이미지입니다. 성난 황소야말로 수영 학우의 심볼 아니겠어요?"
다들 동감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하수영은 국내 최고의 농민 재벌.
그리고 농사하면 먼 옛날부터 황소가 상징이지 않았던가?
당연히 황소야말로 하수영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제가 학교와 제휴해서 우리나라 농가 지원 사업을 하나 벌일 게 있는데, 그 이야기 좀 하려고요. 시간 좀 되실까요?"
"안 되더라도 내야지요. 자, 다들 다음 시간까지 과제 잘 해오도록 해요."
학생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과제 내주시지도 않았잖아?'
'아직 수업 2시간 더 남았는데…… 이렇게 불시휴강이 되는 거야?'
그런 학생들의 마음을 모르는 남상진은 허허 웃으며 하수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복도를 걸었다.
"수영 학생은 지금도 농가에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여기서 또 지원을 벌이려고요?"
"제가 얼마 전에 공돈 80억 달러가 생겨서, 기왕이면 의미 있는 일에 쓰려고 합니다."
"……공돈 80억 달러."
8조 원을 공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재정 능력에, 남 교수는 입이 턱턱 막혔다.
"버리려던 쌀을 중국에 팔기로 했거든요."
"쌀 팔아서 80억 달러를 받으려면 대체 그 분량이 얼마나……."
"안 그래도 쌀 운반하는 것 때문에 요즘 정체가 심해요. 화물운송업체가 한정돼 있다 보니 물류배송에 부하가 많이 걸리나 봐요."
"음, 수영농장에서 나오는 수송량이 확실히 많긴 하죠."
남상진은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였다.
일단 수영농장에서 나오는 그 많은 버섯들.
버섯은 무게에 비해 부피가 많이 나간다.
모양이 망가지면 안 되니 억지로 욱여넣을 수도 없다.
그렇다 보니 화물차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무게가 얼마 안 되고, 당연히 화물차가 많이 필요하다.
어디 버섯뿐인가?
몇만 마리가 넘는 소들이 매일 먹어치우는 볏짚도 운송해야 한다.
또 볏짚의 부산물인 벼알을 배합사료 제조공장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수영농장은 대형화물수송의 큰손으로 부상한 지 오래였다.
수영농장은 대형화물차들의 차고지역할을 반쯤 하고 있는 셈이다.
'화물업계가 처음에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가, 이제는 괴로운 비명이 바뀌었다고 했지?'
화물업계야 당연히 좋았다.
일거리가 폭증했으니까.
황비버섯, 송이버섯, 벼, 밀, 먹이로 쓸 짚 등등 운송 발주가 쏟아졌으니.
그런데 수영농장의 운송 발주량이 늘어나도 너무 늘어났다.
대부분 부피가 크고 무게는 많이 안 나가다 보니 화물차도 많이 필요하고, 운송해야 할 양도 엄청나고.
지금 화물운송업계는 과로사하기 직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만간 쌀 4,000만 톤 운송 발주를 추가로 한다고 했더니, 화물운송사장님이 애원하시더라고요. 도저히 안 된다고."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금 물류회사에 욕 먹어가면서 우리 농장 발주 위주로 해주고 있었는데, 여기서 배차를 더 늘릴 순 없대요."
남상진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중국에 팔기로 한 쌀이 4,000만 톤인 모양이다.
'우리나라 국민 소비량 십 년 치가 넘는 양인데?'
수영농장의 생산량에 새삼 혀가 휘둘러진다.
만약 그 쌀을 국내에 풀기로 했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수영이 국내 농가 생태계를 신경써서 배려하는 인물이라는 게, 정말 국내 농가에 축복이었다.
"다행히도 화물차 기사는 많대요. 다들 차가 없어서 못 하는 거죠."
"아무래도 화물차가 비싸죠. 아무리 싸도 1, 2억은 하니까요."
"그래서 볼보에 물어봤습니다. 트레일러트럭을 몇 대 사고 싶다고요.
그러니까 일단 얼마간 시승을 해보라고 하면서 저 모델을 주더라고요."
"아하."
남상진은 볼보의 속임수가 눈에 훤히 보였다.
하수영이 트랙터를 잔뜩 구매할 것으로 보이니까, 아마 가장 비싸고 좋은 것을 콕 집어서 시승해 보라고 추천해 준 것이리라.
원래 사람이 한 번 눈이 높아지면 그 아래 것은 쳐다보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6억짜리 트레일러 트랙터 30대만 팔아도 180억…….'
"타보니까 괜찮은 거 같아서 아까 물어봤습니다. 500대 정도 있냐니까 펄쩍 뛰네요. 지금 당장 그 1/10도 없다고, 이게 말이 돼요?"
"……."
남상진은 속으로 잠시 반성했다.
그래, 하수영이라면 이 정도 스케일은 되어야지.
"트레일러트럭 사서 차 없는 기사들 고용해서 운송팀으로 쓰려고 했는데, 참 되는 게 없네요. 차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아무래도 최신형이고 또 비싼 모델이다 보니 500대나 되는 재고를 늘상 쌓아두기는 부담이지 않겠습니까?"
"대충 총 이삼천 대 정도 필요할 거 같은데, 당장 500대도 없다고 하니까 실망이 좀 큽니다."
"……."
남상진은 또 한 번 깊이 반성했다.
"크흠, 그럼…… 그 중국에 쌀 판돈 80억 불로 트럭을 구매하시려는 겁니까?"
"네? 아뇨. 트럭 살 돈은 따로 있고요. 그 돈으로는 람보르기니 살건데요?"
"네? 람보르기니요?"
"아까 람보르기니 살 생각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저, 근데 그 80억 불은 농가 지원에 쓸 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남상진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80억 불로 농가 지원을 한다고 한 것도 맞고, 최근 람보르기니 슈퍼카를 구매할 예정이라는 것도 맞다.
근데 왜 갑자기 말이 엉키는 거지?
"네, 람보르기니 사서 농가 지원에 쓰려고 하는데요."
"람보르기니로 농가에 무슨 지원을 하신다는………."
남상진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농부들이 아벤타도르, 무르시엘라고를 타고 농가에 출퇴근을 하게끔 해주겠다는 건가?
그 울퉁불퉁 자갈투성이 비포장도로를 다니면 차체가 다 긁힐 텐데?
'시장갈 때 무르시엘라고 트렁크에 무를 실으라고? 근데 멋지긴 하겠네.'
무르시엘라고 트렁크에서 무를 끼내서 시장 바닥에 주섬주섬 늘어놓는 늙은 농부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람보르기니 트랙터 살 겁니다."
"……걔네가 트랙터도 만듭니까?"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원래 농사 트랙터 만들던 사람이에요."
"……."
"가장 동경했던 페라리 창업자한테 비웃음당하고 쫓겨나자 열 받아서 무조건 페라리보다 빠른 차 만들자고 해서 긴 외도를 시작한 거죠."
"……."
"농대 교수님이라서 당연히 아실 줄 알았는데……."
"……제가 농기계 전공은 아니라서요. 전 식물유전이 전공입니다."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창업주는 트랙터 만들던 걸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그동안 쭉 그런 정신을 계승해왔는데, 요즘 일부 지사에서는 그걸 흑역사로 여기는 거 같긴 하더라고요. 설마 신임 CEO 마인드는 아니길 바랍니다."
하수영이 갑자기 이를 바드득 갈자, 남상진은 의아했다.
'뭐지? 혹시 그거 때문에 화날 만한 일이라도 있으셨나?'
"아무튼 80억 달러면 람보르기니 최신형 트랙터 1,400대 정도는 살수 있겠더라고요. 그거 사서 농가에에 싸게 렌탈하려고 합니다."
트랙터는 비유하자면 옛날의 소다.
소들이 쟁기를 끌고 달구지를 끌던 것처럼, 트랙터도 무언가를 뒤에 달고 끄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농가에서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하다못해 작물재배 농가가 아닌, 축산업 농가에서도 있으면 쓸 곳은 많다.
현대의 논농사, 밭농사에서 없어선 안 될 필수품이다.
하루 전, 어느 람보르기니 매장.
짙은 색안경과 마스크를 끼고, 할 렁한 캐주얼을 입은 청년이 슬리퍼를 끌고 들어섰다.
'강남 졸부 아들이다!'
젊은 딜러 한 명이 눈을 빛내며 얼른 청년을 맞이하러 나갔다.
"MACH VRT T12i 모델을 사려고 하는데요."
"네?"
그런 모델이 있었나?
딜러는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얼른 청년의 말에 집중했다.
"한 50대 정도? 구할 수 있을까요?"
"……50대요?"
"네, 50대요. 한 6억 정도 하는 거 같던데, 할인은 됐고 사은품이나 멋있는 걸로 좀 챙겨줘요."
딜러는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태블릿으로 검색한 결과도 분명했다.
그런 모델은 없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모델도 없다.
"고객님, MACH VRT T121 모델이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스펠링이 이거 맞으시죠? 검색이 안 됩니다만."
"어, 이거 맞는데. 왜 검색 안 되지?"
딜러는 사근사근, 조롱을 감춘 사교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객님, 여기는 람보르기니 매장입니다. 혹시 다른 매장과 착각한 것은 아닐까요?"
"아닌데. 람보르기니 맞는데. MACH VRT T121, 가격은 6억. 이게 없다고요?"
"뭔가 착각하신 듯합니다. 천천히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른 고객님을 상대해야 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비웃음이 전해졌을까?
딜러는 부디 그러기를 바랬다.
매뉴얼상 대놓고 비웃을 순 없지만, 이렇게 클레임 걸지 못하게 교묘하게 전달하는 것 정도야.
하수영은 람보르기니 매장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나라 람보르기니 스포츠카 등록 대수가 300대라고 했나? 좋아, 트랙터를 스포츠카보다 훨씬 더 많이 퍼뜨려주겠어."
너희의 근원은 트랙터, 그걸 잊지 말고 뼛속까지 새겨둬라.
하수영이 트랙터 차종을 람보르기 니에 몰빵하기로 한 이유였다.
프리덤은 생각했다.
'람보르기니는 트랙터와 슈퍼카로 회사가 아예 갈라졌는데……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하지만 프리덤은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즐기시게 놔두자.'
창조주의 오해를 방치하는 것보다, 즐거움을 뺏는 게 더 큰 죄악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