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30화 (630/1,270)

프랜차이즈 갓 630화

157장 언더커버 군납 (2)

육군참모총장 오준형.

그는 현재 예비군 교관으로 위장한 채 전방부대 훈련에 참석한 상태였다.

당연히 이름도 바꾸고, 일부러 검은 색안경까지 썼다.

이런 전방부대 연대장과 직접 대면할 일이 없으니, 설령 얼굴을 본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사진으로만 봤던 육군 참모총장님하고 좀 닮은 교관이군' 하고 넘어갈 테니.

애초에 연대장이 참모총장을 볼 일자체가 거의 없다.

소령 계급 이하의 장교들도 걱정할 필요는 없고, 이런 위장 잠입을 한 것은, 예비군 훈련이 잘 되는지 몰래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오, 저 용사는 밥을 참 많이 먹는군. 아주 보기 좋아.'

웬 젊은 예비군 한 명이 밥을 수북하게 떠온 것을 보고 흐뭇해서 그 옆에 앉았거늘, 그게 하필이면 하수영이었다니…….

"의, 의원님."

"쉿, 누가 듣겠습니다."

"……."

"지금 언더커버보스 찍는 중이시죠? 저도 비밀 지켜드릴게요."

"어, 언더커버보스요?"

"대기업 CEO가 자기 회사에 일용 직 사원으로 취업해서 찍는 몰래카메라를 말해요. 지금 참모총장님이 하고 계신 그거요."

"그, 그런……."

"걱정 마세요. 안 들킬 겁니다. 제도 그래요. 한 번도 저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제 존재를 알면서도, 막상 직접 보면 못 알아보더라고요."

오준형 참모총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하수영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로 공군의 F-35A 출고식 때였다.

당시 하수영은 VIP로 초청을 받아서 참석했고, 오준형 참모총장도 구실을 만들어 참석했다.

그의 앞에서 얼굴 도장 한 번 찍어보려고 말이다.

하수영이 병역으로 3주 군사훈련을 받을 당시, 일개 훈련병인 줄 알고 참모총장이랍시고 거들먹거렸던 지우고 싶은 과거.

그것은 두고두고 오준형 참모총장의 발목을 잡고 있었으니.

"근데 훈련이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네요."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오준형은 손주뻘인 하수영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태산 같던 밥이 절반이 없어져 있었다.

대화를 하면서 그새 저만큼 먹었단 말이야?

"예비군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뭐죠?"

"전시상황을 대비해서 예비군 자원들이 전투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끔 닦아놓는 것입니다!"

"전 평시에도 제 전투감각을 갈고닦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품을 갖고 왔습니다. 하지만 부대에서는 확인은커녕, 묻지조차 않네요."

"증거품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저는 전시생존물자를 상시 구비해 둡니다. 저뿐만 아니라 1개 대대가 몇 달은 버틸 수 있는 생존물자죠."

"그, 그런……."

"평소에도 그런 걸 마련해 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비군의 자세 아닌가요? 그런데 왜 그걸 확인도 하지 않는 걸까요? 당연히 저는 그거 확인시켜 주고 내일 조기퇴소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즉각 시정하겠습니다!"

"아, 그렇다고 다른 예비군들 사이에 제 신분이 밝혀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특혜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요."

"그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일단 오준형 참모총장은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하수영이 말한 대로 차들이 주차된 연병장으로 향했다.

대형 트레일러 3칸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특수 트럭트레일러를 보고 생각했다.

"이런 걸 타고 다니시면서 주변에서 알아보지 않기를 바라신 건가?"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면서?

"뭐…… 청담동 빌딩 재벌이 이런 차를 타고 다닐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안 할 테니,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나을 수도……."

이 차 안에 비상생존식량 같은 게 잔뜩 실려 있다고 했다.

오준형 참모총장은 핸드폰을 꺼내, 이 연대의 직속상급부대 사단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참모총장인데. 어, 그래. 내가지시할 게 있는데 말이야. 그게 뭐냐면…… 그래그래, 무엇보다 보안이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퍼지는 건 상관없는데 부대에서 일부러 퍼뜨리면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사단장아?"

***

"하수영 선배님! 하수영 선배님! 계십니까?"

"하수영 선배님은 이쪽으로 잠시 열외하시겠습니다! 확인할 게 있습니다!"

하수영은 조교들의 외침에 따라 그들을 따라갔다.

차량이 주차된 연병장에는 세 명의 조교와 대위, 그리고 예비군 동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트레일러를 이리저리 구경하던 그들은 하수영이 도착하자 얼른 돌아봤다.

"여기에 비상생존물자가 실려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휴전중이잖아요? 전시상황을 대비해서 500명이 몇 달간 버틸 수 있는 필수생존물자를 이렇게 항상 보관하고 있습니다."

"음,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하수영은 트레일러에 대고 외쳤다.

"세 칸 전부 열어!"

그러자 컨테이너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은 당황해서 하수영을 바라봤다.

"자동개폐식 컨테이너입니까?"

"네, 물론 수동 개폐장치도 있습니다."

"음…… 목소리에 반응을 하는 걸 보면 음성인식기능도 있다는 뜻이고……."

컨테이너 안에는 라면 박스만 한 플라스틱 상자가 빼곡하게 가득 쌓여 있었다.

색은 모두 세 종류였다.

녹색, 푸른색, 흰색.

"이 녹색 박스는 식량입니다. 전체 물자 중에서 90%를 차지하고 있죠."

하수영은 하나를 꺼내서 열어 보였다.

안에는 진공포장 된, 계란 노른자만 한 크기의 환단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다들 황당해서 이리저리 살폈다.

'이게 식량이라고?'

'그냥 미숫가루 뭉친 거 같은데…… 이런 게 효과가 있나?'

"이 환단 하나가 2,500의 열량을 냅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알이면 하루에 5,000l의 열량을 채울 수 있죠. 긴급상황에서 전투식량으로 딱입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대위가 놀라서 반문했다.

이 쬐끄만 거 하나가 그런 큰 열량을 낸다고?

"전투식량은 역시 편의성과 부피, 열량이 최고죠. 맛은 부차적인 거고요. 맛있는 짬밥은 전투 중 말고 한가할 때나 먹는 겁니다, 원래."

"……."

하수영은 이번에는 푸른색 박스를 열어서 보여주었다.

"이건 화이자사에서 만든 수질 정화 약제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아! 그게 뭔지 저도 압니다!"

"네, 역시 있군요. 아무튼 이걸 야지에서 얻은 물에 넣고 30분 정도가 지나면, 물 안에 있는 기생충, 균, 바이러스가 모두 싹 죽습니다.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필수죠."

다음으로 흰색 박스를 열어 보였다.

"이건 의약품 세트입니다. 항생제, 진통제, 지혈제, 탈모약이 1개 세트로 되어 있죠."

"비상생존물자에 탈모약이 왜 들어있는 겁니까?"

"전쟁 중이라고 해서 탈모가 진행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탈모인들에게는 필수예요, 필수."

"……."

대위는 말하기 복잡한 심경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3칸의 컨테이너가 탐이 날 정도였으니.

집집마다 이런 컨테이너 차량 한 대씩 있으면, 전면전이 나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정밀 일당천 예비군이라고 할 만한 전력인데.'

"저어, 근데 여기 이 금색 박스는 뭐죠?"

"그건 컨테이너마다 1개씩만 넣어둔 박스인데요. 달러 지폐가 들어있어요."

"……네? 달러 지폐요?"

"전쟁 중에도 달러는 거래가 되니까요. 하다못해 적군을 매수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적군이 가진 물자를 사올 수도 있습니다. 아주 유용하죠. 없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동대장 교관은 저도 모르게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완벽하다. 모든 예비군들이 이분의 반의반만이라도 본받는다면, 우리나라는 그 어떤 적국의 도발에도 흔들림 없이 맞설 수 있을 거 같군."

"아니, 동대장님. 웬만한 사람들은 이거의 1/100도 준비하기 벅찹니다."

"떽. 이견의 여지가 없어요. 이분의 전투준비태세는 완벽합니다. 내일 점심에 조기퇴소를 진행하도록 하세요."

"밥은 먹고 가도 되죠?"

"역시 전투준비 자세가 아주 훌륭하군. 먼저 퇴소해도 될 텐데 굳이 전우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식사하겠다니."

사단장은 먼발치에서 초조하게 쌍안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하수영의 트럭트레일러였다.

"저 예비군이 하수영 의원이라고?"

"네, 사단장님. 그렇다고 합니다."

"아니, 저분이 왜 최전방 우리 부대까지 오신 건가?"

"병무청에 신청하셨습니다. 일부러 최전방으로 훈련 장소를 지정해 달라고 하신 모양입니다."

"……."

"정말 국방정신이 투철하신 분입니다. 오전 사격 훈련에서도 백발백중이었습니다."

예비군이나 연대에서는 모르지만, 사단본부에서는 뒤늦게 하수영의 신원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냥 돈 많은 예비군 한 명으로 치부해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여의 도에서도 쉴 새 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젊은 정치인 아닌가.

공군 F-35A 전투기 인수식에 VIP 초청까지 받은 인물이니.

사단장 입장에서는 벌벌 떨 수밖에 없다.

"훈련, 최대한 부상자가 안 나오도록 편하게 진행하도록 해. 휴식시간도 팍팍 부여하고."

"네, 알겠습니다."

"육군본부에서 직접 내려온 지시사항이니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이미 훈련을 살살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상황이었다.

사단장은 하수영의 뒷모습을 쌍안경으로 다시 들여다보며 탄식했다.

"병무청 놈들은 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아무리 자원이라지만, 저런 분들 이런 최전방까지 보내 버리면 어떡하나?"

오후 휴식 시간.

하수영은 저 멀리 보이는 비무장지대와 철책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왜 반응이 없지? 신이 나서 헐레벌떡 달려올 줄 알았는데."

사실 생존물자 트레일러를 끌고 온 진짜 이유는 바로 전투식량 납품 때문이었다.

예비군 훈련을 기회 삼아 자연스럽게 전투식량을 납품할 루트를 뚫으려 했던 것이다.

국방부를 정식으로 찾아가서 제안을 하기에는 체면이 있지.

그래서 이런 좋은 게 있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최전방 부대까지 왔는데, 부대에서 이렇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니.

"옛날에 서해식품 끼고 황비버섯빼돌리기 하려던 군납을 내가 대차게 까서 지금 삐져서 저러는 건 아니겠지?"

-국군 장병들에게만 황비버섯 선물세트를 매달 보내는 게 간부들의 심기를 건드렸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쪼잔한 것들. 병특례자가 최저 시급도 못 받고 고생하는 장병들 버섯좀 챙겨줬다고 그러기냐."

-그냥 오준형 참모총장과 담판을 지으시죠.

"이제 와서 내가 먼저 말 꺼내기에는 민망하다고, 군납 따위는 안 한다고 강하게 나간 적이 있잖아."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저쪽이 먼저 말을 꺼내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럼 3칸 트레일러 타이어 터트려 버리시죠. 이왕 이리 된 김에 그냥 가지라고 주는 겁니다. 그럼 자기들이 결국 써볼 테고, 좋은 걸 알게 될 겁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다음 날.

하수영은 오전 훈련만 하고, 조기 퇴소를 하기로 했다.

물론 다른 예비군들은 모르는 동안, 조용히 진행된 것이었다.

오준형 육군참모총장은 하수영이 무탈하게 퇴소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다른 이들 몰래 하수영을 배웅하기 위해 연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부사관과 장교 몇 명, 대대장까지 트레일러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난처해하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어쩌죠? 이거 타이어 펑크 나서 못 끌고 가겠는데요. 큰일이네."

"한쪽 타이어가 전부 펑크가 나다니,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제오늘 누군가 몰래 타이어 구멍을 낸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에이, 그냥 훈련소 오다가 쇳조각 같은 거 한쪽으로 주르륵 밟은 게 이제 터진 모양이네요. 어쩔 수 없죠."

하수영은 한숨을 푹푹 쉬다가 크게 인심을 쓰듯이 말했다.

"그냥 이거 두고 갈 테니까 타이어 교체해서 군에서 쓰세요."

"네?"

"여기 트레일러 칸에 전투식량키트있으니까 군에서 한 번 시식해 보세요."

"이거 트레일러와 컨테이너 가격이 상당할 텐데요? 타이어만 교체하면 멀쩡히 쓸 수 있는 것을, 컨테이너째로 놓고 가시겠다니……."

"나중에 와서 다시 가져가는 게 저한테는 더 번거로운 일입니다. 이거 얼마나 한다고요. 그냥 군에 무상기증했다 칠 테니, 소중히 잘 써주세요."

그렇게 하수영은 3번째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째 연결을 끊고, 트레일러 2칸만 끌고 조기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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