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645화 (645/1,270)

프랜차이즈 갓 645화

161장 슬기로운 부이사장 생활 (2)

"오, 신입 들어왔네?"

"우리 신입은 뭐 때문에 여기로 들어오셨나?"

"의료진한테 폭언을 했나?"

"아니면 간호사한테 희롱 발언을 했나?"

"옆 병상 환자 가족들과 싸웠나?"

"주치의 머리를 때린 건 아니겠지?"

"면상을 보아하니 교수 멱살을 잡았을 것 같은데? 난 여기에 한 표."

병실 환자들이 킬킬거리며 인사를 한다.

신참 환자, 고수양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왠지 먼저 와 있던 환자들, 느낌이 심상치가 않았다.

대체 이 병실은 뭐 하는 환자들이 모인 곳일까?

'서, 설마?'

순간 어떤 생각이 퍼뜩 고수양 환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클클…… 여기는 바로 병원의 천국이라 불리는 청담수영병원의 유일한 지옥, 바로 622호라네. 신참."

"어, 언제 봤다고 초면부터 반말이슈?"

"난 하지 말라는 데도 반말 찍찍내뱉다가 여기 622호로 끌려왔거든."

신참 환자 고수양은 곧바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 622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까마득한 고참이야. 그러니 신참은 내 앞에서 태도를 조심해."

"아니, 댁 나이가 나보다 어린 거 같은데 이 무슨……."

"신참은 몇 살인데? 난 49."

"너보다 7살은 더 먹었다. 이 새끼야!"

"622호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먼저 들어온 순번이 중요하지."

여기저기서 킬킬거리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성격 나빠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신참은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질 나쁜 진상 환자들을 모아 놓은 곳이라는,

'내가 어디가 진상이라고! 풀쪼가리 식단 맘에 안 들어서 좀 내친거 가지고, 저런 등신들하고 모아놓는 게 말이 돼!'

자고로 진상은 자기가 절대 진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법이다.

바로 그때, 의료진이 들어왔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환자들이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정말식 환자분."

"네, 선생님."

조금 전까지 신참 환자를 야금야금꿇려대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소곳한 태도였다.

"음,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이제 슬슬 퇴원 준비하시죠."

"저, 선생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머리에 링거 내던진 거,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다 잊었어요."

"저, 그러니 위에 잘 좀 말씀드려서 병원비 지원을 좀…… 12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그거 제 입장에서는 정말 큰돈입니다."

"인공지능이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거라서 위에 간언하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도와드리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그럼 퇴원 준비 잘 하십시오."

"선생님! 선생님! 제발!"

정말식 환자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자, 어느새 다가왔는지 경비원이 버티고 섰다.

190㎝가 넘는 체격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정말식 환자는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 물러났다.

그 뒤로도 비슷했다.

회진, 혹은 간호사가 상태를 보러 들어올 때마다 환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상주하는 경비원들은 환자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눈길도 주지 않고 놔두었다.

하지만 의사나 간호사한테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인다 싶으면 기세가 달라졌다.

신참 환자, 고수양은 마른침을 삼겼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이런 진상들이랑 한곳에 모아둔 거야! 난 진상이 아니라고!'

거듭 말하지만, 진상은 자기만 모른다.

원래 그렇다.

그때 갑자기 경비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고수양 신참 환자는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했다.

"아, 오셨다!"

"오셨어! 오셨어!"

다른 병상 환자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펴고 반듯하게 앉았다.

마치 막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이 각을 잡고 앉아 있는 것처럼.

'뭐야? 무슨 일이야?"

고수양 신참 환자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병상에 각을 잡고 앉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뭔가 엄청 힘 있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만 같은…….

"고수양 환자님. 우리 처음 보지요? 저는 병원 총무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70 정도 되어 보이는 풍채 좋은 노인이 허허 웃으며 인사했다.

바로 왕세경, 액면가 86세.

그가 부이사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고수양 신참 환자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 그러시군요. 총무 일을 하시는 분이라…… 그런데 제가 왜 여기에 온 겁니까?"

"폭행을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여기 622호실로 배정을 받으신 겁니다."

"제, 제가 언제 폭행을 했다는 겁니까?"

"식판을 던져서 위협을 가했지요. 적어도 폭행 미수는 될 겁니다. 사람한테 맞을 뻔했잖아요, 그렇지요?"

"그, 그런……."

"그런 분들은 아무래도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분과 가족들에게 위협, 걱정거리가 되기에 이렇게 622호실로 모시는 겁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강제 퇴원시키고 싶은데, 이게 병원 입장에선 마음대로 치료를 거절하면 안 돼서요."

왕세경은 웃는 얼굴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자, 고수양 환자분이 앞으로 가지는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

"별거 없고요, 우리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런 게 전부 끊깁니다. 건강보험은 국가 제공이니까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러고 보니 아까 정말식 고참 환자가 치료비가 비싸다며 우는 소리를 하던 게 기억났다.

'아, 치료비 지원금!'

그제야 기억났다.

수영병원에서는 병원자선사업으로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한다는 것을.

환자가 매달 버는 돈에서 이것저것 나가는 지출을 제외하고 남는 가처분 소득.

그 돈의 19% 초과분은 병원에서 부담한다는 것.

그게 끊긴다고?

"아이고,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나라 의료정책이 잘 되어 있어서 건보공단 지원만 받아도 병원비는 크게 안비쌉니다."

"선생님, 제발! 제발!"

"퇴원이나 전원하셔도 기록은 따라 갑니다. 우리 병원에 입원하실 땐 622호로 배정을 받는다, 이 말씀입니다. 참고하세요."

왕세경은 허허 웃으며 조곤조곤 설명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수양 환자가 뭐라고 빌든 간에 한 귀로 듣지도 않는 태도였다.

부이사장이 나가자 환자들은 언제 그렇게 차렷 했느냐는 듯 편안하게 풀어졌다.

"휴, 부이사장 양반만 들어오면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어."

"세경그룹 창업주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포스가 장난 아니야."

"아, 정말?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더라니. 세경그룹 창업주였구먼."

"그런 대단한 재벌 회장이 왜 이런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거지?"

"듣자니 죽을 뻔했는데 여기 병원에서 기적적으로 치료됐다나. 그래서 남은 일생을 병원 돌보면서 살고 싶다고 이사장한테 부탁해서 병원일하고 있는 거라더군."

"이봐, 신참. 그렇게 넋 놓을 거 없어. 병원 지원만 못 받는 거지, 따지고 보면 서해병원에 입원한 것보다는 훨씬 나아."

"그래, 치료에 차별을 두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우리 중에서 박씨가 가장 안 됐지. 본인은 착하고 얌전한데 와이프가 극성 피우는 바람에 622호로 왔잖아."

"박씨는 와이프만 출입금지 시키면 일반 병실에 계속 있어도 됐는데, 그게 안 돼서 결국 622호로 제 발로 온 거니까."

"이 병원, 기본적으로 정말 잘해주는데 선 넘었다 하면 칼같이 대하는 게 무서워."

칼같이 대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다.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받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는 당연히 보장받는다.

단지 병원이 자체적으로 베풀던 수혜만 모두 철회할 뿐이다.

***

"부이사장님, 건보악용 의심자가 발생했습니다."

"오, 그래?"

왕세경의 얼굴에 화색이 깃들었다.

건강보험악용자.

바로 건강보험료 의무는 전혀 지지 않으면서, 보험의 혜택만 과실 빼먹듯이 쏙쏙 누리는 얌체 환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파악했는가? 그냥 업무나 학업 문제 같은 개인 사정으로 해외에 오래 체류해서 건강보험상실이 된 그런 케이스는 아니고?"

"아닌 거 같습니다. 미국 영주권자이고 지난 10년간 한 번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 남겨 둔 자산도 없습니다."

"그럼 확실하군. 그런데 우리 병원정보는 어떻게 알고?"

"요즘 정보 검색하기가 무척 쉽잖습니까. 인터넷에 몇 번만 글을 쳐도 우리 병원이 최고라는 리뷰만 쏟아지는데요."

"가끔은 진상이나 얌체 환자는 그냥 거절하고 싶단 말이지."

"그건……."

"알아. 병원이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거.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본 거니 신경 쓰지 말게."

"622호로 유도할까요?"

"함정수사는 나쁜 거네. 그냥 매뉴얼대로 대응해, 어차피 얌체들은…… 결국 사고를 치게 되어 있으니 놔두고."

***

미국에서 하면 20만 불이 넘어가는 수술치료를 한국에서 싸게 받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말소된 건강보험을 부활시킨 영주권자 환자.

데이비드 김(환자명 김길수)은 수술 전 검사를 마치고 나온 식단을 보고 당황했다.

"이봐요, 간호사. 물어볼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왜 다른 사람들은 엘릭서 드링크가 있는데 난 없는 겁니까?"

"아, 저분들은 엘릭서 드링크 제공대상자셔서 그래요."

"난 아니라는 겁니까?"

"네, 아니셔서 안 나온 거예요. 원래 기본 베이스는 비제공이거든요."

"……?"

데이비드 김(김길수)은 이해가 안갔다.

아무리 봐도 자신 빼고 죄다 엘릭서 드링크를 제공받고 있는데, 기본 베이스가 비제공이라고?

"나도 저거 먹고 싶은데, 어떡하면 됩니까?"

"1층 매점에서 팔고 있으니, 그거 구매하셔서 드시면 돼요."

"따로 돈을 내면 식단에서 제공을 해주는 건 아닙니까?"

"네, 그건 아니에요. 직접 사서 드셔야 해요."

"……한 병에 얼마죠?"

만 오천 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병원 매점이니, 더 싸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했다.

"당연히 만 오천 원이죠. 국내 소매가는 다 똑같은 걸로 알아요."

"……저 사람들은 어떻게 모두 매점에서 안 사먹고 식단에 포함돼서 나오는 겁니까?"

"그건 기본 제공자들이셔서 그런 거예요."

"난 기본 제공자가 아니다? 그래서 매점에서 일일이 사먹어야 한다?"

"네, 맞습니다."

"나도 식단에 포함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제가 몰라요. 재단 홈페이지에 문의하셔야 해요."

"방법을 아는 직원을 데리고 와줘요."

"재단 홈페이지에 직접 문의하셔야 합니다."

드디어 데이비드 김은 폭발해서 식판을 와장창 내던졌다.

"이년이 지금 내가 누군지 알고! 내가 미국 한인사회에서 얼마나 목소리가 큰 줄 알아! 못 배워먹어서 주삿바늘이나 꽂고 다니는 년이 어디서 사람 복장 터지게……."

"역시 부이사장님 예측은 빗나가질 않는군."

"얌체는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지. 자, 팬텀존, 아니, 622호로 갑시다."

"뭐, 뭐야! 당신들!"

어느새 나타난 덩치 네 명이 병상을 포위하듯이 끌고 나가 버렸다.

간호사는 바닥에 던진 식판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난 정확한 지침대로 친절하게 대답해 드렸을 뿐인데, 왜 저리 화를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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