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73화
168장 로열 통조림 (3)
선주문 1,000억.
이제 막 초기 물량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1,000억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원그룹 임원들은 당황했다.
"천억 원이라고?"
"우리 참치 통조림 연 매출이 4,500억 원인데……."
'수영 참치캔'의 가격은 개당 2,900원.
하지만 남원그룹은 아직 정확한 가격이 얼마인지 몰랐다.
비싼 참다랑어로 만든 참치캔이니 그들은 대충 개당 만 원은 넘지 않을까, 10만 원대이진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남원의 참치캔 공장 생산량은 분당약 2,000개, 하루에 약 300만 개를 생산한다.
선매출 1,000억 원이 발생했으니, 회사는 일단 참다랑어 참치캔 위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자사 참치캔은 재고가 넉넉한 까닭에, 당장은 찍어내지 않아도 지장이 없었으니.
그리고 드디어 참다랑어 캔 1차 출하량이 준비되었다.
가격표가 찍히지 않은 참치캔은 그대로 안살린 시티로 배송되었다.
하수영이 볼보에서 대량 구매한 볼보 트레일러가 이번에도 제 역할을 발휘했다.
볼보 트레일러는 수영농장법인 소유이지만, 프라임유통에서 전량 관리한다.
***
"흠, 이게 한국의 서민들이 즐겨 먹는다는 참치 통조림이군."
안살린 왕자는 눈앞에 여럿 쌓인 참치캔을 흥미롭게 눈으로 살폈다.
그도 통조림을 많이 접해봤다.
오지에서 지질조사를 할 때 통조림은 없어선 안 될 필수 식량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참치캔은, 그의 입장에서 처음 보는 종류였다.
"너무 작지 않나?"
오지용 초대형 통조림만 보다가 90g짜리 앙증맞은 참치캔을 보게 되니, 안살린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왕자님, 한 사람의 한 끼 식사용이라서 이렇게 작게 나오는 겁니다."
"한 끼라고 해도 너무 작은데, 겨우 이거 하나만 먹고 버틸 수 있나?"
"밥이나 다른 음식에 곁들여서 먹습니다. 라면에 통으로 넣어서 끓여 먹기도 하지요."
"아, 서브로 곁들여 먹는 거군. 그렇다면 이렇게 작은 게 이해가 되네."
안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렇게 작으니까 개당 2,900원밖에 안 하는 거겠지."
"참다랑어로 만든 점을 보면,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주문하는 건데."
"바로 추가 주문을 넣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참치캔은 연구소 직원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예, 왕자님."
아직 1차 주문량의 10%도 못 받은 상태.
하지만 지하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추가 구매 발주를 넣었다.
***
참다랑어 캔 3,500만 개를 출하하고 난 남원식품공장은 다시 속도를 조절해서 참다랑어 캔을 천천히 찍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프라임컴퍼니에서 연락이 왔다.
"참다랑어 준비되는 대로 1억 개를 더 찍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뭐? 1억 개라고?"
"네, 다시 선주문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니, 아직 수영마트에는 출시하지도 않았잖아? 대체 누가 이렇게 잔뜩 사 가는 거야?"
"수영리에 있는 안살린 LA다저스구단주께서 직원들 공급용으로 구매하시는 거 같습니다."
"……허허."
임원들은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VIP 상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석유재벌이 이렇게 뭉텅이로 구매를 해줄 줄이야.
"우리가 안살린 왕자를 생각 못 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프라임컴퍼니와 친분이 깊은 걸 뻔히 알면서, 이 점을 놓쳤군요."
"프라임컴퍼니도 그럼 애초에 중동시장을 주력으로 노리고 참다랑어 캔을 기획한 건가?"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재작년에도 골든 트러플로 매출 4,500억을 올렸지 않습니까."
"지금은 골든 트러플은 판매하지 않지?"
"예, 판매는 안 하고 제휴 백화점 VIP 머쉬룸 서비스 물량만 조달할 겁니다."
"흐음, 팟디서플라이 눈치가 보여서는 아닐 테고, 서로 영역을 지켜주기로 건가."
세계 최대의 곡물법인, 팟디서플라이.
골든 트러플 물량 대부분을 생산해서 유통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골든 트러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던데요. 아랍왕족들이 가치가 떨어졌다는 인식을 받지 않도록요."
"하여튼, 1억 캔을 생산하려면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공장을 돌려야겠군, 참다랑어 들어오는 대로 바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예, 알겠습니다."
1차 계약 물량은 5억 개이지만, 공장 가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참다랑어만 들어오면 1억 개쯤이야 두 달도 안 돼서 찍어낸다.
***
"추가 1억 개는 안살린 시티에서 발주한 거랍니다."
"생각보다 통조림의 용량이 작아서 1억 개를 다시 주문했다고 하네요."
어차피 남원참치는 당분간 생산 안해도 재고 유지에는 지장이 없다.
통조림 특성상 보존이 오래되니까.
그리고 드디어 수영마트에 참다랑어 캔이 런칭되었다.
"이게 말이 되나? 개당 2,900원이라고?"
이제야 남원그룹은 참다랑어 캔의 정확한 소비자가격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파격적인 가격에 임원들은 믿지 못했다.
"아니, 그걸 개당 2,900원만 받으면 대체 뭐가 남는다는 거야?"
"부, 분명히 런칭 기념 파격 세일일 겁니다. 이게 고정 가격일 리가 없습니다."
"역시 그렇겠지? 이게 확정 가격이라는 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
그러나 몰래 청담동 수영마트를 찾은 임원들은 판매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고객님, 이 참다랑어 캔은 앞으로도 쭉 2,900원에 판매될 예정이니, 많은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근데 보통 1,500원 밑인데 이건 왜 2,900원이나 받아요?"
"고객님, 그건 직접 드셔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시식을 해보시겠어요?"
호기심에 시식을 해본 고객들은 저마다 눈을 반짝이며 당황스러워했다.
"어? 이건 우리가 알던 참치캔 맛이 아닌데……."
"내가 막입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고기질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은 알겠어."
"이 참치캔은 염장 처리를 하지 않아서 나트륨이 전혀 없습니다. 병약 한 분들도 안심하고 드실 수 있어요. 고양이가 실수로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답니다."
판매직원들은 대형 화면 브리핑까지 동원하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여기 보시면 이게 가다랑어, 그리고 이게 참다랑어입니다."
"어, 생선이 완전히 다르네요?"
"네, 참다랑어가 흔히 참치회나 초밥으로 나오는 고급 생선이고요. 가다랑어는 그물로 한꺼번에 잡는 싸구려 다랑어죠. 지금까지는 이 가다랑어로 참치캔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격이 쌌던 겁니다."
"아! 그래서 가격이 이렇게 비싼거군요!"
"원래는 훨씬 더 많이 받아야 하지만, 저희 본사에서 운영하는 양식장에서 참다랑어 양식에 크게 성공해서 저렴하게 참치캔을 팔 수 있는 거랍니다."
"고객님, 이 참치캔에 쓰인 참다랑어는 고급 횟집에 납품되는 참다랑어와 동일한 상등품들입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제품이에요."
"우와, 그럼 2,900원이면 엄청 혜자인 거네."
"열 개, 아니, 열 박스 주세요!"
소비자들은 앞다투어 참치캔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수영마트는 청담동 등 강남권에 거주하는 부유한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개당 2,900원짜리 캔을 뭉텅이로 덥석덥석 집어 들었다.
남원그룹 임원들은 고객들이 미어 터지는 광경에서, 괜한 불길함을 느꼈다.
"설마, 아닐 거야……."
"여기가 청담동이라서 이렇게 잘나가는 거지, 다른 곳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누가 90g짜리 참치캔을 2,900원이나 주고 매번 사 먹겠습니까?"
참다랑어 캔이 남원참치캔의 점유율을 무서운 속도로 갉아먹는 미래.
임원들은 그런 불길함을 애써 떨쳐져냈다.
"참다랑어 떨어져서 캔 생산이 일시정지 된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1억 개의 캔을 만들려면 양식 참다랑어 수십만 마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수영양식장은 더 이상 출하할 참치가 없었다.
현재 양식장에 남아 있는 참치는 도우야 초밥에 납품할 물량이었다.
***
얼마 전 대거 출하를 마친 수영양식장은 다시 분주해졌다.
새 가두리그물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설치하면 수심 45미터, 직경 4km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가두리그물이 된다.
또한 그물 전체가 여러 가지 밝고 다양한 색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류나 거북이 등이 더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양식 참치 외 다른 어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장님이 특별 주문 제작한 그물이라는데…… 어휴, 정말 무시무시한 크기네."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는데 그럼 관리하는 게 번거로울까 봐 직경 4km 단위로 끊었다고 하던데요."
오랜만에 하수영도 통영까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캠핑카를 몰고, 그물을 실은 트레일러와 함께 내려왔다.
"그물이 너무 크기 때문에 수중에 설치하면서 일일이 조립을 해줘야 합니다. 인명 사고 안 나도록 다들 조심하세요."
하수영은 가두리그물 설치 작업까지 직접 통제했다.
양식장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능숙한 지시를 내렸다.
"우리 사장님, 양식장에 너무 익숙하신데. 아무리 봐도 초짜가 아니야."
"설마저 나이에 평생 청담동에서만 살아온 양반이 어떻게 양식장 사업을 알아?"
"진짜 타고나긴 했나 봐."
수면 위에는 굵은 노란 원형 가두리 부표가 큰 원을 그렸다.
원형 부표 아래로 넓게 이어진 그물 케이지는 수심 45미터까지 완전히 감쌌다.
그물 설치가 완전히 끝나고, 이번에는 기존 가두리를 새 가두리에 연결 통로를 만들고, 참치들을 그쪽으로 몰아넣었다.
이제는 못 쓰게 된 구 가두리 그물을, 하수영은 접어서 트레일러에 실으라고 지시했다.
"사장님, 그건 여기에 두시면 저희가 알아서……."
"어디 해변 암석 같은 곳에 짱박고 방치하실 거잖아요. 제가 이쪽 관행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꼴은 못보죠."
"……."
"제가 직접 가져가서 폐기 처분할 겁니다. 업체에 돈만 내면 폐기해 주더라고요."
"폐기업체요?"
"네, 고열로 장시간 가열해서 기름 뽑아내서 재활용하고, 다이옥신 같은 것도 안 나온다고 하네요."
"그건…… 가열하는 데 드는 기름이 더 많이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대신 폐그물을 완전히 없앨 수 있잖아요."
하수영이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반문했고, 박영식 전무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방식대로라면, 하수영은 그물을 사는데 쓴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폐기하는데 지불하는 것이다.
"폐그물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처리할 테니까 모두 모아두세요. 절대로 버리거나 어디 암석 사이에 짱박지 마시고요."
"네, 사장님."
치어들도 새 가두리 그물로 부지런히 이동했다.
"치어들이 성장하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그때 새 가두리를 몇 개 더 설치하고 연결해서 분산을 시켜야 해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직경이 4km나 되지 않습니까?"
"그래 봐야 1제곱미터에 한 마리 들어갈까 말까 한 수준으로 꽉 들어 찰 겁니다."
"설마…… 그러려면 치어들 대부분이 제대로 성장을 해야 할 겁니다."
하수영은 그 말에 그저 웃기만 했다.
박영식 전무는 그 미소가 한 번 지켜봅시다, 라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
하수영이 돌아간 다음 날.
아침부터 양식장에 나온 박영식 전 무는 치어들이 언제 무럭무럭 자랄까, 온통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전무님! 큰일 났습니다! 적조! 적조 경보가 떨어졌어요!"
"뭐? 적조라고?"
"네! 우리 참치들도 위험합니다!"
박영식은 기겁해서 벌떡 일어났다.
적조, 플랑크톤이 갑자기 엄청나게 번식해 물이 붉게 변하는 현상.
엄청나게 불어난 플랑스톤 때문에 물고기들이 아가미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해 떼죽음을 당한다.
바로 양식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연재해 중 하나였다.
"빨리 황토 준비하고! 산소발생기 챙겨! 서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