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685화
171장 전략 식품 자원 (5)
경기도 포천 인근.
시장과 그 수행원들이 초조한 안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 시장님! 저기 저거인 거 같습니다!"
"어디? 어디?"
수행원 한 명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하자 시장도 얼른 그쪽을 바라봤다.
과연 눈에 잘 띄는 적십자 마크로 도색을 한 헬기 한 척이 일대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수영병원 닥터헬기입니다! 하수영의원님이 저 안에 타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확실해? 구조 활동 하려고 출동한 헬기는 아니고?"
"움직임을 보면 절대 아닙니다. 느긋하게 상공을 배회하면서 지형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퀸 스텔리온은 천천히 하늘을 둘러보다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헬기가 착륙하고 하수영과 박호진 변호사가 안에서 내렸다.
포천 시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님. 어떻게 매물은 잘 둘러보셨습니까?"
"음, 괜찮네요. 한국에서 이만한 넓이의 농지용 토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죠."
옆에서 박호진이 입을 뗐다.
"호남에 가면 넓고 반듯한 평지로 된 농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에이, 거긴 이미 다 주인이 있죠. 저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고요. 하지만 여기는 그냥 빈 땅이죠. 원래 황무지를 개간해서 농지로 가꾸는 재미라는 게 있습니다."
포천 시장은 박호진 변호사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으나, 이어지는 하수영의 말에 안심했다.
'그래도 황무지까지는 아닌데…….'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된 산악지대를 황무지라고 하는 것은 조금 너무했다.
농업 측면에서만 보면 황무지나 마찬가지라 해도 할 말이 없지만.
박호진이 다시 한마디 했다.
"그런데 의원님, 휴전선까지 불과 40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인데 과연 여기에 투자를 할 만할 가치가 있을까요?"
그는 다시 휘휘 둘러보며 우려 섞인 말을 했다.
"농사짓기에 그리 적합한 지역은 아닌 거 같습니다. 산도 많습니다."
"좋은 농부는 땅과 도구를 가리지 않습니다. 훌륭한 농부라면 활화산속에서도 열매 꽃봉오리를 피워낼 줄 알아야 합니다."
"……."
"……."
박호진은 물론이고, 포천 시장 일행까지도 이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수영농장이 지난 몇 년간 구축한 아성을 보면, 왠지 가능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 얼마 안 되는 넓이의 무인 하우스 농장에서 쏟아내는 농산물의 양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여기 평균 가격이……."
"3.3제곱미터당 14,350원입니다."
시장이 입을 열기 전에 박호진이 얼른 선수를 쳤다.
시장은 다소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변호사란 것들은 원래 다 저렇게 깐깐한가?
"시장님, 수영농장이 포천 인근에 진출하면 그 생산물은 포천의 특산물이 됩니다. 당연히 시에서 적극적으로 정착을 위한 배려를 해주셔야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시의 지원은 절대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정부와도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나 있습니다."
"오, 도정부 차원에서 나서주시는 건가요."
"수영농장의 이름이 우리나라 수출업을 찬란히 빛내고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박호진이 옆에서 다시 덤덤히 말했다.
"라면과 황비 버섯 수출, 북미 수영레스토랑, 중국의 황비 버섯 농장에서 나오는 매출을 합치면 이미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을 넘어섰습니다. 수영농장은 자타공인 수출 1위기업입니다."
나노소프트 레스토랑 매출을 수출액으로 간주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하지만 박호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지금은 포천 시장의 기를 죽이는 게 중요하니까.
"중국 버섯 농장에서 들어오는 돈만 연간 180조 원 이상으로 예상합니다."
포천 시장은 그 와중에 '역시 중국은…….' 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14억 인구를 충성 고객으로 만들어놓으니, 이익이 무지막지하지 않은가.
"그럼 변호사님, 잘 부탁합니다. 저는 온 김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하수영은 헬기를 타고 자기가 농사를 지을 땅을 둘러보려고 떠났다.
웃으면서 하수영을 배웅한 박호진이 시장을 돌아보는 순간 표정이 싹변했다.
시장은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반걸음 물러났다.
'그러고 보니 고등법원장 출신이라고…….'
"자, 그럼 협상을 시작해 보실까요?"
포천시는 약 600㎢의 면적을 제공하기로 했다.
서울 크기의 땅이 팔리는 셈이다.
시가 가진 땅은 매매, 개별 소유자가 가진 땅은 시에서 협상을 주선하기로, 이미 시에서는 개별 소유자들을 상대로 사전 협상을 해놓았기 때문에, 최종 부지 면적과 가격만 확정하면 되었다.
물론 도로 때문에 1개 필지로 묶이는 것은 불가능했고, 적어도 여러 개의 필지로 나뉘어서 넘어가게 된다.
매매가격만 수십조 원에 달하는 역대급 거래.
"대한민국 역사상 지자체와 개인간의 이런 거래는 다시 없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호진은 끝까지 무뚝뚝하게 대했다.
그사이, 새 농지를 자세히 둘러보고 난 하수영이 돌아왔다.
"이제 제가 도장만 찍으면 되는 건가요?"
"네, 의원님. 여기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부터 저 땅은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하수영은 시원스럽게 서명을 하고 도장까지 찍었다.(매매가 아니라 거래 추진 계약) 시 공무원들이 주변에서 짝짝 기립박수를 쳤다.
어쨌거나 빈 땅을 넘기고 수십조원을 받는 거래를 체결한 셈.
한시름 놓은 포천 시장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작물을 키우시려고 이렇게 넓은 땅이 필요하신 겁니까?"
"제가 첫 농장으로 작은 산 하나를 샀다가 금덩어리 유적들이 나오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농장을 옮겨야 했던 적이 있죠."
"아…… 들었습니다."
"그렇게 새로 옮겨간 지금 농장에서는 지하에서 금맥이 발견되는 바람에 조만간 다시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죠."
"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 그래서 저희 포천으로 완전히 정착하시려는 겁니까?"
"지금 무인 하우스 농장은 첫 농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거기는 발굴이 이제 다 끝나서 뭐가 더 나올게 없거든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는 하우스 말고 오픈 농장으로 한번 운영을 해보려고요. 그런데 자그맣게 샀다가 안에서 티타늄 광맥이라도 튀어나오면 골치 아프잖아요?"
"……."
"그래서 아예 널찍하게 구매한 겁니다. 설마 서울만 한 면적 전체를 차지하는 광맥이나 유적 시설 같은 게 나오지는 않겠죠."
"그, 그렇군요."
"여기서는 과수원을 한 번 해보려고요. 제가 과수는 안 키우고 있거든요."
"그러시군요. 혹시 어떤 과수를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과수원이라는 말에 포천 시장은 온갖 종류를 떠올렸다.
사과나무? 배나무? 감나무?
"글쎄요, 바나나나 야자수, 아니면 귤나무를 한 번 키워볼까 생각 중이긴 한데요."
"예?"
포천 시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부 다 이곳 포천에서 키울 수 없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것들 아닌가?
박호진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원님, 그 과일들은 포천에서 재배하기에는……."
"난이도가 좀 있죠? 그래서 언제고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의욕이 있습니다."
"……."
"……."
"물론 당장 도전할 건 아니에요. 지금 당장은 준비하는 과수목들이 있거든요."
하수영은 박호진 변호사와 함께 닥터헬기에 올랐다.
이제 본격적으로 박호진이 토지 매매를 시작할 것이다.
다수의 소유자가 매도에 협의를 했다지만, 그중에는 마음을 바꿔서 버티는 사람들도 나올 수 있다.
박호진이 아마 많이 바빠지겠지.
"설마 저렇게 넓게 샀는데 또 금광맥 같은 게 튀어나오진 않겠지."
박호진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래도 의원님께서 워낙 재물운이 좋으시니 뭐라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문화청에서 이번 토지 거래 냄새를 맡고 벌써부터 기웃거린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나오더라도 제가 모른 체할 겁니다. 더 이상 농사에 방해 받고 싶지 않거든요."
하수영은 기지개를 뻗으며 투덜거렸다.
"기왕이면 부피가 작은 거 위주로 몇 개만 나왔으면 좋겠네요."
"부피가 작고 소량이라면 그만큼 그 가치가 더 대단하겠군요."
박호진은 불현듯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이미 뭐가 됐든 나오긴 할 거라고 의원님도 확정을 하고 계시군.'
심지어 자신도 그렇게 반쯤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제발 작은 거, 그래서 모른 체할 수 있는 거, 그런 걸로 나왔으면 좋겠네."
***
전성렬과 정서희는 하수영의 과제를 받은 이후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전략 식품 병기' 혹은 '전략 식품 자원'이라는 개념이 선뜻와 닿지 않았다.
"사람이 식량이 없으면 죽으니까 아주 중요한 기초 자원이긴 하지만…… 근데 식량은 어느 지역에서 든 자급이 가능하지 않나? 아주 낙후된 기아 국이 아니고서야……."
"황비 버섯이 전 세계에서 무섭게 팔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 기호 식량이에요. 없으면 아쉽지만, 영양실조에 걸릴 일은 없죠."
"으음, 전 세계 누구든지 없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독점 식품이라는 것을 과연 개발할 수 있을지…… 너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렇지만 둘은 열심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엘릭서 드링크는 어때요? 그거 없으면 못 산다고 하는 사람들 많은데."
국내에서 엘릭서 드링크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이미 모든 건강 보조제를 제치고 압도적인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삼 공사에서 홍삼액이 너무 안팔린다고 징징거리고 있을 정도다.
"그건 식품이라기보다는 건강 보조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럴까요?"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딱히 엘릭서 드링크를 아쉬워하지도 않고, 환자나 허약한 사람들이 주로 선호하지."
"목마르네요. 지금 엘릭서 드링크나 한 병 마셔야겠어요."
"나도 한 병만 갖다 줘. 열심히 궁리했더니 나도 목이 말라."
"네. 여겠어요."
정서희는 사장실 캐비닛에서 두 병을 꺼내서 한 병을 내밀었다.
뚜껑을 따고 엘릭서 드링크를 달달하게 마시던 중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액체! 액체! 아니, 물! 물 어때요?"
"물? 물을 식품으로 볼 수가…… 있군. 없어선 안 될 몸의 구성분이지. 하지만 물을 수입하는 나라들은 보통 기호품으로 수입할 텐데."
먹을 물이 모자라서 물을 수입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우리 회사가 전략 식품이 될만한 물 상품을 만들긴 힘들죠."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
"하지만 수영 씨라면 방법을 찾을 거예요. 말했잖아요. 우리한테 과제를 주는 거라고, 이 정도 아이디어는 생각해 내길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어, 정말 그럴까?"
"한 번 이야기해 볼게요."
정서희는 신이 나서 바로 하수영한테 전화를 걸었다.
물을 이용한 전략 식품 개발 아이디어.
하수영은 생각보다 태연하게 반응했다.
-사실 인류가 확보 가능한 담수량이 최소기준치 밑으로 줄어들면 전략 식품이 될 순 있죠. 이미 예전에도 여러 번 우려 먹…… 아니, 이건 아니고,
"또 예전에 봤다는 영화 이야기죠? 알아요."
-아무튼 물이라는 것까지 용케 도달하셨네요. 그거 생각 못 하셨으면 프라임 컴퍼니에 생산 안 맡기려고 했는데.
역시 물이었구나.
정서희는 속으로 기뻐하다가, 불현듯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수영 씨 말투가 꼭 미리 완성품을 준비해 놓은 거 같은데요?"
-아이디어 구상이야 예전에 했습니다. 곧 준비할 겁니다.
"정확히 어떤 거예요?"
-요리용 물입니다.
거의 모든 요리에는 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