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08화
177장 물과 반도체 (2)
"반도체와 농사는 공통점이 있죠. 바로 대량의 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수영은 정원에 꾸며놓은 채소밭에서 느긋하게 잡초를 솎아내고 있었다.
강남구의회 부의장 최우석은 부채질을 하고, 여배우 장효주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구경하는 중이었다.
"특히 반도체는 화학약품을 몇 번이고 씻어내야 하기 때문에,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이 대량으로 필요 합니다."
"그래서 요즘 뉴스고 신문이고 그렇게 수원을 물어뜯는 거구만."
"저도 상수도 관리하고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이 무슨 상관인가 생각했어요."
"하 의원, 아무튼 그게 자네가 원인이라는 거지?"
"수영조리용수 만든다고 과수원을 크게 조성해서 경기도 지역 상수원에 영향이 좀 미쳤나 봅니다."
"근데 조리용수라고 해봐야 양이 그리 많진 않을 텐데요. 그게 상수원 물 부족을 일으킬 정도인가요?"
"조리용수로 퍼내서 물이 부족해진 것보다는, 잣나무밭이 지하의 물을 많이 빨아들이는 탓이 더 크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과수원에 조성한 성역 때문이다.
600제곱킬로미터가 넘어가는 초대 형 성역.
과수원을 풍성하게 조성한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역은 근방의지하수를 대량으로 끌어오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가까운 상수원 저수지에서도 지하로 물을 끌어오고 있으니.
물론 씽크홀을 만든다거나, 지반을 붕괴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연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피해가 없는 한에서, 과수원에 최대한 많은 물을 밀어주기 위해서 가동하는 것뿐.
'저수지에 물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은, 자연의 시선에서는 비정상적인 현상이지.'
그건 인간이 자신들을 위해서 만든 인위적인 현상이기에.
때문에 저수지 물 같은 것을 좀 끌어온다 해도, 성역 입장에서는 자연을 위해 오히려 혜택을 베푼 것이다.
이런 자세한 상황까지 지인들에게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아무튼 두 분 다 단타는 잘 치셨습니까?"
"응, 고마워. 자네 덕분에 50억 정도 남겨 먹은 거 같아."
"저도요. 고마워요."
"근데 하 의원 자네는 주식 안 하는거 같던데. 이런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도 안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금융으로 돈 버는 건 별로 재미가 없어서요. 그냥 돈이 마구잡이로 복사되는 걸 보면 이게 뭔가 싶고, 현타도 오고 그럽니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중에는 돈이 그냥 잡동사니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다니까요?"
"나도 한번 그렇게 느껴봤으면 좋겠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최우석이 부채질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자네 말은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이 앞으로도 계속 물 악재를 겪을 거라는 거지?"
"네, 물 부족에 계속해서 시달릴 겁니다."
"그럼 경기도민들 민가 수도 공급에도 차질이 빚진 않을까?"
"그 정도로 심각하게 부족해지진 않을 거 같은데요. 식용수와 공업용 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게 조금 애매해지는 수준이겠죠."
"서해전자가 당분간 수원시청과 드잡이질을 좀 하겠구먼."
"그렇겠죠."
최우석은 손바닥을 탁 하고 내려쳤다.
"좋아, 난 이 악재에 계속 걸겠어. 우리 장효주 양은?"
"저는 충분히 재미 봤으니까 그만 빠질래요. 원래 주식 한 번도 안 해봐서 무섭기도 하거든요."
"아쉽군. 같이 존버할 동료가 있으면 좋은데."
수원시 상수도 사업소장 박선영은 최근 입장이 난처했다.
반도체 공장 물 공급 문제로 서해 그룹에서 항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을 안 준다는 게 아니고, 기존에 주던 만큼은 계속 준다고 하는데, 도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캐파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당연히 확장한 만큼 물 공급량도 추가로 늘려주셔야지요. 협정에 명시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요즘 가뭄 때문에 수자원 확보량이 조금씩 부족해지는 상황입니다. 당장은 그만한 물 공급량을 더 늘려드리기 어렵습니다."
"물을 공급해 주시지 않으면 그 값비싼 반도체 장비들이 모두 놀게 됩니다. 첨단 공장일수록 24시간 끊임없이 돌아가야 한다는 건 아시겠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물이 모자라면 공정 가동이 중단 됩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적어도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 이상이 될 겁니다."
천문학적인 단위를 들먹이자 박선 영은 괜히 겁이 났다.
"하지만 물 공급량 증가는 당장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단수 조치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박선영 소장의 안색이 굳어졌다.
서해전자 임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일반 가정집에 순환식 단수 조치를 하란 말입니까? 그건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구역별로, 혹은 시간별로 단수 조치를 하면 그만큼 물 여유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공장 물 공급량을 늘려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그걸 더 늘리자는 말씀이십니까?"
"완전 단수도 아니고, 그 텀을 조금 더 늘리자는 것뿐입니다. 시민들도 그리 큰 피해는 입지 않을 겁니다."
임원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설득했다.
"사실 아침저녁으로 각각 1시간씩만 물이 나와도 사람은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곤란합니다. 이미 수자원 부족 현상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커져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시장님 선에서……."
"그러니 소장님도 시장님을 설득해 주셔야지요. 우리만 나서면 아무래도 모양새가 별로이지 않습니까?"
"……."
박선영 소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우리 공장이 수원시에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지를 고려해주십시오. 시민들이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자 발적으로 단수 조치에 호응할 겁니다."
시민들이 얻게 될 약간의 불편.
서해전자의 충분한 물 확보.
그 둘을 서로 교환하자는 요구.
임원이 떠난 후에도 박선영 소장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임원이 앉아 있던 자리에 책 한 권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책을 펼치자 100만 원 수표 여러 장이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도합 20장, 2,000만 원이라는 성의 표시다.
본 사람도 없으니, 탈 날 것도 없고.
애초에 탈이 나기도 힘든, 딱 적당한 금액.
소장은 책을 다시 덮어서, 자기 가방에 깊이 집어넣었다.
서해전자는 다방면으로 수원시를 공략한 덕에, 일단 필요한 만큼의 물 공급량은 확보했다.
그 대신 시민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겪어야 했지만, 상수원에 문제가 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100이라는 피해가 한 명에게 집중되면 참을 수 없이 분노하지만.
120만이라는 피해가 120만 명에게 조금씩 나누어지면 잘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란 건 다들 알고 있겠지?"
"네, 사장님."
"서진파운드리 수도사용량, 정말 확실한 정보인가?"
"직접 현장까지 방문해서 살펴봤습니다. 어디에도 물탱크로 보이는 시설은 없었습니다."
반도체 공장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초순수 제조시설과 탱크.
"또한 폐수정화 시설도, 폐수 파이프 따위도 일절 없었습니다."
화학약품 세척에 쓰고 난 대량의 물은, 당연히 정화작용을 거쳐 방류해야 한다.
"혹시 폐수 대부분을 정화해서 다시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시설도 일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재사용률을 아무리 늘린다고 해도, 수도 요금이 만 원도 안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정화시설을 도입한 반도체 공장은 없습니다. 정화에 걸리는 시간, 비용 등을 고려하면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확실합니다. 서진파운드리 공장은 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물을 안 쓴다니.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철저한 교차검증을 지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정말 공기분사세척 같은 기술을 개발한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공장 내 공기 오염도가 오히려 증가합니다. 비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설령 성공적으로 공기분사세척을 하고, 또 오염입자를 한곳에 잘 모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어딘가에 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의미심장한 말에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박 이사, 지금 그 말은 무슨 의미지?"
"서진파운드리 폐기물 목록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만, 화학약품 같은 특별 환경오염규제 대상은 전혀 없었습니다."
"……."
"대부분 가정용 쓰레기로 분류될만한 수준의 일반 쓰레기들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공장은 위장 공장이고, 다른 곳에서 제품을 찍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TSMC 차량이 매일같이 드나들며 생산된 반도체 부품들을 수거하고 있습니다. 절대 위장 공장은 아닙니다."
애초에 위장 공장을 두면서까지 생산거점을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
핵무기,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는 비밀공장도 아닌데.
"그리고 TSMC도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상한 점이라니?"
"패키징 공정 중에서 웨이퍼 폐기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으로 확인 됩니다."
"뭐? 웨이퍼 폐기물이 없어?"
반도체는 원판처럼 둥근 웨이퍼에 부품을 인쇄해서 잘라내서 만든다.
웨이퍼 하나에서 수백 개 이상의 반도체 부품이 나오게 되고, 당연히 가장자리의 둥근 부분에 찍힌 반도체는 못 쓰므로 버려야 한다.
"서진파운드리가 웨이퍼 형태로 넘기지 않고서야 웨이퍼 폐기물이 안나올 수가 없는데, 그 점이 이상해서 TSMC도 조사를 해봤는데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문석 사장은 한참이나 얼이 빠져 있다가 툭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서진파운드리는 대체 무슨 공정으로 반도체를 만드는 거지?"
입자집합명령 시스템.
일종의 양자영역의 3D 프린터 같은 개념.
입자들이 서로 정확한 구조로 결합하여 최종적으로 반도체 부품을 만들기 때문에, 낭비되는 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수율 100%인 것이다.
비록 사이즈가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반도체 부품이라면 거의 제한 없이 만들 수 있다.
정서진은 이 마법과도 같은 놀라운 기술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상상할 때마다, 여전히 전율을 일으키곤 했다.
"중공업 분야에도 적용할 수만 있다면 정말 엄청날 텐데."
입자집합명령 장치로 대형 선박 등을 찍어낸다고 상상하니, 다시금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사이즈가 작게 제한돼 있는 걸 보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기술적 난제가 있는 게 틀림없는데."
정서진은 이 기술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지켰다.
또한 이 기술을 만들어낸, 하수영이 거느린 두뇌 집단에 대한 궁금증을 품지도 않았다.
기본급 100억에 인센티브 5%라는 대우는, 그를 철저한 충신으로 만들었다.
'쓸데없는 과욕으로 이렇게 좋은 직장을 잃을 수는 없지. 난 그런 바보가 아니다.'
그래도 기술을 이런저런 테스트 응용에 시험하면서, 반도체 외의 사업가능성을 찾고는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반도체 사업 이상의 이익을 낼 만한 길은 찾지 못했다.
작은 크기의, 매우 정교한 초미세영역의 제품을 대량으로 만드는데 특화된 기술.
반도체 아닌 다른 영역에 활용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낭비라고만 생각되고 있었다.
「주인님, 서해전자에서 '또' 연락이 왔습니다.」
"대체 몇 번째야? 거절해."
「이번만큼은 긍정적으로 고려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파운드리 주문입니다.」
"호객, 아니, 고객님 지금 어디 계시냐? 지금 당장 간다고 전해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