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13화 (713/1,270)

프랜차이즈 갓 713화

178장 VIP 대우 (1)

이문석은 분양 전인 아크리엔 빌라를 건물째로 전부 넘기기로 했다.

서해물산이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야심 차게 지은 고급 빌라.

층별로 2가구, 도합 10층이므로 총 20세대밖에 안 되는 소규모 빌라.

그러나 각 세대별 전용 면적이 495제곱미터(150평)이며, 전체 부지는 3,300제곱미터에 달한다.

세대별 주차 수가 10대 이상이며,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입지를 자랑한다.

원래 톱스타 연예인들 위주로 분양하려고 했지만, 이문석의 강력한 주장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정서진 대표가 아크리엔을 자기가 지정하는 사람에게 양도하면 협상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진행해."

공짜로 넘기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계획했던 분양가를 그대로 받는 조건.

서해그룹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날게 없었다.

이문석 입장에서도 진행하는 데 부담이 없었고, 제값 주고 파는 건데, 설마 어떤 커넥션이 있으리라고 의심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이문석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사장님,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이 중요한 때에 사표라니요?"

당연히 이현덕 부회장은 화를 내며 거부하려 했지만, 이문석은 회심의 변명을 준비해 두었다.

"죄송합니다. 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런."

"한국에서는 가망이 없어 미국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모시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몸조리 잘하세요. 부디 완쾌를 빕니다."

죽을병에 걸렸다는데, 더 붙들고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차라리 배우자 등 가족이 암 판정을 받은 거라면 돈 벌어야 하니까 더 부려먹을 수 있겠지만,

"그럼 정서진 대표를 회유하는 것은 어떻게 됩니까?"

"제가 부사장과 임원들에게 잘 인수인계해 놓고 가겠습니다. 결과를 내기도 전에 도망치듯이 떠나야 하는 점,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투병을 앞두고 있는 사람까지 달달 볶을 정도로, 우리 그룹이 그렇게 매정한 기업은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이문석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후다닥 건너갔다.

미국에서 적당히 투병하는 척한 뒤, 하수영의 지시대로 대만으로 다시 건너갈 것이다.

***

하수영은 64호기가 된 아크리엔을 방문했다.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장효주도 함께 따라왔다.

"이게 전부 수영 씨 거라는 거죠?"

"네, 20채 전부 제 부동산 법인 명의로 샀습니다."

"전 휴민트 타워보다 이게 더 멋있어 보여요."

최상류층 부자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고급 빌라답게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하지만 장효주는 빌라 내부 모습보다는, 외부 뷰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여기 풍경 괜찮은데. 나 여기서 살면 안 돼요?"

"지금 세 들어 사시는 아파트는 어떻게 하시고요?"

"그건 계약 종료하고, 여기로 새로 계약하면 안 될까요?"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고마워요. 근데 보증금이나 세는 어떻게?"

"그냥 그대로 옮깁시다. 계약서만 한 장 더 새로 쓰면 되겠네요."

참고로 둘은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다.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갔는지, 정서희가 빌라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수영 씨, 저도 거기 세 주면 안돼요? 이제 청담에 본사 사옥 들어서면 출퇴근하기에는 딱인 거 같은데."

"그러시죠."

"장효주 씨도 거기 들어온다죠? 기왕이면 같은 층으로 해주면 좋겠어요."

"좋네요. 효주 씨도 아는 사람이 같은 층에 있으면 부담이 없을 테니까요."

물론 정서희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수영 씨가 드나들지 않는지 감시하려면 역시 같이 사는 게 최고지.'

"근데 서해그룹이 왜 수영 씨한테 팔았대요? 원래 연예인 위주로 분양하려고 지은 거라던데."

"물밑 거래로 받았지요. 서진 씨가 큰 활약을 했습니다."

"오빠가요?"

"네, 이 빌라를 얻은 데에는 서진 씨 공이 적지 않게 큽니다."

"안 믿어지네요. 오빠가 뭘 했다고……."

"서해전자가 반도체 공정 기술을 탐내서 서진 씨한테 접근을 했죠."

정서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아니, 서해전자가 무슨 돈이 있다고요? 반도체 공장 때문에 100조원 넘게 날려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서진 씨도 조건을 듣고 기가 찼다고 합니다. 어떤 바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받겠냐고 말이죠."

"애초에 오빠가 권리를 가진 기술도 아니잖아요. 오빠는 그냥 공장관리인일 뿐인데."

"서해전자는 그걸 모르죠. 그리고 공장 관리인이라니요? 회사 최고 경영자입니다."

"찐 남매라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공장 관리인도 사실 많이 쳐준 거죠."

정서희는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서해그룹은 13조짜리 파운드리 발주도 주고, 고급 빌라도 주고, 정말 아낌없이 줬네요. 아, 공장 되사느라고 50조 원도 예전에 챙겨줬었죠?"

"덕분에 프라임 건설이 자금 문제하나 없이 회사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죠."

그때였다.

-마스터, 서해전자에서 정서진 대표한테 추가 파운드리 발주를 넣을 모양입니다.

"그래? 아니, 13조짜리 안겨준 지얼마나 됐다고 또?"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 가동이 잘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저런, 원인이 뭐래?"

-물 부족입니다. 성남시하고 잘 협의가 되지 않는 거 같습니다.

***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연일 비상 모드였다.

"물이 부족하다고? 얼마 전에 수도사업소장을 만나서 이야기가 잘됐다고 하지 않았나?"

임시로 사장 대행을 맡은 권순철부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거는 이야기가 잘 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물 부족 사태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수원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상수원에 문제가 있다고?"

"네, 성남시에서도 더 이상의 민간 단수 조치는 힘들다고,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허허, 이래서야 어디 기업들이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겠어? 안 그래도 요즘 중국 반도체들이 한창 치고 올라오는 와중에……."

권순철 사장 대행은 물이 필요하지 않은 서진파운드리가 불현듯 더욱 간절해졌다.

그 공정 기술만 있다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부사장님, 어쩔 수 없습니다. 서진 파운드리에 추가 파운드리 물량을 발주하지요."

"13조 원어치나 되는 물량을 줬는 데, 또 주자고?"

"지금 공급되는 물로는 공정 라인을 제대로 돌릴 수 없습니다. 일단 납기는 맞춰야 할 거 아닙니까?"

내키지 않는 결정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납기를 어기고 위약금을 물어내느니, 일단 검증된 서진파운드리에 맡기는 게 나았다.

'300㎜ 웨이퍼 90만 장짜리 물량을 하루 만에 찍어내는 곳이니…….'

"어쩔 수 없군. 일단 서진파운드리에 추가 물량을 오더하고, 성남시에 연락을 해봐. 대체 물 공급이 언제쯤 정상화가 될 건지 말이야!"

***

정서진은 서해전자의 파운드리 주문을 기꺼운 마음으로 수주했다.

이것으로 서해전자 파운드리 매출이 30조 원 넘게 발생하게 되었다.

-원래 텐트에 한 번 낙타 머리를 집어넣기 어렵지, 일단 한 번 집어넣으면 뒷발까지 넣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서해전자가 어지간히 입자 집합명령 기술이 탐나나 보네. 이문석사장이 그만뒀는데도 이렇게 물량공세를 해오니 말이야."

정서진은 잦은 접촉을 위한 미끼로 자꾸 파운드리 오더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샘플을 받아서 분석도 하고 말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물 수급에 문제가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 수급? 근데 그건 성남시하고 담판 지어서 해결한 거 아니었어? 성남시에서 가정집 단수 조치를 더 심하게 한 거 같던데."

-그때에 비해서 물 부족 현상이 더 심해졌죠.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공장 가동에 문제가 생겨서 추가 발주를 한 거로 보면 되겠구나."

-네, 이번에는 하루가 아니라 조금 더 넉넉하게 납품을 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아쉬운 쪽은 저쪽이다, 이거지?"

하루가 아니라 넉넉한 기간을 잡고 납품을 해도 서해전자는 별말을 못할 것이다.

자기들도 불가능한 일정이니까.

정서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미 우리가 하루 만에 납품을 했는데, 일부러 지연 납품을 하면 '고객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서해전자에 보이지 않는 손상을 누적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만.

"언젠가 무너뜨려야 할 적인 건 맞지. 하지만 발주가 유지되는 동안만큼은 소중한 고객님이다. 그걸 잊어선 안 돼, 프리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주인님.

"파운드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고, 고객의 편의를 최대한 봐줘야 한다. 그게 생명이라고."

-확실하게 입력해 두겠습니다, 주인님.

***

그리고 부사장이 직접 서진파운드리로 찾아왔다.

발주 계약서를 쓴 뒤, 부사장은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당연히 저희가 대접해 드려야지요.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부사장님."

정서진은 부사장 일행을 에스코트해서 서울, 청담동으로 향했다.

장소는 수영오세안 1호점이 있는, 하수영 3호기 빌딩이었다.

"아시겠지만 요즘 성남시 물 부족 때문에 공장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 발주를 드린 반도체 제품은 최신 기술이 필요해서 화성 공장으로 뽑기에는 수율이 낮고요."

"그래서 저희 회사에 맡겨주셨지요. 탁월한 결정이십니다."

"No 웨이퍼 기술은 물이 필요하지 않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제는 숨기지도 않고, 태연하게 인정한다.

부사장은 정서진의 표정에서 높은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문석 사장님이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 그걸 알아야 할 텐데…….'

물론 퇴사 전에 이문석이 인수인계를 해주기는 했다.

아직 제대로 말도 못 꺼낸 상태라고 들었다.

하지만 부사장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No 웨이퍼 공정 기술을 반드시 확보하라는 이현덕 부회장의 명령.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실수없이 완벽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 대표님, 혹시 골프 좋아합니까?"

"비디오 게임기로 하는 것은 좋아 합니다."

"……혹시 괜찮으면 이번 주말에 같이 골프 치러 가지 않겠습니까?"

말을 꺼내면서도, 부사장은 혹시 거절당하지 않을까 염려가 들었다.

다행히 정서진은 표정에 전혀 구김없이 활짝 웃으며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몸으로 직접 지는 골프도 괜찮지요. 제가 골프장을 예약해도 될까요?"

"어디 좋은 곳을 아시나 봅니다. 그럼 거기로 가지요."

"사원을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거야 당연하지요."

너무 당연한 질문에 부사장은 흔쾌히 말했다.

'1인 체제라고 하더니, 비서를 따로 고용했나 보군. 아무렴, 아무리 무인화가 됐다고 해도 사장 혼자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

***

약속 당일, 골프장.

권순철 부사장은 정서진이 말한 '사원'을 보고 당황해야 했다.

"하, 하수영 의원님? 아니, 정 대표. 분명히 사원을 동행한다고……."

"저 사원 맞습니다. 유한 회사 사원."

평사원이 아니라, 설립에 출자를 한 사원(지분주).

같은 한글 발음, 다른 단어, 다른 뜻.

"발주액이 1병원선(20조 원)이 넘은 귀중한 VIP 고객님이신데, 당연히 사주인 제가 직접 접대를 해드리려고 나왔습니다. 권순철 '사장 대행님', 골프는 잘 지시나요?"

"체면치레는 간신히 하는 정도입니다."

"그럼 제가 제일 초보네요. 골프장도, 골프채도 처음이거든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