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17화
178장 VIP 대우 (5)
수원시는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에 최대한 물을 공급해 주려고 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물이 풍족한 나 라인데, 물 부족을 이유로 첨단 공장이 가동을 멈춰서야 되겠는가.
민간 공급까지 줄여가면서 최대한 많은 물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물 부족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었고, 이제는 서울, 평택, 화성 등 인근 지역 지자체와 물을 가지고 갈등을 빚게 되었다.
"수원시만 서해 공장이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댐 저수지 수위를 보셨습니까? 무분별하게 물을 끌어다 쓸 때가 아니에요."
"서울 천만 시민들이 먹을 수 있는 물 확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물은 식수예요. 공업용수는 어디까지나 그다음입니다."
"광교, 파장 저수지를 대체 어떻게 관리했기에 그 모양이 됐습니까?"
서울시는 먹을 물도 부족한데 무슨 공장이냐며 불만을 드러냈고, 수원과 화성, 평택 연합도 공업용수 확보를 놓고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에 신임 경기도 지사 안민성까지 나서게 되었다.
"저수지 문제는 나중이고, 일단 수자원 분배부터 협의해야 한다. 서진 파운드리는 물 없이 반도체를 찍어내는 기술을 갖고 있다며?"
"그런 거 같습니다. 서진파운드리 공장에서는 물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수도 사용량이 일반 가구보다도 못한 수준입니다."
"그럼 서해전자가 당분간 위탁 생산을 거기에 맡기면 되지 않나? 얼마 전에도 두세 번 크게 발주를 한 거 같던데."
그 말에는 도정부 공무원들도 난색을 보였다.
"서해전자가 파운드리를 맡긴 것은 당장의 생산량 부족 때문입니다. 공장을 놀리고 외부에 파운드리를 맡기면 서해전자의 손해가 커집니다."
"그럼 서진파운드리가 그 공정 기술을 서해전자와 공유하면 되지 않겠나?"
"서진파운드리가 기업의 기술 자산을 타사와 굳이 나누려 할지가 의문입니다, 도지사님."
"지금 물이 부족해서 이 난리인데, 경기도 기업이라면 당연히 도정에 협조를 해야 하지 않나?"
안민성 도지사가 짐짓 엄하게 말하자 공무원들의 안색이 더 나빠졌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괜히 두 대기업 싸움에 끼어들어 봤자 잘못되면 나가리인데…….'
'그냥 최대한 물을 더 많이 확보해서 공급하는 방향이 나을 텐데…….'
안민성 도지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하긴, 주요 기술을 굳이 타사와 공유할 기업가는 없겠지."
"네, 도지사님."
"서해전자와 자리를 한번 만들어 봐. 수도권 시민들 먹을 물도 부족한 상황이니, 당분간만이라도 서진 파운드리에 전부 맡길 수 없는지."
***
그렇게 해서 경기도지사와 서해전자 경영진 대담이 마련되었다.
차기 오너인 이현덕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은 자리였다.
서해전자 경영진은 태도를 분명하게 했다.
"도지사님, 위탁 생산은 필요하면 저희 회사에서 추가적으로 늘릴 겁니다. 저희가 지자체에 바라는 것은 원활하고 안정적인 물 공급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요. 지금도 수많은 공무원이 수자원 확보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신공장 가동 전에도 하루 30만 톤 이상의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지금은 하루 26만 톤 남짓한 수준입니다."
"허허, 무슨 반도체 공장이 물을 그렇게 많이 쓰는 겁니까?"
"……반도체 공장뿐만이 아닙니다. 제철소도 물을 많이 씁니다."
"그래요? 그런 거까지는 내가 잘 몰라서. 내가 법대를 나왔거든."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돌아가야 합니다. 한 번 라인을 세울 때마다 천문학적인 손해가 발생합니다. 지금도 몇 개나 되는 공정 라인이 물부족 때문에 멈춰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안민성 도지사의 표정에 난처함이 어렸다.
경영진은 첨단 기술 상식이 부족한이 신임 도지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난감했다.
"그럼 서진파운드리의 기술을 가져오면 어떤가요? 그 뭐더라, 라이선 싱이라고 하던가?"
"……그 역시 저희 회사에서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
설마 우리가 그 생각을 안 해봤겠냐고, 다들 그런 표정이 또렷했다.
"도대체 물이 부족한 이유가 뭡니까? 특별히 가뭄이 들지도 않은 거 같은데요."
"그건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경기도 수도 사업 담당자가 재빨리 나서서 자료 화면을 보여 주었다.
"팔당댐, 그리고 주요 상수원 저수지들의 수위를 비교한 사진들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수위 차이를 한번 비교해 보시죠."
"……음."
경영진들은 사진을 보고 침음성을 흘렸다.
비전문가인 자신들이 보기에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수위가 낮아져 있었다.
"저희는 상당량의 물이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래 물은 지하로 스며드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그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진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 비해 부족한 것뿐입니다."
부소장도 얼른 거들었다.
"이미 서울시에서도 한 차례 전체 단수 조치한 바가 있습니다."
"서울시까지 그럴 정도면 꽤 심각하군요."
"일단 시민들이 먹고, 씻고 할 물만큼은 끊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노선을 정해주십시오. 그리고 물 공급량이 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주십시오."
경영진은 그 외 나머지 물량은 서진파운드리에 위탁 생산을 맡길 생각이었다.
도정부는 결국 간접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물 부족 현상을, 파운드리 발주량을 늘리게끔 중재하는 것으로 임시 처방하는.
권순철 사장 대행은 협상 내내 속이 좋지 않았다.
미국으로 도망간 이문석 전 사장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
'이건 배가 침몰한다는 조짐이다.'
보아하니 다른 임원들은 물 부족현상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마 일시적인 날씨 변덕으로 여기는 모양.
시간이 지나면 수자원 확보량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럼 빨리 탈출을 해야지. 어떡한다…….'
가장 좋은 것은 반도체가 아닌, 그룹 내 다른 주력 사업부로 이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현덕 부회장이 과연 좋게 바라봐 줄까?
잘못하다가는 사업부를 옮기는 게 아니라, 아예 사직서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완전히 살얼음판이군. 이문석 사장이 이렇게 부러울 줄이야.'
나중에 TSMC로 간다고 했던가?
이제는 서진파운드리의 하청 업체신세지만, 오히려 기업의 미래가 밝다고 볼 수 있다.
'반도체 생산 파이를 전부 잃고 팹리스로 돌아가면 어차피 피바람이 불게 된다. 그때 가서 다른 곳으로 가려면 너무 늦다.'
최대한 빨리 반도체 사업부를 탈출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정공법으로는 어려운 듯하다.
'그 수밖에 없는 건가.'
권순철은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
-권순철 사장 대행이 조용히 만나고 싶어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거 같습니다.
"고객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당연히 시간을 내드려야지."
정서진은 흔쾌히 시간을 냈다.
퇴근길에 서울에 올라와 청담동에서 권순철을 만났다.
다시 보는 권순철은 이전보다 한껏 부드럽고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조카뻘인 정서진 앞에서 매우 상냥하고 정중하게 행동했다.
"정 대표님, 도지사에서 귀사의 공정 기술을 우리 회사에 라이선싱하게끔 중재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질겁을 해서 막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새 도지사분은 특허 쪽으로 조금 상식이 부족하신 거 같군요."
"네, 애초에 특허를 내지도 않았는데 무슨 라이선싱입니까. 혹 특허를 냈어도 귀중한 자산을 왜 함부로 남과 나눕니까."
권순철은 오늘 있었던 도지사와의 협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물 부족 현상은 아무래도 장기화 될 거 같습니다. 결국, 서해 반도체는 귀사에 상당량, 어쩌면 대부분의 물량을 발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군요. 사장 대행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앞으로 대량 발주가 이어질 테니 미리 준비해 달라는 요청입니까?"
"물이 필요하지 않은 반도체 공정, 심히 충격적인 기술입니다. 저는 서해 반도체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팹리스로 전환하는 게 서해전자,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 하청 업체인 제 입장에서 고객사에 섣불리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더군요."
"하하, 그럼 제가 먼저 물꼬를 튼게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분이 '권사장'님의 생각에 동조합니까?"
"아쉽게도 저 혼자입니다. 이현덕부회장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불호령을 낼 겁니다."
"아무래도 시한부 선고를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테지요.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보는 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좋게 분위기를 잡으며 눈치를 보던 중, 권순철은 드디어 이야기를 꺼냈다.
"정 대표님은 혹시 나중에라도 공장을 확장할 계획이 있습니까?"
"당연히 확장해야지요. 원래 공장과 농장은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농장이요?"
"아, 회사 오너께서 아무래도 본업이 농부이시다 보니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어느새 입에 붙었군요."
정서진은 쑥스러운 듯이 웃었고, 권순철은 서해그룹의 힘으로는 절대 그를 데려올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나라도 안 옮기겠다. 머릿속 아이디어밖에 없는 시절, 100억 달러나 턱 하니 투자해 준 사람을 어떻게 저버리겠어.'
권순철은 여전히 물 없는 공정 기술을 정서진이 개발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 회사가 절대 그 이상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 강한 쪽에 붙는다.
그 차이가 압도적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사내 정치의 암투를 헤치고, 사장 대행까지 올라온 그의 원칙이었다.
"서해 반도체 공장 부지에는 혹시 관심이 없으십니까?"
"음, 완전한 팹리스로 전환할 때를 대비해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팹리스 전환에 긍정적인 것은 권 사장님 한 명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여쭤보는 겁니다. 오늘 '조용히' 뵙자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정서진의 눈이 살짝 가늘게 변했다.
조용히 권순철을 바라보던 정서진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혹시 저를 돕고 싶으신 겁니까?"
드디어 원하던 질문이 나오자, 권순철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는 팹리스 전환에 서해 반도체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청 업체로서 조심스럽지만, 동감합니다."
"결국, 언젠가는 쓸모가 없어질 공장들입니다. 특히 이번에 130조 원넘게 들여 지은 새 공장은 결국 서해반도체의 재정을 발목 잡을 겁니다."
권순철의 눈빛에 확고한 간절함이 깃들었다.
"제가 서해전자 안에서 서진파운드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아니, 돕겠습니다."
"하지만 권 사장님이 회사에 등을 돌리는 것은……."
"배신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그리는 것입니다. 반도체 자가 생산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붙겠다고! 제발 내 뜻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차마 대놓고 산업 스파이 짓을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
거창한 이런 명분이라도 있어야 정서진이 부담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몇 분간의 침묵 후, 정서진이 다시 말했다.
"우리, 앞으로 잘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정 대표님."
정서진이 악수를 청하려고 손을 내밀었고, 권순철은 두 손으로 공손히 잡으며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