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20화 (720/1,270)

프랜차이즈 갓 720화

179장 생선은 금이라구, 친구 (3)

수협 회장은 잔뜩 긴장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수영이 찾아온다는 연락을 좀 전에 받았기 때문이다.

'꼭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중앙정치권에서 하수영이 가지는 위상은 눈부시다.

온갖 당파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그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수협 회장이라는 직함으로는 감히 그 앞에서 고개를 들기 어렵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온다는 건지, 그 이야기는 못 들었나?"

"네, 못 들었습니다. 지금 만나러 출발할 거란 통보만 받았습니다."

"……."

양식어 강제 매수 공문.

하수영한테도 그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회장과 측근들은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왔습니다!"

그때 군함 견시수처럼 내내 밖을 살피던 직원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가자!"

수협 회장과 측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얼른 사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저 멀리 희고 거대한 캠핑카가 천천히 다가온다.

공직 짬밥 좀 먹은 사람치고, 이제 저 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격만 수십억 원이 넘어가는, 독일제 최고급 캠핑카.

차체가 크고, 티타늄 합금으로 되어 있어 교통사고에서도 안전한.

'한 대가 아니야?'

캠핑카 뒤를 검은 세단 수십 대가 줄줄이 따르고 있었다.

대체 뭐지, 하는데 캠핑카가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슬쩍 보이는 황금색 구두코를 본 순간 수협 회장 일행은 숨을 멈췄다.

금색 바지가 드러나고, 금색 재킷끝이 보인다.

금색 셔츠 소매 끝으로 빠져나온 양손에는 큼지막한 황금색 롤렉스시계가 감겨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금색으로 도배한, 언뜻 보면 벼락출세한 졸부를 연상케 하는 패션.

대놓고 촌스러움을 추구하니, 오히려 기이한 매력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은색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세단에서 우르르 내렸다.

언뜻 보기에도 수십 명은 되어 보인다.

'그런데 경호원들은 보통 검은 정장을 입지 않나?'

은색 정장으로 통일하니, 하수영의 골드 컬러 패션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긴 한다.

설마 그걸 노리고?

"반갑습니다. 하수영입니다."

"수, 수협 회장 안홍식입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아무래도 몹시 길어질 듯하니까요."

그리고 하수영은 성큼성큼 앞장을 섰다.

누가 보면 수협이 자기 사무소인 줄로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수협은 처음이실 텐데?'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방향을 잘 찾는다.

경호원들도 절도 있는 자세로 하수영의 뒤를 따른다.

행인과 수협 직원들은 신기한 구경거리에 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은 채 구경했다.

"제가 이번에 양식어 유통을 강제한다는 공문을 받아서요. 그거 때문에 항의하러 왔습니다."

"아! 의원님에게까지 그 공문이 갔단 말입니까? 허어, 이거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군요."

양식장을 갖고 있으니 실무진은 당연히 일괄적으로 공문을 보냈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수영 앞에서 차마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일 순 없다.

"네, 그거 때문에 항의 좀 하려고요. 대체 왜 사유재산인 양식어를 수협과 정부에서 압류한다는 것입니까?"

"압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익을 위해서 유통만 일부 강제하는…….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요."

"생선 시장 유통량이 줄어서요?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요? 아니, 생선이 없으면 소고기를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의원님, 그렇지 않습니다."

수협 회장은 머릿속이 팽글팽글 돌았다.

생선이 없으면 소고기를 먹으라는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금 가격이 최소 10배 이상으로 올랐어요. 수협에서는 그 가격으로 매수를 해줄 겁니까? 가격 폭등하기 이전 수준으로 강제 매수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시장 안정을 위해서 합리적인 수준의 가격으로 사들이는 것.

예를 들어 원래 5,000원 하던 생선이 지금은 50,000원이라면.

그것을 10,000원에 사서 8,000원정도에 판다.

이 과정에서 수협과 정부는 금전적 손실을 보게 되지만, 그 대신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으니.

"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치입니다.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의원님만큼은 절대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뭐요? 어떻게 저만 피해가 안 가게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의원님 양식장만큼은 일괄 매수에서 시중 가격 그대로를 받을 수 있도록……."

"저한테 지금 불법 특혜를 주신다고요? 저, 작지만 알차게 정치하는 사람입니다! 지지자분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불법 특혜 같은 것은 거부합니다!"

수협 회장은 당황했다.

보통 이런 특권을 제시하면 좋아라 한다.

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데?

편법과 반칙을 통해서, 나만큼은 피해를 빗겨 가기 위함이다.

그 욕심은 돈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는다.

수협 회장이 볼 때는 그랬다.

'공문 때문에 왔다면서?'

제값(폭등가)을 못 받게 생겼으니 닦달을 하러 온 게 아니었나?

"저는 지금까지 정부 보조금 같은 것도 전혀 받은 적이 없습니다! 히려 제 사비를 털어서 전국의 농민과 어민들을 지원했지요! 그런데 수협이, 해수부가 어떻게 저한테 이럴수가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해수부를 만나서 따져야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아, 안내하겠습니다!"

수협은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쓸고 간 듯이 초토화되었다.

하수영은 퍼포먼스에 수협 회장을 태웠다.

회장 수행원들은 부랴부랴 관용차를 끌고 퍼포먼스의 뒤를 따랐다.

세종청사로 향하는 도중, 수협 회장은 얼른 해수부에 연락을 넣었다.

"회장님, 저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누구 도움도 받지 않고 맨손 하나로 보잘것없지만 지금의 작고 아담한 양식장을 마련했습니다."

'보잘것없어? 작고 아담해?'

국내 양식어 점유율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양식장이, 어디가?

"지금까지 줄곧 적자만 보다가 이제 조금 만회를 할 기회가 생겼는 데, 강제 가격 조정 매수라니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원님은 특별히 저희가……."

"아뇨! 그렇다고 부당한 특혜를 뜯어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정당한 민원과 조치를 원합니다."

수협 회장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하수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어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서 차별받는 상황입니다. 우리 같은 어민들은 소득이 3,000만 원만 넘어도 세금을 내요. 쌀 같은 식량작물은 무제한 면세고, 인삼이나 과일도 10억 원까지는 비과세인데,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대체 수협은 뭘 하는 거죠? 농협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좀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어민들의 권리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해수부와 손을 잡고 정성껏 기른 양식어들을 강탈하려고 하시잖아요!"

수협 회장은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하수영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늙은 어민 수백 명이 몰려와서 항의를 해도 눈 하나 꿈쩍 않는 정신력을 가졌는데.

하수영의 몇 마디 추궁은 혼백이 날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잠깐? 그런데 의원님은 농민이시잖아?'

그런데 지금 농민 소득세 면제를 저리 성토하고 있다고?

어느덧 정부청사에 도착했다.

해수부 장관은 아예 정문까지 내려와서 하수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귀띔을 받은 해수부 장관은 서글서글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어디까지나 정부 보조금을 받은 양식장과 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치입니다. 그간 나라의 지원을 받았으니, 나라의 일에 협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지요."

즉 너는 지원금 받은 게 없으니 해당 사항이 전혀 없다, 이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네? 알고 계셨습니까?"

"그런 조건이 있었습니까?"

해수부 장관과 수협 회장은 각각 다른 이유에서 놀랐다.

'아니, 다 알면서 왜 수협까지 닦달해서 여기로 온 거야?'

'그런 예외 조항이 있었어? 근데 왜 아까 내 앞에서는 말을 안 했던 거야?'

"저야 일괄 매수가 되더라도 원하는 가격을 주장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정부에서 그 가격을 맞춰줄 수 있습니까?"

"원하시는 가격이 대충 어떻게 되십니까?"

"마음 같아서는 고등어 한 마리에 100만 원은 받고 싶네요. 사실 그래도 양식장 투자한 것 생각하면 마이너스입니다."

"그, 그건 어렵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이 기회에 농민 대비 어민의 세제불평등을 해소해 주세요."

"해수부에서도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기재부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모피아 놈들은 어떻게든 돈 뜯어 낼 궁리밖에 안 하는 놈들인데, 왜 설득을 하려고 하세요? 아니, 쌀은 식량 자원이고 생선은 식량 자원이 아닙니까?"

해수부 장관은 기분이 이상했다.

농민 소득세 면제로 가장 큰 수혜를 누리는 하수영이 저런 말을 하니까.

지금 그는 조 단위로 세제 혜택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이걸 내로남불이라고 하던가?'

"많이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참에 어민들도 10억 원까지는 면세해 주세요. 인삼, 과수원, 화원도 10억 원까지는 면세해 주는데, 그만큼이라도 맞춰달라는 겁니다."

"한번 정부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10년 넘게 어촌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농민은 100% 면세거나(식량 작물), 10억 원까지 비과세인데(인삼 과일등 비식량 작물), 어민들은 몇천만 원부터 세금을 내야 하니까.

똑같은 식량인데 왜 차별을 두느냐고 오랫동안 불만이 많았다.

"안홍식 회장님."

"네, 의원님."

하수영이 바라보자 수협 회장은 얼른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어민으로서 조합에 요구만 했지, 조합을 위해서 뭔가를 한 적은 없었지요?"

"아닙니다. 전국 양식장주들에게 수영사료를 저가에 제공해 주신 것만 해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안홍식 회장은 머리를 조아렸다.

"수협은행 제 계좌에 약소하나마 1조 원을 넣겠습니다."

"네? 1조 원이라고요?"

수협 회장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시중 은행 중에서 규모가 작고 열악하기로 유명한 수협은행.

1조 원의 예치금은 가뭄의 단비처럼 크다.

"네, 10년짜리 적금 계좌로 만들겠습니다."

"이걸 어떻게…… 감사합니다, 의원님."

"저 역시 한 명의 어업 종사자이자, 수산업 협동조합원입니다."

농협은행에 예치한 쌀 판 돈에 비하면 조촐하지만, 안홍식 회장은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리고 장관님."

"네, 의원님."

"지금은 구의원으로서 온 게 아니라 수협 조합원이자 양식장주로서 온 겁니다."

"아, 네. 조합원님…… 이라고 부를 까요, 그럼?"

"마음에 듭니다, 그 호칭."

"고, 고맙습니다."

여기서 고맙다고 말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수산업 소득도 농업 소득과 얼추 비슷하도록 개편 밀어붙이는 거요. 많이 바라지도 않으니 비식량 작물 재배처럼 딱 10억 원까지만 비과세로 밀어붙이죠."

"추진을 해보겠습니다. 의원…… 아니, 조합원님께서 강력히 주장하시면 정부에서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차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그런데 수영양식장은 어차피 소득세를 안 내지 않습니까? 만년 적자 중이니까요."

"맞습니다. 투자한 것에 비해서 너무 저렴하게 팔아서 남는 게 없죠. 참다랑어 통조림이 지금보다 백 배이상 팔리고, 가격도 50배 정도로 매기면 양식장 연 소득이 1억 정도나오겠군요."

"그럼 설령 세제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조합원님께는 아무런 상관없는 거 아닙니까?"

바로 그 순간, 차관은 자신의 프리덤폰과 연결된 무선이어폰에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주인님. 의원님께서 즐기시게 놔두십시오.

"뭐? 즐기시게 놔두…… 아, 죄송합니다."

"오, 프리덤폰을 쓰시는군요? 이리 주시죠. 제가 사인해 드리겠습니다."

"네?"

당황해서 바라보던 차관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깨달았다.

'맞다. 프리덤폰은 의원님 회사에서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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