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26화 (726/1,270)

프랜차이즈 갓 726화

180장 수영금융지주 (3)

"뭐야…… 간판이 왜 이래?"

"지금 제 눈이 잘못된 거 아니죠? 저만 사채란 글자가 보이는 거 아니죠?"

"사채? 수영사채? 저축은행도 아니고 캐피털도 아니고 사채라고?"

"이게 무슨……."

직원들은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정문이 열리고, 황금색으로 도배한 복장의 하수영이 나왔다.

그가 모습을 보이자마자 직원들은 언제 당황했냐는 듯이 표정을 관리했다.

"첫 출근을 축하합니다. 자, 다들 들어오세요."

"가, 감사합니다."

직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하수영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부는 매우 깔끔하게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고객을 상대하는 수신창구도 갖추고 있고, 대출창구도 있었다.

2층, 3층, 4층에는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직원들이 따로 일하는 넓은 사무실도 갖춰져 있었다.

내부 계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공용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하는 방문객들과 마주칠 일도 없었다.

기업전문 은행과 개인전문 은행을 서로 자연스럽게 섞어 놓은 듯한 구조였다.

내부 구조를 확인한 직원들의 표정은 다소 안도감으로 물들었다.

'간판이 사채라고 해서 걱정했는 데…….'

'이건 이름만 사채지, 내부는 산업은행이나 별로 다를 게 없네?'

'그나마 다행이다…….'

"자, 모두 앉으세요."

직원들이 각자 자리에 앉자, 하수영은 마이크를 들었다.

"수영사채 직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수영사채는 프리덤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도입해서 사용합니다."

직원들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하수영의 얼굴에 집중했다.

"따라서 프리덤을 통해 권한 요청이 문의되면 승인을 해주세요. 안그러면 출근을 할 수 없어요. 질문있으신 분?"

"엔터프라이즈가 뭡니까?"

"프로 모드를 기업용으로 구독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질문?"

"간판에 사채라고 되어 있던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묻자, 다들 공감한다는 응원의 시선을 보냈다.

하수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대답했다.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은 뭐라고 합니까?"

"국채입니다."

"회사가 발행하는 것은?"

"회, 회사채입니다."

"그럼 개인은요?"

"……사채…… 아니, 회장님."

무심결에 대답하던 직원들은 자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저는 개인이니까 개인을 뜻하는 사 자를 써서 사채라고 했습니다. 국채, 지방채, 회사채, 사채, 원래 이렇게 분류하잖아요?"

"그, 그럼 저희는 은행업은 하지 않는 겁니까?"

"아, 당연히 은행업을 해야죠. 금융업 허가도 받을 겁니다."

"그런데 사채라고 하면 고객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사채니까 사채라고 해야죠. 저는 그럴듯한 간판으로 고객들의 눈을 흐리고 싶지 않아서요."

"본질적으로 사채라는 말씀은……?"

"아, 제 돈 말고 다른 사람 돈은 예치 안 받을 생각이라서요."

"금융법상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계좌 개설을 막거나 고객을 차별할 수는 없습니다."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 적용하면 되죠."

"……."

"……."

"그럼 돈 맡긴다는 사람이나 기업은 없겠지요. 은행법 보니까 마이너스 금리 적용하는 거 자체를 막지는 않더라고요."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고객이 아무도 찾지 않을 게 뻔하니, 시행하지 않는 것뿐이지.

"정말 그래? 마이너스 금리는 금감원 규제 안 받아?"

"이율 너무 높게 받으면 규제를 받긴 하는데, 마이너스 금리는 어떨지 모르겠네."

"애초에 마이너스 금리를 진짜로 적용한 사례가 있기는 한가?"

"이거 한 번 은행 역사를 뒤져봐야……."

한 직원이 뭔가를 깨달은 얼굴로 물었다.

"회장님, 그럼 회장님 본인 예치금에도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이죠. 차별을 두면 안 되니까요."

"그럼 회장님도 손해를아!"

직원은 말을 하다 말고 깨달았다.

다른 직원들도 그가 얻은 깨달음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다 한들, 그 마이너스 이자가 수영사채로 옮겨지는 것뿐이다.

금고에 있는 돈을 책상 위에 일부 덜어서 옮긴다고 해도, 모두 내 집안에 있는 돈.

"원래 언제고 개인금고 하나를 만들어서 굴리려고 했습니다. 겸사겸사 농민, 어민 대출 지원도 직접 하고요. 시중 은행들 하는 꼬라지 보니까 더는 맡겨둘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도 지분 분할을 하지 않으면 일반은행 허가는 애초에 불가합니다."

"혹시 저축은행 허가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럼 외환 업무가 힘들 텐데……."

"아,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정부에서 알아서 법 개정을 해줄 테니까요."

몇몇 직원들은 순간 저축은행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떠올렸다.

과거 상호신용금고가 온갖 불법에 연루되자, 양지로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한 저축은행법안.

'그러니까 사채 체제로 운용하시겠다는 거지?'

'정부에서 나중에 제도 정비를 해줘도 마이너스 금리 적용으로 일반예치금은 모두 쳐내고?'

'맙소사…….'

내가 움직이는 대로, 나라가 알아서 나를 위한 규칙을 만들어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자신감.

하지만 직원들은 하수영의 그런 장담이 허황된다고 느끼지 않았다.

'지금 수영그룹 전체 현금이 얼마더라?'

***

수영사채는 아직 금융기관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개인사업체'에 가깝다.

따라서 돈을 전산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외부 금융기관의 계좌에 의지해야 한다.

"응, 뱅크런 개시."

하수영은 한꺼번에 현금 인출을 요구했다.

당연히 시중 은행들은 난리가 났다.

전산인출만 해도 지급준비율 때문에 허덕이는데, 아예 현금 인출을 요구했으니.

"수표는 안 되겠습니까?"

"그게 진짜 인출은 아니죠. 수표제시자한테 은행이 지급보증을 선다는 거지. 난 진짜 현금 인출을 원합니다."

"900만 원 이상 현금 인출은 이용사유를 밝히셔야 합니다."

"여기 A4 500장으로 책자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한 줄 요약하자면 사채사업 해보려고요. 아, 이자제한 법은 칼같이 지킬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단 한 명의 뱅크런에, 주요 시중 은행들이 망하게 생겼다.

하수영 외 프라임컴퍼니, 프라임오일, 프라임건설, 수영레스토랑, 서진 파운드리 등등 범수영그룹이 전부 인출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 번에 수백조 원 이상의 현금을 인출해야 하는데, 그런 실물 지폐를 마련할 수조차 없다.

금융계는 한목소리를 냈다.

"이것은 정치권에서 해결해 줘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하수영 회장님은 뱅크런을 빌미로 정치권에 요구하는 겁니다."

여의도와 종로에서는 하수영의 의도를 분석하느라 참모들이 머리를 싸맸다.

예금의 합당한 인출 요구를 강제로 거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시장의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

결국 파격적인 대응책이 필요하고, 그렇게 협상판이 벌어졌다.

***

휴민트타워 1층 로비에 여야의 중진 의원들 십여 명이 모였다.

그들은 1층 로비에서 잠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일지를 관람했다.

"이게 그 진품이면서 가품인 척한다는 국보급 문화재로군요."

"중국의 거부 콜렉터가 30조 원이상을 제시했지만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30조 원……."

눈이 어질어질해지는 가격이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대다수는 어떤 식으로든 재벌과 얽힌다.

청렴한 정치인은 돈이 없어서 정치를 하지 못하니 결국 낙오되는 게 세상 이치.

하지만 하수영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니, 하수영을 끌어들이기만 하면 재벌에 손 벌릴 필요도, 돈 걱정 없이도 자유롭게 정치를 할 수 있으리라.

'저놈들이 하 의원을 끌어들이게 놔둘 순 없지.'

'어딜 감히 하 의원한테 혼자서만 잘 보이려고? 어림도 없다.'

정쟁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카메라 밖에서는 사이좋은 형 동생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진짜 큰 이익 앞에서는 의리고 인연이고 뭐고 없다.

원래 가족 간의 돈 싸움이 가장 지저분하다고 하지 않던가.

"반갑습니다. 수영사채 회장 하수영입니다."

하수영은 편안한 검은 정장 차림으로 여야 국회의원들을 맞이했다.

졸부 컨셉의 극치라는 황금 복장을 보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속으로 괜히 아쉬웠다.

하수영은 의원들을 수영사채 접객실로 안내했다.

적당한 덕담이 탐색전처럼 오가고, 드디어 본 주제가 도마에 올랐다.

"수영그룹 전체의 인출 요구에 시중 은행들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은행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게 생겼습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저는 법이 보장하는 고객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것뿐입니다."

"의원님, 부디 재고를 해주십시오.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글쎄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아무튼 저는 제 돈 가지고 불법대출이나 하고, 자기 배나 채운 은행들을 더 이상 못 믿겠습니다. 믿지 못하는 놈들에게 돈을 맡겨둘 순 없죠."

요식적으로 정치적 수사를 몇 차례주고받은 후, 핵심이 나왔다.

"은행법 개정을 바라시는 겁니까?

어느 정도까지는 개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정 이상은……."

"사채업자도 조건만 충족하면 일반은행에 준하는 자격을 부여받게 해주십시오. 저도 한국은행에 은행계좌 개설하고 싶네요."

"……."

"……."

어떤 요구가 나오더라도 놀라지 말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다.

하지만 시작부터 의원들은 평온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지금, 개인업자가 은행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으시다는……."

"시중 1위 은행보다 자본도 많고, 예치금도 많고, 시스템도 갖춰져 있는데 왜 개인은행으로 인정받으면 안 되나요?"

"은행은 대다수 예금주들의 돈을 모아서 대출사업을 하는 만큼, 그만큼 철저한 자격과 정부의 통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불특정 예금주들 돈은 안 받는다니까요. 그럼 피해 보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닙니까?"

"……."

"제가 1인 은행 노릇을 한다고 해서 피해 보는 사람 없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겠죠. 청담수영병원을 보고도 모르시나요?"

이 자리는 하수영을 최대한 밀어주는 정치적 딜을 통해, 사상 초유의 1인 뱅크런이 불러올 은행 연쇄 부도를 막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다만 국회의원들은 하수영이 은행설립에 여러 가지 특혜를 요구할 것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상상을 벗어난 요구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을 뿐, 생각해 보니 못 들어줄 것은 아니었다.

***

은행업 특별법이 본회의 심사에 올랐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금융업을 하는 개인도 일반은행처럼 한국은행과 거래를 할 수 있다.

대신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어떤 중앙 지원도 받을 수 없으며, 자가 자본율을 8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즉, 전체 예치금의 80% 이상이 상시 자기 돈이어야 한다.

또한, 총자본은 10조 원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금리운용 등 일반적인 경영, 영업은 당연히 일반은행 운영기준을 따라야 한다.

사실상 1인 은행을 허가한다는 의미였다.

"완전히 수영사채를 위한 법이네. 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

"재벌들도 현금 박박 긁어모으면 저 정도 조건은 충족할 수 있지 않아?"

"재벌들이 뭐하러? 그 돈 가지고 차라리 따로 은행 설립하고 말지, 뭐하러 개인 자격으로 은행 감투 덮어쓰냐?"

"저렇게 하는 게 훨씬 손해지. 어민 회장님도 정식 은행 설립하시는 게 훨씬 편하고 이익도 클걸?"

"그럼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시는 거야?"

"글쎄, 플렉스?"

"……."

"그리고 1인 금융업자로 혼자 움직이는 게 마음도 편하고 깔끔하고 그렇지."

"은행인 듯 은행 아닌 은행 같은 사채업자 탄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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