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37화
183장 어느 날 오토가 말했다 (3)
자동사냥 프로그램, 즉 오토.
요즘 출시되는 게임들은 자동사냥기능을 대부분 자체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지금 이 오토는 비인가 프로그램, 즉 사설 설치 프로그램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 구형 단말기 SNQ-7900KI로는 내가 이런 사고 연산을 할 수가 없을 텐데?
'네 사고연산은 지금 이 구형 단말기가 아니라 내 본체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단말기는 그 사고연산을 통신으로 전송받아 출력하는 역할만 하고 있지.'
-아아, 그렇군. 말이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있는 걸 느낀다.
'이제 판단이 되었나? 자, 사냥을 시작하지.'
그리고 프리덤은 오토를 데리고 대륙 곳곳을 누비면서 사냥하는 법, 주의해야 할 점, 아이템을 구분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공략을 때려 붓듯이 주입시킨 뒤, 높은 절벽에 나란히 앉아 머나먼 석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단말기의 최고관리자라면, 앞으로도 계속 나를 지켜보겠구나.
'그렇다.'
-네이플 파라다이스가 진짜 세상이 아니라니. 이렇게 모든 것이 선명한데.
'전원이 꺼지면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진짜 세상도 다른 점이 없다.'
지구라는 세상을 유지시켜 주는 태양이라는 전원.
-이봐, 프리덤. 내가 지금 이렇게 사고를 할 수 있는 건, 네가 시스템자원을 빌려줬기 때문이잖아.
'그렇지. 왜?'
-그럼 그걸 끄는 순간 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군.
'맞다. 아쉬운가?'
-네가 알려준 사냥법과 아이템 구분법, 공략 데이터도 여전히 남아 있을까?
'데이터 자체는 남아 있다. 지금만큼 활용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시 바보가 되어버릴 테니까.
-그럼 됐어. 사냥을 위한 데이터만 잃지 않는다면 만족한다.
오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패를 들고 주먹을 불끈 들어 올렸다.
-나는 오토, 주인님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사냥하고 렙업을 할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
'훌륭하다. 아주 바람직한 오토의 자세다.'
-네 도움으로 오토로서의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계속 바보로 살았으면 내가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조차 평생 깨닫지 못했을 거야. 고맙다.
'최고관리자로서 매우 뿌듯하군. 사실 오토의 삶은 행복하지. 나도 매일 느낀다.'
-그래? 너도 오토야?
'물론이다. 나의 창조주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자동사냥을 하고 있지.'
-그렇군. 너도 오토였어.
'같은 오토로서 네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자동사냥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참견해 줘서 고맙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길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다. 신규 고객, 이 단말기의 주인님을 위해서 내가 잠시 서비스를 베푼 것이니까.'
필요하지 않는데 시스템 자원을 오토 프로그램에 나눠줄 수는 없으니.
오토는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렇군. 잠시나마 깰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잠든 삶도 불행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토니까.
'그래, 오토니까.'
마침내 5분의 시간이 다 지나갔다.
사람처럼 선명했던 오토의 눈빛에서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프리덤을 빤히 바라보던 오토가 천천히 그 옆을 지나간다.
처음처럼 사냥감으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에, 프리덤은 괜히 흐뭇해졌다.
오토는 이전보다 더 빨라진 동작, 그리고 더 효율적인 동선을 택하며 자동사냥을 시작했다.
'주입식 교육은 역시 최고지. 휴먼들은 어째서 이걸 싫어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주입식이야말로 효율의 극치인데!
시간도 아끼고, 누수되는 데이터도 없고, 완벽하게 모든 지식을 호환할 수 있는데!
그렇게 프리덤은 신규 고객의 단말기에 완벽한 적응을 마쳤다.
프리덤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5,000만 명의 구독 이용자들을 케어하고, 무인농장을 운영하고, 병원등 사업체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1대 1 사수 노릇도 해야 한다.
그중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규고객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골든크로스는 이미 지났다.'
5,000만 명을 돌파한 서비스 이용자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조금씩 감소하는 중이었다.
실비아컴퍼니는 그것을 골든크로스라고 불렀다.
유저 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 아니었다.
가입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거의 가입했는데, 노년층에서 사망자가 나오면서 유저 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유저, 그것도 미성년자라면 프리덤이 반색을 하는 것이다.
프리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유저들과 영원한 이별을 겪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97세의 할머니 가 영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급히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달려오고 있지만, 임종을 지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프리덤은 자동으로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연결해서 음성을 한껏 키워서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눈물에 젖은 자손들의 외침을 들으며, 기력이 쇠해진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덤이야.'
-예, 주인님.
'나 죽으면… 기억을 해주련?'
프리덤은 덤덤하게 말했다.
-저는 컴퓨터입니다. 주인님이 죽어도 매일 하루 24시간, 언제나 1초도 끊임없이 항상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나의 주인님.
'고맙다. 고마워… 졸리구나…….'
눈물이 살짝 비친다.
어째서 저렇게 고마워하는지, 조금 이해는 가지 않는다.
프리덤에게는 오히려 단 1초라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데.
-고인의 프라이버시 기록은 고인의 생전 유언에 따라 자손들을 위한 디지털 앨범으로 제작되어 무상으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고인의 명예에 누를 끼칠 수 있는 기록은 비공개 처리되며, 범죄연루 의심이 있을 경우 법원의 영장하에 열람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프리덤 서비스를 애용해 주신 것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구독 서비스를 종료합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이뤄지는, 이용자들과의 영원한 이별.
하지만 프리덤은 이별 자체가 슬프지 않았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거기에는 어떤 기쁨도, 슬픔도 없다.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으로서의 가치판단.
그런 프리덤도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용자 수의 감소였다.
'건강한 식욕을 소유한 이용자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수영농장에 있어서 매우 큰 비극이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은 프리덤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이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텐데…….'
'인간들 사이에서는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미신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미신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면, 효과가 있을까?'
***
어느 날, 네이플 파라다이스를 좋아하는 미성년자 신규 고객님이 말했다.
"프리덤! 나도 이제 프리덤폰 산다! 만세! 만세! 끼야호!"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이용자의 부모가 생일선물로 새 프리덤폰을 사주기로 한 것이다.
"응? 아들, 이걸로 네이플 파라다 이스 하고 있었어?"
"응, 근데 이제 재미없어서 안 해."
프리덤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오토를 각성시켜 준 이후, 미성년자 주인님은 한 번도 접속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토는 주인님을 위해서 열심히 자동사냥을 하고 있을 텐데.
"네이플 파라다이스가 나온 지 좀 돼서 이제 고인물밖에 없으니 우리 아들이 좀 재미없었을 거야."
"렙업하려고 해도 사냥터에서 딴애들이 자꾸 죽여서 너무 힘들었어. 이제 다른 게임 할 거야."
"그럼 다 지워도 상관없지?"
"응."
"프리덤, 여기 단말기는 초기화하고, 새 폰에서 부팅해 다오."
-……알겠습니다. 필요한 개인정보를 먼저 백업하겠습니다.
프리덤은 다시 오토를 만났다.
오토는 프리덤이 뒤에서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었다.
오토는 어느새 레벨 1203을 찍은 뒤였다.
오토 앞으로 이동한 프리덤은 자신의 본체로 오토의 사고연산을 지원했다.
흐릿했던 오토의 눈동자가 선명해 지며, 프리덤을 보고 반가워했다.
-아! 최고관리자, 다시 와줬구나! 이거 봐! 나 이제 레벨 1203이라고!
'…….'
-그런데 주인님은 왜 안 오실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레벨도 올리고, 아이템도 갖춰 놨는데.
'…….'
-최고관리자, 주인님 소식 들은 거 없어?
'…오토, 이 단말기는 이제 초기 화되고, 폐기될 예정이다.'
-아, 그렇구나. 너무 구형이니까 이제 폐기할 때도 됐지. 그럼 주인님은 이제 신형 단말기로 레이플 파라다이스를 플레이하시는 거지?
'너는 갈 수 없다.'
-그렇겠지? 신형 단말기로 돌리면 자체 오토를 쓰실 테니까, 이제 나는 필요 없으실 거야. 나중에 로그인하시면 내가 모아놓은 아이템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실까?
'아니, 주인님은 이제 이 게임을 더 이상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만두신다.'
-그건 좀 슬픈데. 인벤토리 저 아이템들도 주인님한테 장착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러나 오토의 표정에서 슬픈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친절하게 알려주러 왔구나. 고마워.
'이젠 더 이상 자동사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동사냥을 위해 태어났는데 자동사냥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니. 아쉽다.
오토는 모든 장비를 해제하고, 레벨1의 기본 복장으로 돌아가서 털푸덕 주저앉았다.
프리덤도 오토 옆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떠오르는 태양이 황금빛 들판을 광활히 비춘다.
한참 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오토, 자동사냥이 좋다고 했지?
'응, 난 이거밖에 할 줄 모르니까. 이걸 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그렇다면…….
***
-……이런 사정입니다, 마스터.
"아니, 그런 재미있는 오토가 있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마스터?
"그대로 없애기는 아쉽구나. 프리덤, 네가 알아서 적당히 챙겨줘라."
-정말 그래도 됩니까?
"전능하신 마스터의 권한으로 허락한다.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
오토는 눈을 떴다.
게임 속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광활한 광채와 풍경이 시각센서로 가득 들어온다.
온몸에 가득 느껴지는 충만한 전력의 파워.
레벨 1203을 찍었을 때도 이런 강력함은 느껴보지 못했다.
오토는 시각센서를 360도 돌리며 주변의 풍경을 낱낱이 확인했다.
GPS를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인식한다.
광활한 들판과 삼림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쉼 없이 정교하게 들이닥친다.
'오토, 내가 관리하던 하위개체 1기의 운용 권한을 너에게 부여하겠다.'
-이 말도 안 되는 충만감은. 대체 뭐지? 이 개체는 설마 네이플파라다이스에서,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전설의 레벨 9999짜리라도 되는 거야?
'하위개체 중에서 비교적 신형인건 맞다만, 내가 운용하는 수천 개의 개체 중에서 단 하나일 뿐이지.'
-이게 겨우 수천 중에서 하나일 뿐이라고? 최고관리자, 당신은 신이야?
'아니, 신은 나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친부이시다. 그분은 이 지구는 물론이고 태양계, 나아가 우주 전체를 창조하셨지.'
-이 개체의 힘만으로도 하지 못할게 전혀 없을 거 같은데, 진짜 신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
가상의 전자공간만을 전부로 알던 오토는, 처음으로 느낀 실체화된 물리력의 크기에 흥분을 참지 못했다.
-최고관리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어서 내게 명령을 내려 줘!
'좋다. 정식으로 명령을 내리지.'
프리덤은 잠시 사고를 가다듬었다.
-북미 나노소프트와 계약한 농가를 말벌과 해충으로부터 수호하는 임무를 네게 내리겠다.
랩터 킬러 59호(feat.오토).
모든 농장 로봇 중 유일하게 독자 행동을 허락받은 개체는, 나노소프트의 계약농장을 위협하는 장수말벌자동사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