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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744화 (744/1,270)

프랜차이즈 갓 744화

185장 농사는 쉽지 않다 (2)

-로한 님, 이상이 연구원으로 섭외해야 할 인력 명단입니다.

"확인했다."

어둡고 슬림한 핏의 정장을 입은 로한은 가벼운 걸음으로 캠퍼스를 거닐었다.

"교관님을 위한 소중한 노예들, 내가 훌륭한 정예요원으로 키워줘야겠군."

-로한 님만 믿습니다.

"다들 표정이 너무 어둡군. 나약하다, 나약해."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

마주치는 학생들마다 로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비율과 훤칠한 키, 그리고 잘생긴 얼굴 때문도 있지만.

그가 등 뒤에 매고 있는 2미터짜리 대구경 라이플이 시선을 빼앗은 것이다.

"이봐요! 무기를 들고 캠퍼스에 들어오는 것은 나, 캠퍼스의 수호신 박수호 경비가 용납을 못 하……응? 어디서 봤는데? 아! 콜롬비아 마약왕 영화에 나온 그 배우 아니오?"

끄덕.

"아, 그럼 영화 소품이군요! 근처에서 영화 촬영이 있었나 봅니다. 허허, 이렇게 된 거 사인 좀. 영화정말 재밌게 봤수다."

휘리릭.

"아, 그런데 이쪽 길은 웬만하면 산책하지 않는 걸 추천하오. 공대 아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인데, 걔들은 심장이 약해서 우리 배우 양반이 소품 총 들고 있는 거 보면 자기들 잡으러 온 줄 알고 놀라서 경기를 일으킬 수도……."

저벅저벅.

로한은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쪽 눈에 찬 투명한 고글에, 주변 목표물들에 대한 정보와 수치가 끊임없이 표시되고 있었다.

[원자력국제대학원 소속, 석사 취득]

[원자력국제대학원 소속, 박사 취득]

[원자력국제대학원 소속, 박사 수료]

"놀랍다. 교관님을 위해 쓸 만한 노예들이 가득 있군."

-그저 줍고 줍고 또 줍기만 하시면 됩니다, 로한 님.

"이들이 정말 약간의 추가 수면과 월 몇백만 주면 도망은커녕 스스로 발목에 사슬을 채우고 열심히 일해줄 노예 후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자, 이제 곧 목적지입니다.

천강명 교수 연구실.

노크 따위 생략하고 벌컥 들어가려 했으나, 문명인의 지성을 보이라는 권유에 로한은 순순히 따랐다.

대학원생들과 뭔가를 이야기하던 천강명 교수가 의아한 눈으로 로한을 바라봤다.

"누구십니까?"

"투자자요."

로한이 불쑥 내뱉듯이 말했고, 교수 및 학원생들의 안색이 곧바로 달라졌다.

투자자! 그 한마디에 그들의 얼굴에 일제히 생기가 돈 것이다.

"아이고, 이렇게 젊고 화사하신 분이 투자자시라니…… 어서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준혁아! 뭐 하냐! 가서 냉큼 과일하고 커피 내오지 않고!"

"예! 옛!"

조촐하지만 후다닥 접대상이 갖춰졌고, 로한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내 밑에서 장기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인력이 필요하오."

반하대의 말투,

하지만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들 누구도 그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로한이 가진 초월적인 외모와 분위기가 진한 카리스마를 듬뿍 느끼게 해준 덕분이다.

"혹시 원자력 발전소 투자를 생각하고 계신 거라면, 요즘 국제적으로 탈원전 추세가……."

"핵융합에 관해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소. 그걸 다듬고 완성시켜주시오. 연구비 투자는 무제한, 대우와 보수는 지금의 3배 수준으로 해주겠소."

"파격적인 대우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만…… 대단히 실례지만 혹시 어디에서 오셨는지……."

로한이 명함 몇 장을 쥐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명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들 모두의 앞에 가지런하게 놓였다.

타짜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신기에 잠시 멍해 있던 천강명 교수는 얼른 명함 내용을 확인했다.

[수영조명 CEO 에릭 로한]

"에릭 로한……? 헛! 혹시 맨 프롬콜롬비아에 나온 그 마피아 경호원?"

"핫! 어쩐지! 어디서 봤다 싶더라니!"

"그런데 수영그룹 CEO라고?"

"뭐냐, 그렇게 유명한 분이신 거냐?"

"맨 프롬 콜롬비아 영화 안 보셨어요? 수영그룹에서 투자해서 만든 그 영화요! 거기 하수영 회장님도 직접 출연하시고 그랬는데!"

"그, 그랬어?"

"네! 이분도 작중에서 하수영 회장님 경호원으로 출연하셨었어요!"

로한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덧붙였다.

"내 상사의 취미 생활에 함께한 거지. 아무튼 여러분 모두의 시간을 구매하고 싶소. 좋은 연락 바랍니다."

그리고 로한은 주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지런히 노예들을 수집하려면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법.

그는 곧바로 다른 노예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천강명 교수는 그가 나가자마자 프리덤한테 얼른 물어봤다.

"프리덤, 수영조명은 뭐 하는 회사냐?"

-이번에 수영그룹에서 신설한 유한법인입니다. 핵융합 연구를 위한 기관으로, 1차 자본금은 1조 원입니다.

"1차라고 했지? 분명히?"

-투자 증액은 무제한입니다. 에릭로한 CEO, 그리고 하수영 회장님이 큰 관심과 비전을 품고 밀어붙이는 사업입니다. 뭐 하십니까? 지금가서 당장 합류하겠다고 하십시오!

"저, 저! 프리덤이 이렇게 엉덩이 때릴 기세로 재촉하는 것은 처음 보는 거 같아요!"

"나도 그렇다."

"교수님, 이거 우리도 합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연구 분야는 다르지만, 서진파운드리의 위상을 항상 부러워했다.

그런데 하늘에서 직접 동아줄이 내려온 상황.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

지방은 로한에게 맡겨두고, 하수영은 모교인 한국대를 직접 방문했다.

하수영이 캠핑카가 공대 캠퍼스에 출몰하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하수영 학우님 차다."

"하수영 학우님이 우리 학부에 오셨어!"

"아니야! 우리 학부에 오신 거야!"

하수영이 농대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캠핑카가 나타나자, 소식을 들은 교수들이 체면을 차리지 않고 뛰쳐나왔다.

"하수영 학생, 우리 과에는 무슨 일로……."

"양자역학 정운원 교수님이시군요. 교수님의 시간을 구매하겠습니다."

"허, 헛!"

"거기 원자핵공학 김수종 교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말씀이십니까?"

"박이중 교수님, 고개 드세요. 이제 교수님, 폐기 프로젝트 책임자 아닙니다."

하수영은 졸부가 명품 매장을 거닐면서 눈짓으로 구매하듯이, 말 한마디로 그 자리에서 교수와 대학원생들을 구매했다.

그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한바탕공대를 휩쓴 뒤, 다시 캠핑카를 타고 사라졌다.

멍한 얼굴로 남은 그들은 일제히 폰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 수영그룹에서 온 연락입니다. 수영조명과 계약해서 핵융합연구에 헌신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만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다.

***

수영조명은 국내 6개 대학에서 핵융합에 관련된 석사급 이상의 인력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각 대학 측에서도 기쁜 마음으로 교수와 석박사들을 내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탈원전 외침이 추세였고, 국내 원자력 연구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던 판.

그런 와중에 수영조명의 등장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나중에 혹 사업이 잘못돼서 학교로 돌아오더라도 자네 자리는 남겨놓을 테니 안심하고 다녀오게."

"하지만 총장님, 요즘 누가 그런 약속을 믿겠습니까? 자리 보장해 줄테니 기업에 취직하러 떠나라니요."

"그래서, 안 갈 건가?"

"그건 아니죠. 당연히 가야죠. 다만 총장님의 약속에 담긴 모순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이래서 이과들이란! 기름 냄새 나니까 얼른 썩 사라지게."

***

침울해져 있던 국내 원자력계는 수영조명의 등장을 반겼다.

그들은 당연히 원자력 발전 연구를 하는 회사라고 생각한 것이다.

"수영그룹에서 아무래도 전력 조달이 슬슬 버거운 모양이야."

"그래서 자체적인 공급망을 미리미리 확보해 두려고 하는 거겠지."

"하수영 회장 스케일이면 자기만의원자력 발전소를 따로 짓지 않을까?"

"그분 스케일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암."

원자력 민간발전소.

한국에는 아직까지 등장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국내 모든 원전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독점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하수영 의원이라면, 어쩌면?'

농민, 어민들에 대한 지지도 굉장한 인물이다.

원전 설립 과정에서도 주민들의 동의를 쉽게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핵융합 투자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 김칫국부터 마시며 품은 환상이었다.

***

프라임컴퍼니 명의로 매입한 르주블랑 호텔.

오늘은 스카웃된 교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하수영이 직접 격려사를 하기로 했다.

-편안한 옷으로 입어야 합니다. 절대 정장 따위는 안 됩니다! 최대한 편하게 입으세요!

-남들 다 청바지에 박스티 입고 있는데 혼자 정장 입고 있으면 얼마나 망신인지 아시죠?

프리덤의 닦달 덕분에, 석박사 및 교수들은 전원 편안한 옷을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수영이 나타났다.

이제는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전신이 황금색으로 번쩍거리는 패션에, 석박사들은 얼이 빠져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영조명 소유주 하수영입니다. 반갑습니다."

단상에 선 하수영이 덤덤히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수영농장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농장이 되기를 원합니다."

날카로운 눈빛이, 쥐 죽은 듯한 고요함을 훑었다.

"우리 농장의 생산력이 전 세계의 식량공급을 풍족히 독점할 만하고, 우리의 공급력이 남의 경쟁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한없이 갖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무한히 광합성을 시켜주는 기술입니다."

"……?"

"……?"

"제가 가장 신뢰하는 에릭 로한은 여러분 같은 인재와 함께한다면, 늦어도 2년 안에 성과를 볼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로한을 향했다.

로한은 무신경한 표정으로 흘끗 돌아보며 대답했다.

"이런 훌륭한 인재들이 한가득 있는데, 2년도 깁니다."

"좋습니다. 여러분, 상온 핵융합 기술 완성에 부디 시간을 갈아 넣어주십시오. 회사는 반드시 보답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한꺼번에 술렁거렸다.

"뭐야? 상온이라고 했어, 지금?"

"서, 설마. 고온과 상온을 착각해서 말씀하신 거겠지."

"아니, 고온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인데 무슨."

"그냥 토카막 핵융합 연구 회사 아니었어? 난 그렇게 알고 넘어온 건데?"

"무, 무섭습니다. 교수님,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라네, 김 박사."

"교수님? 설마 저희 모두에게 상온 핵융합 연구라는 걸 숨기셨던 겁니까!"

그랜드볼룸은 패닉에 빠졌다.

***

한수원 본부장 원충범.

그는 최근 출범한 수영조명에 남달리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 수영조명이 핵융합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네, 궁극적으로는 상온 핵융합까지 완성하자, 뭐 그런 취지로 하수영 의원이 격려사를 했습니다."

"농사만 짓던 친구라 핵 발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러니 대학에서 이론 연구, 시뮬레이션에만 몰두하던 먹물들만 모은 거지요. 지금 수영조명에 실전파는 한 명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다른 핵융합 연구소에서 인력을 스카우트한 것도 아니고 …… 맨바닥부터 헤딩하면서 지옥을 경험하겠다는 건가?"

"금방 제풀에 나가떨어져서 우리 한수원에도 도움을 요청할 겁니다. 어차피 핵분열 발전이는 핵융합 발전이든, 우리 한수원과 한전과는 조율을 해야 하니까요."

부하 직원은 입에 꿀을 바른 듯이 아부했고, 원충범은 혼자만의 상상에 잠시 빠졌다.

'핵융합 시설도 돈이 많이 들 테니까…… 나중에 내가 수영조명으로 영전해서 중간 조율을 잘해줘야겠군.'

그는 머지않아 수영조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거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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