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87화
195장 이것은 빨대라는 것이다 (3)
미국은 열심히 잠수함 사건을 중재하고 있었다.
한국 외교부에서도 하수영의 러시아행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덕분에 국민들의 눈을 동해에서 러시아로 돌릴 수 있었다.
미 7함대는 잠수함 인양을 준비하며 짤막한 발표를 했다.
[해당 잠수함은 미 7함대 소속.]
[북한의 해상도발이라는 시나리오에 대비한 훈련 중이었음.]
[해상자위대 소속이라는 것은 명백한 오보.]
한국 해군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일.
하지만 청와대는 조속한 마무리를 원했다.
지연되는 게 피곤하기도 했고, 어차피 미국에 빚도 하나 지워두었다.
일본에 핵잠수함을 제공한 것 때문에, 미국은 어떤 식으로는 위로의 표시를 해야 할 테니까.
조용한 때가 되면, 미국은 적당한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더 세게 밀어붙일필요성이 크게 없는 셈.
하지만 일본에 분개한 일부 국민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 잠수함은 일본 잠수함이 분명하다! 미국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혀야 할 것이다!"
"일본 잠수함을 체포해서 항구로 끌고 와 조사를 해야 한다! 분명히 내부에는 미국인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 하수영 의원을 일부러 러시아로 보낸 것이 틀림없다! 이를 해명하라!"
그리고 하수영이 러시아에 간 지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큰 게 터져 나왔다.
[속보! 러시아와 한국 잇는 직통가스관, 송유관이 놓인다!]
[해상 파이프로 연결되는 러시아와 한국!]
[이제 천연가스를 안방에서 파이프로 편안히 받아볼 수 있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천연가스! 원유!]
당연히 한국은 발칵 뒤집혔다.
"미친, 해상 파이프라고?"
"아, 그렇지. 바다 위로 차도 다니고 기차도 다니는데, 원유와 천연가스가 다니지 못할 것은 없잖아. 안그래?"
"이런 생각을 여태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놀랍다."
"그래도 인터넷 같은 데서 누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망상 정도 풀지는 않았을까?"
"이야, 하수영 농민 회장님. 딱 이 절묘한 타이밍에 이런 대박 카드를 꺼내시네."
"잠수함 친구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고 좋아했을 텐데 안됐네."
"며칠밖에 안 됐지만 그 좁은 잠수함에 기약 없이 갇혀 있으니 아마 미칠 듯한 기분일 걸."
"근데 원래도 몇 개월씩 갇혀서 지내지 않아?"
"추진력을 완전히 잃은 잠수함에 갇힌 것과는 기분이 다르지. 자력으로는 절대 육지로 돌아갈 수가 없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
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한껏 미소를 띤 채로 세상을 향해 선언했다.
-앞으로 한국은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천연가스와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상 파이프 한국 사업 주체는 당연히 수영그룹이 됩니다.
국가 간 가스, 원유 파이프를 한 개인이 하루아침에 따냈다.
그것도 정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하지만 정부에서는 싫은 소리를 할 입장이 아니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개인이 1조짜리 복권에 당첨된 일에 비유할 수 있었다.
***
워싱턴도 송유관, 가스관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대 한국 천연가스 수출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양측의 협의가 궁금하군요."
"정보부 분석으로는 러시아가 광활한 농지와 목장을 약속했다던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해상 파이프 카드를 이번에 생각해낸 것은 아닐 겁니다. 미리 가슴에 품어두고 있다가, 이번 잠수함사태로 인해서 꺼낸 게 틀림없어요."
"우리 미국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게 틀림없습니다."
"역시 일본 잠수함이 독도 해상 플래폼에서 활개 치고 다니는 것에 대한 항의겠지?"
"그게 하필이면 우리 미국이 일본에 몰래 제공한 핵잠수함이었으니……."
"역시 직접 만나서 의중을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미국은 하수영이 하루빨리 귀국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프로펠러를 잃은 일본 잠수함은 한국 해군의 포위에 갇혀 있었다.
해류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한국 함정과 로프로 고정된 상태로.
***
부틴 대통령은 하수영을 위해서 전용기를 내주었다.
귀국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공항게이트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진을 쳤다.
하지만 그들은 하수영의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정부에서 언론의 눈을 피해 그의 이동을 도운 덕분이다.
"어? 저기 퍼포먼스 캠핑카다!"
"저건 하수영 의원 차야! 틀림없어! 빨리 쫓아가!"
"젠장, 대체 어디로 게이트를 빠져나온 거지?"
"서둘러! 놓치면 안 돼!"
정작 하수영은 검은 벤츠를 타고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조수석에는 정부 인물을 태운 채로,
"역시 벤츠가 사람들 따돌리기에는 참 좋아요. 해변의 모래알, 산속의 소나무 같은 차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입니다만……."
"여태 밥도 안 먹고 뭐하셨어요? 좋습니다. 제가 한 끼 대접해 드리죠."
산업통상자원부 전창욱 차관은 청담동 저택에 들어서자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재벌 회장의 저택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개인 저택…….'
청담동 한복판에 이런 대저택이라니.
담장으로 격리된 정원 안의 세상에서 바라보는 고층 빌딩들이 뭔가 낮설다.
"정원 안에 또 한옥이 있는 겁니까?"
"아아, 예전에 아버지가 만드신 겁니다. 환자 요양하기에는 딱 좋아요. 한옥이 몸에 좋은 기운을 항상 뿜어 내주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한옥에 가까이 다가가니 뭔가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자, 드시죠."
하수영은 어느새 만찬에 버금가는 요리들을 잔뜩 내왔다.
이걸 과연 먹어도 될지, 차관은 송구한 마음으로 수저를 들었다.
"정부에서도 러시아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참, 일본 잠수함 그것은 어떻게 됐나요?"
"……미국에서는 7함대 소속 잠수함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만……."
"그렇게 믿어줄까요? 그럼 뭐 주실래요?"
전창욱 차관은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수산물 생산에 식량재배작물에 준하는 소득세 조치를 하는 법률을 준비 중입니다."
"앞으로는 쌀처럼 소득세를 과세하지 않겠다?"
"어업이 아닌, 양식업에 한해서입니다."
식량작물은 한계 없이 소득세 면제, 비식량작물(예를 들자면 땅콩)은 소득 50억까지는 세금을 면해준다.
그로 인해 어업, 양식업 종사자는 똑같은 먹거리인데 차별을 받는다며 변화를 요구해 왔다.
"기어이 통과시키는 건가요? 반발은 괜찮겠어요? 우리도 소득세 내기 싫다고 다른 업종에서 난리를 칠 텐데?"
"식량주권은 국가의 존속과 밀접하게 연결된 안보 아이템입니다. 아주 특수하고 중요하죠.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식량자급률에 불리한 나라에 있어서는.
괜히 지금까지 식량작물에 제한 없이 소득세를 면제해 준 것이 아니다.
"마침 명분도 좋습니다. 전 세계가 생선 파동으로 수산물 섭취가 어려워졌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은 100% 곡물사료 양식장 체제가 성공함으로써, 어업 대란과 무관하게 양식어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잠수함에 관해서는 한 번만 모른 체해 주십시오."
"미국한테서는 뭐 받기로 했어요?"
"그건……."
"말 안 해도 괜찮아요. 얼굴 보니까 뭐 좋은 거 받기로 한 모양이네. 호구처럼 아무것도 못 챙기고 물러나는 것보다는 낫죠."
"지지를 해주시는 겁니까?"
"눈을 감아주겠다는 겁니다."
그제야 차관은 안도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본론은 이제부터다.
자신은 '산자부'차관이 아니던가.
"해상 송유관, 가스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됩니까?"
"그러게요. 해상 파이프를 어디로 들여오면 좋을까요? 고성군? 근데 거기는 너무 휴전선하고 가까운 거 같은데."
"아무리 북한이라도 미치지 않고서야 러시아 파이프를 감히 건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예전부터 미친 거 아니었나요?"
"……."
"하긴, 미친 상태가 오래됐으면 그게 또 새로운 정상 상태로 자리 잡을 수도 있겠네."
"정부의 구상은 이렇습니다. 파이프가 고성군을 통해 경기도 양평 인근까지 들어와서 남쪽으로 꺾이며 ㅅ자로 갈라집니다. 각각 전남, 경상도 방향으로 진출하는 거죠."
"꽤 대공사가 되겠네요."
"그래서…… 통과 수수료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 묻고 싶습니다."
러시아는 통과하는 가스의 양, 파이프 길이에 따라 일정한 통과 수수료를 지불한다.
수수료는 당연히 상품에 추가된다.
하수영이 통과 수수료를 얼마로 챙기느냐에 따라서, 한국의 매입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글쎄요, 음. 매출의 한 1% 정도로 할까요?"
"……그, 그것은!"
전창욱 차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1%라니!
그렇게 수수료를 붙였다가는 소비자(이 경우는 정부나 기업)의 부담이 너무 커지는데!
"그래도 배에 실어서 오는 것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요? 겨우 1%인데?"
겨우 1%라고 하지만, 수십조 원단위의 거래에서 1%면 수천억 원이다.
러시아는 상관없다.
수수료를 얼마를 부르든 간에, 판매가에 얹으면 그만이니까.
"사정을 봐주십시오."
"수산물 소득세법 통과되는 거 보고 천천히 결정하지요."
"먼저 선물부터 확실하게 배송 완료를 하라는 거군요."
"그래야 저도 구매 확정 버튼을 눌러주죠. 아직 받은 것도 없는데 벌써 사진 리뷰 올려달라고 하면 안되죠."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
드디어 일본 잠수함은 미7함대에 인도될 수 있었다.
고생을 뒤로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며칠밖에 안 되는 표류 생활이었지만, 승조원들의 얼굴에는 고생기가 가득했다.
대치 상태는 풀렸고, 동해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잠수함은 원래 일본 해상자위대 소유.
하지만 미7함대는 원인을 조사한다며 잠수함을 돌려주지 않았다.
"파손 원인도 조사해야 하고, 어차피 세상에는 미군 소속이라고 말을 해둔 상황이요. 지금 당장 돌려드리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소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돌려주셔야 합니다."
"설마 동맹국에 이미 판매한 것을 강탈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 해군 사고조사위원회는 비밀리에 야마다호를 조사했다.
그들은 잘려 나간 2개의 프로펠러절단면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건 외부 물리력에 의해 강제로 절단된 흔적입니다."
"이럴 수가…… 티타늄 합금 프로 펠러를 수중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절단하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폭약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절단면, 아니, 폭약이 더 말이 안 됩니다. 잠수함 선체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정확하게 프로펠러 2개만 절단을 하다니요."
조사위원회는 원인을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더욱더 심해의 미궁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었다.
수중에서 이렇게 프로펠러만 깔끔하게 절단하는 무기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무기는 누가 만들었고, 누가 일본 잠수함에 사용했는가?
"설마 알려지지 않은 비밀 무기?"
"틀림없어요. 누군가가 대프로펠러 킬러 어뢰를 만든 겁니다."
"절대 우연한 원인이 아닙니다."
어느 국가가 몰래 비밀 무기를 시험한 게 틀림없다는 심증이 굳어졌다.
"사건이 발생하면 누가 이익을 취하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은 것은 바로 러시아입니다."
"단언컨대 러시아가 범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