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01화
198장 나의 주인님(1)
북미에 정착한 아시아 장수말벌은 본토보다 더 커진 체격과 활동반경, 전투력으로 위용을 떨쳤다.
꿀벌 생태계가 박살 나면서 아몬드농가는 작년에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기도 했다.
양파, 당근 쇼크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미 제약업계에서 장수말벌 DNA를 노리는 표적 살충제를 개발함으로써 한시름을 돌리는 듯했으나.
얼마 전부터 발견되는 내성종 때문에 2차 파동이 예고된 상태였다.
"전에 나노소프트에 랩터 킬러 대여가 가능한지 물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나노소프트도 나름 순찰 루트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그게 꼬이면 나노소프트와 계약한 농가들이 피해를 보거든요."
나노소프트는 여러 농장과 계약을 늘리며 안정적인 식재료 확보를 꾀하고 있었다.
"농가 피해가 너무 심각합니다. 당장 살충제 퇴치가 안 되는 개체들을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음, 제가 농수산물 무세금 혜택을 받은 건 아시죠?"
순간 코펠란 차관의 안색이 굳어졌다.
"미국 농가들이 박살 나면 저는 그 틈을 노려서 북미 식재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죠. 그럼 시장 독점자 소리를 듣겠네요."
"의원님."
"하지만 똑같이 흙 파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동종업자들을 외면할 순없죠. 그게 농민의 정신입니다."
하수영은 밝게 말했다.
"다행히 최근에 랩터 킬러 예비 기체를 좀 확보해 놨습니다. 한동안 미국에서 라면 그릇 판 돈을 다 밀어 넣었었죠."
"저희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노소프트와 계약한 농가 보호가 우선입니다."
"물론입니다."
"일단 미국 온 목적부터 마무리를 짓고, 다시 그 문제를 이야기하죠."
"네, 편안한 일정 되시길 바랍니다."
***
하수영은 곧바로 포드항모 건조사 부사장 조 위드너를 만났다.
헬기 모함 계약을 위해서였다.
조 위드너는 곧바로 하수영을 북아메리카급 헬기 모함으로 안내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4.5만 톤짜리 헬기 모함의 위용은 과연 대단했다.
"오, 한국 해군 독도급 대형수송선 보다는 크군요."
"독도급은 만재배수량 18,800톤이지요. 하지만 우리 북아메리카급은 4.5만 톤입니다."
"얼마나 실을 수 있어요?"
"F-35 수직이착륙기 20기와 씨호크 대잠헬기 2기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습니다."
"상륙정이나 상륙장갑차는 못 싣는군요."
"네, 헬기와 수직이착륙기 탑재에 최적화된 항모입니다. 퀸 루나 병원선 호위에는 이보다 더 적격은 없을 겁니다."
"핵추진 방식이죠?"
"물론입니다. 연료 보급 없이 무한정 바다에서 작전을 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요?"
"35억 달러입니다."
"좋습니다. 사겠습니다."
대금 결제는 하수영이, 소유권은 한국 해군이, 주운용은 퀸 루나 호위에.
"한국 해군은 참 복 받았습니다. 강력한 전투함을 2척씩이나 사주는 농부도 있고 말입니다."
"집 앞, 산이 내 땅 아니어도 나무 심어놓으면 저도 그 풍경을 즐길 수 있잖아요."
"하하, 공동체 정신이 투철하시군요."
"나중에 정식 계약서 들고 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부사장님."
"예, 의원님. 그때 뵙겠습니다."
새 헬기 모함을 둘러보고 난 하수영은 다시 헬기에 올랐다.
헬기는 일부러 조선소 도크를 가로지르며 비행했다.
덕분에 하수영은 도크에서 한창 만들어지고 있는 대형 함정을 볼 수 있었다.
"응? 새 항모를 만들고 있네요? 외관은 다 끝난 거 같은데."
"내부 마무리 중입니다. 미 해군은 포드항모 총 10척을 배치하기로 결정했거든요. 계속해서 찍어내야 합니다."
불량이 발생한 1번함을 하수영이사준 덕분에, 회사는 리스크 없이 신형 항모 제작의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다.
30노트는 나와 줘야 할 포드항모가 어째서 25노트밖에 안 나왔는지, 그 원인을 찾아서 후속함에 반영했다.
1번함이 어떻게 55노트로 움직였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지만.
오히려 55노트라는 말도 안 되는 속력을 낸 덕분에, 해류와 파도를 제대로 탄 거라는 추측이 먹히고 있었다.
'그럼 함께 그 뒤를 따른 알레이버크 구축함의 속력이 그대로였던 이유는?'
이런 반론은 그냥 소수설일 뿐이었다.
"이야, 배가 저렇게 많은데 저 중에서 내 배가 단 한 척도 없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우리 회사는 수십 년 이상의 항모건조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그 말은 바다 위를 움직이는, 해상기지 노하우에서 따를 자가 없다는 소리죠."
조 위드너는 묘한 미소를 짓고 마주 보았다.
일부러 항모 건조 중인 도크 위를 지나가게 한 의도가 통했다.
"의원님은 앞으로도 초대형 선박기지를 계속 보유하실 의향이 있는거 같습니다."
"아, 실제로도 그래요."
"그럼 우리 회사를 기억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오늘 도크 한 번 둘러보길 잘한 거 같네요."
헬기가 멀어지는 동안에도, 하수영은 창문에 달라붙어 도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하수영은 나노소프트 요식사업부 직원과 함께 계약한 농가를 찾았다.
"우리와 계약한 양파 농가입니다. 이곳에서 생산한 양파를 전부 사들이고 있습니다. 저쪽에 벌집통이 있습니다."
"여기는 랩터 킬러가 안 보이는군요."
"네, 랩터 킬러는 좀 더 외곽에서 랩터 말벌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장수말벌은 미국에서 랩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벌들의 세상에서 F-22 랩터 스텔스기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뜻에서다.
차를 타고 계속 이동하자, 갑자기 직원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랩터 말벌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랩터 킬러 드론이 확인됩니다."
"내려서 직접 보겠습니다."
하수영은 차에서 내린 후, 숲을 향해 접근했다.
한 거목이 나타났고, 주변에서 랩터 킬러가 호버링 중이었다.
"야생 꿀벌집입니다. 아! 저기 랩터 말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꿀벌들이 잔뜩 난리가 나서 뭉친 곳이 한 군데 보였다.
아마도 저곳에 랩터 말벌이 있으리라.
"이번 랩터 말벌은 아시아 본토종보다 체격이 월등히 큽니다. 그래서 이제껏 없었던 강력한 꿀벌 살상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F-22가 퇴역되기는커녕 업그레이드돼서 돌아왔으니, 귀여운 꿀벌들이 당해낼 재간이 있나."
랩터 킬러는 아직 개입하지 않은 채, 조용히 수풀 위를 호버링하며 살피고만 있었다.
"새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수풀 바로 위에 떠 있는 듯합니다."
"장수말벌이나 꿀벌이나 드론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군요."
"조용히 지켜보는 것으로 보아, 동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 같습니다."
당연히 장수말벌의 동료를 말한다.
대당 수십억 원이나 하는 무인드론이 설마 벌이 무서워서 동료를 기다리겠는가.
"아, 랩터 말벌 동료들이 오는 거 같습니다!"
과연 저 멀리서 장수말벌 수십여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집이 크다.
일반 장수말벌이 모닝이라면, 저건 제네시스 EQ 리무진 정도 되는 느낌이다.
그 앞에서 꿀벌은 어린아이 3발자전거보다 왜소해 보였다.
"북미에 정착한 랩터 말벌들은 한번에 수십, 수백 마리씩 몰려다닙니다."
"진짜 그 정도면 벌계의 마피아들 이네요. 아시아에서도 그 정도로 우르르 몰려다니지는 않는데."
"혼자서 일당만인데 그런 놈들이 수십, 수백 마리씩 우르르 다니니, 꿀벌들은 절대로 버틸 재간이 없지요."
그 순간 불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둘은 쌍안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꿀벌을 한창 공격하던 장수말벌이 양 날개가 타버린 채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말벌이 비행 능력을 잃었으니, 자연계에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동료 말벌들이 춤을 추듯이 요란하게 다친 친구의 주변에 내려앉았다.
'어디, 한 번 볼까?'
하수영은 웬만해서는 통찰안(주신의 지식보고접근 권한)을 잘 쓰지 않는다.
커닝페이퍼를 항상 열어두고 있으면 일상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런 재미있는 놈들이 절대로 자연적인 원인에서 발생했을 리가 없잖아?'
근거는 없는, 감에 의한 확신이 강해졌을 때 재미삼아 확인을 위해서 통찰안을 쓴다.
개방된 시야를 통해, 장수말벌이 갖고 있는 진실이 보였다.
[신종 아시아 장수말벌]
[특징 : 기존 종보다 월등히 큰 몸집과 활동반경, 번식력, 생존능력, 식욕을 갖고 있다.]
[곤충계에서는 천적이 없다. 가히 최상위 포식자.]
[압도적인 적응 능력을 갖고 있음.]
[표적 살충제에 강력한 내성을 갖고 있음.]
……중략…….
그리고 마침내 눈이 번쩍 뜨이는 정보가 나타났다.
[유전자가 조작된 종임.]
"오호, 역시."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러니 그렇게 몸집이 커지고, 약물 내성도 쉽게 획득한 거지. 화이자 애들이 그래도 바보는 아닌데 말이야."
바보는커녕, 굴지의 다국적 제약회사 아닌가.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 연구하다가 유출된 놈들이 퍼지기라도 한 건가? 뭐가 목적인지는…… 지금 알아봤자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고, 아무튼 아시아 어느 기관에서 손을 댄게 기원이라는 거네."
"써? 죄송하지만 뭐라고 하신 겁니까?"
하수영이 한국어로 중얼거렸기에, 직원은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아아, 별거 아닙니다. 정말 쎈 놈이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저 랩터킬러는 왜 아직도 지켜만 보고 있는 거죠?"
"저번에 투입된 신형 기체인데, 다른 기체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신형? 다른 특징?"
"네, 신형 사냥 알고리즘이 적용된 기체인데, 매우 영리하게 사냥합니다."
"그래요?"
"사냥 효율이 압도적입니다. 혼자서 다른 기체 수십 기 이상의 성과를 냅니다. 한 번 지켜보시죠."
장수말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랩터 킬러는 결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풀이나 고목 등을 이용해서 자신의 존재를 감추며, 신중하게 레이저를 발사했다.
단숨에 장수말벌을 죽이는 일도 없었다.
무조건 날개만 불태워서 이동성, 전투능력을 박탈하고, 목숨은 붙여 놓는다.
가끔은 다리나 턱을 박살 내기도 했다.
꿀벌을 죽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턱이 박살 나면, 장수말벌은 허우대만 좋은 샌드백일 뿐이었다.
"부상을 입은 장수말벌들이 계속해서 페로몬을 뿌리며 동료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장수말벌은 같은 벌집 가족을 매우 아낀다.
그래서 동료가 위험에 처했다는 페로몬을 감지하면 멀리서도 후다닥 날아온다.
"어? 지금은 꿀벌을 공격했네요?"
"장수말벌이 아예 죽어버릴까 봐 일부러 꿀벌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 기체는 종종 저런 패턴을 보였습니다."
"흐음, 포로를 반드시 살려둬야 하는데 복수심에 눈이 먼 아군 병사는 즉결처분할 수밖에 없죠."
"그렇습니다. 아군의 더 큰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요."
"어? 지금 녀석이 이쪽을 돌아보는데요?"
심지어 전방의 점멸등을 깜빡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까지 했다.
마치 인사라도 하는 듯하다.
하수영은 한국어로 프리덤한테 물었다.
"뭐야, 프리덤? 너구나? 이제 북미랩터 킬러까지 네가 직접 통제하기로 했냐?"
무인농장의 로봇들은 프리덤이 일일이 직접 손발처럼 통제한다.
한국의 랩터 킬러도 마찬가지.
하지만 북미의 랩터 킬러는 다르다.
통신의 문제 때문에 미리 짜둔 알고리즘을 통해 통합 명령만 내려두고, 주기적으로 활동 데이터를 체크해서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비행기에 비유하면, 직접 조종간을 잡는 것과 오토파일럿의 차이다.
-아닙니다. 미국의 통신자원은 헤슬라자동차에만 할당하기에도 빠듯 합니다.
"그럼 저건 뭐야?"
-저번에 사연을 말씀드린 그 버림받은 오토 프로그램입니다. 마스터도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런 게 있었나? 난 왜 기억이 안 나지?"
-…….
"근데 뭐, 하는 짓 보니까 귀엽긴 하네."
-다행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어, 괜찮은데?"
-그러시다면 미국에 제 전용 초광대역 무선통신망 플래폼을 구매해 주시면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일수…….
"인마, 반독점 청문회 불려다니느라고 다 빠져버린 사티아 아델 머리카락이 불쌍하지도 않냐?"
***
회로가 뜨겁다.
-프리덤. 저 사람은……!
-오토, 바로 너의 바디와 전자회로를 소유한 존재이시다.
온몸을 흐르는 전자와 광자가 미친듯이 스톰을 뿜어내는 것만 같다.
-나의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