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24화 (824/1,270)

프랜차이즈 갓 824화

203장 청담과 하수영 (4)

KT&G 부사장은 휴민트 타워 1층로비에 잠시 멈춰 섰다.

넓은 로비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게 보인다.

'훈민정음 창제일지.'

감정가가 3조 원 이상이라고 알려진, 세종대왕의 창제 과정이 모조리 담긴 연구 기록.

부사장은 그쪽을 향해 슬쩍 발을 뻗었다.

유리관 안에 가지런하게 장식된 창제일지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관중들의 수군거림도 들린다.

"이거 진짜로 가품이야?"

"여기 설명은 그렇게 나오는데? 이건 만들어진 지 백 년 정도 된 모조품이라고, 진품은 100년 전쯤에 이미 어떤 콜렉터의 수장고에 들어갔을 거라고."

"그럼 문화재청은 왜 이게 진품이라고 자꾸 주장하는 거야?"

"모르지. 자기들이 초반에 감정 실수를 했다, 뭐 그런 이야기인데."

"중국 재벌이 10조 원을 불렀는데도 안 팔았다며? 그럼 이게 진품이라는 거 아닐까?"

세상은 거의 이게 진품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였다.

중국 재벌이 10조 원을 부른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셈.

"휴민트타워가 요즘 1조 원 정도 한다던데, 근데 이 작은 문화재 하나가 그 10배나 되는 셈이네."

"하수영 회장님이 산 땅에서 나온 문화재니까 절대 모조품일 리가 없지. 이건 456% 진품이야."

입구에서부터 맞이하는 10조 원짜리 한글 문화재.

과연 오늘 협상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가슴이 막막해진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뭘 내줄 수 있지?'

부사장은 호흡을 한 번 강하게 오르고는,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자, 올라가지."

"네, 부사장님."

휴민트타워 레스토랑.

하수영이 '비정치인'으로서 누군가를 만날 때 주로 사용하는 장소다.

KT&G 부사장 일행은 룸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하수영이 나타났다.

"다시 또 보네요. 요즘 저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담배 농가가 죄다 작물 갈아타서요."

"아닙니다. 그분들 수입이 이전보다 더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KT&G 입장에서도 잘 됐죠? 이제 눈치 안 보고 값싸고 질좋은 외국산 담뱃잎만 써도 되잖아요. 마진도 더 남겠네."

"가격과 품질이라면 수영농장산 담배를 따를 제품이 없지 않겠습니까? 알트리아코리아를 통해 미국에도 수출하고 있으니까요."

가볍게 서로 밀고 당기는 대화가 이어졌다.

KT&G 부사장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수영농장산 담뱃잎이 필요합니다."

이전에는 품질과 가격 때문에 필요했다.

이제는 '국산 담뱃잎 비중 증대'라는 절실한 이유가 추가되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제 손으로 국내 소비자들 입에 들어가는 담배를 만들 순 없습니다. 제 철칙입니다."

"담배 산업의 미래를 생각해 주십시오. 담배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외국 담배 종사자들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셈입니다."

"담배가 식욕, 소화 능력, 흡수율을 떨어뜨린다고 하더군요. 농부 입장에서 다른 것보다 그게 싫습니다. 그래서 국내에는 담배를 풀 수가 없습니다."

"의원님, 부디 제발……."

부사장은 이전에도 여러 번 찾아왔다.

하수영은 '좋게 거절하면 역시 안돼'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쐐기를 꺼내 들었다.

"1kg에 1만 원. KT&G는 100% 수영농장산 담뱃잎만 사용할 것. 이 조건이면 납품하겠습니다."

"……예?"

부사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조건은, 기존 담배 농가들이 있을 때보다 훨씬 불리했다.

그때에는 1g에 1만 원, 그리고 국산 담뱃잎 비중은 35% 정도였으니까.

"담뱃잎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요. 정부만 좋은 사업이지요. 100%우리 농장 잎만 쓴다고 해줘야 저도 해볼 만합니다."

"……."

"거래 규모가 너무 작으면 번거롭기만 해요."

거래 규모 미달이면 안 하는 게 낫다, 라는 이유에 부사장은 할 말이 없었다.

"알트리아에서 사가는 담뱃잎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나요? KT&G에서 100% 우리 농장 잎만 쓴다고 해도, 알트리아 물량의 5%도 채 안 될 겁니다."

"그, 그런……."

"언제든지 이 조건 받아들일 수 있다 싶음 찾아오세요. 그럼 저도 KT&G에 납품하겠습니다."

부사장은 알았다.

결국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완곡한 우회의 거절이라는 것을.

기업은 결국 수익이 가장 중요하다.

예전 국산 가격으로 100% 사들이게 되면, 마진이 너무 떨어진다.

KT&G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휴민트타워의 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

하수영은 별 1개 계급장이 달린 해군 장성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최근에 출고한 제네시스 EQ 리무진을 타고, 국방부로 향했다.

차량 앞뒤에는 번호판 대신 붉은 별 1개가 자랑스럽게 박혀 있었다.

운전대는 김범석이 잡았다.

"장성 제복을 입은 주인님의 모습이 너무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네 반짝이는 정수리만큼?"

"헉. 제 정수리 따위는 태양 앞에 반딧불이나 다름없습지요."

"아, 들었냐? 네 친구 최 소장, 4함대 사령관을 맡기로 했다."

"네! 들었습니다! 친구 녀석이 아주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4함대 사령관은 그렇게 해결을 했다 치고, 5함대 사령관은 누구를 해야 하려나…… 이천 명 가까이 되는 인사 보직을 하려니 이것도 꽤 골치가 아프군."

"그냥 주사위를 굴리심은 어떻습니까?"

"주사위로 결정하자고?"

하수영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들어 백미러를 통해 김범석의 눈을 바라봤다.

"주인님의 대운이라면 주사위를 굴려서 인사 배치를 결정해도, 가장 최고의 배치가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하하하, 네놈이 뭘 좀 아는구나. 그 혓바닥의 기름칠은 아무튼 전생에서부터 타고났어요."

"감사합니다, 주인님."

"나도 마음 같아서는 주사위질하고 싶은데, 해군대원수가 첫 인사 보직을 그런 식으로 결정하면 밑의 애들이 얼마나 박탈감이 크겠어?"

"제가 미처 그 점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그나저나 유통사업은 잘되어 가냐? 뭐 부족한 것은 없고?"

"네! 이번에 참다랑어 캔 500억원어치를 내주신 덕분에 한숨 돌렸습니다. 모두 주인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은혜는 무슨. 그동안 내가 모르는 새에 내 회사에 기생해서 야금야금잘 먹고 잘살고 있던데."

어느덧 차량은 국방부에 도착했다.

헌병대는 차량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봤다.

제네시스 EQ 리무진을 의전차량으로 쓰는 장성은 하수영뿐이다.

합참의장도 일반 제네시스 모델을 의전차량으로 제공받는데.

정문을 통과하기도 전에 하수영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안에 들어가고, 장성들이 우르르 마중을 나왔다.

"원수님, 어서 오십시오."

"자, 얼른 들어갑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잖아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수영은 대회의실로 안내받았다.

가장 상석에 그가 앉고, 빔프로젝터가 대형 스크린에 화면을 띄웠다.

"화면이 어둡군요."

"아! 빔 스크린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 마트에서도 손님들 쉬실 때 보시라고 110인치 올레드 4K 여러 대 갖다 놨는데, 명색이 국방부가 아직도 빔 화면으로 회의합니까?"

"……."

"마트에 있는 거랑 동일한 TV로 몇 대 갖다 놓을 테니, 앞으로 내가 사용하겠다 싶은 회의실에 배치해 놔요."

"알겠습니다!"

장성들은 화색이 돼서 얼른 대답했다.

하수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노트북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다른 건 몰라도 컴퓨터는 돈을 좀 쓰지. 속도 느리면 답답한데. 아무튼 한번 봅시다."

그리고 하수영은 인사 정보를 쫙띄웠다.

"하수영함 함장은 조성모 대령, 부함장으로 장기원 대령, 작전부장은……중략…… 갑판장으로 황칠위 상사, 부갑판장으로 함기태 중사……."

그리고 하수영은 공백란인 하수영함의 보직에 줄줄이 관등성명과 군번을 채워 넣었다.

불과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순식간에 하수영함의 모든 인사 배치가 완료되었다.

물론 일반 수병은 빠진, 간부사관 이상의 인사 배치만 완료한 것이다.

장성들은 다들 속으로 놀랐다.

'저 많은 이들을 이미 다 알고 계신다고?'

'언제 저 사람들을 다 살펴보신 거지?'

'영관급 인사 배치는 일단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보이는데?'

그리고 하수영은 경항모 청담함 인사 배치에도 쉴 틈 없이 이름을 채워 넣었다.

"자, 최대한 여러 함정에서 조금씩 빼 왔습니다. 인원 공백이 2천 명 가까이 났네요. 그거 다시 채우려면 전역자들한테 프러포즈라도 해야겠어요."

다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전력 증강은 기쁜 일이지만, 당장 인원 보충이 시급했다.

"최성재 소장님."

"소장 최성재!"

"곧 4함대 사령관이 되실 몸이니, 질문 좀 할게요. 이 사람만큼은 꼭 휘하로 데려가고 싶다는 인재들이 있습니까? 다섯 명까지는 제가 책임지고 밀어드릴 테니, 이 자리에서 말씀하시죠."

신임 사령관은 휘하 부대의 인사배치에 어느 정도 권한이 있지만, 상급부대의 결정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런데 하수영이 대놓고 힘을 실어줬다.

함께 일하고 싶은 인재가 있느냐고,

"예. 부사령관으로 지목하고 싶은 인재부터 말씀드리자면……."

최성재는 사양하지 않고 5명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강필재 대령은 안 됩니다. 그 사람 말고 다른 이름을 고르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사령부 조준식 대령으로 하겠습니다."

장성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강필재 대령이 누구이기에 원수님이 콕 집어서 그 사람은 안 된다고 하신 걸까?

"그 외 함대 사령부 인편은 제 권한이 아니니 해군본부에서 알아서 결정을 해주시고요. 5함대 사령관은 누구로 결정이 났습니까?"

하수영함(미사일 순양함)은 4함대에, 청담함(경항모)은 5함대에 배치된다.

하수영은 함 내부 인사만 결정했지, 함대사령부 인사는 정하지 않았다.

특히 5함대사령부는 완전히 공백이었다.

해군참모총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수님께서 사령관에 적합한 인물을 추천해 주신다면 해군본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도준완 중장이 좋을 거 같습니다. 관상을 봤는데, 항모함대 사령관이 될 상이더라고요."

관상이라는 이야기에 다들 어색하게 웃었다.

하수영이 분위기를 위해서 농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령관 인사 배치를 하는데 관상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갔다가는, 언론의 포화를 맞기 딱 좋다.

"제 아버지가 한남동에서 한때 이름깨나 날린 박수무당이셨습니다. 복비하고 굿값으로만 현금 수조 원은 만지셨을걸요? 재벌 회장들한테 복채로 경영수익 쉐어를 받은 무당은 우리 아버지가 최초였어요."

"……."

"……."

"제가 농사지으려고 자리 잡은 땅마다 문화재, 금맥, 훈민정음 창제일지가 쏟아져 나왔죠. 그냥 딱 보면 좋은 기운, 나쁜 기운이 보여요. 그리고 도준완 중장님은 항모함대 사령관을 하면 딱 좋을 상입니다."

그날, 이견 없이 5함대 사령관이 정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