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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840화 (840/1,270)

프랜차이즈 갓 840화

206장 나는 원수다 (4)

아들이 죽이는 게 아니라, 아들 때문에 죽는다.

아들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고 널리 공언을 해서, 아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끌지 말고, 조속히 임해야 한다.

그것만이 오로지 살 수 있는 길이라니.

이창영은 대체 어떤 미래가 자신 앞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단서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아들 녀석은…… 내가 자기 애비라는 것을 알고 있군."

"이거이거, 자세히 보니 회장님 밑에서 일한 적이 있네요. 그래도 아버지라고, 한 번 가까이에서 뵙고 싶었나 봅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온 적도 있다고?"

"네, 그런데 꽤 오래전에 나온 것으로 나옵니다. 그 뒤로는 아마 평생 서해그룹 쪽은 얼씬도 하지 않고 살아왔겠네요."

"출생신고도 일부러 늦게 했겠고, 혹시라도 내가 찾아낼까 봐."

"과거 사모님이 겁박을 하셨겠죠. 배다른 형제들도 두려울 테고요. 유류분 다툼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 얼마든지 마티즈를 보내실 수 있는 분들 아닌가요?"

이창영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하수영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아이가 생겨선 안 된다고 항상 겁박한 것은 바로 나였지.'

이창영은 첩을 들일 때마다 엄히 경고를 주었다.

절대 아이를 가져선 안 된다고.

여자가 스스로 피임을 철저히 하게 시키고, 또 주기적으로 검사를 통해 관리했다.

그렇게 철저히 해도 생겨날 아이는 생겼다.

그러면 여자를 엄히 꾸짖고, 아이만큼은 보듬을 수 있게 했다.

그룹에 들이지는 못해도, 어디 가서 부족함 없는 부유층 삶은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정리한 뒤에 아이가 생긴 여자가 그것까지 알 리는 없다.

그저 두렵고, 무서워서 숨어버렸으리라.

"아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고 나를 찾아오게 만들어라? 거기에 내가 살길이 있다. 이건가?"

"저는 더 자세한 건 모르죠.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어떤 해석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가. 나는 이 해석 이외의 다른 미래가 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드네만."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무의미한 해석이라는 겁니다. 열심히 두뇌 에너지만 낭비하는 거죠."

"그런가……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네."

이창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꼭 전 재산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냥 구체적으로 증여 재산을 얼마 얼마라고 알려주는 게 낫지 않은가?"

"죽기 전에 후회하는 마음에서 전 재산을 주겠다, 그 정도는 되어야 임팩트가 강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그렇군."

공개된 전 재산만 주면 되겠구나, 하고 이창영은 생각했다.

"그 전에 내 그룹 지분은 미리 정리를 해둬도 상관없겠지? 세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루 만에라도 정리할 수 있다네."

가진 지분 전부를 후계자들에게 곧바로 넘겨 버리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하수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5개월 내지 6개월 후…… 그때까지 사생아가 전혀 알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

"만약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낄 텐데요. 전 재산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그 안에 지분도 포함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알짜배기는 미리 쏙 빼돌렸다. 자신 있으세요?"

"고맙네."

"누차 말씀드리지만, 제가 이현덕부회장님과 비즈니스 갈등을 몇 번 빚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복채까지 받았는데 천기를 두고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잘 알고 있네. 굳이 당부할 필요는 없어."

"주요사실 고지 의무는 지켜야죠. 비즈니스는 신뢰거든요."

이창영은 하수영이 이런 걸 가지고 자신을 농락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원석 역시 그러했으니.

"이만 가보겠네."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네. 혹시 또 다른 천기를 알려줄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게나."

"네, 알겠습니다."

늙은 비서실장은 차에 오른 뒤, 참았던 질문을 쏟아냈다.

"회장님, 저 친구의 말을 정녕 믿을 수 있을까요?"

"자네도 일평생 내 옆에서 하원석이 그 친구 점괘를 같이 봐놓고는 그런 말을 하는가?"

"하원석 무당, 그 친구하고는 엄연히 핏줄이 다르지 않습니까?"

"……."

"하지만 그 친구가 선택한 양자일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양자로 들였겠지. 그리고 보게. 저 친구는 겨우 3년 만에 식량제국을 일궈냈어."

이창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끼니마다 내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들의 8할 이상은 저 친구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말에, 내가 얼마나 놀랐었는지 아는가?"

"……회장님."

"감출 수 있는 건 감추고, 나머지는 죄다 증여할 준비를 하게. 이 나라 모든 국민들이 하루아침에 알고, 그 이야기만 떠들게 만들어."

회장은 진심이다.

23세 청년의 점괘 하나에 자신의 '공개된 전 재산'을, 있는지도 모르는 사생아에게 증여하겠다는 것이다.

이현덕 부회장이 들었다면 아마도 미쳤다고 생각을 할지 모른다.

이현덕은 하원석의 존재감을 그리 강하게 느껴보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창영 회장의 부인, 홍희수는 전혀 반대를 내비치지 않았다.

-수집품을 내 미술관에 보관해 둔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요. 오래전에 나한테 증여한 거라고 처리해도 되는 거잖아요?

"부탁해, 여보."

-걱정 마요. 그럼 그룹 지배지분, 은행 예금 800억, 한남동 저택 정도만 넘기면 되는 거죠?

"그렇지. 공개된 것들만 넘기면 되니까."

-하수영 회장 그 친구 나중에 나도 소개시켜 줘요. 나도 점 볼 게 좀 있으니까.

"알았어. 기회 되면 내가 소개시켜주리다."

홍희수 역시 하원석의 점괘 실력을 경험했기에, 이창영의 결정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

로한이 오랜만에 가게를 찾아왔다.

하수영은 충직한 부하를 위해 자신이 직접 참치를 썰어주었다.

서리한 대검으로 통참치를 시원스럽게 해체하고 써는 광경은, 다른 손님들의 눈까지 즐겁게 만들어준다.

참치를 맛있게 먹으면서 로한이 물었다.

"교관님, 그럼 이창영의 사생아가 생부를 살릴 수 있는 키워드를 쥐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지."

-마스터, 이창영 회장 앞에서는 왜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겁니까?

"복채를 받았다고 전부 나불나불할 수 있냐? 그건 상도의가 아니라고."

-오히려 전부 알려줘야 하는 게 상도의 아닙니까?

"알려줄 수 있는 건 복채를 낸 사람의 운명이지, 점을 보지 않은 사람의 중요한 운명까지 멋대로 말할 순 없지."

로한이 가볍게 탄성을 냈다.

"그 사생아의 중요한 운명도 얽혀 있는 거군요."

"어, 그렇더라고."

그때 입구에서 장효주가 매니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손님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녀를 향했다.

장효주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서 로한의 옆에 앉아 하수영을 올려다봤다.

"늦었지요? 먼저 먹고 있었네요?"

"로한 이 녀석이 원래 좀 식충이입니다."

"그래서 놀랐어요. 그렇게 대식가인데 어쩜 이렇게 군살 하나 없을까요? 부러워요."

"곧 썰어드릴 테니까 벨트 풀고 있어요."

"어제부터 굶었어요. 참, 서희 씨는요?"

"조금 늦는다고 했습니다. 요즘 회사 일이 바쁜가 봐요."

"아예 안 와도 된다고 전해 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 바로 뛰어올 걸요? 그럼 회사 일은 누가 하라고요."

하수영은 요리를 대접하고, 로한과장효주는 맛있게 식사에 집중했다.

간혹 장효주한테 사인을 받고 싶은 팬들이 주춤거리며 다가왔지만, 그때마다 하수영이 웃으며 정중히 거절을 보냈다.

"죄송하지만 오늘 이 테이블의 주인은 장효주 씨가 아니라 저입니다. 제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어, 저는 괜찮은데. 저는 팬분들에게 사인해 주는 거 좋아해요."

"소중한 팬과 소통하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지만, 그게 제3자를 방해 해서는 안 되죠."

그때 젊은 남자팬이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저는 하수영 의원님에게 사인을 받고 싶은 거였는데요……."

"아니, 그럼 당연히 해드려야죠."

"……언제는 방해받고 싶지 않다면 서요?"

"제 팬은 저를 방해해도 됩니다. 이리 주세요. 사진도 같이 찍어드릴까요?"

"네!"

그렇게 하수영은 열심히 팬과 소통도 하고, 로한과 장효주에게 요리도 만들어주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정서희도 가게에 도착해서 테이블에 합류했다.

"그런데 김범석 사장님, 그분은 안와요?"

"범석이 그놈은 바빠요. 수영콜라가 챙겨야 할 게 한두 가지여야 말이죠. 아마 저녁 늦게 올 겁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매장 안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검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점원에게 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흥분해서 떠드는 손님들도 보였다.

"뭐지? 스캔들이라도 났나?"

"효주 씨, 설마 수영 씨하고 뭐 이상한 거 터뜨린 건 아니죠?"

"아니거든요? 물론 그랬으면 저야 좋지만."

두 여자도 황급히 폰을 꺼내서 검색했다.

로한만이 폰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느긋하게 요리를 맛보고 있었다.

포털과 SNS를 점령한 기사들을 보고, 두 여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거 진짜예요?"

"맙소사! 대박! 대박! 완전 대박!"

"동영상도 있는데요? 와, 이창영회장님이 진짜 직접 출연해서 찍었구나!"

"진짜 말도 안 돼!"

선명한 인터뷰 동영상이었다.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재벌가의 방침을 파격적으로 깨뜨린 영상이었다.

정갈한 개량한복을 입은 이창영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었다.

-얼마 전, 나도 모르는 내 아이가 한 명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몇날 며칠을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나이가 마흔 초반이라는 것, 한국어딘가에 잘 살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나의 지난 과오가 너무 크다. 아이야, 내가 마지막으로 아비 노릇을 할 수 있게 기회를 다오.

-너에게 내 전 재산을 모두 물려 주겠다. 그저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해다오. 아비로서 진심으로 부탁한다.

-죽기 전에 애비 노릇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구나.

진심이 절절 흘러넘치는, 어딘가에 존재할 사생아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였다.

지금 포털과 SNS는 이창영 회장이 직접 찍은 영상 편지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

-미친, 전 재산을 준다고?

-와씨, 누군지 몰라도 완전히 팔자 폈네.

-이거 수상한데. 혹시 상속에서 문제 될까 봐 함정을 판 것은 아닐까?

-얼마나 산다고 자기 핏줄한테 그렇게까지 할까? 그리고 그렇게 할 거였으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안 했겠지.

-그래, 국정원 시켜서 조용히 찾아낸 다음 마티즈 보내 슥삭했겠지.

-국정원이 무슨 서해그룹 정보팀임? 회장이 이래라저래라 시킨다고 시키는 대로 하게?

-몰랐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함.

-서해그룹 장학생을 우습게 보지 마라.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응은 뜨거웠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재벌가 회장이 직접 영상 편지를 공개했다는점.

그리고 국내 어딘가에 이창영 회장의 전 재산을 물려받게 될 행운아가 있다는 점.

그 이야기를 가지고 온라인은 시끌시끌했다.

매장에서도 테이블마다 그 행운아가 부럽다는 이야기가 잔뜩이었다.

"아이고,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두 분 사모님도 계셨군요! 아니, 에릭 로한 경까지? 이 미천한 김범석이, 오늘 정말 여러모로 영광입니다!"

가장 뒤늦게 도착한 김범석은 손수 건으로 벗겨진 정수리의 땀을 닦으며 활짝 웃었다.

"앉아라. 금방 한 접시 내주마."

"이 미천한 놈이 주인 대감마님을 너무 잘 만나서 호의호식을 제대로 하는군요."

"딸들은 잘 지내고?"

"물론입니다! 주인님 팬클럽 가입도 했습니다! 요즘 두 녀석이 예비사모님 파벌이 나뉘어서 저도 집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하수영은 싱싱한 참치회와 매운탕을 김범석 앞에 차려주면서 물었다.

"근데 네놈이 몇 살이었지? 만으로."

"마흔하나입니다."

"얼굴 보면 액면가 마흔둘은 넘겼는데?"

"역시 주인님은 대단하십니다. 제가 사정상 출생신고를 반년 늦게 했습니다."

"응, 나도 며칠 전에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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