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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852화 (852/1,270)

프랜차이즈 갓 852화

210장 쓸데없이 눈치 빠른 FBI (2)

-마스터, 이제 슬슬 조립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빠서 나중에."

-물론 작업량이 상당한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조금씩 미리미리 해야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요?

"지금 해야 할 게 산더미인데, 언제 저것들 붙잡고 조립하고 세팅하고 있냐. 나중에, 나중에."

-마스터. 하지만…….

"그리고 부품이 다 도착한 것도 아니잖아. 본체 만드는 데 CPU, 램, SSD, GPU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 케이스부터 우선 다 만들어져야 할 거 아니야?"

미국에서 보낸 반도체 부품 컨테이너들이 청담동 공터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CPU 등 주요 반도체 부품은 이미 다 도착했다.

클러스터 모듈러 등 외관 부품들은 전부 도착하진 않았지만, 당장 슈퍼컴퓨터 조립을 시작할 만큼의 부품은 있다.

그럼에도 하수영은 아직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케이스 빌딩 올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지금 컨테이너 뜯어봐야 쓰레기만 가득 쌓여. 기껏 조립해 둔 건 또 어디다가 보관하고?"

-제가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이제 겨우 땅 다지는 중인데 무슨 벌써 본체 조립이냐. 기다려, 인마."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는 당연히 전용 보관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하수영은 서울 외곽에 땅을 마련하고, 슈퍼컴퓨터 보관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겨우 설계 나오고, 땅을 다지는 수준이지만, 프리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김효산이 테이블에 나타났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아직 일행이 안 와서요. 장효주씨가 조금 있다가 올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평소처럼 모시면 될까요?"

"네. 셰프가 알아서 해주세요. 아, 그리고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쑥스럽습니다."

김효산은 가벼운 웃음을 머금으며 부끄러워했다.

그는 요즘 요리 스트리밍 채널을 개설하고,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고 있었다.

"이거 항상 우리 수용조리용수를 요리에 사용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제가 뭐라도 좀 해드리고 싶은데요."

"그러면 뒷광고가 됩니다. 말씀은 정말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냥 앞광고 하면 되죠. 광고 계약 하실래요?"

"아직 그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구독자 2만 명을 조금 넘겼습니다."

"그래도 조회 수는 10만 이상씩 팍팍 나오시는 거 같던데요. 셰프수입과 비교하면 어때요?"

"사실 셰프를 때려치워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 역시. 내가 잘될 줄 알았다니까요."

이윽고 장효주가 나타났다.

화려한 색상의 실크 상의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고, 손에는 악어가죽 백을 들었다.

한껏 힘을 준 패션을 보니, 어디 중요한 일정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김효산 셰프님."

"영광입니다, 고객님."

"방송 잘 보고 있어요. 몇몇 요리는 저도 따라 해봤는데 생각보다 잘나와서 저도 놀랐어요. 제가 요리에 재능이 있나 생각했다니까요."

"한 번 보고 따라 하신 정도면 재능이 충만하신 겁니다. 그럼 즐거운 대화 나누십시오."

김효산이 물러갔고, 얼마 뒤 차례 차례 메뉴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수영과 장효주는 가벼운 잡담을 곁들이며 식사를 했다.

둘의 접시는 차이점이 있었다.

같은 메뉴이지만, 하수영의 요리 부피가 10배 이상은 돼 보였다.

"그렇게 크게크게 메뉴가 나오는 파인 다이닝은 여기 밖에 없을 거예요."

"이 정도는 먹어줘야 포만감이 있죠."

"흠, 식욕은 굉장히 왕성한데……. 식욕만 그런 건가……."

"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

금단증세를 극복하는 중증 중독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나 마약을 원했던 것이 마치 거짓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약 자체를 극도로 거부했다.

마약이라면 아주 질색하는 모습은, 절대로 연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윌링턴 과장님, 3번째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

"어차피 죽었을 겁니다. 금단증세극복과는 상관없이요. 이미 신체 대부분의 장기가 망가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제야 윌링턴의 눈에 초점이 조금 돌아왔다.

"중독을 이겨낸 게 사망 원인은 아니라는 거겠지?"

"네. 중독을 이겨낸 덕분에 오히려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게 의료진의 소견입니다."

"……그렇군."

윌링턴은 모니터를 눈으로 훑으며 씁쓸한 한숨을 흘렸다.

"뭔가, 분명히 뭔가 있어."

"……."

"그 뭔가가 마약을 몰아내고 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습니다."

"단순히 우연으로 그 많은 중독자들이 중독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나?"

"그건……."

"중독을 이겨내게 해주는 뭔가가 있는 거야. 그런데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어."

부하 직원 한 명이 의아해서 물었다.

"만약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FBI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네."

"네?"

"보통 중독을 이기게 해주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중독이지."

부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고, 그보다 상급자 부하가 설명해주었다.

"과장님은 지금 신종 마약의 등장을 우려하시는 거야."

"……아. 그렇군요."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신종 마약이라면, 다른 저급 마약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그럼 금단증세가 더 강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는 윌링턴에 대답했다.

"그 금단증세가 그 신종 마약 앞에서만 나타나고, 평소에는 잠잠해질 수도 있는 걸세. 만약 신종 마약을 복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아! 그래서 중독자들이 공통점이 없는지 꾸준히 관찰하시는 거군요."

"바로 그걸세. 물론 신종 마약이라는 게 없고, 전혀 다른 원인일 수도 있어. 하지만 가능성은 항상 열어둬야만 해."

여섯 명의 인물들은 수많은 화면과 자료 더미에 파묻힌 채 골몰했다.

그렇게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리를 싸맸을까.

"저는 커피 한 잔 하고 오겠습니다. 저도 애연가이긴 한데, 담배 연기가 너무 가득해서 숨을 쉴 수가 없네요."

"몇 시간 동안 담배 냄새를 맡았더니 머리가 아프려고 그럽니다."

한 명이 일어나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서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윌링턴이 눈을 번쩍 떴다.

"담배! 맞아! 바로 그거야!"

"예? 담배라니요?"

"제이슨! 피관찰자들이 무슨 담배를 피우는지 빨리 공통점을 찾아보게!"

분위기는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제이슨은 급히 자료를 분석한 뒤 돌아봤다.

"과장님, 피관찰자들이 피우는 담배 종류가 워낙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뭔가 공통점이 있을 텐데."

"당연히 있지요. 바로 전부 알트리아에서 제조한 담배라는 겁니다."

"알트리아?"

"네, 다른 회사 제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델은 다르지만 모두 알트리아 제품입니다."

윌링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알트리아 현 CEO가 제노비스 패밀리와 유대관계가 있지 않나?"

"마르퀴즈 제노비스가 모리츠 CEO의 대부입니다."

"제노비스가 밀매하는 담배를 알트리아에서 수급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어."

담배밀매 수사는 마약팀 소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가는 판은 이해 하고 있다.

윌링턴을 포함한 이들은 퍼즐들이 맞춰지며, 좀 더 구체적인 밑그림이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제노비스 패밀리와 친한 알트리아."

"담배밀매 관여 혐의가 있는 담배제조사."

"금단을 이겨낸 마약 중독자들이 모두 알트리아 담배를 피운다라……."

윌링턴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 이것으로는 아직 부족해. 윗선에 말해봤자 근거 없는 망상이라고 할 게 뻔하다. 좀 더 구체적인 퍼즐이 필요해."

아직은 짙은 안개 속에서 비치는,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일 뿐이다.

그게 모닥불인지, 등대인지, 도시의 네온사인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며칠 후, 좀 더 구체적인 의심의 정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단을 극복한 중독자들이 피운 담배는 모두 알트리아의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담배는 없었습니다."

알트리아는 당연히 미국 여러 주에 다수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일수록 의회 로비를 위해 여러 주에 사업체를 분산해 둔다.

"혹시 그 공장이 담배밀매와도 관련이 있나?"

"아닙니다. 밀매수사팀에 물어봤는데 밀매와는 일절 무관한 클린 팩토리라고 합니다."

"끈적하게 털 만한 것은 없다, 이거군."

"그런데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공장은 최근에 원료를 바꿨습니다."

"원료를 바꿨다고?"

윌링턴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눈빛도 일제히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빛났다.

"예, 해외에서 수입하는 담뱃잎만을 사용해서 담배를 제조한다고 하는군요."

"언제부터 수입했지?"

"콜롬보 패밀리가 담배밀매로 걸려 들어간 그 타이밍입니다."

"허어,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수가 있나?"

아직 구체적인 건 없다.

얼핏 보면, 금단증세 극복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은 짙은 안개 속에서 유일하게 손짓하는 희미한 불빛이다.

가만히 안주하기보다는, 저 불빛이라도 쫓아가야만 한다.

"담뱃잎은 어디에서 수입하지? 역시 콜롬비아인가? 아니면 아프가니스탄?"

둘 다 마약 공급에서 한 자락을 차지하는 주요 원산지.

"아닙니다. 코리아입니다."

"노스 코리아? 음, 노스 코리아도 마약 원산지로 유명하지."

"사우스 코리아입니다."

"사우스 코리아? 의외로군. 알트리 아가 굳이 거기에서 담뱃잎을 수입해야 할 필요가 있나?"

"수영레스토랑 창업주가 운영하는 담배농장에서 가져온다고 들었습니다."

"수영레스토랑?"

윌링턴과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 역시 수영레스토랑을 애용하는 단골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수영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수영레스토랑은 나노소프트 자회사가 아니었나?"

"자회사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은 거랍니다. 나노소프트는 북미 총가맹점이고요."

"으음……."

실컷 단서를 잡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애용하는 레스토랑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이 무슨 당혹스러운 상황인가.

"그래서 본사는 뭐하는 곳인가?"

"종합농장입니다. 거의 모든 작물을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수영레스토랑 매출이 미국에서만 일년에 1,000억 달러 이상이랍니다."

"1,000억 달러?"

"종합농장?"

반응은 여럿으로 갈렸다.

수영레스토랑 매출이 그렇게 높았나 하고 놀라워하는 반응, 종합농장이 뭔가 의아해하는 반응.

직원은 상기된 채 보고했다.

"참고로 농장이 보유한 현금만 1조 2,000억 달러 이상이라고 합니다."

"1조 2,000억 달러라니!"

"아니, 그게 무슨! 카길은 비교도 안 되는 초대형농장 아닌가?"

"그런 농장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수영사채의 예치금을 농장 현금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관계가 좀 안맞다.

하지만 지금 그런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떠들썩했잖습니까. 신형 포드항모를 해외에 판매한 것 말입니다."

"그랬지.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설마?"

"바로 그 수영농장에서 구매한 겁니다."

"아무리 부자라지만, 일개 농장이 포드항모를 구매했다고?"

월링턴의 눈빛이 붉게 물들었다.

흥분한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깊이 조사해 볼 가치가 있겠어."

짙은 안개 너머 불빛.

그것이 더욱 선명하고 밝아지며, 이쪽으로 오라고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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