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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855화

210장 쓸데없이 눈치 빠른 FBI (5)

'설마 우리 신분을 알고 있나? 그럴 리가 없어!'

순간 윌링턴은 그런 생각까지 했다.

하수영이 진짜 한국 상류층의 흑막이라면, 뛰어난 정보망을 갖추고 있을 테니까.

'아니야. 이자는 하수영 본인도 아니고, 그냥 일개 관리 직원일 뿐이다.'

얼굴에서 포츈을 읽는다고 했으니, 취미로 점성술을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닐까?

'에이,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애들인상 험악한 거 보고 넘겨짚은 걸거야.'

윌링턴은 부하들의 인상을 떠올렸다.

그래, 그냥 험상궂게 생긴 것만 보고 관리직원이 농담처럼 한 말일 게 분명하다.

"하하, FBI 수사관이라니요. 저희는 그런 쪽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만 해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이제는 가업인 담배 농장을 물려받으려고……."

"제가 FBI라는 말을 했던가요? 그냥 수사관이라고만 했던 거 같은데요."

"수, 수사관 하면 당연히 누구나 FBI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겠습니까?"

부하들은 살짝 허둥지둥하는 윌링턴의 태도를 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과장님이 왜 저렇게 당황하시지?"

'저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은 처음 보네. 그냥 별거 아닌데, 자연스럽게 넘기면 그만인데.'

"진짜 진심으로 담배 농사를 하시려고요?"

"예, 이미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장 관광 패키지를 온 거라고요?"

"그렇습니다. 그 깐깐한 알트리아납품을 코리아의 신생 담배 농장이 뚫었다는 게 신기했죠. 제가 상상 못 한 어떤 강점이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윌링턴은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과연 놀랍군요. 이 무인 로봇들만 봐도 귀 농장의 담뱃잎 품질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습니다."

"로봇하고 담뱃잎 품질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인력을 대체하는 것뿐이죠."

"그, 그렇군요."

"우리 농장의 비밀은 바로 특별한 비료입니다. 농삿밥 먹는 사람들은다 알죠. 카길, 팟디서플라이 같은 글로벌 곡물 재벌들도 이미 아는 걸요."

"그 특별한 비료는 역시 비밀이겠죠?"

"비밀일 것까지야. 중국 황비버섯농장에서도 이미 쓰이고 있는 비료인 걸요. 생장 속도와 수확량을 비약적으로 높여줍니다."

"안살린 왕자님이 귀하의 고향에서 개발했다는 그 비료 구루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연관이 깊죠. 하지만 시판을 하지는 않습니다."

됐다. 이제 자연스러워졌다.

침착함을 되찾은 윌링턴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수영과 대화를 나누었다.

"기회가 된다면 새로 이사 간다는 농장도 한번 보고 싶군요."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하죠. 오늘 당장 보러 가실래요?"

"헛, 그게 가능합니까?"

"네, 관광 코스를 살짝 변경하는 것 정도야. 내일 아침 코스 예정지는 제가 이따가 밤에 픽업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그럼 가실까요?"

이미 담배 농장은 충분히 둘러볼만큼 둘러봤다.

눈치 봐서 몰래 담뱃잎을 채취하려 했는데, 몇 개 따서 가져가도 된다고 시원스럽게 허락하는 바람에 살짝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쉽다고?'

설마 이 농장 담뱃잎을 의심한 게 처음부터 실책이었을까?

시원시원하게 일이 풀리자 윌링턴은 그런 걱정마저 들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최대한 철저히 훑고 돌아간다.'

그래야 출장비 승인을 내준 부국장한테 깨지더라도 할 말이 생길 테니까.

윌링턴 일행은 멋진 캠핑카의 자태를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말 멋진 캠핑카입니다! 저도 이런 캠핑카를 갖는 게 꿈이었는데요!"

"와우, 진짜 멋져요. 이거 독일의 퍼포먼스 모델 아닌가요?"

"후후, 타시죠."

조수석에 앉은 윌링턴은 속으로 생각했다.

'농장이 정말 부유하긴 한가 보군. 농장 픽업트럭으로 이런 캠핑카를 쓰다니. 하긴, 수익이 천억 불 이상이라고 했지?'

윌링턴은 정확한 농장의 매출은 몰랐다.

그냥 달러 천억대 이상이라고만 어렴풋하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개인은행에 달러로 1조 2,000억에 달하는 돈을 넣어두고 있다는 충격이 워낙 컸다.

"여기서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다행이군요."

"원래 처음에 농장이 자리 잡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땅에서 문화재가 나와서 발굴 때문에 이사를 해야 했죠."

"저런, 보상은 받으셨습니까?"

"달러로 몇십억 불 정도 되는 보상금을 받긴 했죠. 하지만 농장을 새로 짓는 동안 농사를 못 지어서 손해가 컸습니다."

"예? 수십억 불을 받았는데도 오히려 손해가 났다는 말씀입니까?"

윌링턴은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의구심을 품었다.

'설마 마약 작물을 전부 폐기해야 해서 손해가 컸다는 것일까?'

"아, 다 왔습니다. 저기 원통형 빌딩이 보이시죠?"

"……!"

윌링턴 일행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커다란 원통형 빌딩이 다수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핵발전소 외벽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거대했다.

래플의 사옥 래플파크의 직경도 저 건물에 비하면 무척 초라할 것이다.

"원래 농장으로 썼던 산뿐만 아니라 주변 토지도 많이 사들여서 크게 지어봤습니다. 친환경 미래형 무인 농장, 테라리움 ver2.0입니다. 높이는 300미터죠."

"높이가 300미터라고요?"

멀리서 봤을 땐 원통은 상당히 납작해 보였다.

그런데도 높이가 300미터라면, 직경은 대체 얼마나 넓다는 말인가?

심지어 한 채도 아니고 여러 채를 동시에 지어 놨다.

"껍데기는 다 만들었고, 이제 내부관개시설을 정비 중이죠. 지금 농장에서 키우는 작물들은 조만간 저 농장으로 전부 옮길 겁니다."

"아, 작물을 아예 통째로 옮기는 겁니까?"

"다 폐기할 수도 없고, 내년까지 이사를 미룰 수도 없으니까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테라리움 2.0이 지어지자마자 곧바로 작물을 생산하면 누가 봐도 이상 하니까.

최소한의 눈가림은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생산량, 생산 속도가 비정상이라며 사방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농식품부는 감히 수영농장의 비밀을 끝까지 파헤칠 용기가 없었다.

한 번씩 농장 실사를 와서 잘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둘러보거나 샘플을 채취하는 것으로 끝낸다.

"빌딩이 꽤 크지만, 내부 구조는 의외로 간단해서 건설 기간은 오래 안 걸렸습니다. 전기와 물만 들어오면 끝이거든요. 어차피 일은 로봇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꽤 큰 정도가 아닌 거 같습니다만……."

가까이 갈수록 윌링턴은 더욱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이보다 더 높은 건물은 얼마든지 있다.

300미터는 세계적인 마천루 경쟁에 감히 끼지도 못하는 높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양의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한 단일 구조물을 찾아볼 수 있을까?

'정말 엄청 크군.'

윌링턴 일행은 테라리움 2.0을 둘러본 뒤, 다시 캠핑카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원래 그들이 오늘 저녁에 도착해야 했을 장소, 바로 수영펜션이었다.

경기도에서 해운대까지 몇 시간을 달렸지만, 하수영은 여전히 쾌활했다.

윌링턴은 새삼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직장 일을 이렇게 자기 일처럼 즐겁게, 열심히 하는 청년이라니…….'

"우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야근을 하게 되셨군요."

"괜찮습니다. 제 손님인데 주인으로서 당연히 맞이해야지요."

"……제 손님?"

순간 윌링턴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하수영이 아차 싶어서 말했다.

"이런, 여태 제 이름도 밝히지 않았군요.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

"제가 바로 농장 주인입니다."

"아, 아까는 분명히 관리직원이라고……."

"힘숨놀이, 아니, 부담스러워하실 거 같아서 그렇게 소개를 했었습니다. 짧게 이야기할 줄 알았죠. 다시 정식으로 소개한다는 걸 깜박했습니다."

윌링턴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정말 수영농장 오너 미스터 하수영입니까?"

"Yes."

그 말과 함께 하수영은 작업용 고글을 벗어서 얼굴을 보여주었다.

틀림없다.

미리 사진으로 숙지했던 하수영의 얼굴과 매우 흡사하다.

가볍게 웃고 떠들던 직원들도 뜻밖의 상황에 얼굴이 경직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미스터 하수영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직접 에스코트했다고?'

'우리가 농장을 방문한 것을 미리 알고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

'이제 와서 뒤늦게 정체를 밝히는 이유가…… 설마 우리에게 보내는 어떤 메시지?"

일행은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상황이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지나친 우연은 곧 작위적인 연출이나 마찬가지.

한국의 지하경제를 주무르는 하수영이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대놓고 나타난 게 아닐까?

'설마 담배 농장을 팔아버리라느니, 얼굴에 칼이 있다느니, 했던 것도?'

'우리가 처음부터 FBI 소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건가?'

'지금 이대로 가는 게…… 과연 안전한가?'

윌링턴은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에 머리끝까지 푹 잠겨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아까 말했던…… 수사관을 하면 잘될 거라는 말씀은 대체……."

"엥,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요? 말그대로 농사보다는 수사관을 지으셔야 할 팔자로 보여서요."

"팔자?"

"대충 운명, 숙명이란 뜻입니다. 세분은 농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농사지으시면 굶어 죽을 겁니다."

"……."

"사실 고민입니다."

하수영은 잠시 윌링턴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이 말을 꺼내도 좋을지 몰라서요. 처음부터 내내 망설였었죠."

조금 착 가라앉은 음성.

윌링턴의 성대가 긴장돼서 꿀꺽였다.

부하 직원들도 손에 땀을 쥔 채, 여차하면 그를 제압할 준비를 했다.

자신들은 셋, 그리고 상대는 하나.

고속주행 중이긴 하지만, 여차하면 차를 세우고 한 후 제압하면 그만이다.

"세 분, 만약 마피아 같은 암흑가 영역에 몸을 담았으면 지금쯤 벼락부자가 됐을 겁니다. 아, 사실 지금도 전혀 늦지는 않았어요."

"……!"

"칼의 운이라는 게 그래요. 명예롭게 써봐야 결국 공무원, 하지만 명예를 포기하면 큰돈을 만지죠. 마피아처럼요. 그런데 마피아는 인간성을 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

윌링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지금 하수영이 자신을 놀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FBI라는 걸 알고 떠보는 건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아! 그렇네! 마피아에 맞서는 마피아를 해도 큰돈은 벌겠구나! 이걸 응용하면 명예도 챙기고 돈도 챙길수 있겠어요!"

"무슨 의미입니까?"

"저기 세 분, 담배 농사 때려치우고 혹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일해보실 생각 없나요?"

"카지노요?"

일행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갑자기 웬 카지노?

"제가 최근에 콜롬보 패밀리한테서 카지노 하나를 뺏었는데, 아무래도 든든한 칼 몇 자루가 지켜주면 좋죠. 생각 없으세요? 담배 농사하면 무조건 망한다니까요."

윌링턴은 순간 생각했다.

'우리가 FBI라는 것을 알고, 지금 회유를 하는 것인가?'

"급여는 지금 받으시는 것의 다섯배를 드리죠."

"의료보험 제공은 어떻게 됩니까?"

직원 한 명이 무심코 물었다가 눈총을 받았지만, 하수영은 쾌활하게 대답했다.

"역시 미국은 직장 의료보험이 중요하죠?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캘리포니아에 종합병원을 갖고 있거든요."

"……!"

"본인과 가족들은 어떤 치료나 수술, 약도 모두 무료입니다."

윌링턴은 직원들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거…… 포섭 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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