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60화
211장 끊을 수 없는 것 (3)
FBI 신분증이 살인죄의 면죄부는 아니다.
하지만 윌링턴의 혐의를 벗기는 데는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수상했던 것은 단 하나, 살인 현장을 보고서도 지나치게 침착했던 태도였으니.
덕분에 대화가 급물살을 탔다.
"카지노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일 뿐입니다."
"마약을 권하긴 했지만, 저는 하는 척만 하고 버렸습니다."
"당장 저부터가 FBI에서 마약 수사를 맡고 있는데, 왜 마약을 하겠습니까?"
패튼과 다른 여자가 정신을 차리자 혐의는 더 쉽게 벗을 수 있었다.
둘은 윌링턴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진술했다.
CCTV에 찍힌, 객실 체류 시간상윌링턴이 살인에 관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윌링턴은 모든 혐의를 벗었다.
"변호사 없이는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겠소."
윌링턴의 무혐의를 증언한 뒤, 패튼은 입을 완전히 다물었다.
"저 남자가 섹스하다가 깨진 술병으로 목을 찌르는 걸 봤어요. 저는 약에 너무 취해서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살아남은 여자의 증언이었다.
패튼은 마약소지 및 복용, 살인혐의로 체포되었고, 여자 역시 복용혐의로 체포되었다.
하수영이 윌링턴, 임탁정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만들었다.
후배 검사인 고윤무도 참가했고, 셋은 화이트 스카치에 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스위트룸에 있던 마약은 현재 검찰이 증거물로 압류한 상황.
윌링턴은 임탁정을 위해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
"카지노 측에 마약 판매책이 있소. 하지만 패튼은 입을 열지 않을 거요."
"미스터 윌링턴, 당신도 그 마약판매책과 접촉을 했습니까?"
"물론이오. 하지만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해둡시다."
고윤무가 그 말에 눈을 빛냈다.
"혹시 위장 접근을 해주시겠습니까?"
"원한다면 해드리지요. 하지만 한국 수사팀에서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는 게 유리하지 않겠소?"
카지노에 숨어 있는 마약 판매책은 지금쯤 불안할 것이다.
패튼과 윌링턴이 어디까지 불었는지, 검찰에서 자신들을 주목하고 있는지, 등등.
"내가 접선한 것은 말단 꼬리책에 불과합니다. 그냥 모르는 것으로 해둡시다."
"네, 하지만 누구인지 정보는 주십시오."
"물론이오."
윌링턴은 자신이 접촉했던 카지노직원의 인상착의, 이름 등을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대충 정보 교환이 끝난 뒤, 하수영이 비로소 끼어들었다.
"아버지 농장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신다면서요?"
"죄송합니다."
"왜 거짓말을 하신 거죠?"
"……."
윌링턴의 표정이 흐려졌다.
"두 분,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고윤무는 그렇게나 만나고 싶어 했던 하수영과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임탁정의 눈짓에 따라 잠자코 일어나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윌링턴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꺼냈다.
"담뱃잎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담뱃잎?"
"귀 농장에서 알트리아 미국 본사에 납품하는 담뱃잎이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해서 그걸 조사하러 온 겁니다."
하수영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
"중독 억제 성질을 말씀하시는군요."
순간 윌링턴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도 미국에 열어둔 눈과 귀가 있습니다."
"……."
"물론 100% 확신을 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제 100%가 된 거 같네요. 이렇게 FBI 요원이 직접 오셨으니 말입니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밀물이 밀려 들 듯이 대화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담배로만 접근한다면 그냥 좀 더 맛이 좋은 평범한 담배일 뿐입니다. 마약과 무관한 흡연자들 입장에서는 달라질 게 없죠."
"다만 마약 복용자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우리 농장에서 자란 잎의 니코틴성분이 마약의 중독 성분을 몰아내는 거 같습니다."
윌링턴은 신중한 표정으로 듣다가 말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좋은 마약 치료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마약을 끊게 해줍니다. 이미 망가진 몸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요."
"그래도 마약보다는 담배가 만 배 이상 낫습니다. 제가 애연가라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농장을 견학하는 척하면서 조사를 하셨던 거군요."
"그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카지노 보안을 맡아 주시죠."
"……예?"
"말로만 죄송하다고 하지 마시고 카지노 보안을 맡아 주세요."
"회장님. 그, 그건……."
"아니, 요즘 세상에 입으로만 때우는 법이 없다는 건 FBI니까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윌링턴은 당황했다.
그게 FBI 소속인 것과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기습 스카웃 재공격에, 윌링턴은 엘릭서 드링크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
마약살해 사건은 겉으로는 대강 수습되는 듯이 보였다.
고윤무 수사팀이 의도적으로 살해 자체에만 사건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마약이 어디에서 났는지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피의자가 본국에서 숨겨온 것으로 추정되며, 어떻게 세관을 통과했는지에 관해서는 깊은 조사가 뒤따를 예정입니다.
스치듯이 지나간 짤막한 경과 발표.
아마도 카지노를 중심으로 파리를 틀고 있을 마약 세력들을 안심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리라.
윌링턴도 여기에 한몫 거들었다.
"룸서비스 왔습니다."
객실에 들어온 직원은 윌링턴이 한번 봤던 얼굴이었다.
패튼의 소개로 만난, 마약 판매책.
윌링턴은 일부러 같이 투숙한 부하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판매책을 안심시키기 위함이다.
'쟤는 아무것도 몰라. 난 쟤 모르게 너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거야.'
라는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하여.
"전에 샀던 건 잘 처분했소. 우리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합시다. 나도 재수가 없어서 큰일 날 뻔했으니."
그렇게 말하자 직원의 얼굴 한쪽에 묘한 미소가 피어났다.
"고객님,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그럼 더 잘된 거요."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
윌링턴은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어서 직원을 내보냈다.
'나도 재수 된통 없었다. 그러니 서로 입 다물자. 알았지?'
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했고, 상대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다.
직원이 나가자 부하가 눈빛을 빛내며 필담으로 질문했다.
-그놈이죠?
-그래.
-확인을 하러 왔나 보군요.
-잘 말했으니 이제 신경을 끌 거다. 그래도 도청은 조심해.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본고장 호텔 한식은 어떤 맛일지 항상 궁금했는데 이렇게 먹어보게 되네요. 근데 이거 얼마입니까?"
"1인분에 150달러 정도 하는 거 같던데."
"아니, 무슨 밥 하나에 150달러나 한다고요? 역시 호텔 카지노는 바가 지네요, 바가지야."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둘은 식사 카트를 확인했다.
역시 도청기가 있었다.
부하는 입은 쉬지 않으면서, 도청기의 생김새를 자세히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둘은 실없는 이야기 위주로 나누었다.
야구, 관광, 식도락, 한국 여자들 이야기.
"그나저나 과장님 혐의 다 벗은 건 맞습니까?"
"걱정 마."
"혹시 같이 마약하신 건 아니죠?"
"안 했어. 그놈이 몇 번 권하긴 했는데 그냥 하는 척만 했다."
도청하는 놈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으휴, 참 재수가 없었네요. 어제도 과장님 악몽 꾸셨잖아요."
"그 꼴을 눈앞에서 봤으니까. 복무경험이 그나마 도움이 됐어. 해외파견 근무에서는 더 심한 꼴도 여러번 봤었거든."
"혐의 벗었으니까 아무튼 이제 바로 돌아갑시다. 여긴 더 있고 싶지 않네요."
"내일 바로 체크아웃 하자고."
식사를 마치고 수거 요청을 하자, 아까 그 직원이 다시 들어와서 카트를 수거해 갔다.
윌링턴은 이번에는 아예 눈빛 교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철저히 거리를 두는 태도가 오히려 직원에게 더 큰 안도를 주었다.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조금 더 머무르자고, 화이트 스카치 관련 정보는 최대한 얻어가야지."
"미국에서도 유사품이 유통될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이미 유통되고 있을 거야. 엘릭서 드링크를 농축해서 아무 마약에나 섞기만 하면 되는 거잖나."
값이 비싸니만큼 아마도 상류층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을 것이다.
가난한 히피들이 살 만한 마약은 아니다.
1회 투여분이 2,000달러 이상은 갈 테니.
***
고윤무 수사팀은 라테드림타워 호텔 카지노를 은밀히 포위한 채 조사했다.
수십 명 이상의 형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대로 잠복근무를 했다.
그들 대부분은 제주경찰이 아닌, 타지역에서 파견 나온 광역수사대 형사들이었다.
화이트 스카치 수사 경험 역시 풍부했다.
"화이트 스카치를 조직적으로 판매하는 걸 보면 물주가 보통 돈이 많은 게 아닌가 본데."
"에이, 그래도 라테 진세주만큼은 아닐 거야."
"5대 재벌 딸이 마약 유통에 손을 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근데 진세주 지금 어디 있지?"
"집유로 풀려나서 외국에 있잖아."
"역시 재벌 딸이라는 신분이 좋긴 좋아. 우리 같은 놈들이 그런 짓 했다가는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도 못할 텐데."
"우리 같은 놈들은 애초에 그런 사이즈 큰 범죄는 손도 못 대. 자기 남편 제약회사 시설까지 빌려서 마약을 제조했는데 말이지."
윌링턴이 제보한 카지노 직원.
잠복 수사는 그가 누구를 만나는지를 파악하는 것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윤무 검사님, 아무래도 이놈들, 점조직 체제는 아닌 거 같습니다."
"그래요? 간도 크네, 이놈들."
"너무 값비싼 마약이라서 쓰고 버리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하는 게 어려웠을 겁니다."
"하긴, 가격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군요. 그래서 카지노 위주로 공급을 했다. 이거고……."
"네, 철저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관광객들이 가장 큰손입니다."
"검출이 안 되는 마약이니까 그렇겠죠."
화이트 스카치의 또 다른 특징.
체내에서 급속히 완전분해 되기에 마약 검출이 매우 어렵다.
살인으로 체포된 패튼만 해도 마약검출이 음성으로 나와서 애를 먹고 있었다.
심지어 현장에 있던 여자도 마약이 아니라 술에 취했다고 증언을 번복하고 있었다.
변호사 역시 만취로 인한 과실치사라고 주장을 하고 있었고.
-마약을 소지했던 건 맞는데, 먹진 않았어.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으니, 고윤무 수사팀으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노릇.
돈 많은 놈이라서 자신과 여자까지 국내 초대형 로펌을 아낌없이 팍팍썼다.
"점조직 형태가 아니라 정예 운영형태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 일단 몸통을 찾아내는 게 더 쉬울 테니까."
화이트 스카치가 검출이 쉽지 않다는 것은 법원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패튼과 그 여자가 복용을 했다는 증거는 안 되는 게 문제다.
'몸통을 어서 잡아내야…….'
"검사님, 지금 추가로 들어온 정보입니다. 몸통으로 보이는 놈이 나왔습니다. 판매책이 아지트로 쓰는 게스트하우스에 출입했습니다."
"그래?"
"예, 장애인으로 보이는데 수행원도 여럿 거느린 걸 보면 몸통 중 핵심 인물이 맞는 거 같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네, 휠체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여기 사진이 있습니다."
고윤무 검사는 얼른 사진을 확인했다.
확실히 멀리서 봐도 상당한 거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젊다.
이십대 중반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다.
고윤무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꺼두었던 프리덤 기능을 활성화했다.
"프리덤, 이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찾아봐라."
프리덤은 묻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라테그룹 회장의 손주, 진석현입니다.
"뭐? 라테그룹 손주라고?"
-네, 람보르기니를 몰고 하수영 의원님 캠핑카와 추돌한 이후 하반신 불구가 되어 현재 서해서울병원에서 재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