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61화
211장 끊을 수 없는 것 (4)
고윤무는 생각했다.
'불구 때문에 마약에 의존하게 됐나? 그러다가 판매까지 손을 대게 되고?'
정황을 보면 진석현이 화이트 스카치 유통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진철진 회장, 그 양반도 참 자손복이 없군. 딸에 이어서 장손까지 마약에 손을 대다니.'
그것도 단순 복용한 게 아니라, 직접 제조, 판매까지 도맡아 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자식 농사는 대흉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수사팀도 눈이 벌게졌다.
"검사님, 이자가 라테 회장 손주라고요?"
"이거 잘못 건드렸다가는 우리 지검 전체가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하필 라테 회장 손주라니……."
수사팀들은 진세주 때문에 라테그룹이 큰 곤욕을 치른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주가 같은 일을 벌이다니.
진철진 회장이 얼마나 노발대발할지, 벌써부터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만약 그 분노가 엉뚱하게 우리한테도 튄다면…….'
'이거 지금이라도 수사 접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재벌이 관련된 수사는 사양하고 싶은 게 평범한 수사관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범죄를 처단하는 게 사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목숨은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자세히 조사해 봅시다. 먼저 서해병원에 한 번 알아봐요. 진석현이가 언제 병원을 빠져나왔는지부터 시작해서 전부!"
"네, 검사님."
수사관들은 죽을 것 같은 표정이 돼서 그렇게 대답했다.
***
진석현은 본래 음주운전은 했어도, 마약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주변에서 다들 마약을 한 번씩 했었지만, 그는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몸만 망가지는 걸 뭐하러 해? 잠깐 기분 좋자고?"
"몸 망가지면 이 좋은 것들을 더 이상 못 누리는데 미쳤다고 약을 하냐?"
"차라리 술을 진탕 마시는 게 낫지."
그랬던 그는 100% 본인과실 교통사고로 인해 하반신 불구가 되며, 정신이 망가져 갔다.
아무리 술을 진탕 마셔도 그때뿐, 움직이지 않는 하반신으로 인한 분노는 알콜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는 술에 진탕 취해도 상실감이 더 커지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병원에서 재활훈련을 시작하면서 그런 상실감과 분노는 더욱 커졌다.
"어차피 아무리 애써봐야 발가락 하나 아무 느낌이 없는데, 땀 흘리면서 이딴 건 뭐하러 하냐고!"
움직일 수 없는 것보다 더 그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성불구가 되었다는 것.
원래 여자를 좋아했고 혈기가 넘치는 젊은 나이.
하루도 쉬지 않고 여자와 놀았던 과거가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혼자 사는 오피스텔로 같이 놀았던 여자들을 부르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망망대해에서 갈증에 시달리며 표류하는 기분이다.
목이 너무 마른데, 마실 거라고는 갈증을 더욱 진하게 만드는 소금물 뿐.
그리하여 그는 마약에 손을 대게 되었다.
그래도 몸이 망가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잊지 않은 터라, 화이트 스카치에 손을 댔다.
마약은 그에게 놀라운 경험을 안겨 주었다.
"후아…… 후……. 아……."
데리고 놀았던 여자를 불러다가 같이 마약을 하고 즐겼는데, 효과가 말도 안 되게 끝내줬다.
불구로 인해 진짜 배출을 하지 못하는데도,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한 쾌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씨발…… 약이 이렇게 좋은 거였나."
불구 때문에 육체 결합이 불가능한데도 이 정도라면, 몸이 정상이었으면 대체 어느 정도라는 것일까?
잠깐 그런 상실감이 들긴 했지만, 진석현은 곧 멘탈을 되찾았다.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그는 그렇게 화이트 스카치를 깊이 탐닉했다.
효과는 끝내줬고, 몸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정말이었다.
매일 마약을 해도 몸이 거뜬했다.
마약 효과에 젖은 채 잠이 들었다.
가 깨면, 다음 날 무척 상쾌한 컨디션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렇게 진석현은 점점 화이트 스카치를 탐하게 되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석현아, 이거 더 구할 수가 없어."
"아, 왜 못 구해? 내가 돈 준다잖아, 돈!"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한계가 있어. 화이트 스카치 1정 만드는 데 엘릭서 드링크 150병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거 1병에 2만 원도 안 한다면서?"
"문제는 가격이 아니야. 대량 구매가 엄청 힘들어."
"씨발. 그럼 그동안은 어떻게 조달했는데?"
"온라인 구매 계정 여러 개를 분산해서 조금씩 사 모았던 거지. 근데 더 많이 조달하려면 지금 있는 계정으로는 안 돼."
엘릭서 드링크 개인 판매량은 1주일에 4병으로 제한이 되어 있었다.
도매업자로 위장해서 대량 구매를 하려고 해도, 프라임웰빙은 도매업자를 거치지 않고 소매점에 직통으로 납품하고 있었다.
과거 진세주가 제약업체까지 이용해서 대량으로 화이트 스카치를 만들었던 전적 때문이다.
"고모라는 년이 진짜 도움 되는 거 하나 없네. 할 거면 제대로 해서 걸리지나 말던가."
고모가 계속 안 걸리고 잘했으면 약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형. 내가 돈 대줄 테니까 서울에 가게 몇 개 좀 열자."
"가게?"
"도매업자는 안 낀다며? 그럼 우리가 소매업체 차리면 되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는 개인 수량까지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진석현은 서울 위주로 큰 소매점을 여러 개 열었다.
대형편의점, 종합마트, 슈퍼마켓, 창고마트 등 다양한 형태로 매장을 오픈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직원을 고용하고, 제대로 매장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창고에 한 번 들어간 엘릭서 드링크가 진열대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
"또 라테입니까?"
임탁정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하수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석현 그놈이 화이트 스카치에 단단히 의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정황은 확실한 거죠?"
"네. 놈이 제주도 화이트 스카치 운반책의 머리입니다."
"스물 조금 넘은 놈이 벌써부터 마약총책이라니. 라테그룹의 미래가 아주 밝군요."
"엘릭서 드링크를 어떻게 들키지 않고 확보하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임탁정은 진석현이 오프라인 소매점 다수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래서 의원님이 도움을 조금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프라임웰빙 장부를 전부 뒤져서라도 수상한 구매 움직임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죠."
"정말 감사합니다."
"뭐, 제가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직원들이 할 거니까 그렇게 민망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임탁정은 멋쩍은 웃음을 머금었다.
"머리가 누군지 알아냈는데 언제 덮치실 겁니까?"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지금 체포해 봤자 증거가 부족하면 저쪽에게 우리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만 알리는 꼴이니까요."
"혹시 진세주가 뒤에 있지는 않겠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습니다. 화이트 스카치 맛을 잊지 못했다면 진석현을 움직여서 공급을 받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진철진이 보낸 사람들로부터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으니, 화이트 스카치를 얻으려면 다른 이를 움직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석현 단독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임탁정은 가능성을 전부 활짝 열어두고 사건을 대하고 있었다.
하수영은 반대쪽에 앉은 윌링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윌링턴, 혹시 이 사건에 관심 있어요?"
"관심이야 넘치도록 있습니다."
"그럼 한 번 임 검사님하고 같이 움직여 볼래요? FBI 수사협조는 제가 손을 써볼게요. 임 검사님, 가능하죠?"
"FBI 마약 베테랑이 도와준다면 저야 감사하죠."
임탁정과 윌링턴은 둘은 끈끈한 눈빛을 다시 한번 교환했다.
인종과 국경을 넘어선, 마약에 대한 투철한 적대의식을 공유했다.
'마약을 미워하는 수사관은 …….'
'언제나 옳지.'
평생 일면식도 없이 살아온 사이지만, 똑같이 마약범을 증오한다는 점에서 둘은 친형제보다 더 끈끈한 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수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순없죠. 저도 검사님을 적극 돕겠습니다."
"의원님?"
"미끼가 필요하잖아요? 졸부 2세행세는 제가 누구보다 자신 있으니, 저만 믿어보세요."
하수영은 가슴을 팡팡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라테드림타워 카지노, 제가 한 번 다 털어보겠습니다."
***
'서울로 보직을 옮기고 싶다.'
'기왕이면 대검 핵심수사부서로 들어가고 싶다.'
'그러려면 이 사건을 잘 해결해야 해.'
고윤무는 어느 때보다 각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는 재외동포 관광객으로 위장해서 카지노를 직접 방문하는 등, 누구보다 수사에 열심이었다.
'오늘부터 하수영 의원님도 카지노에 들어온다고 하셨는데.'
검경과 무관하면서 수사에 이렇게까지 적극 도움을 주시다니.
'엘릭서 드링크가 불순한 방법으로 쓰이는 것에 의원님도 분노가 크신 거겠지.'
카지노를 열심히 탐색하는 것은 오늘부터 나올 하수영의 눈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분장을 한다고 하셨으니, 쉽게 알아보기는 힘들겠지.'
하수영은 국내 유명인사다.
대놓고 다니면 아무래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호텔 직원들처럼 유명인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특히 더더욱.
'아마 철저히 분장을 하실 테니, 먼저 말씀해주시기 전에는 내가 알아보기 힘들겠어. 근데 나를 알아봐주실까?'
자신은 큰 변장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얼굴을 아는 지인은 바로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큰 회중시계를 차고 계시다고 하셨으니까, 그것으로 알아보면 될 텐데…….'
물론 제주지검장 얼굴도 모르는 카지노 직원들이야 자신이 누군지 못알아보겠지만……
'어? 뭐지? 뭔데 저리 소란스럽지?"
불현듯 한쪽에서 떠들썩한 환호성이 들렸고, 고윤무는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상당한 사람들이 모여서 인파를 이룬 채 환호하고 있었다.
백인, 중국인, 일본인, 남녀 가릴 것 없이.
"HAHAHA! Today! I! Buy! This! Casino!"
아주 크고 흰 코트를 두른 남자였다.
코트가 하도 크고 앞을 완전히 열었다 보니, 언뜻 보기에는 코트가 아니라 망토처럼 보일 정도였다.
빳빳하게 세운 목깃은 붉고 토실토실한 털이 풍성하게 달려 있었고, 열 손가락에는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촘촘하게 끼고 있었다.
"이봐! 딜러! 샴페인 안 가져오고 뭐해! 빨리빨리 가져오란 말이야!"
"네, 고객님! 바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빨리 빨리 룰렛 돌리라고! 지금 내 운빨이 팍팍 들어왔는데, 일부러 지금 게임 늦게 진행하는 거지!"
"아, 아닙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고객 여러분들, 원하시는 판 위에 베팅을 해주십시오."
"난 여기! 올- 인한다!"
고윤무는 낯선 손님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어도, 영어도 아니었으니까.
'주, 중국어?'
중국인 졸부 관광객은 천박해 보이는 억양과 톤으로 시끄럽게 떠들어 대며, 샴페인을 마치 물처럼 연거푸마셨다.
고윤무를 혀를 찼다.
'쯧쯧. 하여튼 중국인 관광객들이란……. 어, 잠깐만?'
순간 졸부 관광객이 몸을 돌렸고, 고윤무는 볼 수 있었다.
망토처럼 보이는 코트 안쪽으로 치렁치렁하게, 보란 듯이 늘어뜨린 두툼한 황금색 회중시계를.
그는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의원님? 아니, 분장 상태가 너무 완벽…… 아니아니, 그것보다 저렇게 중국어를 잘하신다고?'
중국어는 모르지만, 다른 손님들과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걸 보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지, 진짜 의원님 맞아?'
겉보기에는 완벽한 중국인 졸부 2세 관광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