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66화 (866/1,270)

프랜차이즈 갓 866화

212장 중국 졸부가 무섭다 (3)

통화 내용은 진석현도 들었다.

당연히 그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패닉에 빠져 있던 기현태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찰이 꼬리를 문 거 같아. 전부 다 털린 거 같다는데?"

"X발!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경찰이 그걸 알고 쳐들어와!"

"미, 미안하다."

기현태는 '그러게 너무 대량으로 구매하면 위험하다고 했잖아.'라는 반박을 가까스로 삼켰다.

"X발! X발! X발! X발! X바알!"

진석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구 욕설을 내뱉으며 고함을 질렀다.

들끓는 가슴의 화기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박살이 나다니.

'X발, 한국에서 총도 아무렇지 않게 갖고 다니는 놈들인데, 납기를 어겼다가는…….'

곱게 죽는 것도 힘들 것이다.

상황을 직시한 진석현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국제마피아와 손잡은 중국 졸부 2세 손에 암살당하게 생겼다.

그때였다.

"서, 석현아! 저기!"

"X발! X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셋을 선두로, 사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리는 이쪽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석현은 가장 선두에 선 남자의 얼굴을 바로 알아봤다.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임탁정.

-이 얼굴을 단단히 기억해 두고!

혹여 우연히 마주치면 껌 하나라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조부인 진철진 회장이 가족들만 모아놓은 자리에서 인물 사진까지 보여주며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얼굴인데, 모를 수가 있을까.

고모가 한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고, 라테그룹의 주가를 폭락해서 가격방어하느라 2,000억 원을 날려 먹게 만든.

서울에서 제주지검으로 좌천된, 임탁정 검사.

그가 눈을 번들거리면서 휠체어 앞까지 다가와서 섰다.

"진석현 씨. 당신을 마약 제조 및 유통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빠른 운율로 미란다 원칙까지 읊고 난 임탁정은 손수 수갑을 들어 진석현의 두 팔에 채웠다.

차가운 금속이 손목에 닿는 느낌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지금이 차라리 꿈이 아닌가 싶었다.

수갑을 채우며, 임탁정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그리고 속삭였다.

"얼른 할아버지한테 쪼르르 가서 일러야지?"

***

모든 증거는 완벽했다.

68개의 매장은 화이트 스카치를 제조하기 위해서 운영되는 위장 매장이었다.

한 번 들어온 엘릭서 드링크는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지 않았다.

모두 조작된 장부였다.

경찰이 일제히 현장을 덮쳤을 때, 현장에서는 한창 화이트 스카치를 제조하는 중이었다.

이미 완성된 화이트 스카치가 가득 포장돼 있었고, 원재료 마약까지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라테드림타워 카지노 역시 무사할 수 없었다.

카지노에 들이닥친 형사들은 카지 노에서 마약 밀매를 했던 직원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뿐만 아니라 카지노 비밀 금고에 숨겨져 있던 화이트 스카치도 발견했다.

임탁정은 후배인 고윤무에게 기꺼이 기자 회견을 양보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윤무는 뿌듯한 마음으로 발표를 했다.

"라테월드타워 카지노는 피의자 진석현의 마약 주요 유통기지였습니다. 카지노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은밀히 마약을 유통했습니다."

"엘릭서 드링크를 합법적으로 대량 확보하기 위해 서울에서 68개의 대형 마트를 설립하고 실제 장사까지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우리 수사팀은 4만 개가 넘어가는 화이트 스카치를 확보했습니다. 시중가로 무려 800억에 달하는 양입니다."

추정가는 진석현이 받은 300만 원이 아닌, 시가인 200만 원으로 계산해서 발표했다.

검찰은 '중국 졸부 2세'의 존재를 일단 모르고 있어야 하니까.

진석현은 대검이 아닌, 제주지검포토라인에 서게 되었다.

대검에서 진석현을 가로채려고 했지만, 임탁정이 체포한 뒤 재빠르게 제주도로 보내 버린 것이다.

덕분에 기자들은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제주지검까지 내려와서 진을 쳤다.

휠체어에 탄 진석현은 얼굴을 가리지도 못한 채,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원래 그는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하지만…….

'재벌 직계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얼굴을 감춰? 그게 무슨 개망신이냐!'

조부가 크게 노여워했고, 부친 역시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가는 어떤 경우에도 검찰에 출두할 때 얼굴을 감추지 않는다.

지은 죄가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범죄자들처럼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버리면, 법원과 언론에서도 편을 들어주기 힘들다.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얼굴을 저렇게 꽁꽁 싸맨 거지.'라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화이트 스카치로 벌어들인 수익이 천억 원대 이상이라는 말이 사실입니까?"

"엘릭서 드링크 대량 확보를 위해서 위장용 대형마트 다수를 운영하셨다면서요?"

"화이트 스카치로 집유를 받은 친고모와 관련이 있습니까?"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이쪽을 좀 봐주세요!"

진석현은 굳은 얼굴로,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기자를 둘러보았다.

수십 명 정도가 아니라 수백 명 이상이 몰려든 것만 같다.

마치 뼈다귀 하나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굶주린 하이에나 떼처럼.

바로 그때였다.

"……!"

진석현은 눈을 부릅떴다.

쉴 새 없이 마이크를 들이대며 외치는 기자들의 위로, 덩치 큰 흑인의 얼굴이 보였다.

어찌나 키가 컸는지, 흑인은 기자들의 무리 뒤에 있으면서도 얼굴이 똑바로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흑인이 씩 하고 웃었고, 진석현은 소름이 끼쳤다.

시선을 피하려던 그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X발, X발, X발!'

다른 방향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키 큰 백인이 보였다.

얼굴이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히 중국 졸부 2세가 거느리던 부하가 틀림없으리라.

'왜 거래를 이행하지 않는 거냐?'

놈들의 말 없는 미소는 마치 그런 협박으로 들렸다.

경찰에 걸려서 이렇게 되었다는 변명은 아무짝에도 소용없으리라.

졸부 2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것만 중요시할 테니까.

"한 말씀만 해주세요!"

"제발 한 말씀만!"

아득한 머릿속으로, 기자들의 멀어지는 외침만이 울렸다.

***

라테그룹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진철진 회장은 경영진 앞에서 어마어마한 분노를 터뜨렸다.

특히 진석현의 부친인 장남, 진태호에 대한 질책이 엄청났다.

"도대체 애새끼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저 모양이야! 하나같이 제대로 된 놈들이 없어, 제대로 된 놈들이!"

장남 진태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라테그룹은 장이 한참 멀었는데도 하한선을 맞고 움찔거릴 기미도 없었다.

"김 사장."

"예, 회장님."

"언론에 있는 대로 돈 먹여서 기사 막아."

"그게, 기사를 완전히……."

"누가 싹 내리래? 기사 개수를 최대한 줄이든가, 아니면 최대한 우호적으로 쓰든가 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천지 분간을 못 하는 늙은이로 보이나!"

"죄송합니다. 시행하겠습니다."

진철진은 씩씩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박 사장."

"예, 회장님."

"뭐 좀 터뜨릴 거 없나? 대중들 눈 돌아갈 만한 자극적인 거."

"찾아보겠습니다.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터뜨리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당분간은 연예계 스캔들 사건이 일간지를 도배할 것이다.

정치 쪽 스캔들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하다.

최대한 그쪽에 잘 보여서 어떻게든 타협을 이끌어내야 하는 마당이니..

결국 시선끌기의 희생양은 언제나 그렇듯이 연예인들의 몫.

"그리고…… 임탁정인가 임꺽정인가 하는 그 친구 말이야."

"네, 회장님."

"내가 한 번 보잔다고 전해."

"회장님?"

"자리에 나오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억 준다고 전해. 제안 거절해도 좋으니 나오기만 하면 10억이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후, 그놈도 생각이 있으면 이게 기회라는 건 알겠지."

협상 테이블에 앉기만 하는 조건으로 10억.

그렇다면 수락을 하면 얼마나 큰 대가가 주어질지 본인도 잘 알 것이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세주 고거 때문에 분풀이를 할 게 아니라, 적당히 어르고 달래야 했어……."

진세주는 징역을 살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 나라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룹도 타격을 입었고, 그 분노로 인맥을 써서 놈을 제주지검으로 멀리 보내 버렸다.

대검 내에서도 '감히' 단독으로 재벌을 건드린 놈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에, 좌천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패착이었다.

놈이 더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진석현을 물고 늘어질 동기만 불어넣어준 셈이니.

진석현이 배후에 있는 걸 알고, 옳다구나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더 달려들지 않았을까?

'빌어먹을…….'

진석현은 제주교도소 시설에 구속되었다.

아직까지는 미결수 신분.

귀하신 재벌 3세가 처음으로 겪는 구속 수감 생활, 그것도 하반신 불구로 말할 수조차 없는 불편함을 겪는 동안, 임탁정은 고윤무와 함께 조용히 서울로 향했다.

***

"정말 10억을 준다고 했습니까? 그냥 자리에 나오기만 해도요? 제안을 거절하든 말든?"

"그래. 10억."

고윤무는 거물이 직접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10억이라는 숫자에 흥분해 있었다.

임탁정은 차분히 말했다.

"물론 안 받을 생각이다. 그러니 너도 괜히 들뜨지 마."

"당연하죠. 그걸 받는 순간 약점이 잡히는 건데, 뭐하러 받습니까?"

둘은 돈을 받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다만 10억이라는 차비를 동원하면서까지 진철진 회장이 무슨 제안을 할지가 궁금했다.

진철진 회장이 기다리는 곳은 한적한 교외 별장이었다.

둘은 별장 입구에서 기다리는 경비원들로부터 몸수색을 받았다.

녹음기나 도청기가 없는 걸 확인하자, 경비원들은 핸드폰 반납을 요구했고, 둘도 군말 없이 내주었다.

그렇게 철저한 준비 끝에 겨우 진철진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

"……."

진철진 회장과 임탁정의 조용한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서로 같은 공기를 호흡할 수 없는 원수지간.

분노가 고여 있던 진철진 회장의 눈이 조금씩 풀어졌다.

"진득하니 앉아서 이야기할 사이는 아니겠지. 자네들도 그럴 기분은 아닐 테고."

"말씀하십시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나?"

"그 전에 뭘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는 게 먼저일 듯싶습니다만."

"뭘 원하는지 말해주면, 들어줄 생각은 있고?"

"저울의 균형은 열심히 맞춰보렵니다."

"그렇게 처세 감각 있는 친구가 내 딸을 다짜고짜 그렇게 보내 버렸어?"

"……."

진철진은 잠시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끝내주게. 아직 어린아이고, 세상 무서운 줄 몰라. 게다가 초범이잖은가. 집유로 조용히 풀려나게 도와주게."

"그건 법원에 하실 말씀입니다. 그리고 초범치고는 너무 무거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만."

"1심에서 끝내려면 자네 둘의 협조가 필요해서 하는 말이야."

진철진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거마비로 먼저 50억씩 주겠네. 그리고 좋은 보직과 향후 그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자네, 지금 왜 웃는 겐가?"

임탁정이 어느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졌는지, 진철진은 알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