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73화 (873/1,270)

프랜차이즈 갓 873화

213장 치킨 레이스 (3)

"성배를 마시는 게 나을까요, 마시지 않는 게 나을까요? 서해전자의 진정한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정서진의 물음에 권순철은 잠시 그 의도를 면밀히 되짚었다.

서해전자의 진정한 미래.

정서진은 그 단어에서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서해그룹 입장에서는 반도체 사업부가 완전한 팹리스로 전환하는 게 이상적이다.'

서진파운드리의 반도체 공정기술은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어떤 원리로 그런 공정이 가능한지 자신은 전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임원들에 비해서는 낫다.

공장 내부를 보지 못한 그들은 서 진파운드리 공정기술의 클래스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물 말고 다른 방법으로 세척하는 기술이나 장비를 보유한 게 아닐까?

-초순수(고도로 정제한 순수한 물)를 안 쓰고 어떻게 세척한다는 건지 짐작은 잘 안 되지만 말이야.

이따위 생각이나 품고 있는 게 현재 반도체 임원들의 현실이다.

권순철은 무인공장 목격담을 절대 동료들과 공유하지 않았다.

'공정이나 생산으로 겨루게 되면 필패야. 패전일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더 큰 손해라 쌓여서 돌아오게 된다.'

일찍 서진파운드리의 품에 안긴 TSMC가 차라리 현명했다.

웨이퍼 생산라인을 전부 처분한 TSMC는 현재 서진파운드리의 종합패키징 업무를 담당한다.

예를 들어 D램을 생산할 때, 나무 판 위에 칩을 깔고 회로를 붙이고 접전판을 달고 하는 작업을 한다.

거래처에 납품할 수 있는 반가공, 혹은 완가공 수준으로 부품을 다듬는 일을 한다.

쉽게 말해 서진파운드리는 칩만 제조하고, 그 외의 모든 일은 TSMC가 다 한다고 보면 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 반도체 사업부가 그 꼴이 날 수도 있다. 공장은 버리더라도 설계업만큼은 반드시 유지하고 지켜야 해.'

전 세계 반도체 제조사들은 서진파 운드리에 고마워해야 한다.

설계 능력을 갖추지 않고, 파운드리로만 남아주는 것을.

서진파운드리가 직접 설계까지 한다면, 지구상에 반도체 회사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서진파운드리로서는 우리 전자의 설계 능력을 확보하는 게 이상적일텐데.'

권순철은 정서진의 질문 의도를 필사적으로 더듬었다.

정서진은 영원히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파운드리 업체로만 남아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 바닥에 영원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자신이 정서진이라면, 설계 능력까지 갖춰서 전 세계 유일무이한 반도체 회사로 우뚝 선다는 유혹을 포기할 수 있을까?

"독이 든 성배는…… 당연히 거부하는 게 좋겠죠."

권순철은 그 말을 하면서 정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사장님 힘으로 래플의 파운드리 수주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힘들…… 아니, 불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오너는 지금 파운드리가 당장 늘려줄 매출만 생각하고 있어요."

"설마 서해전자에서 모바일 사업을 포기한다는 건가요?"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겔드폰이 해외에서는 래플폰에 지고, 국내에서는 프리덤폰에 지게 될텐데요?"

"그렇다 해도 모바일 사업을 놓지는 않을 겁니다. 모바일은 소비자와 다이렉트로 교류할 수 있는 마케팅수단입니다. 어떤 손해가 있어도 반드시 끌고 갈 겁니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수단이라…… 저로서는 몰랐던 관점이군요."

정서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바일 사업은 그에게 반도체만큼 절실한 분야는 아니었다.

"그럼 서해전자의 파운드리 발주는 장기적으로는 줄어들겠군요."

"래플이 이해해 주지 않을 겁니다. 적을 키워주는 꼴이니까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래플폰 vs 프리덤폰.

쿠글 또한 향후 모바일 시장이 저렇게 양분될 것으로 예측했다.

본사에서는 양쪽의 대립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매일 필사적으로 분석하느라 바빴다.

"안드로이드는 이미 세계 최다 사용자를 보유한 모바일 플랫폼입니다. 프리덤폰은 안드로이드와의 경쟁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 출시한 모든 프리덤폰이 안드로이드 쿠글 인증을 받고, CApp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리덤폰의 출시가 오히려 우리에게는 새로운 캐시 카우가 될 것 같습니다."

"단말기 인증 비용으로만 벌써 5,000만 불이 들어왔습니다. 프리덤인더스트리에서 5,000만 대나 인증했어요. 총 생산량이 1억 대라죠?"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래플과 달리 쿠글은 의기양양했다.

프리덤폰은 프리덤을 OS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쿠글의 안드로이드 인증도 받는다.

앱 마켓, MAP, UCC 포털, 브라우저, 그리고 메일 등을 포함한 쿠글의 사무용 앱들 때문이다.

프리덤은 최고의 비서이지만, 그 비서가 사용자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컨텐츠 공급망이 필요하다.

주인을 대신해서 친구에게 톡 메시지를 보내주려면 그 톡 앱을 깔아야 하고, 게임 앱 같은 것도 마찬가지.

그런 앱들을 깔기 위해서는 앱 마켓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겔드폰보다는 프리덤폰을 밀어주는게 래플의 매출을 깎아 먹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쿠글은 이미 앱 콘텐츠 시장을 장악했다.

동영상 포털의 아성은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한다.

프리덤폰이 아무리 커져 봤자, 쿠글에 귀속돼서 통과수수료를 바치는 구조를 벗어나진 못하리라.

쿠글은 프리덤폰의 등장을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었다.

"프리덤폰도 실제로는 우리 안드로이드 진영에 속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래플이 반도체 기업들을 강하게 압박하며 진영 참여를 종용하고 있어요. 모바일 의존도가 높은 회사들이 난처해졌습니다."

"프리덤폰의 모회사가 서진파운드리니, 서진파운드리의 힘을 크게 빼놓겠다는 거겠죠."

"래플도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겁니다."

"프리덤 AI를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시리랑은 애초에 비교조차 안 돼요."

"아무리 봐도 강인공지능이 맞다니까요. 사람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 아니고서야, 그런 자연스러운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

"너, 많이 출세했구나. 프리덤."

-에헴. 제가 반 래플 진영의 선봉장이자 기함이 되었습니다.

"그래 봐야 휘하 함선 하나 없는 기함이지."

-저에게는 1억 대의 단말기가 있습니다. 일단 한국 시장을 다 먹고 나면 바로 일본 침공입니다.

"거기는 래플폰 천국이라서 힘들 텐데."

-그래도 60% 이상입니다. 나머지 30% 이상을 제가 먹어치우면, 나머지 60% 점유율도 노릴 수 있을 겁니다.

"글쎄, 한국 폰이라서 힘들걸? 뭐, 꿈은 야무지게 꾸는 것도 괜찮지."

래플과 프리덤폰 진영이 형성되는 말든, 하수영한테는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이번에 강의할 때, 라면 때문에 만든 간편결제 앱이 래플폰에 도전장 내밀게 된 썰 좀 풀어볼까?"

-마스터! 마스터! 제가 최고로 완벽한 강의 대본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원래 그런 썰 풀기는 대본 없이라이브로 해야 제맛인 거야."

하수영은 대학에서 강의 요청을 받았다.

아직 1학년이지만, 학교와 교수, 학생 누구도 그걸 따지지 않았다.

당연히 정식 수업은 아니고, 일회성 특별강의다.

반응이 괜찮으면 학교 측에서는 추가 강의를 부탁할 수도 있다.

주제는 하수영 마음대로 자유로이 해도 되지만, 학교 측에서는 가급적 학생들의 장래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선별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스터, 학교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뭔데?"

-타 대학 학생들의 청강 요청 쇄도가 큽니다. 강의 장소를 종합대강당으로 바꿔서, 농대뿐만 아니라 학과 구분 없이 누구나 청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입니다.

"해. 해. 나야 듣는 사람 많으면 좋지."

-역시 마스터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답변하겠습니다.

"그냥 대운동장에서 할까? 지나가는 학생들도 모두 다 들을 수 있게 말이야."

-그렇게 제안을 해보겠습니다. 아, 대답이 왔습니다. 아쉽게도 대운동장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 이용이 힘들다는군요.

"그럼 뭐 종합대강당에서 해야지."

하수영은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출발했다.

우렁찬 엔진음을 자랑하는 차량이 염려되었는지, 프리덤이 한마디 했다.

-마스터, 정말 그 차량을 타고 학교로 가실 겁니까?

"오늘은 파밍 시뮬 22가 3년 만에 출시된 기쁜 날이야. 그래서 이걸 타고 가기로 했다."

-…….

***

강의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종합대강당은 이미 청강을 원하는 학생으로 꽉 차 있었다.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교수, 교직원들도 소문을 듣고 제 마다 강당에 자리를 잡았다.

자기학과에 억 단위 기부금을 아낌없이 팍팍 내놓는 큰손이다.

또한 어느 재벌 못지않게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기업들을 갖고 있다.

현 재벌 회장이 현직 학생으로 다니면서 자유주제 특강을 한다고 하니, 눈도장 한번 찍어두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때, 멀리서 땅이 울리는 듯한 요란한 엔진 배기음이 들렸다.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땅이 울리는 거 같지 않아?"

뒤쪽, 입구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밖으로 나와서 확인을 하고 입을 떡벌렸다.

"세상에, 저게 뭐야?"

"웬 탱크가 학내에 있어? 아니,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저건 탱크가 아니야! 트랙터라고!"

"뭐? 트랙터? 아니, 무슨 트랙터가 바퀴 대신 무한궤도를 달고 있어?"

"저게 트랙터라고? 탱크가 아니고?"

"트랙터 맞다니까!"

새빨간 광택을 선명하게 자랑하는 거대한 트랙터가 당당히 주차했다.

웬만한 버스운전석에 버금가는 높이를 자랑하는 데다가, 매끈하고 깨끗한 동체는 한 번도 실전에 투입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새빨간 페라리보다 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그런 멋진 차량에서, 하수영이 내렸다.

"회, 회장님이다!"

"회장님이라니! 학교에서는 하수영학우님이라고 불러야지! 회장님이 그렇게 불러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그러는 너도 지금 회장님이라고 하는데?"

"야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저 거대하고 멋진 무한궤도형 트랙터를 보라고, 와씨, 저런 거 타고 조선시대로 타입슬립하면 진짜 영의정은 따 놓은 당상이겠네."

농대 학생들에게도 하수영이 타고 온 트랙터는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4개의 바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바퀴 대신 삼각형으로 된 무한궤도가 달려 있었다.

"궤도형 트랙터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인데."

"우와, 진짜 웅장하다."

"아! 고향 아버지보고 당장 올라오시라고 해야겠어. 평생소원이 궤도형 트랙터 실물 한 번 보시는 거였는데."

무한궤도형 트랙터는 바퀴형에 비해서 끄는 힘이 강력하다.

땅이 무른 지역에서 작업을 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한국의 농업환경에는 너무나 과분한 스펙이다.

한국은 바퀴형 트랙터만 해도 충분하다.

저런 궤도형 트랙터는 돈 낭비일 뿐이다.

누군가가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잠깐, 설마…… 회장님, 아니, 하수영 학우님, 청담동에서부터 저거몰고 오신 건 아니겠지?"

"……."

가로수길을 당당히 지나치는 트랙터를 보고 젊은이들이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농대생들은 설명하기 힘든 충격에 휩싸였다.

※작가 후기

작중에 나온 궤도형 트랙터의 참조가 된 모델은 CASEIH사의 quadtrac620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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