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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896화

217장 즐거운 목장 경영 (5)

괜찮다. 정말 괜찮아.

원래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진짜로 안 괜찮은 게 인생사 아니겠는가.

박선주 사장은 승마 클럽주 노인이 아들에게 연락을 한 것부터가 밑그림이 아닐까, 하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더는 사죄를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괜찮대도 그러네.'

'아까 뭔 일이 있었어?'

'아아, 그냥 우연히 스친 거 가지고 신기해서 하는 말이지.'

'신경 쓰지 말게.'

이렇게 나오는 노인들 앞에서 사죄만 입에 담는 것도 오히려 불을 지르는 것이니, 박선주는 꾹 참고 노인들 앞에서 웃어 보이며, 먼저 간 아들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응? 박 사장, 어디서 전화 온 거 같은데?"

"네, 아들입니다.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시게."

무리에서 멀리 벗어난 박선주는 참았던 울화를 터뜨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거냐! 낱낱이 다 말해!"

-아버지, 그게…….

자초지종을 들은 박선주는 망연자 실해져서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확실해? 더도 덜도 없이 정확히 그대로, 맞는 거냐?"

-예, 집사람 프리덤폰까지 제가 열어서 대화 내역 정확하게 확인했습니다.

"그거 지금 나한테 보내라. 당장."

-이미 보냈습니다.

박선주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대화 로그 기록을 확인했다.

-너도 엄마 말 안 듣고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늙어서도 저렇게 힘든 일 하며 살게 돼.

첫 문장부터 그는 뒷목을 잡았다.

-노동이란 본래 신성한 거요. 그런데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면서 노동을 천시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건 옳지 못하오.

-아니, 진짜 이 미친 영감이! 왜 자꾸 바쁜 사람 붙들고 헛소리냐고! 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박선주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쓰러질 뻔했다.

'회장님들께 감히 저런 욕을 했다고?'

수영사채에서 당장 대출 회수를 지시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아닌가.

-기회를 주겠소. 우리 모두 앞에서 정중히 사과하시오. 그게 아이의 교육에도 도움이 될 거요.

-흥! 천박한 흙 노가다나 하는 영감 놈이 아주 입은 먹물 듬뿍 처바르셨네! 지환아, 가자!

대화 기록은 거기서 끝이었다.

박선주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못박힌 듯이 굳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캠핑장으로 쳐들어가서 며느리의 머리끄덩이를 전부 잡아 뜯어놓고 싶었다.

이상하게 주변이 추웠다.

온몸을 뒤덮은 경련이 걷히지 않는다.

"이, 이, 이……."

한참을 씩씩거리며 겨우 분노를 다스렸다.

프리덤을 시켜 '합법적으로 검색 해본 후원회 노인들의 자산, 스펙,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최소 천 억대 자산가 200여 명 이상의 모임 아닌가.

심지어 재산 규모가 완전히 공개된 것도 아닌,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닌 거야! 모르는 사람 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고 그렇게 당부를 했거늘!'

역삼동 아줌마들하고 친목질이나 하고 다니니까 저 모양이 된 건가?

박선주는 잠시 마음을 다잡고, 회사가 입주한 빌딩주 노인을 찾아갔다.

그나마 이 모임에서 자신이 가장 마음을 터놓고 진솔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상대였다.

"어르신. 제가 방금 이야기 전부 다 들었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어허,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아닙니다. 며느리가 무슨 경망한 폭언을 했는지 자세하게 다 들었습니다. 집안 관리를 잘못한 제 불찰입니다. 사죄를 구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자네가 그리 간절한 것 같으니, 나도 더 빈말을 하진 않겠네."

빌딩주 노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우리가 이 먼 목장까지 놀러 온 것도 있지만, 실제로 인부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잠깐이나마 직접 겪어 보자는 취지도 있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하 의원의 제안이기도 했지. 하의원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을 귀중하게 여기는 인물이거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을 귀중하게……."

"농사의 신성함에 대한 하 의원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자네는 모를 거야. 거기에 대고 며느리 되는 친구가 그런 폭언을 퍼부었으니, 하의원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나?"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야 고집만 잔뜩 굳어진 못된 노인네들 아닌가? 자네가 이 상황을 알아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쌤통이지. 자네 며느리, 적어도 몇 년은 눈칫밥 먹으면서 마음 졸여야 할 테니."

노인들은 이미 우아한 보복을 달성했다.

분노와 수치심에 휩싸인 시아버지라는 재난을 돌려주었으니까.

박선주는 '정말 괜찮다'라는 무서운 대답에 담긴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이제 집안을 뒤집어 엎을 테니, 노인들은 거기에서 만족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 의원은 좀 다를 거네."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어르신."

"자기가 피땀 흘려 만든 것들을 먹고 있으면서 노동을 천하게 봤어. 그 괘씸함이 상당할 거야."

"각오하고 있습니다."

"냉정한 친구야. 하지만 그게 또 강점이지. 이걸 가지고 자네 회사가진 부채 700억을 무작정 연결하진 않을 거야."

"……부끄럽습니다."

"며느리 처분을 하 의원한테 무조건 맡기겠다고 고개 숙이게. 그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걸세."

"깊으신 조언,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조만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비 온 뒤에 땅 굳는다고, 이 인연이 오히려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야."

박선주는 연거푸 고개를 숙인 뒤, 각오를 굳히고 하수영을 찾았다.

그의 옆에 수북하게 쌓인 뼈다귀와 껍질, 그리고 빈 술독들이 보이지 않는 위압감을 준다.

아마 과거 난세의 영웅호걸들이 저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의원님, 가장으로서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아주 일찍 손주를 봤으면 하수영쯤 되었으리라.

하지만 박선주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머리를 깊이 숙였다.

"제 며느리의 처분을 의원님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어떤 것이든지 따르겠습니다."

"음, 오체분시를 해도요?"

"……!"

진지한 목소리에 박선주는 순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고, 하수영은 킬킬 웃었다.

"농담이에요. 그런 거 손 끊은 지오랩니다. 당장은 속이 시원한데 잠자리도 뒤숭숭하고 두고두고 귀찮게 민란도 일어나고 하니까."

"……."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구체적이다.

박선주의 손끝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 저는 사과는 관심 없습니다. 직접 철퇴를 내리는 걸 선호하죠."

"각오하고 있습……."

"말을 크게 실수하긴 했는데, 우리 어르신들이 시아버지가 불호령 내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눈치라서 저도 뭘 더하기는 뭣하고, 우리 농장으로 파견이나 보내줘요."

"파견이라고 하셨습니까?"

"자기 입에 들어가는 밥알과 풀떼기와 양념, 고기와 생선이 어떤 고생고생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몸소체험을 해보면, 앞으로 그런 실수는 안 할 거 아닙니까?"

박선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직접 가르침까지 내려주시겠다니, 그 너그러운 결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 달에 1주일 정도만 체험하는 걸로 합시다. 어디 보자, 기한은……."

"의원님 속이 풀리실 때까지 하셔도 좋습니다! 평생 꾸짖어 주신다고 하셔도 저는 감읍할 따름입니다!"

"음, 좋아요. 그럼 내친김에 내일부터 시작합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정부를 쓰면서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던 며느리다.

이참에 제대로 고생 좀 단단히 하면 다시는 이런 문제를 만들지 않으리라.

박선주는 하수영의 너그러운 결정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선주건설이 수영사채에 대출 하나 있죠? 조만간 만기 되는."

"……예."

"지금 바로 5년 연장해 주겠습니다. 조건은 물론 동일하게."

"……그, 그런."

이 자리에서 바로 연장을 해준다고?

갑작스러운 혜택에 박선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요? 제가 사적인 감정을 업무에 엮지 않을 줄 알았습니까? 누가 그랬어요?"

"그런 게 아니라……."

"저 굉장히 잘 엮습니다. 나쁜 것도 잘 엮고, 좋은 것은 더 잘 엮죠."

가슴이 쿵쿵거린다.

아주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지금 처리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박선주는 황급히 문자를 확인했고, 수영사채에서 발송된 안내 문자를 볼 수 있었다.

"식사하시죠. 근심하느라고 제대로 입맛도 없으셨을 텐데."

***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친 박선주는 곧바로 카라반 캠핑장으로 향했다.

한바탕 부부싸움을 마친 아들 부부를 향해 그는 강하게 일갈했다.

-내일부터 하수영 의원님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군말 없이 다해라. 내가 해주는 지원, 일체 끊기기 싫으면!

당장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서 시집살이를 하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

지금 거주하는 역삼동 아파트 명의는 박선주였기 때문이다.

다음 날, 윤선혜는 아이를 시아버지 손에 먼저 보내고, 감시 겸인 남편과 함께 풀이 죽어서 하수영을 찾아왔다.

"우리 박 사장 며느리가 아주 얼굴이 핼쑥해졌구먼."

"그러게 사회에서는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대해선 안 되네. 이참에 좋은 교훈 하나 얻은 셈 치시게나."

"자자, 오늘도 할 게 많다구."

노인들과 함께 목장 분뇨 수거 업무에 투입된 윤선혜는 기절할 뻔했다.

곱게 자란 그녀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볼 기회가 있었겠는가..

코를 찌르는 악취가 온몸에 배었고,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가시질 않아서 저녁에 훌쩍훌쩍 울며 잠들었다.

"여보, 나 언제까지 이런 짓 해야 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마! 당신, 정말 이혼이라도 하고 싶어?"

"이, 이혼할 생각이에요, 당신?"

"이혼하지 않으려고 나도 이러는 거잖아! 아버지가 날 왜 당신한테 붙였겠어? 똑바로 감시 안 하면 나도 회사에서 내치겠다는 경고라고!"

"흐윽……."

"체험 삶의 현장 찍는다고 생각해. 의원님도 그러셨어. 한 달에 1주일 정도라고."

겨우 분뇨 냄새를 지운 뒤 윤선혜는 카라반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웬 캠핑카가 카라반 앞에서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운전기사도 함께였다.

"오늘부터 윤선혜 님을 케어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 절 케어한다고요?"

"네, 당분간 윤선혜 님의 농장 체험을 도와드릴 비서이자 운전기사입니다. 이 캠핑카는 윤선혜 님이 이동하실 때 쓰실 차량입니다."

아주 작정하고 굴리기로 했구나 싶어서, 윤선혜는 하마터면 혼절할 뻔했다.

"짐은 전부 정리해서 나오시면 됩니다. 이제 여기 다시 올 일정은 없으니까요."

"어, 어디로 가는데요?"

"다른 목장으로 이동해서 트랙터와 파종기 체험을 하게 될 겁니다. 어제보다는 수월하실 겁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수월할 거라는 말에 윤선혜는 안심했다.

분뇨 대신 기름 냄새를 맡으며 중장비 정비 학습을 받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며칠 동안 고생하고, 마지막 코스로 통영에 도착했다.

방수 작업복을 입고 인부들 사이에서 그물을 끌어 |며 그녀는 또 울었다.

그렇게 힘든 일정을 마치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역삼동 아파트로 돌아왔다.

"엄마. 이거 엄마가 직접 잡은 고기라고 보내줬는데, 진짜 맛있어."

심지어 시아버지인 박선주도 아파 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야, 고생했다. 덕분에 최상품고기와 생선들을 산지직송으로 받아서 먹어보는구나. 고맙다."

"……아니에요, 아버님."

이 짓을 한 달에 1주일씩 이제부터 꼬박꼬박해야 한다고?

언제 끝날지 기약 없이?

윤선혜는 식사도 건너뛰고 방에 들어와서 그대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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