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11화
220장 수영한우 1호점 (2)
장효주 테이블에는 총 세 여자가 앉아 있었다.
주효정, 황희선은 장효주와 함께 미모와 몸매로 손꼽히는 여배우 트리오였다.
하수영이 다가와서 테이블에 소고기 쟁반을 내려놓았다.
"자, 고기 나왔습니다. 주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효주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거 어차피 수영 씨가 사는 거잖아요? 근데 왜 저희한테 감사해하세요?"
"지금은 영화 투자자 하수영이 아니라 수영한우 프랜차이즈 임시직원하수영이거든요."
"정말 계속 일할 거예요? 일부러 자리 비워뒀는데."
장효주는 보란 듯이 비어 있는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1호점 오픈 첫날인데 목장 주인이 돼서 느긋하게 놀고 있을 순 없죠."
"개시 손님을 단체로 이만큼이나 불러주셨으면 넘치도록 하신 거 같은데요."
"마감까지 남아 계시면 그때 합석하겠습니다."
"합석 안 하겠다는 말을 되게 돌려서 하시네요."
"저는 서빙하고 고기도 구워야 해서 이만."
"그럼 다른 데 말고 우리 테이블구워줘요.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그럼 고기만 다 돌리고 오겠습니다."
하수영은 흔쾌히 대답하고는 떠났다.
고기 쟁반을 테이블마다 전부 돌린 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자, 고기 올리겠습니다."
"옆에 앉아서 해주면 안 돼요?"
"에이, 그건 안 되죠."
하수영은 얄짤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집게로 큼직한 고깃덩이를 집어서 숯불 위에 올렸다.
여배우 중 가장 연장자인 황희선이 팔짱을 끼고 고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고기는 마블링이 별로 없네요?"
"네, 우리나라 등급 기준으로는 3등급이죠."
"헐, 3등급인데 1인분에 근 4만 원이나 받는 거예요?"
"마블링은 몸에 좋지 않은 포화지방산인데, 우리나라는 이게 많기만 하면 높은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올바른 방식은 아니죠."
"그, 그래요?"
"물론 마블링이 많으면 고소해서 당장은 맛있긴 한데, 또 쉽게 물리죠. 또 마블링이 많게 키우려면 곡물 사료를 주로 먹여야 합니다."
하수영은 고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소는 원래 풀을 먹는 짐승이죠. 그런데 평생 옥수수나 콩 같은 곡물 위주로만 먹이다 보니 내장질병이 잦아지게 되죠. 하지만 우리 수영한우는 다릅니다. 드셔 보시고 판단하십시오."
어느덧 고기는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했고, 깊이 있는 풍미가 여배우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이미 수영한우를 경험해 본 장효주와 주효정은 비교적 태연했지만, 황희진은 감탄해서 눈썹이 꿈틀거렸다.
"와, 냄새 끝내주는데요?"
"마이야르 반응입니다. 아미노산과 환원당이 화학반응으로 결합하면서 깊은 풍미를 더해주죠. 고기 맛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현상입니다."
"아, 그건 저도 들어봤어요. 요즘요리 예능에서 한창 재조명되던데."
"우리 수영한우의 장점이 바로 이 겁니다. 대충 구워도 모든 부위, 거의 대부분의 입자에서 사정없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는 거죠."
색소, 맛, 풍미를 더하는 물질이 생겨나며 고기의 맛을 끌어올려 주는 화학반응.
고기를 구울 경우 180도 이내에서 조리를 할 경우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엘릭서 비료로 성장한 볏짚만을 먹고 자란 수영한우의 경우는…….
"자, 다 됐습니다. HSY 코드로 사정없이 압축한 마이야르 감칠맛 덩어리를 즐겨 보시죠."
하수영은 자신 있게 말했다.
눈앞에 놓인 것은 덩어리를 이룬 입자 전체가 마이야르로 전향한 감칠맛 폭탄.
"녹은 지방 따위가 내는 어설픈 고소한 맛과는 전혀 다를 겁니다."
"……."
황희진은 젓가락을 내밀었다.
갈색으로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소스도 찍지 않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사정없이 꽉꽉 압축한 감칠맛의 껍질이 치아에 깨져 나가며, 입안에서 무한한 연쇄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황홀감이 온몸을 휘감았고, 침샘이 사정없이 액체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술을 땅기게 하는 맛이네요."
극찬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먹었던 모든 고기는 아니었음을.
이것이야말로 진짜 고기이자, 맛의 화신이며, 고기구이의 완전체가 아닌가.
"어떻게 고기가 이런 맛을 낼 수 있죠?"
"고기니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겁니다. 채소는 100만 년쯤 진화해도 불가능한 클래스죠. 우리 역시 몸이 고기로 이뤄진 동물이기에, 다른 짐승의 살에 강하게 끌리는 거지요."
"수영 씨, 효주 살에는 안 끌려요?"
"언니, 미쳤어! 무슨 말을 그렇게 저질스럽게!"
하수영은 못 들은 체하며 태연히 설명을 이었다.
"우리 수영한우는 다른 소고기와 다르게 마이야르 반응이 더 쉽게, 더 강하게, 그리고 더 폭넓게 일어 납니다. 근세포가 분열을 할 때부터 '어떡하면 요리할 때 맛있게 구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하거든요."
"……."
"매장에서 포장판매, 배달도 가능하니까 언제든지 프리덤을 통해서 주문해 주세요. 물론 오늘 홀에서 드시는 건 전부 제가 계산합니다."
하수영은 고기를 마저 구워주고는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미모의 여자 연예인들이 까르르 웃으며 하수영을 반겼다.
하수영도 미소로 대화를 나누면서 고기구이에 집중했다.
"소고기가 그래 봐야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생각을 깨부수네. 앞으로 이 가게 자주 와야겠어."
"내 말이 맞지? 맛있지?"
"이건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닌데?"
"내가 이거 먹고 나서 이제 다른 소고기는 입에도 못 대잖아."
"큰일이야. 나도 벌써 그렇게 된 거 같아."
황희선은 그러면서도 쉼 없이 고기를 흡입하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들도 다르지 않았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라면 이골이 난 연예인들이 태어나서 라면을 처음 먹어본 어린아이처럼 정신없이 푹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고기가 다르네, 고기가 달라."
"와씨. 이건 진짜 X발. 말도 안 되는 X발. 이게 고기냐? 이게 고기냐고?"
"여기 절대로 애인 데려오면 안 되겠네. 입맛 버려놓기 딱 좋아. 나만 알고 혼자 와야겠어."
충격받은 이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대충 구웠는데 고기 전체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고?"
"무슨 숯불에 화학반응 촉매제 같은 거라도 끼얹은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있긴 한가?"
50개 테이블을 꽉 채운 200명의 손님들은 그래도 다들 양심이 있는지라, 술은 소주와 맥주 등 저렴한 것 위주로 시켰다.
물론 하수영이 적시에 제지하고 나섰다.
"제 이름을 건 가게 1호점입니다. 많이 팔아주셔도 모자랄 판에, 겨우 소주와 맥주만 시켜서야 되겠어요? 와인도 좀 시키세요. 어차피 제가 씁니다."
"아, 알겠습니다. 제작자님. 그럼 적당한 와인 몇 병 추천을 해주시죠."
"고기에는 역시 레드 와인. 여기 제일 비싼 게 40만 원이니까 이걸로 쫙 깔아드릴게요."
"저는 와인이 안 맞아서 소주가……."
단체 손님들은 정신없이 고기와 술을 흡입했다.
숯이 떨어져서 몇 번이고 숯불을 갈아가며 계속 고기를 굽는 테이블도 있었다.
사장 양희진은 실시간으로 증식하는 매출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침내 오후 10시, 마감을 쳤을 때, 홀 매출이 5,500만 원을 돌파했다.
평균 한 사람당 고기와 술 등을 합쳐서 25만 원 이상씩 먹은 셈이다.
카운터를 맡은 프리덤이 대략적인 결산을 알려 주었다.
-홀 매출 중 3,500만 원 정도를 순수익으로 보면 됩니다. 임대료가 없어서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거 꿈 아니지?"
-식사량이 적은 여자 연예인들이 너무 많아서 아쉽습니다. 매출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내일부터 몰려들 일반인 손님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감 시간이 됐지만, 한 테이블은 아직 나가지 않고 있었다.
바로 장효주가 앉은 테이블이었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장효주가 지나가는 하수영을 손짓으로 불렀다.
"마감했으니까 이제 내 옆에 앉아요. 합석한다고 했잖아요."
"술 많이 취하셨네. 이제 집에 가야죠. 가게도 마감입니다."
"나 데려다줘요. 수영 씨가."
"곤란합니다. 오픈 첫날인데 점주님을 외롭게 혼자 둘 수는 없지요. 여러분, 부탁합니다."
장효주는 동료 여배우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면서 살짝 횡설수설했다.
"보니까 말이야, 여자들 있는 테이블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고기 구워주고, 다른 여자 고기 그으즈지믈르그……."
"악! 손바닥 깨물지 마, 이년아!"
"읍목지믈르그……."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수영 씨! 오늘 정말 고마웠고 고기도 진짜 근사했어요!"
홀 매출 외에도, 2천만 원이 조금 넘는 포장 매출이 발생했다.
손님들 상당수가 자기 돈으로 고기를 따로 포장해간 것이다.
양희진은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한 것도 없는데 앉은 자리에서 얼마를 번 거야, 도대체……."
-한 게 없다니요. 부군께서 라테그룹 마약범 큰딸을 응징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다 이렇게 나비효과로 돌아온 겁니다.
***
임탁정은 오픈 첫날인데 하루종일 아내로부터 연락이 없자 괜히 불안했다.
혹시 생각보다 장사가 잘 안 된 것은 아닐까 하고,
'개업빨을 잘 받아야 순풍을 탈 텐데…….'
가게 걱정을 안고 있다 보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제주지검에서 그가 집중해야 할 일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지만, 그때 제주지검장이 멀리서부터 헐레벌떡 달려오는 게 보였다.
"임 차장! 여기 있었군! 한참 찾았다네."
"아, 지검장님. 지시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지금 우리 지검 검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어! 자네가 이번에 재산변동신고 한 거 말이야! 그게 모두 정말인가? 삼성동에 1,300억짜리 빌딩을 구입했다고?"
"아, 예. 맞습니다. 제가 미국 주식에서 좀 재미를 봤습니다. 전 재산을 보잉에 올인했었거든요."
"세상에나!"
지검장은 부러워서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분명히 하수영이 정보를 주었으리라.
보잉이 폭등을 하게 된 것도 애초에 미 정부가 보잉 747- 8 천대를 구매했기 때문 아닌가.
거기에 당연히 하수영이 관여되어 있을 터이고,
"투자 소스는 어디에서 얻었나?"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임탁정은 당당하게 거부 의사를 보였다.
지검장은 자신보다 재산이 수백 배가 넘는 이 부하한테 감히 버럭질을 할 수 없었다.
"자산 천억 검사라니. 이제 자네는 검사 중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어! 정말 대단해!"
"감사합니다."
"자네 빌딩에서 고깃집도 오픈했다면서?"
"네, 와이프가 프랜차이즈 고깃집하나 냈습니다. 오늘이 오픈일인데 연락이 전혀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 사람이! 그만큼 장사가 잘되니까 연락할 겨를도 없는 거야! 정말 잘됐어! 내가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 턱 쏘지!"
"한턱은 제가 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지검장님?"
"상사가 돼서 부하 경삿날에 뺏어 먹어서야 쓰나! 내가 사겠네!"
그렇게 지검장은 부장 검사 이상을 모조리 호출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평범한 흑돼지집이었다.
"난 자네처럼 부자가 아니라서 큰 건 못 쏘니 이해하게. 그래도 업무추진비가 아니라 내 카드로 쏘는 걸세."
"감사합니다. 저도 삼겹살 좋아합니다."
동료와 후배들은 임탁정 앞에서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검사란 타이틀을 빼도, 천억대 자산이면 도움을 기대할 수 있으니.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임탁정은 문자 알림 진동을 느꼈다.
"자네 와이프인가?"
"네, 지검장님. 어, 근데…… 아닙니다."
"왜 그래? 무슨 내용인데?"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자랑밖에 안 될 거 같아서……."
"말을 해봐. 여기 이 친구들 죄다 자네 좋은 일 축하해 주러 모인 건데, 자랑거리면 더 좋지. 안 그래?"
"맞습니다!"
"차장님! 시원하게 자랑 한 번 해주십시오! 오늘 매출 얼마 나왔답니까?"
"연예인 단체손님이면 엄청 팔았을 거 같은데요! 알려 주십쇼!"
여기저기서 재촉하자 임탁정은 할 수 없이 어렵게 입을 떼었다.
"오늘 매출이 5,800만 원 정도 나왔다고 하는데……."
"우와아아!"
"유후!"
"와이프가 외벌이 이후 처음으로 번 돈이니까 저 용돈 쓰라고 몽땅 입금해 줬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