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16화
221장 청담의 빛 (3)
로한의 오브는 매우 안전하다.
만약 문제가 될 거 같다 싶으면 그냥 오브의 회전을 멈춰 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오브는 곧장 열 방출을 중지하고, 이미 물로 흡수된 열이 식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폭발 위험도 없고, 오염 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다.
인류를 구원해줄,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최초의 상용 핵융합 발전소 가동을 보려면 적어도 5년은 기다려야 하는군요. 그 점이 너무 아쉽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발전소를 지으려면 그래도 5년은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오브 발전소는 복잡하지도 않고, 원자력 발전소처럼 온갖 안전장치를 덕지덕지 바를 필요도 없으니 훨씬 빨리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청담동에서는 하루빨리 농장에 전기를 끌어오고 싶어 하던데요. 더 이상 한전에 전기요금을 내기 싫으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교수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정운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린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발전소를 아파트처럼 1, 2년 만에 후딱 지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영조명은 일단 발전소를 지을 위치 물색에 나섰다.
그리고 정운원은 희소식을 접했다.
"태웅 원전을 우리가 인수하자고요?"
"네, 시설 일부만 개조하면 즉시 가동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연료봉 하나도 반입되지 않은 상태라 방사능에서도 아주 깨끗하고요."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수영조명 이사회는 다들 박수를 치며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다.
태웅 원자력 발전소.
전력 자립률이 5%도 안 되는 서울의 부족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강릉시에 세워진 신형 원자력 발전소다.
국내 최고 발전규모를 사랑하고 있어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 일대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각광받았다.
"태웅 원전은 기획부터 강원도 주민들의 엄청난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발전소를 다 짓고 이제 연료봉만 반입하면 되는데, 주민들이 원전 주변을 봉쇄해 버렸죠."
"벌써 2년째 봉쇄 상태라 발전소는 아직 가동조차 못 했습니다. 아주 깨끗합니다."
"그나저나 충분히 주민합의가 되지 않았나요? 그래서 삽을 뜬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 강원도지사의 당선 공약이 태웅 원전 백지화였습니다. 게다가 서울시에서 주민 보상금이 너무 과하다며 절반 가까이 삭감한 게 기름을 붓는 꼴이 됐습니다."
"저런, 기왕 주기로 한 돈을 왜 굳이 삭감하겠다고 해서 자충수를 두는지……."
"곧 발전소 가동이 눈앞에 두니까 마저 지급해야 하는 잔금이 아까웠던 겁니다."
"그래서 원전을 다 지어놓고도 정작 2년째 가동은 못 하고 있다?"
"네, 사장님."
정운원은 이보다 더 호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자로를 들어내고 우리 핵융합로를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군요."
"우리 핵융합로가 또 그렇게 부피가 크지도 않잖습니까? 아무 문제없습니다."
"오브는 하나뿐이니 다른 터빈으로 증기를 보낼 파이프도 설치를 해야겠군요."
"각 발전 호기들의 증기 파이프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자기 원자로가 잠시 가동을 멈추더라도 다른 호기에서 증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오, 정말입니까? 그럼 진짜 오브를 갖다 넣고 불만 때우면 바로 가동을 할 수 있겠습니다."
"말만 잘하면 공짜로 발전소를 인수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민들 반대로 2년 넘게 가동을 못 하고 있는 신상품 원전이다.
서울시도, 중앙정부도 어서 빨리 해결을 하고 싶어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런데 방사능 오염, 폭발 위험이 전혀 없는 완전 천연무공해 핵융합발전소로 개조한다면?
서울시도, 중앙정부도, 그리고 강원도도 대만족을 하는 구원투수 아닌가?
그들 입장에서는 공짜에다가 지원금까지 듬뿍 얹어줘서라도 가져가라고 애걸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운원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결국 우리는 정부와 서울시의 돈을 받은 셈이 됩니다. 앞으로 발전소 운영에 있어서 이런저런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 그렇겠네요.."
"수영조명의 설립 취지가 무엇입니까? 수영농장의 완전한 전력 자율화와 자립화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 발목이 잡혀 있으면 아무래도 여러모로 곤란하지요."
과학자들은 이해하겠다는 듯이 끄덕거렸다.
물론 속으로는 벙져 있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과학과는 무관한, 순수한 경영지원을 위한 그룹이었다.
'아니, 농장이 전력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1%도 채 못 먹을 거 같은데…….'
물론 그들은 겉으로 그런 생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를 100% 농장에만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판을 짜둬야 합니다."
"확실히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돈을 받는다면 생산량의 일부는 그들을 위해 상시적으로 할당해야 하겠군요."
"원래 큰 공짜에는 큰 귀찮음이 따르는 법이지요."
"지금은 수영농장이 전기를 그리 얼마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서울시보다 더 많은 전기를 먹을지 누가 압니까?"
"회장님이 뭔가 그려놓으신 밑그림이 있기에 핵융합 발전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발전소의 전력공급은 100% 확실히 우리 것으로 못을 박아야겠습니다."
"역시 제 돈 주고 사는 게 낫겠군요."
어느 정도 결론이 모아지자 정운원사장은 만족한 표정을 보였다.
"그럼 협상을 하러 갑시다.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와 미팅 잡아봅시다."
"한수원과의 미팅입니까. 이거 설레는군요."
"저도 가겠습니다. 정 교수, 아니, 사장님."
"저도 꼭 끼워 주십시오."
이사들의 눈빛에 음침한 기색이 흘렀다.
그들은 원자력, 핵융합 발전을 연구하던 과학자 출신.
연구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지금까지 한수원 앞에서 한없이 몸을 낮춰왔다.
한수원이라는 갑 앞에서 을은커녕 병, 아니 정도 못 되는 수준.
하지만 이제는 바이어로서 당당하게 한수원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한수원 이놈들, 그동안 내가 당한 수모를 이번에 반드시 갚아주고 말겠어.'
***
한국수력원자력 정홍진 사장은 수영조명에서 온 공문을 주의 깊게 읽고 있었다.
다 읽고 박형상 경영부사장을 쳐다보았다.
"수영조명이 왜 태웅 원전을 사겠다는 거지?"
그는 수영조명이 핵융합 발전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철저한 대외비였으니까.
"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발전소를 개조해서 핵융합발전소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이 아닐까요?"
"수영조명이 설립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상용 핵융합 기술을 완성했을 리는 없을 텐데."
"에릭 로한이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있잖습니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흐음……."
프리덤이라는 놀라운 AI를 개발했고, 금속에 물을 거부하는 성질을 부여하는 기술을 만든 사람.
대단한 천재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핵융합 연구에서도 과연 그만한 성과를, 이렇게 단시간에 낼수 있을까?
"그리고 하수영 회장은 속도를 가장 중요시합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비용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래?"
"핵융합 기술이 당장 완성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 몇 년 안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지 않을까요?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발전소를 확보해 두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원자로를 제거하고 일부 개조만 마치면 핵융합 발전소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계산이라도 선건가."
당장 쓸 게 아니라 몇 년 뒤를 내다보고 미리 투자하는 것이라면 조금 납득이 된다.
자신들도 태웅 발전소를 짓는 데 참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으니까.
"현 강원도지사는 매우 강경합니다. 적어도 그분 임기 안에 발전소가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그 양반이 이번에 재선을 했으니까…… 앞으로 8년은 더 발전소를 못 굴린다는 건데."
"3선까지 성공하면 8년 남았죠."
정홍진 사장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이게 다 서울시의 욕심이 빚은 과오다.
"그러게 남은 보상금을 그냥 재깍재깍 줘버리지, 그걸 또 굳이 재협상을 하자고 들어서 상대에 명분을 줬는지. 참……."
안 그래도 상대는 물어뜯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데 시비를 걸어버렸으니, 강원도정부는 이때다 하고 온갖 규제를 들어가면서 행정적 압박을 취했고, 주민들은 원전을 봉쇄한 채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는 상황.
그게 벌써 2년이다.
"강원도 주민들이 하수영 회장을 참 좋아하지?"
"울릉도 교량 덕분에 아주 인기스타죠. 또 청담수영병원 분원과 닥터헬기 덕분에 노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하수영 덕분에 강원도는 강남 상급 종합병원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담수헬기, 트랙터, 각종 농업 지원을 받고 있어 농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대단하다.
하수영이 마음만 먹으면 도정부와 도의회 선출직을 모조리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혹시 원자력 발전소 그대로 가동하려는 것은 아닐까?"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강원도 주민들이야 하수영 회장이라면 아주 껌뻑하고 죽지. 하수영회장이 전기가 부족해서 힘들다고 호소하면 다들 시위를 풀 거 같은데."
"그럼 이거 발전소를 쉽게 넘겨서는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래, 일단 미팅에서 한 번 찔러 보자고."
***
미팅일이 되었다.
정홍진 사장은 미팅 장소에 나온 수영조명 경영진을 보고 살짝 떨떠름했다.
'다 아는 얼굴들이로군.'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는 당연히 원자력, 핵융합 연구 프로젝트에 상당한 투자를 한다.
경영진들은 하나같이 산학 프로젝트를 추진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연구비를 조금이라도 더 타내려고 언제나 비굴하게 손바닥을 비볐던 이들이, 거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었다.
정홍진 사장은 이런 분위기가 조금 기분 나빴다.
주로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 과학자들이 저리 당당하게 뻗대고 있으니,
"태웅 원전을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아시겠지만 태웅 원전은 지금 강원도정부와 주민들 반대로 인해 연료봉 하나도 제대로 끼워 넣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태웅 발전소' 를 원전으로 활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 회사는 핵융합 전력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입니다."
시작부터 원자력에 선을 긋자 한수원 측은 조금 당황했다.
하수영의 이름으로 강원도를 설득해서 원전으로 활용하려는 건가 찔러 보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배제당했으니.
"태웅 발전소 건설에 총 19조 3,000억 원이 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그 돈을 내겠습니다. 앞으로도 가동 가능성이 없는데, 저희에게 파시는 게 어떻습니까?"
정운원이 차분히 말을 했고, 정홍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혹시 벌써 핵융합로 상용화 기술을 벌써 완성하신 겁니까? 태웅 원전을 개조해서 핵융합 발전소로 활용하시려는 겁니까?"
"저희가 그걸 확인해 줄 의무는 없는 거 같습니다만."
"……."
"저희는 완성된 발전소가 당장 필요합니다. 파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