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38화
224장 강릉이 이상하다 (4)
한전 사장 홍웅기는 태호건설 부회장 이강길 앞에서 사정없이 깨지고 있었다.
그나마 태호그룹 사람이 아닌 게 다행.
만약 태호그룹 임원이었다면 벌써 양복은 넝마가 되고, 몇 군데가 찢어져서 피를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들었어도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홍 사장이라면 날 충분히 이해시켜 줄 수 있으리라 믿네."
"……예, 부회장님."
실컷 퍼붓고 난 이강길이 숨을 골랐고, 홍웅기는 피폐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무선 전기라는 게, 와이 파이 같은 뭐 그런 건가? 전자파처럼 전기를 보내는, 그런 원리인가?"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전자파와 자기장을 이용한 송전 방식이 연구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핸드폰 무선 충전기 같은 건데, 그걸 범위를 넓혔다. 뭐 이런 거로 보면 되나?"
"전혀 다릅니다. 지금 기술로 그 먼 거리를 전자파나 자기장을 이용해서 전기를 보내면,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죽을 겁니다."
"그렇지. 내가 그 말이었어. 그런데 내 밑의 놈들은 전혀 이해를 못 하더라고."
"그리고 지금 기술로 그렇게 하면, 그건 무선 송전이 아니라 강력한 자기장 무기입니다. 레이더 교란 같은 걸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네하고 이야기하니까 그래도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네. 계속 말해 봐."
"그런데 전자파와 자기장에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면, 벌써 알려져도 알려졌을 겁니다. 즉 전자파와 자기장 방식은 아닙니다."
"그럼 대체 뭔가?"
"현재로서는 양자얽힘 방식이 아닐까 하고 추측이 됩니다만……."
홍웅기는 양자얽힘에 관해서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을 했다.
문외한인 이강길 회장이 정말 이해 할 수 있을 만한 정보만 깔끔하게 나열했다.
"자네 말은 그러니까…… 한 번 얽힌 쌍성 물질에 한쪽에 변화가 일어나면, 그게 반대쪽에도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이건가?"
"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렇습니다. 물론 추정이지 확신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전자파, 자기장과 무관한 방식으로 무선 송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출력은 어느 정도지?"
"현재 약 11만 개에 달하는 수신처에 동시에 송전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과부하나 블랙 아웃현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실용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다 X됐다 이건가?"
"……."
"왜 말을 못 해!"
"……그렇……습니다."
쾅!
테이블을 있는 힘껏 내리치는 소리에 홍웅기는 움찔했다.
이강길 부회장은 시퍼렇게 변한 채 콧김을 거칠게 내뿜었다.
"시나리오, 읊어 봐."
"먼저 최소 송전 범위가 약 49km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유는?"
"제주도에도 무선 전기가 들어가고 있는데, 제주도와 내륙 사이에 추자 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을 중계지로 이용했다는 가정을 하면 최소 49km가 됩니다."
추자도와 제주도의 거리가 약 49㎞이기 때문이다.
"중계기를 내륙 남쪽에 설치했다면 그 이상이라는 뜻이로군."
"100km…… 아니, 150km 이상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정도면 중계기를 몇십 개만 설치해도 대한민국 전역을 커버한다는거 아니야?"
"예, 그렇습니다."
"계속."
"송전선이 전혀 필요 없고, 도시를 건설할 때 전선 케이블을 매설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국의 모든 전봇대는 철거될 겁니다. 차후 소형화가 가능하면 전기차와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뭐, 통신 어쩌고 이야기도 하던데."
"통신 역시 전기의 흐름에서 시작되니까요. 4G고 5G고 하는 게 의미가 없어집니다. 유선통신의 속도 그대로 무선통신을 누릴 수 있게 되니까요."
홍웅기는 무선 전기가 공개되면 벌어질 시나리오를 고스란히 이야기했다.
시나리오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강길 부회장의 표정은 점점 썩어갔다.
"그냥 X된 정도가 아니라, 개X된 거네? 우리?"
"……."
"자네 말 들으니까 지금 당장에라도 사업 다 때려치우고 손 떼는 게 그나마 손해를 제일 덜 보는 짓거리 같은데, 아니야?"
"……."
"왜 말을 못 해?"
"……맞습니다."
"이 거대한 원전, 아니, 전력 시장을 고스란히 하수영이 그 어린놈에게 넘겨주자고? 우리가 수십 년을 아등바등 개고생해서 차지한 이 낙원을? 그렇게 쉽게?"
"그나마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부회장님."
"자네는 아직 궁지에 안 몰렸나 봐."
이강길 부회장은 차가운 눈으로 홍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궁지에 안 몰렸으니까 그렇게 태연하잖아. 다 포기하고 튀는 게 상이다. 이딴 개소리나 하고 있고 말이야."
"부, 부회장님?"
"난 자네보다는 그래도 궁지에 가까운 거 같거든.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나?"
"……."
"우리 회사가 그동안 원자력 발전소만 국내에서 3개를 지었어. 지금 해외에 수출 계약도 원전과 송전망 사업까지 패키지로 2개나 걸려 있고. 그게 얼마짜리인지 알아? 2개 합쳐서 90조 원이야, 90조 원!"
"……."
"90조 원이 우스워 보여? 막 하수영이 그 어린 놈이 2,3년 만에 저금통에 천 몇백조씩 넣어놓고 있으니까, 90조원이 우습나?"
"저, 전혀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핵융합 때문에 지금도 재협상이니 뭐니 지랄을 해대는데, 이게 공개되면 90조 원짜리 해외 사업이 그대로 날아가는 거야. 그 피해, 우리만 입어? 한전도 입고 이 나라도 입고 국민들도 입는 거야. 하수영이 그놈만 혼자서 쳐웃겠지. 모두의 시체를 쌓아서 만든 산을 밟고서!"
언사가 묘하게 거칠다.
단지 흥분하고 분노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른침을 삼켰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나?"
"아닙니다. 매우 잘 이해가 됩니다."
"뭐, 케이블이 필요 없어? 그럼 전선 만드는 회사는? 거기서 일하는 직원은? 송전탑, 전봇대 짓든 회사와 직원들은? 그 가족들은?"
"……."
"핵융합 발전소 하나 빼고 나머지 싹 다 없애버리면,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 직원들 상대로 장사해서 먹고사는 상인들은?"
"……."
"자본주의야, 자본주의! 자본주의에서 덩치가 쪼그라든다는 건 마냥 좋은 게 아니라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GDP가 줄어들고, 가계소득도 줄어드는 거라고!"
홍웅기는 왜 자신이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자신 역시 무선 전기로 인한 피해자인데 말이다.
한전에서 퇴임하면 맥산중공업으로 연봉 50억을 받고 이직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모든 게 날아갔다.
맥산중공업은 아직 말이 없지만, 회사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게 성사될 리가 없잖은가.
아직 언론에 흘러가지 않았고, 국민은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언제 하수영 측에서 짠 하고 터뜨려 버릴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으니까.
쪼르륵.
이강길 부회장은 말없이 술을 따르고, 마셨다.
홍웅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술을 권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혼자서 막걸리 두 병을 비웠다.
홍웅기는 저 버릇이 뭔지 안다.
무언가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 전, 이강길 부회장이 생각을 곱씹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그래서 긴장되었다.
이 고요함이 가신 후, 과연 어떤 태풍이 불어올 것인가.
"홍 사장."
"예, 부회장님."
홍웅기는 냉큼 대답했고, 이강길은 말없이 그에게도 술을 따라 주었다.
잔이 차자마자 홍웅기는 단숨에 비워 버렸다.
순간적으로 확 치고 올라오는 술기운을 참으며, 홍웅기는 이강길을 똑바로 주시했다.
"우린 궁지에 몰렸네."
"……예."
"내 말을 이해 못 하나? 우린 궁지에 몰렸어. 빠져나갈 수 없는 궁지! 말 그대로 궁지!"
"……?"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어야 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나? 뭐라도 해야지."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에서 홍웅기는 순간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강길은 건설판에서 수십 년을 구른, 불도저 같은 남자다.
수많은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온갖 용역들을 동원해서 원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은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정치권의 연줄과 펜대에 돈을 먹여서 쉽사리 무마했을 뿐.
즉 이강길은 기업인이지만,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인물이다.
"부, 부회장님. 설마……."
"총대는 내가 알아서 하지. 자네는 다음을 준비해 두게."
"안 됩니다! 부회장님!"
홍웅기는 저도 모르게 외쳤고, 이 강길은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왜? 내가 어리석어 보이나? 되도 않는 발버둥을 치는 거 같나?"
"부회장님. 상대는 너무 거물입니다! 파장이 너무 큽니다!"
"그러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야. 너무 걱정 말게."
직접 입에 담지 않지만, 분명한 암시.
홍웅기는 왜 굳이 자신한테 의지를 밝혔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강제로 끌려와 한배에 승선을 하게 된 것이다.
"궁지에 몰렸으면 뭐라도 해야지.
그럼 가만히 앉아서 목에 칼을 받아야 하나? 손바닥으로 막든가! 바닥에 뒹굴면서 흙이라도 뿌리든가! 뭐든지 해야지!"
"부회장님……."
"자네는 돌아가서 다음을 준비하게."
이강길 부회장은 냉정하게 돌아섰다.
결국 홍웅기는 설득을 포기한 채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신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강길의 분노가 자신과 가족들을 향할 게 분명하니까.
당연하지만,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둘의 핸드폰은 완전히 꺼져 있었다.
지금 이 대화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둘의 기억에만 남는다.
***
하수영은 혼자 다닌다.
그 정도 사회적 지위면 경호원이나 수행원을 거느릴 법도 하지만, 그는 단 한 명의 경호원도 없이 항상 혼자 다닌다.
누군가는 안전한 청담동에 살아서 걱정 없이 저러는 것이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아직 곤혹을 치러본 적이 없어서 겁이 없는 거라고 했으며.
또 누군가는 그만큼 자기 호신술에 자신이 있어서 저러는 게 아닌가 라고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나쁜 마음을 먹은 이들에게는 '한 번 찔러 봐?' 라는 욕심이 들게 만들기 충분한 동선이라는 것이다.
이강길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성공확률이 높은 도박이었다.
"그간 입은 은혜가 워낙 크고 하니, 이건 아무것도 안 받고 저희가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살펴 들어 가이소, 실장님."
"그렇게는 안 되지."
비서실장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서류가방 6개를 차례차례 책상에 올렸다.
5만 원권으로 가득 채운 가방이다.
"실패해서도 안 되지만, 실패하더라도 자네 선에서 모든 게 끝나야 해."
"망나니세를 지불해야 안심이 되신다면 어쩔 수 없지라. 감사히 받겠수"
용역사장은 근본 없는 억양이 섞인 말투로 대답하며 히죽 웃었다.
비서실장이 자리를 뜬 후, 그는 곧바로 오른팔을 불렀다.
"창식이, 너…… 아니. 김 전무, 일단 폰부터 끄고."
"아까 실장님 차 보였을 때부터 바로 껐습니다. 걱정마십쇼."
범죄 모의를 하기 전, 프리덤 때문에 폰을 끄는 것은 이제 범죄자들의 기본적인 보안이었다.
"입 무거운 놈, 아니, 네가 직접 조선족 칼잡이 몇 명 추려 봐."
"이야, 진짜 오랜만이네요. 누구 칩니까?"
"하수영이. 청담동 터줏대감 그놈."
"너무 거물인데요? 뒤는 괜찮은 겁니까?"
"뒤가 없으니까 확실하게 꼬리 잘라야지."
"경호원 한 명 없이 맨날 혼자 다니니까 생각보다 쉽게 담글 수 있을 거 같은데… 조선족 애들 써서 찌르고 그날 바로 밀항시켜서 내보내면 깔끔할 거 같긴 합니다."
"나도 그거 아니면 절대 안 받았다. 혼자 캠핑카 끌고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는 놈이니까, 담그는 거 어렵지도 않지. 그래도 원거리 경호원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어차피 조선족 칼잡이 쓰면 누가 사주했는지 놈들이 어떻게 압니까? 걱정 마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