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44화
226장 원수가 심심함을 품으면 (2)
"아뇨, 당장은 하지 마시고 소송할 준비만 갖춰 주십시오. 타이밍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의원님을 암살하려고 했다니, 정말로 어리석은 망나니 새끼입니다. 아니, 어떻게 대한민국 전체를 먹여 살리고 해외수출의 큰 축을 담당하시는 의원님을!"
이서환은 콧김을 씩씩거리며 좀처럼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언제나 침착하기만 했던 인물이지만, 하수영 암살 시도는 그의 발작버튼을 눌러 버리고 말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의원님을 암살, 아! 알 것 같습니다! 핵융합 발전소때문이군요? 태호건설이 원전사업을 이것저것 많이 수주한 터줏대감이니까요."
"그게 1차 원인이긴 한데,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게 좀 더 치명적인 거죠."
"죄송합니다. 저는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소식에 귀를 닫진 않았었는데……."
"공개된 게 아니니까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음,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이서환 의원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서환 의원님이 아시는 게 오히려 위험할 겁니다."
"저도 궁금해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의원님이 직접 세상에 공개하시겠죠."
"제가 태호건설 밥그릇을 아주 크게 깨부쉈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저도 약소하지만 유류분 소송으로한 팔 거들겠습니다."
이서환은 태호그룹을 남이라고 생각해 왔다.
평소에도 껄끄럽게 여기며, 가능한 얽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은 태호그룹 쪽에서 몇 번 제에게 접촉을 해온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선을 그었습니다만."
"시의원 당선 이후겠군요."
"네. 맞습니다."
본래 태호그룹에 이서환은 눈엣가시였다.
그런데 그 미운오리 서자 새끼가 딜컥 하수영 주요 계파원이 돼버렸네?
시의원 자리에 덜컥 당선돼버렸네?
앞으로 부산시장의 유력한 선거주자로서 떠오르고 있는 잠룡이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싫은 서자라해도 다시 보게 되기 마련이다.
부산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나,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는 대도시.
그곳을 기반으로 한, 한창 성장 중인 정치인과 핏줄로 이어져 있으니.
"핏줄 타령을 하고 싶으면 재산 상속이나 먼저 똑바로 하고 난 뒤에 하라고 했더니, 그 뒤에는 연락이 잘 안 오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나중에 부산 시장에라도 당선되면 또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연락 오겠죠. 어쨌든 잘됐네요."
하수영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태호그룹이 망하든 말든 간에, 건설은 반드시 족쳐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아직도 용서가 안 됩니다."
"이강길이 그놈, 그러게 왜 괜히 곡물가루나 열심히 모으고 있는 선량한 꿀벌집을 건드려서는."
"……예? 잘못들었습니다?"
"제가 꿀벌집이라고요."
"의, 의원님이요?"
장수말벌이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꿀벌집?
'설마 진심이신가?'
***
-마스터, 어떤 방식으로 태호건설을 응징하실 생각입니까?
길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상황이다.
어떤 길을 골라서 나아가야 할지부터 고민이 되는.
-무선전기를 공개하면 한 방에 공중분해시킬 수 있겠습니다만,
"당분간 NCND(부정도 긍정도 않음)로 나가기로 했잖아. 그건."
-역시 정공법입니까?
"그래, 정공법이다. 원래 건설이라는 것은 진짜 '법대로만' 해도 부서지게 돼 있다."
표적은 울산 원전에 한창 추가로 짓고 있는 새 원자로들이었다.
***
하수영이 부산과 울산에 가지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당장 지방정부에서 꿈쩍도 못 하고 납작 엎드린다.
부산은 부산-제주도 해상 KTX와 고속도로 때문에.
울산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철강업체와 조선소에 걸린 일자리 때문에.
하수영은 두 지방정부를 순차적으로 찾았다.
"지금 태호건설에서 맡은 원자로 증설 공사 말입니다."
"네, 의원님."
"부실공사투성이라는 제보가 있어서요. 그래서 부산시에서 기습 감독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부실공사라고요?"
최판섭 부산시장은 그 말에 흠칫했다.
하수영의 눈동자를 보니, 아무래도 쉽게 넘어갈 낌새가 없어 보인다.
'강릉의 수영 발전소…… 이거 단순히 부실공사 적발로만 끝날 거 같진 않은데?'
"원전은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야기하죠. 그만큼 안전 기준을 400%이상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안 그런가요, 시장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부산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서입니다. 제게 특별고문을 맡겨 주십시오. 수영 조명에는 훌륭한 원자력 교수님들이 잔뜩 있습니다."
최판섭 역시 태호건설 등 핵피아들의 로비를 받은 적이 있다.
정치를 하면서 로비에서 자유롭기는 힘든 법.
그러나 지금은 태호건설에 눈을 감더라도, 하수영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제주도-부산 KTX 및 고속도로라는 중대한 이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니.
"알겠습니다. 시 차원에서 울산시와 협력하여 특별 감사위원회를 조성하겠습니다."
"부산, 나아가 대한민국을 위한 길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하여 부산과 울산은 손을 잡고 비밀리에 특별 감사위원회를 추진했고, 하수영을 특별고문으로 앉혔다.
위원회에는 수영조명 과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때 핵피아의 마름이었던 전문가들은 누구보다 원자력 발전소의 결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부실공사 내역은 수도 없이 쏟아졌다.
철근과 콘크리트의 정량 부족.
너트와 볼트의 개수, 중량 결핍.
냉각수 파이프의 두께 미달.
더 싸고 좋은 신형 대체 부품이 있음에도, 비싸고 품질 낮은 구형부품을 고집.
적발 내역들이 쌓여갈수록 프리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럴 수가. 마스터, 원자력 발전소 같은 중대한 시설을 이렇게 개판으로 짓고, 개판으로 굴린단 말입니까?
"이게 여기 원전 하나만 이럴 거 같지?"
-다른 원전들도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라는 거군요!
"실제 리스크가 100kg이면, 행정기준은 500kg 정도로 책정해, 그런데 시공은 150kg 정도만 버틸 수 있게 하는 거지. 그렇게 해도 막상 문제는 없으니까."
-만에 하나 150kg을 초과하는 리스크가 닥치면 재앙이 되는군요.
"이게 원전들만 그럴 거 같냐? 식품위생은 괜찮을 거 같냐? 수입 식재료 관리는? 상하수도 공급망은?"
-사회 전반적으로 다 이렇다는 말씀입니까?
"내가 이래서 울타리 밖은 안 쳐다보려는 거다. 한 번 뒤집어엎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일만 하다가 결국 황제라도 먹어야 되거든."
-통합군주가 되어야만 진정한 끝이 오는군요.
"진정한 일지옥의 시작이지. 끝은 무슨."
***
조사위원회는 건설 중인 신형 원자로 시설 2개에 모두 E등급을 주었다.
"원자로가 아니라면 D등급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즉각 공사를 중지하고 허물어야 합니다. 전면적으로 새로 지어야 합니다."
태호건설과 맥산중공업은 당연히 크게 반발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지금까지 이렇게 지었지만, 수십 년간 아무 문제가 없었소!"
"그래서 가동 중인 다른 원자로들도 살펴봤습니다. 거기도 죄다 E등급을 줄 예정입니다."
"뭐요! 당신들이 뭔데!"
"우리요? 부산시와 울산시의 위촉을 받아 안전진단을 맡은 조사위원회입니다만?"
"이이익……!"
하수영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고리 원전의 전체 원자로에 대해서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걸어버렸다.
당연히 태호건설은 발칵 뒤집어졌고, 울산공업단지도 난리가 났다.
"큰일인데, 고리 원전이 끊어지면 우리 공단에 들어오는 전기도 타격인데."
"그렇다고 의원님 하시는 일에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반대할 수도 없고……."
하수영은 울산 공업단지에 많은 일감을 안겨 준 고객이다.
그런 고객이 고리 원전에 위험을 이유로 가처분 신청을 걸어버렸으니, 공업단지 직원들은 이러지도 저 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러나 울산 공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프라임건설 자회사 철강업체들은 태평했다.
"김 사장님, 전기 끊어질 걱정은 하지 마쇼. 우리 공장에서 돌리는 발전기 출력이 괜찮아서 전기 나눠줄 수 있으니까."
"그래요? 어느 정도나?"
울산 공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프라임건설 자회사들은 다수의 수소발전기를 공유해서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여기 공업단지 전체를 커버하고도 남을 출력으로 세팅을 했다고 하더만."
"그게 정말인가?"
"아, 우리 그룹 회장님 신조 아시잖소? 콸콸 넘쳐흐르는 게 부족한 것보다는 무조건 낫다."
"그러니까 고리 원전 가동 중지가 되더라도 전력 공급은 전혀 걱정 마라, 그 이야기인가?"
"네. 그래요. 그러니까 주변에도 부지런히 알려서 안심시켜 주쇼."
"알았네."
공단 내 입주업체들 사이에서 관련소문들이 퍼지면서, 블랙아웃에 대한 불안감은 잦아들었다.
***
대표적인 '하수영 친위 방송국' CVN 케이블에서는 '고리 원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특집 방송을 매일 내보내면서 여론을 불사르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100만 분의 1이라고요? 이 정도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요?
-그 뜻은 안전할 확률이 100만 분의 999,999라는 거죠. 이게 하루 이틀, 일 년 십 년이 반복되면 결국 0에 끝없이 수렴하게 됩니다. 안전 가능성이 0으로 치닫는다고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 세상에 안전하지 않은 게 뭐가 있을까요? 다 언젠가는 사고가 터진다는 뜻이 되잖아요.
-교량 같은 것은 무너져봐야 차 몇 대 다치고 끝납니다. 하지만 원전은 단 한 번이라도 사고가 나면 그 피해집계가 무한대예요, 무한대!!
-아…….
-그래서 원전은 그 어떤 것보다 엄격하고 혹독하게 안전검증을 요구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가동중지 가처분 청구를 인용하고, 전수보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안전한 핵융합 발전소가 있는데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핵융합 발전소로 대체하면 될 거 같은데.
-바로 그겁니다!
"부회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약속도 없이 무슨 손님이? 지금 손님 맞을 여유가 있어 보이나?"
이강길 부회장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고리 원전 가동 중지에 관한 가처분 청구 결정이 내려진다.
'그딴 게 인용될 리가 없지.'
그간 핵피아 세력은 나름 법조계와 든든한 인연의 끈을 만들어 놨다.
판검사들의 혈육들을 한수원 등 자랑하기 좋은 직장에 꽂아 주었으며, 정기적으로 돈도 전달해 왔다.
고위판사 출신의 변호사를 비싼 값에 수임을 주는 것은 합법적인 뇌물전달이다.
그에 비해 하수영은 판사 출신 변호사 한 명, 현직 검사 둘하고만 친분이 있을 뿐.
심지어 그 셋은 이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이강길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거라고 자신했다.
"뭐야? 아직도 안 갔어? 손님이 누군데 그래?"
"그게……."
그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 청년이 자신 있는 걸음걸이로 들어섰다.
하수영의 얼굴을 알아본 이강길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신가, 이강길 부회장."
"하수영…… 의원? 이, 이 무슨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막내아들보다도 어린놈한테 '안녕하신가'라는 말을 들으니 울컥하는 뭔가가 올라왔다.
"저런, 이강길이는 아직도 나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군?"
"하수영 의원! 이 이상 무례는 참지 않겠소!"
"내가 나보다 어린 막내 신입사원한테도 존대하는 사람이야. 근데 자네는 사람이 아니잖나?"
"너희 새끼들은 다 뭐하는 거야! 어서 끌……!"
이성은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데도, 속에서 올라오는 혈기와 분노, 두려움이 멋대로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살인교사범을 어떻게 존중해 주나? 안 그래?"
엉거주춤 서 있던 비서는 물론이고, 이강길까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