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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946화 (946/1,270)

프랜차이즈 갓 946화

226 장 원수가 심심함을 품으면 (4)

부산은 활성단층 위에 존재한다.

때문에 언제고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일부 과격한 지진 전문가들이 옛날부터 고리 원전을 빨리 폐쇄해야 한다고 지랄을 해댔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던 그들의 경고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도로가 갈라지고 일부 부실한 건물의 외벽이 무너질 정도로 상당한 강진이 부산과 울산을 덮쳤다.

시위대는 혼비백산해서 사방팔방달아났고, 그들이 썼던 현수막과 피켓, 시위봉만이 현장에 남아 있었다.

건설 중이던 원자로 시설 일부가 지진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넘어진 타워 크레인이 마르지 않은 콘크리트 벽을 덮쳤고, 값비싼 중장비 위로 파편들이 떨어졌다.

발전소 측은 즉각 모든 원자로의 수동정지 절차를 실시했다.

발전소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강진이었다.

때문에 다들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야! 빨리 빨리 꺼! 지금 다들 뭐하는 거야!"

"박 과장!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거 한 번 끄면 다시 켜기까지 손해가 얼마나 큰지 모르나!"

"지금 흔들리는 게 안 느껴지십니까? 닥치고 무조건 원자로부터 끄고 봐야 됩니다!"

"아니,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건데!"

그 와중에도 깐깐한 상사는 원자로 가동 중지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두려워서 벌벌 떨었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원자로를 전부 끄는 데에는 성공했다.

"후, X발. 내가 살다 살다 한국에서 이런 지진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근데 이게 더 큰 본진을 예고하는 사전 경고면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태호건설이 적당히 해처먹었기를 간절히 빌어야지."

"예?"

"이거 태호건설이 지은 거다. 그게 벌써 몇십 년 전인데, 철근하고 콘크리트 적당히 빼돌렸기를 바래야지."

부실공사가 아니기를 빈다는 것도 아니다.

자재 빼돌리기는 무조건 했을 테고, 그게 정도껏이기를 빈다는 소리다.

***

[지진 전문가들, 한 목소리로 위험성 경고하다.]

[즉시 부산에 대피령을 내리고 시민 소개 작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

[한국대 윤 교수 : "더 큰 본진이 기다리고 있다. 그 전에 서둘러 부산에서 멀어져야 한다."]

[한수원, "원전은 안전하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고리 원전 송전망 붕괴, 사실상 발전소로서는 무용지물 상태.]

[원전, 과연 안전한가?]

한수원은 방사능 물질 누출은 없다고 거듭 강조를 했다.

그러나 부산과 울산, 포항 시민들의 불안함은 조금도 달래지지 않았다.

고속도로 진입로에서는 타지방으로 탈출하기 위한 차량의 행렬이 군집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차량들이 몰리는 바람에, 고속도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수영 조명은 얼른 적극적인 자기 홍보에 나섰다.

[핵융합 발전은 언제 어느 때든 방사능 물질 누출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사일을 맞아도 그냥 전력 공급만 끊어질 뿐,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CVN 케이블은 그동안 수영그룹에서 받아먹은 광고값을 열심히 하겠다는 듯, 매일같이 비교 평론을 보도했다.

-송태석 교수님, 그러니까 지금 고리 원전이 마냥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지요. 긴급 정지에 들어갔다고는 하나 지진이 닥친 그 순간에도 발전소는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는 이제 전수검진에서 체크를 해봐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지진 충격으로 인해 연료 물질이 누출됐을 가능성을 가장 의심해야죠.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물론 모든 설계와 시공 기준을 완벽하게 지켜서 진행했다면, 이번 지진 정도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그에 비해 핵융합 발전은 어떤가요?

-핵융합 발전은 완벽하게 안전하죠. 초토화가 되더라도 그냥 시설만 부서지고 끝입니다. 물론 세계 유일한 핵융합 발전소는 매우 강력한 내진 설계가 되어 있어 안전합니다.

부산 지진은 태호건설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강길은 철저히 술을 멀리한 채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

언제든 원전 관련 보고가 들어오면 즉각 대응할 수 있기 위해서다.

"부회장님, 고리 원전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거 같습니다."

"좋지 않아? 무슨 일이야?"

"구형 원자로 4호기에서 기준보다 높은 방사능 수치가 확인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뭐야? 방사능? 그럼 연료봉이 노출이라도 됐단 거야, 뭐야?"

"일단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만, 문제가 생긴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강길은 흙빛이 되었다.

부산을 덮친 지진은 건설 당시 적용된 내진 설계보다 하위였다.

즉 태호건설이 설계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간접 증거만 된 셈이다.

"망할, 한수원 놈들은 뭐하고 있나? 일단 지진 그쳤으니까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체크해서 보수해야지!"

"그게, 직원들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보수명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뭐야?"

"방사능에 노출되느니 그냥 사직서를 내고 말겠다는 겁니다."

"허허, 참. 사명 의식이 없는 놈들을 믿고 부리고 있었군그래. 한수원사장 빨리 연결해."

잠시 후, 한수원 사장과 연결되었다.

-네, 부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긴 말 필요 없고, 고리 원전 그거 빨리 점검이든 보수든 해서 더 다른 말이 안 나오게 하시오. 이 민감한 시기에 문제 커지면 모든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저희도 그런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아무도 원자로 시설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돈을 주면 되지 않소? 특별수당."

-규정상 많아봐야 몇백인데, 그 돈받고 목숨을 걸기는 싫다고 합니다.

"아니, 땅을 파면 돈 몇백이 그냥 튀어나오는 줄 아나? 어이없는 친구들이네."

시설을 체크하고 수리가 가능한 이들은 고급 엔지니어들이다.

다들 최소 4년제 이상을 졸업했고,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잘못해서 방사능에 노출되어 몸이 망가지면 누구도 되돌려 줄 수 없다.

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이 매우 끔찍하다는 것도 잘 안다.

-나름 배웠고 대가리도 굵은 친구들이라서 어설픈 구슬리기는 통하지가 않습니다, 부회장님.

"억 단위 돈을 준다고 해도 놈들이 싫다고 할까?"

-…….

한수원 사장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급 기술자들은 연봉이 최소 6천에서 1억 대까지도 받는다.

절대로 겨우 돈 수억에 자기 여생을 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강길은 화를 꾹 참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여론 시끄러운 거 알지? 추가 문제가 없어야 수월하게 수습할 수 있어. 발전소 특별법 통과된 지 이제 얼마나 지났다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회장님.

이강길은 그 뒤에도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

언론사에도 직접 전화를 걸어서 최대한 옹호 기사가 나오도록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웃음을 쳤던, 거액의 유산싸움이라는 스캔들이 이런 상황이 되니까 꽤나 뼈아팠다.

심지어 그 서자는 부산에서 한창 떠오르고 있는 지역정치인 아닌가.

서자 이서환은 예상대로, 이 떡밥을 놓치지 않았다.

-내진 설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지적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의회에서는 이 문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정말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었는데도 언론에서 원자력 카르텔 감싸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절대 묵과할 수 없습니다.

-한수원은 내부 조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든 것을 투명하게 실시간 공개해야 합니다.

이서환은 시의원으로서 연일 사회와 기업에 질타를 날리고 있었다.

원자력 발전에 관해서 공부라도 했는지, 심도 깊은 자료들을 들고 와서 주장을 펼쳤다.

근거는 무겁게 대되 메시지는 짧고 간결했기에, 부산 시민들은 그의 SNS 메시지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이놈이 부산에서 이 정도로 거물이었나?'

보통 사람들은 자기 동네 시의원이 누구인지도 모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서환의 SNS 계정에 달리는 하트와 댓글, 조회 수를 보면, 이건 뭐 거의 부산시장 이상의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원전 근처에서 정상보다 월등히 높은 방사능 수치가 확인된다는 시민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건설사업자가 한수원에 어떤 압박을 가해서 내부 정보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뉴스의 한 장면을 보면서, 이강길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서환이 저놈은 가만두지 않겠다며, 속을 잘근잘근 씹었다.

"부회장님, 하수영 의원이 개인 SNS에 우리를 저격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가져와 봐."

이강길은 감정을 한 번 더 질끈 억누른 채 SNS 글을 읽었다.

[이래서 가동 중지하라고 가처분넣었는데 기각당함. 주심판사 아들은 하필 태호건설 상무보, 이게 우연? ㅋ]

"으아아아! 이 빌어먹을 놈의 자식이!"

갑자기 이강길이 비명을 지르며 흥분하자 비서는 당황했다.

저격글이기는 하지만 그리 수위가 높지는 않은데, 왜 저렇게 흥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골프채! 내가 제일 아끼는 놈을! 감히! 감히! 훔쳐가서 저따위로 취급해!"

그제야 비서는 다시 SNS를 확인했다.

저격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 한 장.

작은 흙더미 봉분에 대충 꽂아놓은 골프채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풀세트 가격이 1억 원이 넘어가는 최고급 골프채로, 그중에서도 손에 가장 착착 감긴다며 부회장이 애지 중지하던 골프재다.

저 골프채 1개 가격만 해도 1천만 원에 근접할 것이다.

겨우 진정한 이강길이 명령했다.

"언론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틀어 막아. 일단 언론에서 우리가 무조건 이기고 들어가야 한다."

"네! 부회장님!"

"농사 하나로 졸부 된 젊은 놈팽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이강길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

정운원은 초췌한 안색의 중년 남자를 맞이했다.

원전 고급 기술자로, 정운원과도 인연이 깊은 사이였다.

그는 현재 고리 원전에서 선임실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교수님. 저 아무래도 사표 내야 할 거 같습니다."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가 보죠? 방사능 누출이다 아니다, 말이 많던데."

"지금 윗대가리들이 미쳤습니다. 우리더러 방호복 입고 들어가서 수리하랍니다."

"수리?"

정운원은 자세를 고쳐 앉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어느 정도입니까? 멜트다운이나 멜트스루까지 염려해야 할 정도인가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분열 반응은 완전히 정지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런데 냉각수 파이프가 터지면서 반응 중이던 연료봉 하나에 대량으로 노출이 돼서…… 지금 구형 4호기 내부는 방사선투성이입니다. 우리더러 거길 들어가서 그 많은 오염수를 퍼내라는 겁니다."

"문제없다는 건 역시 거짓말이었군요."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그 위험한 곳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정도는 원전작업 로봇을 들여보내면 될 텐데."

"그게 훨씬 비싸니까 안 하겠다는 겁니다. 우리 같은 단백질 부품들이야 나중에 문제 생겨도 산재처리 하면 값싸게 메울 수 있으니까요."

하필 가동 중지 가처분이 기각되자마자 딱 이런 사고가 터졌다.

정운원은 한반도 지각판이 하수영을 돕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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