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48화
226장 원수가 심심함을 품으면 (6)
처음 하수영의 제안을 받았을 때, 한수원은 썩 믿음이 가지 않았다.
농사나 짓던 로봇들을 원전 작업에 투입하겠다니까 당연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방사선 차폐는 제대로 되어 있습니까? 그냥 들어갔다가는 반도체 부품들이 방사선에 망가져서 곧바로 작동 불능이 될 텐데요?
-제 로봇들은 우주에서 농사를 짓는 가정하고 만들어졌습니다. 방사선 따위쯤이야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
어쨌든 한수원으로서는 하수영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당장 엔지니어들이 내부 투입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었고, 원전용 로봇들을 해외에서 수송해오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비용도 너무 비쌌다.
-제가 SNS에 글 올리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 원장님 본명, 사진, 그리고 태호그룹과 한수원에 특채로 들어간 친인척들도 싹 공개를 할지도 모르는데?
-그, 그것만큼은 제발!
아무튼 하수영의 작업 제안이 승인 되었다.
어차피 정부나 한수원은 당장 뭘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으니.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로봇들은 대단했다.
퍼포먼스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사람보다 더 자연스럽고 융통성 넘치는 움직임을 보였고, 로봇 특유의 성실함과 정확함, 고효율까지 겸비했다.
너무 간단하게 모든 게 해결돼서 오히려 한수원 본부가 어안이 벙벙했다.
"이거, 전 국민들이 진짜 감동 크게 먹었을 겁니다."
"농사 로봇들이 원전 제염 작업에서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연료봉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다 회수했어요. 대박이에요. 대박!"
생방송으로 지켜본 전 국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전쟁과 빈곤을 기억하는 세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크게 발전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고, 중장년층은 이미 완벽하게 완성된 로봇 군단 제어 시스템의 등장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젊은 세대는 감명받은 한편 앞으로 로봇들과 일자리를 다뤄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어린애들은 새로 나온 로봇 실사영화가 다음 편이 없다는 사실에 떼를 쓰며 울었다.
그러나 하수영의 퍼포먼스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의원님, 로봇들이 왜 모두 한수원폐기물 차량에 올라탄 겁니까? 설마……."
-녀석들은 임무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농장으로 돌아올 순없죠.
"그것은……."
-아나운서님이라면 방사능 작업을 한 로봇이 기른 작물을 드실 수 있겠어요? 아무리 철저히 제염을 했다고 해도요? 전 절대로 고객들께 그런 부정식품, 아니, 폐기물을 팔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 로봇들은 엄청 비싸지 않나요?"
-다 합쳐봐야 1조 원도 안 되는 걸요. 3,000억 원쯤 하려나?
"……."
-고객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처럼 수영농장산 식자재는 위생과 청결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핵융합 전기를 이용해서 농장을 가동하고, 로봇들을 충전하고 있습니다.
"의, 의원님?"
-또한 수영목장에서는 그런 깨끗한 곡물과 볏짚으로 만든 사료를 가축들에게 먹여 키우고 있으며, 이상 기후의 주범인 메탄을 철저하게 포집하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이어진 자기 홍보에 CVN 데스크는 당황했다.
하지만 초대형 광고주의 자기 홍보를 감히 끊을 수 있는 간 큰 간부는 없었다.
보통 상황이라면 방송사고로 넘어 갔을 일이지만, 카메라는 꿋꿋하게 돌아갔다.
-수영농장 식자재를 드시는 것은, 생태계를 지키는 길입니다.
CVN의 하수영 인터뷰는 순간 시청률이 80%를 넘어설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CVN에서는 차라리 하수영이 더 말을 이어주기를 원했다.
-아참! 수영양식장 생선들은 기생충이나 바이러스 걱정 없이 안심하고 드실 수 있습니다. 또한 남획한 자연어를 갈아 만든 사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의원님, 그보다는 시청자분들이 로봇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저 로봇들은 어디에서 조달을 하신 겁니까?"
-부품들은 기성품입니다. 하드웨어는 누구든지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다릅니다.
"소프트웨어의 차이인가요?"
-네, 자세한 건 제 브레인인 에릭로한 박사에게 물어보시고요. 아, 잠시 광고 한 번 보시고 다시 오겠습니다.
"아! 네! 시청자 여러분, 잠시 광고 후에 다시 이어지겠습니다. (송출이 끊어진 이후) 의원님, 근데 그건 제 발언인데요………."
원격 인터뷰가 잠시 끊어지고, 광고 영상이 흘러나왔다.
화사하게 치장한 장효주의 부드러운 미소가 화면 가득 나타났다.
-독도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닙니다. 편리한 교통, 최고의 숙박,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황제 부럽지 않은 산해진미를 동해 바다에서 누려 보세요.
-돈이 없다고 병을 더 키우지 마세요. 수영병원을 찾으세요. 프리덤에게 간단히 부탁하면 모든 절차가 간편하게 진행됩니다. 최고의 의료, 최고의 의사, 부담 없는 진료비를 자랑하는 청담동 혜민서, 청담수영병원을 찾으세요.
-식비가 부담스러우신가요? 그래도 균형 있는 영양을 갖춰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답니다. 신두 하루 3알이면, 당신의 영양과 건강은 100점 만점.
-일주일에 1병, 엘릭서 드링크로 강화된 건강을 차지하세요.
-치킨은 역시 황금비단우산버섯오일로 튀겨낸 수영치킨이 최고!
-전자레인지에 대충 돌려도 마이야르 반응이 한가득 일어나는! 수영한우! 그 비밀을 알고 싶으시면 지금 바로 역삼동 1호점을 찾아주세요!
-현역 군인이세요? 그럼 지금 당장 신청하세요. 맛좋고 건강에도 좋은 수영농장산 쌀을 매달 가정으로 보내드립니다! 해군 원수님이 현역들을 위해 뿌리는 선물!
길고 긴 광고가 마침내 끝났다.
심지어 광고도 죄다 수영그룹에서 준 광고들이었다.
수영그룹 광고가 끝나고, 다시 수영그룹 오너가 방호복을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광고는 재밌게 보셨나요? 저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흡입력이 뛰어난 광고더라고요.
"아, 네. 의원님. 그럼 다른 질문을……. 로봇들은 정말 폐기되는 건가요? 그냥 보존했다가 위험한 원전작업에 투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네? 그럼 원전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자는 말씀이신가요?
"그,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발전소특별법 때문에 원전을 일정 이상 유지해야 하니까 기왕이면 든든한 작업 로봇 군단을 남겨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 발전소 특별법이 저를 저격해서 만든 법입니다. 제가 원전을 왜 도와야 하죠?
"아아, 그렇군요. 제가 논점을 잘못 짚은 거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도운 것은 고리 원전도, 원자력 카르텔도, 한수원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농장 식품을 아낌없이 드셔주시는, 500만 부울포 고객 여러분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
수영농장이 남긴 퍼포먼스는 아주 강렬했다.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은 둘만 모였다 하면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수영농장에서는 죄다 그런 로봇들로 농장을 굴린다는 거지? 이야, 완전 최첨단 초초초스마트팜이네."
"원전 굴리는 나라들에서 어지간히 군침 흘리겠는데? 그거 뭔가 문제터졌을 때 투입하면 딱이잖아."
"꼭 원전이 아니더라도 투입할 곳은 무궁무진해 보이던데."
"근데 한 번 원전에 투입한 놈들은 다른 곳에는 투입 못 하잖아. 방사선에 어쨌든 노출됐으니까."
"그렇겠다."
"그래도 중고로라도 사가려고 하는 나라들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여러 나라들이 물밑에서 한국 정부에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폐기를 하는 것보다 원전 사고 작업용으로 재활용을 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제안, 사고가 터졌을 때 사람 대신 투입하려는 보험으로 인기가 많았다.
한수원에서는 그런 해외의 제안을 정리해서 하수영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하수영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냥 폐기하는 게 나을 텐데요."
"하지만 의원님, 아주 멀쩡한데 이대로 폐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그럼 해외에 팔았다 치고, 그거 운용은 어떻게 할 건데요?"
"예?"
"걔들 중앙서버에서 원격으로 작동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들이 하드웨어가 모자라서 못 만든 게 아니에요. 로봇을 움직이는 소프트 파워가 부족해서 저렇게 못 하는 거죠."
"그, 그런……."
동석한 외교부 인사는 당황했다.
일본과 중국 정부에서 비밀리에 큰 가격을 제시했는데, 이러다가는 고철값도 못 받게 생겼다.
"의원님, 실은 일본에서 6조 원을 제시했습니다. 로봇들을 패키지로 구매하는 가격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에서는 6조 3,000억원을 제시했습니다."
"그거 어차피 너무 무거운 것은 못들어서 큰 사고에서는 도움이 안 될텐데. 이번에는 오염수만 퍼내는 거라서 양동이 릴레이로 가능했지만요."
"그래도 사람보다는 훨씬 힘이 세고 지치지도 않으니까요. 정부에서는 오히려 러시아에서 아무 말이 없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을 생각하면 러시아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고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전혀 입질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는 혹시 하수영과 직통으로 이야기 중인지 의심했다.
"아아, 러시아에는 제가 설명을 했습니다. 하드웨어 빵빵한 로봇으로 만들어오면 소프트웨어는 잠시 기간 제로 임대해 주겠다고요."
"예? 벌써 이야기가 되신 겁니까?"
"러시아는 이야기가 다르죠. 미사일 순양함도 싸게 팔아줬고, 연해주에 농장 지을 땅도 크게 내줬으니까요."
결국 고리 원전 사태를 해결한 로봇들은 핵폐기물장으로 향했다.
***
태호건설은 내부에서 크게 흔들렸다.
기둥뿌리인 건설을 중심으로 다른 주요 계열사들도 악영향에 시달렸다.
곤두박질을 친 주가는 오를 기미가 없었고, 주주와 언론은 매일같이 태호그룹을 성토했다.
마피아 세계는 비정하다.
한 번 희생양으로 삼기로 결정하자, 언제 돈과 의리를 나눈 동지였던 사이였다는 듯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태호그룹에 모든 사회적 부담과 책임을 덮어씌우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특히 원전 사업에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었던 법조계에서 더욱 악착같이 등에 칼을 찔렀다.
[검찰, 태호건설 이강길 부회장에 24건의 경제사범 혐의 적용! 징역 20년 구형!]
[유류분 소송, 유례없는 빠른 진행! 1심에서 승소한 이서환 시의원!]
[태호그룹, 갈가리 찢어지나?]
[대형 기관 주주들, 입을 모아 태호그룹 오너 일가 전원 사퇴 주장. 측근들도 동반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
[사면초가에 몰린 태호건설!]
태호그룹도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오너 일가가 소수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산업은행, 연금공단 등 대형기관주주와 개인주주, 그리고 해외 주주들이 대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강길까지 구속되고 백기사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태호건설의 미래는 캄캄했다.
***
하수영은 언론의 눈을 피해, 구치소에 있는 이강길을 조용히 찾아갔다.
"요즘 구치소 밥이 맛있다죠? 그게 납품하는 쌀이 좋아서 그런 겁니다. 부회장님."
"……."
벌레 보듯 하대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강길은 방심하지 않았다.
저 눈웃음 아래 감춰져 있는 적개심을 진작 봤기 때문이다.
"이서환 시의원이 다행히도 1심에서 승소를 했어요."
이강길은 유전자 검사에 응한 멍청한 가족을 떠올리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아무리 압박감을 느꼈다지만, 별로 버티지도 못하고 머리카락을 내주다니.
"복잡하게 갈 거 뭐 있습니까? 건설 지분만 정리해서 우리 이서환 시의원에게 나눠주세요. 저승 가 있는 선대 회장님도 승낙하셨, 아니, 만족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