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52화
227장 무선을 무선이라 부르지 못하고 (2)
이렇게 대놓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이런 노골적인 NCND 스탠스 자체가 이미 긍정한다는 뜻이 아닌가?
코즈펠트는 카탈로그를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하수영을 직시하다가, 조금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그럼 의원님, 핵융합 발전소 도입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습니까?"
"그럴까요?"
"네, 미 정부는 핵융합 발전소 도입을 강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흐음, 미국 전력 카르텔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나라, 미국.
4배 가까이 차이 나는 인구수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전기를 쓰는 국가.
당연히 에너지 기업들의 로비가 엄청나다.
"로비가 엄청날 텐데, 그걸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핵융합 발전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합니다. 탄소 배출 감소, 탈원전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백악관의 의지는 강경합니다."
"아,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발전소를 당분간은 더 못 만들어요."
"예……?"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코즈펠트는 당황했고, 하수영은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핵융합 장치를 만드는 데 아주 특별하고 희소한 물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네."
"그 물질을 축적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번에 전부 다 써버렸다고 하네요."
"그럼 이제부터 다시 생산을 하면……."
"이게 자동화가 안 되고 로한이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데, 반복 노가다에 질려서 이제 당분간은 안 하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시키면……."
"기술은 지켜야죠. 로한은 그래서 절대로 중요한 작업 과정은 남에게 공개하지 않아요. 저 역시도 못 봅니다."
"에릭 로한 교수를 설득해서 다시 작업을 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될 거 같아요?"
"……."
"이사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로한처럼 부족한 게 없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 지루한 반복 노가다 작업을 하라고 하면, 과연 흔쾌히 알았다고 할 거 같아요?"
"그 정도로 지루한 작업입니까?"
"네, 로한이 아주 질색을 했어요. 자기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만, 완성되고 나면 이제 당분간은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고요."
"그, 그 정도로……."
코즈펠트 이사는 암담함을 느꼈다.
하수영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너무 좌절하진 마시고요. 이미 완성된 핵융합로가 있지 않습니까? 아, 그냥 수영발전소에서 직접 전기구매하면 될 것을, 뭐 그렇게 걱정을 하세요?"
"강릉에서 미국까지 송전하려면 송전망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야 할 겁니다. 전력 손실도 엄청날 테고 말입니다."
"그래서! 에릭이 또 다른 비밀병기를…… 아차차. NCND. NEND."
"……."
아무리 봐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아주 강한 부정으로서 세게 긍정을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튼 로한은 당분간 노가다는 안 한대요."
"그래도 의원님이 설득을 하시면……."
"당분간 놀고 싶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강제로 일을 시킵니까? 저는 그렇게 악독한 사람이 못 됩니다. 언젠가 로한이 다시 일하고 싶어져서 몸이 근질근질해지기를 기다립시다."
"……."
"자, 그럼 카탈로그나 다시 볼까요? 근데 줌왈트 구축함을 진짜 파는 겁니까?"
"의원님이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판매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죄다 긁어왔습니다."
배수량 1.5만 톤이 넘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스텔스 구축함.
하지만 돈만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3척을 끝으로 더 이상 추가 건조 계획이 없는 비운의 함정이기도 하다.
가장 큰 단점은 스텔스 형상을 갖추다 보니 폭장 능력이 떨어지고, 미사일과 폭탄 비용이 무지막지하게 비싸졌다는 것.
가장 큰 장점은 스텔스 성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것.
"함포를 죄다 제거했군요?"
"네, AGS 155㎜ 함포는 포탄 가격이 너무 비싸서 결국 제거했습니다. 명백한 실패죠."
돈만 잡아먹는 값비싼 실패작.
미 의회가 줌왈트 구축함에 냉정하게 내린 판단이다.
개발비(225억 달러), 건조비 등 모든 제반 비용을 고려하면, 척당 비용을 100억 달러 이상으로 잡아야 하는 놈이다.
이왕 만들어놓은 3척도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여기저기 써먹으려고 미 해군도 나름 발악을 하고 있다.
그게 카탈로그에 실려 있다는 건…….
"미 의회에서는 전부 퇴역시키기로 결심을 굳혔군요?"
"……눈치채셨군요."
"매몰비용이 아까워서 억지로 굴리고 있었는데, 앞으로 더 투입될 돈을 생각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손절을 치자는 거로 보입니다."
"네, 정확하십니다."
하수영의 얼굴에 흥미가 잔뜩 깃들었다.
"음…… 저희 농장이 요즘 규모가 제법 커지면서 해상 운송량도 늘었습니다. 대형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을 다수 구매해서 굴리고 있죠."
남미에서 수영콜라를 만들 코카나무잎 등의 재료를 실어오고, 양식장에서 주 1, 2회씩 꼬박꼬박 해양수산 경매를 위해 배들이 출항하며, 노르웨이 양식장에 공급할 양식사료를 실은 배들이 부산항에서 출항하고, 북미 수영레스토랑에 공급할 식재료를 실어 나르는 등등.
수영그룹이 자체적으로 굴리는 해상운송량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다.
"안 그래도 해적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피랍된 배는 없지만, 납치 시도가 몇 번이나 있었지요."
"Mk.44 부시마스터 함포를 달면, 테러나 해적 집단쯤은 충분히 방어가 가능할 겁니다. 가성비와 성능이 매우 좋은 기관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지죠."
"멋 하나만 보면 단연컨대 현존하는 최고의 전투함입니다."
물론 자체 전투력도 최강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는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가성비가 최악인, 너무 비싸다는 점이 태생부터 줄곧 발목을 잡았다.
'어차피 퇴역이 내정된 함정들이다. 매몰비용을 생각하다가는 앞으로 더 큰 손해만 본다. 하지만…….'
코즈펠트 이사는 백악관의 신신당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줌왈트 구축함의 미래 스텔스 디자인은 독보적, 하수영이 반드시 탐을 낼 것이라고, 백악관 참모진은 확신했다.
어차피 퇴역이 결정된 전투함으로 호의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핵융합 무선 전기의 실체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고, 나아가서…….
"무선 전기를 속 시원히 설명해 주신다면, 줌왈트 구축함 3척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물론 자세한 거래조건이 옵션으로 붙겠지만, 지금은 자잘한 걸 설명할 타이밍이 아니다.
"뭐라고요? NCND 스탠스를 버리 기만 하면, 이 비싼 구축함들을 전부 공짜로 주겠다는 건가요?"
"네? 공짜는 아니고 적당한 판매조건에 따라……."
"아무튼 헐값에 팔겠다는 건가요? 아,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되는데."
"……누구라도 놀랄 만큼 저렴한 가격이 될 겁니다. 매몰비용에 비해선 말입니다."
"좋아요, 좋아. 사실 무선 전기를 상용화한 거 맞습니다. 전자기파, 자기장 방식이 아니고 양자 얽힘처럼 보이는 뭐 그런 건데 양자 얽힘은 또 아니라고 하네요. 아무튼 거리 말고는 별다른 제약이 거의 없고, 또 아주아주 안전합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100억 달러(는)짜리 스텔스 구축함 3척이면 되었던 거였나?
역시 상대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입맛에 맞는 선물이 최고다.
"그런데 미국이 쓰기에는 어려울 거예요. 무선송전설비를 만드는 데는 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갑니다. 우리도 한국 전체 커버하는 데만 금이 수십 톤 넘게 들었어요. 아니다. 더 들어갔나? 나중에 영수증 한 번 봐야겠네."
"금이 꼭 필요합니까?"
미국도 수영발전소에 있는, 높이 4미터짜리 순금 탑 7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금을 얼마나 썼느냐가 송전 성능에 비례한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금을 사 모았죠. 경기도 농장 밑에서 금맥이 안 발견됐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습니다."
"그럼 미국 전체에 무선 송전망을 깔려면……."
"미국 전체요? 그럼 적어도 금이 몇천 톤 이상은 필요할걸요?"
"……."
미국의 금 보유량이 8,000톤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몇천 톤 이상이 필요할 거라고?
코즈펠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적으로 금값이 얼마나 폭등할 것인가.
"의원님, 부디 이 사실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수영발전소의 금탑도 외부에서 보지 못하도록 가림 장치를 해주시고요."
"노력해 보죠. 그래서 얼마나 팔겁니까?"
"원래 캘리포니아에 핵융합 발전소하나만 지어주시면 줌왈트 3척 모두 무상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발전소와 줌왈트 3척을 맞바꾸자? 그건 제가 기울어도 너무 기우는 조건인데요?"
"설마 맞대결이겠습니까? 말 그대로 지어만 주시면, 입니다. 소유운영권은 당연히 의원님이 가지시고요."
"흐음."
"건설비용까지도 일체 미국이 부담하려고 했습니다."
돈은 우리가 알아서 대겠다.
발전소는 당연히 네 소유고, 운영도 네 마음대로 해라.
그럼 스텔스 구축함 3척도 그냥 주겠다.
"무선 전기는요?"
"적어도 오늘은 도입에 대한 고려대상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그 부분은 차후에 따로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합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구축함 3척이 공짜로 생기는 건데, 제가 마다할 리가 있나요."
건설비용 부담이 아니라, 구축함 3척을 더욱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라.
코즈펠트는 구축함을 카탈로그에 끼워 넣기를 잘했다고 뿌듯해했다.
"그런데 가능한 겁니까? 아까 핵융합 장치에 필요한 희귀 물질을 만들려면 에릭 로한 교수가 장시간 채집노가다를 해야 한다고……."
"아, 참. 그렇네. 잠시만요. 제가 로한과 이야기를 해보죠. 프리덤. 영상통화 걸어."
-네, 마스터.
잠시 후 태블릿 화면에 로한의 모습이 나타났다.
코즈펠트 이사는 긴장해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상황이 이런데, 로한, 방법이 없겠냐?"
-흠, 제가 요즘 만나줘야 하는 여배우만 여러 명이라서 그런 재미없는 장시간 반복 노동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데요.
"야! 스텔스 구축함이 3척이라잖아, 3척! 줌왈트 세 배인데 이걸 참을 수 있다고?"
상사와 부하 간에 척척 맞아떨어지는 연기 콤비임을 모르는 코즈펠트는 조마조마해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코즈펠트 이사. 어차피 핵융합 장치 기술적 원리는 내가 전혀 공개하지 않을 건 알고 있습니까?
로한이 갑자기 코즈펠트를 향해 물었고, 그는 쓴웃음을 머금고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지식의 나눔을 위해서는 많이 아쉽긴 합니다만."
-자산 가치를 위해서는 당연한 거 죠. 미국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어차피 기술을 얻어낼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발전소를 지을 필요가 있을까요?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결국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 그 자제 아닙니까?
"음…… 그게 맞긴 합니다만."
기술을 얻어낼 욕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발전소를 몰래 염탐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럼 캐시 서버, 아니, 캐시 발전소를 둡시다.
"캐시 발전소요? 그게 대체 뭡니까?"
-캘리포니아에 강릉 발전소와 1대 1로 연결되는 위장 발전소를 두고, 강릉 발전소에서 무선으로 전기를 받아 유선 송전망으로 공급하도록 하면 될 거 같은데요.
코즈펠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리가 9,400m는 될 텐데, 그게 됩니까?"
-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