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70화
231장 솔저 콜렉터 (4)
황조원은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다.
다른 청년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명문대 졸업장과 화려한 스펙을 갖추고도,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역시 공대를 갔어야 했어.'
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면, 왜 고고 학 따위를 전공했는지 과거의 자신을 때려주고 싶어진다.
그 와중에도 교수는 끊임없이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 않겠는가, 대학원생
-교수님! 저는 딴짓 안 하고 열심히 대학 다니면서 공부만 했을 뿐인데, 제가 왜 대학원을 가야 하는 겁니까?
-딴짓 안 하고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와야 하는 걸세.
-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 성실함! 우수한 성적! 그리고 크고 건강한 근육과 굳건한 체력! 고고학을 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인재는 없다네.
-아, 안 됩니다!
황조원은 복잡해진 머리를 마구 형클어뜨렸다.
"으으, 내가 무슨 생각을. 이 와중에 대학원 진학에 솔깃하다니. 미쳤어, 미쳤어."
절대로 대학원은 가지 않으리라.
마주칠 때마다 지저분한 삽을 들고 다 죽어가는 대학원 선배들을 떠올리며, 황조원은 다시 한번 결심을 굳혔다.
"줌왈트 승무원에 발탁됐으면 인생 역전이었는데. 아, 너무 아쉽다. 최종 선발자들은 얼마나 좋을까……."
황조원은 해병대 출신이었다.
줌왈트 승무원 선발 소식을 듣고 장교로 지원을 했지만,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뭘 기준으로 선별을 했는지도 몰라서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해군에서 공개한 최종 합격자 300명의 스펙과 피지컬, 현역 생활 이력을 보고 납득했다.
'일반 병사 출신은 이 정도는 되어야 줌왈트에 탈 수 있는 거구나.'
깨끗하게 포기했다면 거짓말이다.
아직도 한강뷰 거주권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20년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해군에서 뼈를 묻을 각오였는데."
-그 각오가 정말입니까, 주인님?
"그래.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줌왈트 같은 배라면 계속 타고 있어도 좋다고."
-그렇게 의욕이 높으시면 한 번 더 도전을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한 번 더? 하지만 기회가 없잖아."
-줌왈트는 아니지만, 3척의 병원선과 키로프급, 북아메리카급 호위함이 있습니다.
미사일 순양함과 경항모는 원래 호위함이 아니다.
하지만 퀸 루나 호위가 주임무이기에 호위함이라고 불린다.
-한강뷰 거주권은 없지만 복무 조건은 매우 좋습니다. 정규 급여 외에, 하수영 원수님이 추가 급여를 지불할 계획입니다. 물론 사비입니다.
"주가 급여? 사비?"
-네. '하수영 함대'에서 근무하는 승무원들은 모두 정규 급여 외에 추가 수당을 받습니다.
"그거 형평성 문제가 나오는 거 아니야?"
-100% 사비 지출인데 무슨 명목으로 발목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부유한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자주 한턱을 쏘는 것도 형평성논란에 걸려야지요.
"그건 그러네. 근데 그거 정말이야?"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황조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에 잠겼다.
-단순한 해군이 아닙니다. '하수영친위함대'의 일원이 되는 겁니다.
"하수영 친위함대."
-조건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정 뭐 하면 1년만 해본다는 생각으로 지원하시죠?
"그게 돼? 군인은 회사처럼 마음대로 그만두지를 못하잖아?"
-원수님이 그게 가능하도록 다듬을 계획이랍니다.
물론 합당한 이유 없이 땡깡처럼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 '수영그룹울타리'에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제약이 있지만.
프리덤은 그건 말하지 않았다.
열심히 꼬시는 중에 나쁜 점을 뭐하러 먼저 밝히겠는가?
-군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하수영친위함대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죠.
"으음, 그래도 엄연히 해군 소속이잖아."
-하수영 원수님의 사비로 마련한 함대이니만큼 함대 운영은 각별한 배려를 받습니다. 해군도 그 부분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프리덤은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다.
하수영이 마음만 먹으면 함대를 고철로 해체해 버릴 수 있으며, 국방부는 그것만큼은 막을 수 없고, 그래서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좋아. 지원하겠어. 이대로 취직 안돼서 대학원에 끌려가서 평생 삽질만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탁월한 결정입니다.
"4함대가 좋을까, 5함대가 좋을까? 네 생각은 어때, 프리덤?"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4함대와 5함대는 사실상 공동운명체, 내부 보직 이동은 제한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일단 4함대에 지원하자. 기왕이면 퀸 루나 근무를 희망하고."
-제가 바로 지원서 넣겠습니다.
황조원은 불현듯 프리덤이 없던 시절을 상기했다.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진짜 이젠 프리덤 없이는 살 수 없게 됐잖아?'
자질구레한 것은 프리덤이 전부 알아서 해주다 보니, 스마트폰을 직접 조작하는 것은 지인과 톡으로 챗을 할 때뿐이다.
그마저도 수다를 떨 때나 직접 타이핑하지, 간단한 용건 같은 경우는 귀찮아서 프리덤을 시켜서 대화를 처리한다.
아마 상대방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프리덤서비스를 종료하기라도 하면 난리 나겠네.'
***
4함대와 5함대.
최근 하수영으로 인해 신설된 함대다.
4함대는 병원선 퀸 루나를 호위하는 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하수영함)이 단독 함대를 구성하고 있고.
5함대는 경항모(청담함)와 그 호위함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해군작전사령부는 처음에는 줌왈트 3척을 경항모 호위로 돌리고, 기존호위함들을 원래 부대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해군회의 때 하수영이 나섰다.
"줌왈트는 단독 작전을 펼칠 때 가장 빛을 발합니다. 피탐률이 높은 항모 옆에 붙어 다니면 나 여기 있다, 라고 광고하는 꼴이잖아요."
"원수님 말씀이 옳으십니다."
"청담함 호위 구축함들은 세종대왕급 이지스 3척이 진수되는 대로 돌려보내는 걸로 합시다. 세종대왕급 3척이면 청담함 호위에는 충분할 겁니다."
백두중공업은 하수영이 발주한 화물선 외에도 세종대왕급 3척을 추가로 건조하느라, 불이 꺼질 틈이 없었다.
온 나라의 조선소는 전부 백두중공업에서 전세를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해군본부 회의실 분위기는 답답할 정도로 진지했다.
참모차장이 일어나서 가장 상석에 앉은 하수영을 바라보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줌왈트 구축함의 전투 능력을 정확히 계량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명중률을 고려하면 레일건의 대함 유효사거리는 30km로 잡고 있습니다."
최대사거리와 유의미한 명중률이 나오는 사거리는 엄연히 다르다.
"지상목표물 무차별 타격은 120km 밖에서도 가능하나, 원형 공산오차가 50m 이상입니다. 폭발 탄두가 아닌 점을 고려하면 오차가 너무 크지만, 무차별 화망 구성으로 적의 기세를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최대사거리가 450km이지만, 조준 장비가 받쳐주질 않는다.
대함 유효사격은 30km, 지형 유효타격은 120km 정도가 한계.
그 이상일 경우 너무 크게 벗어나 버려서 탄약 낭비만 될 뿐이다.
"그러나 200만 발을 쉬지 않고 쏟아내며 화망 구성을 한다면, 급박한 상황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참모차장은 어딘지 지루해 보이는 하수영의 표정에서 괜히 불안감을 느꼈다.
"따라서 미사일을 탑재하지 않은, 순수 레일건으로만 무장한 줌왈트구축함의 단중거리 전투력은 최강이지만, 장거리 전투력은 아쉽게도……."
"아아, 그 부분은 제가 설명을 좀하겠습니다."
"옛! 원수님!"
하수영이 나서자 다들 바짝 긴장해서 그쪽을 돌아보았다.
"바다에서 붙는다고 가정하면, 줌왈트는 단독으로 미 7함대를 수장시킬 수 있습니다."
"……!"
"안 믿어지겠죠. 그런데 사실입니다. 왜냐면 미 7함대는 줌왈트가 유효사거리까지 다가와도 포착을 못하거든요."
"레이더 은신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수상함이니만큼 소리 탐지를 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로한 박사가 그 문제도 해결을 했습니다."
"또 로한 박사입니까?"
정확히는 하수영이 줌왈트에 설치한 성역이 스텔스 성질을 극대화시켜 준다.
열, 전파, 소리 추적까지.
"저번에 중국어선들 잡으러 통영까지 접근했을 때, 누구도 줌왈트를 포착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수영은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결국 육안으로 관측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바다 위의 완벽한 투기장 석유 돚거, 아니, 도적이죠."
"예? 투기장?"
"돚거, 아니, 도적이 무엇입니까? 원수님?"
"해상 은신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장담합니다. 바다에서 붙으면 7함대는 접근을 허용하자마자 전멸할 겁니다."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고작 스텔스 구축함 1척이 그만한 전투력을 자랑할 수 있다니.
'대체 미국은 뭘 믿고 그런 걸 우리에게 판 거지? 아니, 로한 박사가 개조해서 이런 괴물이 된 건가?'
'이걸 미국이 알고는 있는 건가?'
'7함대를 능가하는 구축함이 3척이나…… 가만, 이러면 우리 해군이 아시아 최강 함대 아닌가?'
참모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 발언했다.
"원수님,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우리 해군의 전면적인 개편을 제안합니다."
"들어봅시다."
"단독 4함대를 구성하는 키로프급은 기존 우리 해군 전체와 맞먹을 정도의 전력입니다. 경항모 중심으로 편성된 5함대 역시 기존 전력을 능가합니다. 여기에 미 7함대를 능가하는 레일건 줌왈트 3적까지 추가 되었습니다."
참모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작전사령부 휘하 부대로 편성하기에는 기형적인 구조입니다. 이미 작전사령부 전체보다 커다란 배꼽이 무려 5개나 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장군들은 참모가 무슨 말을 할지 대번에 깨달았다.
"그래서 해군작전사령부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특수사령부를 편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힘의 균형도 안 맞고, 너무 복잡하게 됐어요. 깔끔하게 개편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하수영은 깍지를 낀 손등에 턱을 올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당장 내년이면 세종대왕급 이지스 3척도 경항모 호위함으로 들어오는 데, 기존 전력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함선 운영비 문제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하수영함, 청담함, 청담 줌왈트 3척의 운영비는 일체 해군 예산과 독립되어 있습니다."
인건비부터 유류비, 무기조달비, 부식비까지 모두 하수영이 전액 부담하기 때문이다.
합참본부의 군령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만 아니면, 하수영의 개인함대로 오인받기 좋았다.
하수영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끄덕였다.
"스펙, 운용이 분리되어 있으니 아예 별도로 분리하는 게 해군에서도 관리하기 편하겠죠. 저도 해병사령부처럼 따로 독립하는 안건에 찬성합니다."
"찬성합니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물주가 그렇게 하자는데 그것을 들이박을 만큼 멍청이는 없었다.
"해군청숫골사령부는 어때요? 청담동 옛 지명을 딴 건데요."
"……."
"음, 역시 오피셜 명칭을 이렇게 하는 건 어렵겠죠? 그냥 해군원양사령부라고 합시다."
그렇게 새로운 사령부는 외부적으로는 '해원사', 내부적으로는 '해청사'로 불리게 되었다.
사령관으로 3성장군 보직이 하나 생기는 셈이니, 장성들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역시 우리 해군을 챙겨주는 건 원수님밖에 없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