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979화 (979/1,270)

프랜차이즈 갓 979화

233장 흑자부도 (1)

오늘 또 어선이 엔화를 현찰로 가득 실어왔다.

항공모함보다 큰 화물선이지만, 울릉도에서는 그냥 일개 어선 중 하나일 뿐이다.

미리 대기하던 현금수송차량에 엔화를 가득 싣고, 세관 공무원이 확인을 위해 나섰다.

"220억 엔입니다. 오늘도 장사가 잘됐어요."

"며칠 전부터 갑자기 매출이 껑충뛰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아, 일본 1위 스시 프랜차이즈전 매장에 생선을 납품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매출이 껑충 뛴 거지요."

암시장 거래만 하다가 고리야마 초밥 전국 매장에도 생산을 공급하게 됐으니, 당연히 매출이 껑충 뛰어오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시장 규모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생선이 일반 마트에서 유통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고리야마 초밥에만 들어가기 때문.

애초에 암시장 소비자들은 그런 프랜차이즈 매장을 찾는 것을 천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고리야마 본점에서 폐점 이후 제공하는 VIP 오마카세(1인 100만 엔)를 즐기는 사람들도, 고등어 1마리에 30만 엔이나 하는 암시장은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그리고 회, 초밥, 매운탕, 구이 외의 다른 전문 생선 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생물 생선을 직접 구매하는 수밖에 없다.

세관 직원은 그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까 자기들 입맛에 맞는 생선 요리 하나 먹자고 그 비싼 돈을 지불한단 말입니까? 정말 재벌들이란 알 수가 없군요."

"한 병에 몇억씩 하는 양주도 거침없이 따는데, 몇백만 원짜리 생선이 뭐가 대수겠어요? 그 사람들 기준으로 생각해야죠."

"그래도 저라면 아까워서 절대 못먹을 거 같습니다."

"자부심인 거죠. 일본에서 초밥 외 다른 생선요리를 자기들만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지금 일본에서 일반인들이 생선을 먹으려면 고리야마초밥에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메뉴도 제한적이죠."

"부자들은 정말 그런 게 있나 봅니다."

"부자들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의 본능입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나만 누릴 때 우월감을 느끼는 거죠."

어느덧 신고 절차가 다 끝났다.

"예, 미가공 생선 수출 신고 완료되었습니다. 220억 1,359만 엔입니다."

신고는 하지만, 세금은 없다.

이제는 어산물에도 부가세, 소득세를 매기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세 면세까지는 너무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획대란으로 전 세계가 어촌에 완전면세를 하고, 지원을 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그런 불만은 힘을 갖지 못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예, 의원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참, 울릉도 생활은 할 만한가요?"

젊은 직원은 그 말에 얼른 끄덕였다.

"아이고, 아주 할 만합니다. 강원도 깡촌에 있다가 울릉도로 파견되니 오히려 너무 좋습니다."

"나중에 서울 철도 개통되면 더 나아질 겁니다. 강남까지 30분 컷할 수 있을 거거든요."

"정말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골 사느니 차라리 울릉도에 살아라, 라는 말이 생겼다.

경찰에서 독도는 이제 앞을 다투어 근무를 지원하는 경쟁과열지구다.

울릉도가 수영그룹 양식업자 육성프로젝트 덕분에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는 작은 섬이지만, 웬만한 인프라는 거의 갖추고 있다.

학군은 부족하지만 의료는 청담동과 대등한 수준이라서 이제 환자들은 아무리 중병이라도 외지로 나가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간 이식 수술마저 성공적으로 해내서 울릉군민일보에 대서특필이 되기도 했다.

시내에 한창 올라가는 초대형 복합 쇼핑몰이 완공되면, 대도시 못지않은 문화 인프라도 갖추게 된다.

무엇보다 각광받는 것은, 서울-동해를 잇는 자기부상열차가 울릉도까지 들어온다는 것이다.

'강남 접근성만 보면 인부천보다 훨씬 낫지, 못할 게 없으니까.'

삼국조선 시대에 울릉도에서 살던 주민들이 보면 천지가 뒤집어진 수준이리라.

그리고 얼마 전, 임무를 다하고 독도를 떠난 퀸 루나를 대신해서 새 호화크루즈선이 장기임대로 들어왔다.

당장 울릉도에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다.

울릉도 항구에 정박한 채 쇼핑, 극장, 공연, 전시, 문화, 레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대형 호화크루즈선.

울릉군민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에, '오로라호'는 항상 군민들로 붐빈다.

이렇다 보니 동해바닷가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울릉도 이주를 희망하지만, 울릉도는 이미 전역이 하수영의 땅이었다.

***

엔화는 늘 그렇듯이 수영사채에 들어오자마자 외환 시장에서 팔렸다.

수영사채의 총수신액을 1,600조 원이상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상당수는 달러로 되어 있다. 수영사채가 달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부에는 편의상 원화로 환전해서 설명한다.

"지금 문명에서는 미국이 망하면 전 세계가 망하는 거니까. 난 상부 방침이 이해되는데. 주거래 상대도 미국이잖아."

"그래도 엔화는 안전 자산으로 취급되는데, 왜 들어오는 족족 다 팔아버리는 걸까요?"

"글쎄, 상부에서는 일본을 장기적으로는 불안하다고 보는 모양이지. 뭐, 거기는 성장세도 둔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문제도 많고."

얼마 전 이창영이 김상희에게 증여한 비자금이 웨스트씨트러스트 명의로 예치되는 바람에, 이제는 총수신 액이 1,600조 원을 단숨에 넘어섰다.

"근데 580조 원 빨리 채워 넣어야 되는데. WIST에서 120조 원을 갑자기 넣어버리는 바람에 이거 채워 넣어야 하잖아요?"

"근데 본사에서 이제 돈 더 끌어올 데가 없을 텐데."

"아니, 그렇게 장사가 잘되는데요?"

"중국하고 미국 매출은 죄다 10년 치를 땅겨서 온 걸걸? 그래서 그쪽에서는 당분간 더 돈 들어올 구석이 없어."

"그래요?"

"애초에 우리 수영사채 창설자금으로 10년치씩 선매출 땡겨 온 거잖아."

***

와중에 일이 터졌다.

청담동에서 1조 원대 부동산이 매물로 급히 나온 것이다.

간만에 나온 초대형 매물에 울릉도에 있던 하수영은 부랴부랴 닥터헬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막 입금하려는 순간 문제가 부각되었다.

-출금 불가입니다.

"아니, 어째서?"

-마스터, 최근에 WST에서 들어온 120조 원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 덕분에 여유 한도 20조 원이 출금 불가 처리되었습니다.

수영사채는 본인 예치금(지분 80%이상 사업체 포함) 100당 일반 예치금 20을 받을 수 있다.

즉 본인 예치금은 100 : 20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인출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비율은 '100 :29.xx'.

-유예기간 안에 580조 원을 채워 넣으셔야 합니다. 본인 인출은 불가능합니다.

"크윽. 이런 트랩에 걸리다니."

유예기간을 못 지켜도 금감원에서 감히 철퇴를 내리지는 못한다.

너무 큰 채무는 채무자를 갑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자기 돈을 인출하는 것은 명백한 범법이 된다.

매도인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데, 이런 망신을 당할 줄이야.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인출이 안된다고 하네요. 아, 이거 진짜 사기꾼 멘트라서 하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

매도인, 부동산법인 대리인은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하수영 의원님의 신용이야 온 세상이 다 알아주는 거 아닙니까? 누가 하수영 의원님이 돈이 없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수영사채에 개인금융업 특별법 때문에 묶여 있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우형신 중개사도 옆에서 거들었다.

"의원님, 그러면 일단 가계약금이라도 적게 거시지요."

"가계약금…… 그래요. 일단 가계 약금만 걸고 최대한 빨리 돈을 마련해서 매입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그럼요. 애초에 이런 큰 매물을 첫날에 현금박치기로 거래하는 경우 자체가 없습니다."

-마스터, 세금과 비용까지 고려하면 581조 1,000억 원을 마련하셔야 구매 가능합니다.

"됐어. 580조는 나중에 따로 채워 넣으면 되고, 다른 은행 계좌 쓰면 돼. 그럼 1.1조 원만 마련하면 된다."

-이게 바로 '남의 돈 갚을 돈은 없고, 내 건물 살 돈은 있다.'라는 케이스로군요. 딥러닝에 포함시키겠습니다.

가계약금은 10억 원을 걸었다.

우형신 중개사가 그 자리에서 흔쾌히 빌려준 덕분이다.

"제가 그동안 의원님 덕분에 번 게 얼만데요. 천천히 갚으십시오."

-중개사한테 돈을 빌려서 가계약금을 치르다니. 기네스북감입니다.

"허허, 내가 하수영 의원님께 돈을 빌려드리는 날이 올 줄이야. 의원님, 진짜 괜찮으니까 아아주 천천히 갚으십시오."

가계약금을 그렇게 치른 후, 하수영은 어떻게 1조 원을 마련할지 궁리했다.

개인 금고인 수영사채에 내 돈은 많은데, 저 돈을 외부로 꺼낼 수가 없다.

"다른 시중 은행에서 빌려오면 안됩니까? 의원님이라면 1조 원은 그냥 말 한마디로 신용대출도 가능할 거 같은데요."

우형신의 의견이었다.

"시중은행들이 저 때문에 수신잔고 타격을 입었는데 제가 돈 빌리러 가는 건 모양새가 너무 안 좋습니다.

쪽팔려요."

"으음, 제가 가계약금 대신 내준 것보다 더 심할 수도 있겠군요."

"크윽. 그렇게 칼을 꽂으셔야겠습니까."

중국, 미국 쪽은 선매출 10년 치를 영혼까지 끌어모은 터라 더 가져올 구석도 없고, 하수영은 결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캘리포니아뿐인가."

"방법이 있는 겁니까?"

"거기에 핵융합 전기 수출하기로 했는데, 전기료를 미리 받아야겠습니다. 조금 쪽팔리긴 하지만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매도인 대리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의원님. 의원님의 명예를 지키면서 대금 지불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어떻게요?"

"저희 회사가 수영사채에 계좌를 개설하고, 그걸로 돈을 받으면 어떻습니까?"

"……!"

"그럼 유예기간 안에 자기자본…… 아니, 자기예치금만 맞춰 놓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은행 내부에서 돈이 이동하는 거라 금감원도 이걸로는 크게 문제 삼지 못할 겁니다."

"아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콜럼버스의 달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하셨죠!"

-인간의 창의력이란 대단하군요. 저 역시 그 생각은 못 하고 외부 조달 가능한 창구만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진짜 좋은 생각입니다!"

"아, 그러면 하는 김에 저희 회사가 수영사채를 주거래 은행으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최고의 VIP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지금 회사에 전화 좀 하겠습니다."

대리인은 그 자리에서 회사에 전화를 했고, 승낙을 받아냈다.

매도 회사는 곧바로 수영사채에 계좌를 개설했고, 하수영은 즉시 본인 계좌에서 출금을 했다.

-마스터, 급매물이 나올 때마다 이런 위기가 있을 겁니다. 미리 조치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매입준비자금 20조 원이 묶여 버리니까 이렇게 된통 당할 뻔했네."

원래 수영사채는 언제든 개인 돈 20조 원을 인출 가능하도록 일반예치금을 조절해 왔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김상희의 증여 재산 120조 원을 받아버렸다.

그래서 100 : 20의 비율 유지에 따라 5배인 600조 원을 더 예치해야 했고, 여유금 20조 원이 묶이면서 580조 원을 추가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흑자부도라는 거군요. 돈이 많은데도 지불을 할 수가 없다니.

"금감원한테 배 째라 할 뻔했다가 내 등기부 콜렉션이 찢어질 뻔했다. 이거 어디서 돈 좀 조달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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