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80화
233장 흑자부도 (2)
아무리 돈이 있으면 뭐하나.
죄다 돼지저금통 안에 묶여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또 매물이 나온다면 급매입은 어려울 것이다.
"2금융은 자기자본 4%만 넘어도 건전하다고 봐주는데 83.3%는 너무 심한 거 같긴 해. 1금융도 8%인데."
-전례 없던 1인 금융업체를 인정해주기 위해서다 보니 안전장치를 과도하게 걸었죠. 이해는 갑니다. 그래도 이제는 비율을 낮추고, 차라리 최소 자본금을 지금 10조 원에서 더 올리는 식으로 수정하는 게 바람직한 거 같습니다.
"법 개정까지 가야 하냐?"
-금융위원회만 설득하면 됩니다. 수치 조정은 그곳에서 합니다.
"그래, 덩치가 이렇게 커졌으면 이제 옷도 갈아입어야지. 여의도 옷쇼핑은 생각난 김에 오늘 가봐야겠네."
-여기에 자기예치금 조달 노력까지 보여주면 금감원 앞에서 당당하기 쉬울 겁니다.
"일본 암시장 가격을 더 올려야 하나?"
-지금이 적당합니다. 여기서 가격을 더 올리게 되면 일본 상류층도 생선 섭취를 조금 줄이게 될 겁니다.
"일본 도매유통은?"
-전국에 유통하게 되면 암시장은 포기해야 합니다. 어차피 생산량이 충분하지도 않습니다. 일본 말고도 생선 팔라는 나라는 넘쳐납니다.
한국, 중국, 러시아, 미국, 유럽, 호주, 아프리카 등등 여러 나라에서 생선 좀 팔아달라고 애걸하는 중이다.
아무리 수영양식장이라 해도 아직 전 세계를 커버하기에는 부족하다.
-전 세계 100% 공급량을 달성할 때까지는 일본은 암시장 체제를 유지하는 게 수익 면에서 낫습니다.
"흠, 그럼 거기는 암시장으로 좀 더 빨아먹기로 하고, 전기 요금은?"
-캘리포니아 전기 요금을 상한선까지 비싸게 받아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래? 뭐 좀 있냐?"
-캘리포니아주는 요즘 탄소발자국을 완전히 삭제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또 유럽 시장을 고려해 친환경 산업활동을 적극 장려 합니다.
하수영은 신이 나서 키득거렸다.
"야, 탄소 배출 안 하고 또 친환경적인 건 우리 무선 핵융합 전기밖에 없지."
전기 생산, 송전 과정에 탄소 배출이나 환경오염이 없으니.
보통 송전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 배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데, 이쪽은 '핵융합에 '무선'이지 않은가?
무선 송전탑, 수신장치를 만들 때 아주 약간의 탄소배출이 있을 수는 있지만, 0으로 치부해 버려도 좋을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알면 버선 발로 달려와서 그랜절을 하면서 가격이 얼마라도 좋으니 캘리포니아전역에 공급해 달라고 할 겁니다.
"아직 터빈 증설이 덜 돼서 캘리포니아 전역은 무리지."
증기를 만들 열에너지는 무제한인데, 증기로 돌릴 터빈이 부족한 게 수영발전소의 상황이었다.
"이 좋은 걸 정작 이 나라는 안 쓰려고 하니, 문제야 문제."
-발전소 특별법으로 국가 전체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다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
오늘도 머리가 빠져라 열심히 업무중이던 임상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인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부하 직원이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사무처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게……."
"약속은 없는데? 누군데?"
"청담동 하수영 의원님입니다."
"뭐? 그 양반이, 아니, 그분이 왜 나를?"
한국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본관을 찾아오다니.
세상의 눈이 무섭지도 않은 건가?
"내가 직접 모셔야겠다. 어디 계셔?"
"1 대기실에 계십니다!"
"알았다!"
임상훈은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빠르게 달려서 도착했다.
"임상훈 사무처장님?"
"네! 제가 사무처장직을 맡고 있는 임상훈입니다! 영광입니다, 의원님!"
"금융위 실세 중의 실세라고 들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실세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말씀을 거둬 주십시오."
대기실에서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
어쩐지 문 밖에서 묘한 소란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1대기실 앞을 지나치며, 안에서 무슨 대화가 벌어지는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을까.
상대는 한국 금융의 톱스타 아이돌인 수영사채의 주인.
그런 이가 금융위 본관을 갑자기 찾아왔으니, 숨 막힐 것 같은 관심이 쏟아지는 게 당연하리라.
임상훈은 시작부터 날아온 폭탄에 눈앞이 잠시 캄캄해졌다.
"아무래도 우리 수영사채 자기자본 비율을 좀 조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덩치가 초기에 비해 덩치가 매우 커졌는데, 지금의 5:1 비율 강제유지는 너무 비효율적이고 족쇄가 됩니다."
순간 임상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하필 저한테 그러시는 겁니까?
-얼마나 조정을 바라시는 겁니까?
이 중에 어떤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야 할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금융위 고인물들의 시선이, 이제는 부담스럽게 심장을 조여온다.
하수영은 계속 말했다.
"2금융은 4%, 1금융은 8%만 돼도 건전하다고 봐주는데 저는 83.3%예요. 아무리 사채업자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규제 같네요."
"……."
"그간 안정성과 건전성을 충분히 검증했으니 이제는 풀어주셔도 될 거 같은데요."
"어, 음. 그게 말입니다, 의원님.
원래 은행은 금융의 특성상 지분과 경영진을 다수로 쪼개고 충분한 견제감독이 이뤄져야 일반 예금자들과 시장 질서를 보호할 수 있다 보니, 1인은행 설립에 다소 강한 규제가 들어갈 수밖에……."
"50%만 되어도 충분한 거 같은데요. 제 돈과 일반 예치금 1:1비율."
"……."
"원래 사이좋게 반띵이란 말도 있잖습니까. 1:1이면 전 만족합니다. 나중에 비율 조정을 더 요구할 일도 없다고 못 박아드리죠."
"의원님. 그것은 ……."
"대신 최소 자기자본금은 지금의 10조 원에서 100조 원으로 올리고요. 이 정도면 사금융이라 해도 충분히 안전하지 않나요?"
객관적으로는 충분한 균형이다.
자본 100조 원을 유지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근데 이미 자기자본이 1,250조 원이 아니었나?'
하지만 다르게 보면 아무런 딜도안 내거는 것이나 같다.
수영사채가 추가로 조치해야 할 것은 없으니.
"이건 청탁이 아닙니다. 건전한 개 인금융활동을 위해서 드리는 '민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수영사채에 좋은 자리 드리겠다, 그런 약속은 못 해드려요."
"그, 그런 걸 바란 적은 없습니다."
사실 속으로 기대를 품기는 했다.
금융위 고위직 출신들이 퇴임 후 여신업계 회장 등 경영진으로 이직하는 것은 이 바닥 생태계이니까.
수영사채의 CEO가 된 자신의 모습을 잠시 상상했던 임상훈은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이 벌게졌다.
"그럼 긍정적인 논의 부탁드립니다. 민원 결과는 나중에 알려주시구요."
"그, 제가 장담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증언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불러 주세요. 기꺼운 마음으로 소환에 응하겠습니다."
증언이라니! 소환이라니!
무슨 검찰이나 법정에서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하수영은 상쾌하게 돌아갔고, 임상훈은 멍하니 넋을 때렸다.
하수영이 사라지자마자 동료, 선배들이 다급히 대기실로 밀려들어 왔다.
"임 처장! 무슨 일이야? 무슨 말했어?"
"의원님이 뭔가 부탁하는 거 같았는데요, 선배님. 맞습니까?"
"의원님이 우리 금융위까지 와서 손수 부탁하실 정도면 역시 수영사채 규제 완화입니까?"
"뭘 풀어달래요? 역시 비율 규제제한 풀어달라는 거였죠?"
"그거밖에 없지. 지금 해외에서 WIST인가 갑자기 120조 원 넣는 바람에 모든 돈이 꽉 묶였잖아."
임상훈 처장은 정신을 차리고 동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청탁 아닙니다. 민원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임 처장. 아무튼, 그래서 뭐라고 하시던가?"
"최소 자본금을 100조 원으로 상향하는 대신, 자기자본비율을 지금의 5:1에서 1:1로 낮춰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다들 고민에 빠져 들었다.
"1:1이라……."
"사실 수영사채는 너무 건전성이 좋아서 8%로 낮춰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8%는커녕 20% 근처도 못 내려갈걸? 지금도 본인 예치금이 1,250조원인가 하지 않아?"
"20% 맞추려면 국민들과 기업들이 5,000조 원을 예금해야 하네. 불가능하지."
"1:1까지 내려줘도 어차피 그거 다 충족 못 하고 남아돌 거 같은데요. 지금 수영사채가 너무 돈이 묶여 있긴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과해요."
"수영그룹이 경제활동 정말 왕성하게 하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족쇄는 좀 풀어주는 게 낫죠."
다들 저마다 하수영한테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마디씩 했다.
우스운 것은, 모두 폰을 슬쩍 꺼내서 '잘 들리게끔'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덤에게 은근슬쩍 어필하는 것이다.
'프리덤인더스트리 오너가 의원님 이시니까.'
'개인정보는 범죄가 아니면 회사에서 열람 불가능하다고 해도, 에이 설마 정말 그러겠어?'
'어떤 식으로든 의원님한테 전달이 되겠지.'
'프리덤, 난 찬성 의견 냈다. 캐치 잘해라.'
'이렇게 하면 프리덤을 통해서 의원님 귀에 들어가는 게 맞겠지?'
돈에 관해서는 진심인 고관직 공무원들이기에, 눈치 하나는 다들 귀신이었다.
다만 하수영이 이런 소소한 잡정보 따위는 정말로 열람하지 않는다는 것은 몰랐다.
"괜찮은 거 같은데? 이거 진지하게 안건 만들어서 총리실에 올려 봅시다."
"그럽시다."
그렇게 '수영사채 자본비율 1:1 조정안'은 고위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하는 안건이 되었다.
청탁이 아니라고 했지만, 다들 속으로 딴생각을 열심히 품었다.
'이걸 잘 풀어내면 의원님이 분명히 좋게 봐주실 게 틀림없어. 사람 기억하는 거 하나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했으니까.'
'1:1로 조정하는 게 오히려 국가 금융건전성을 위해서 도움이 되니까, 거리낄 것도 없지.'
'말도 안 되는 조작질 안 해도 되니까 마음이 편안하네. 그냥 팩트만 줄줄이 열거해도 총리실에서 이거 승인 안 하고 배겨?'
***
금융위에서 열심히 안건을 다듬는 와중, 큰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강릉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방한했다는 보도가 뜬 것이다.
돈 흐름 하나는 귀신인 금융위 공무원들.
그들은 곧바로 이면 배경을 알아차렸다.
"이거 핵융합 발전소 수입 때문에 들어온 거다."
"미국이 수입한다 안 한다 말이 많더니, 결국 수입을 하기로 결정이 난 모양이군요."
"캘리포니아에서 도입하면 게임 끝난 거지."
하수영과 미 행정부 내부적으로는 핵융합 무선 전기 도입이 끝난 상태이지만, 외부에서는 자세한 정보까지 접근하기 어렵다.
금융위는 핵융합 발전소 수출이 확정된 거라고 판단했고, 수영사채 비율 조정 안건에도 이 내용을 부랴부 랴 집어넣었다.
[북미 그린 전력 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 수영그룹의 자금운용을 원활히 만들어줄 필요가 있음.]
[수영사채 비율 강제 완화는 북미핵융합 발전소 수출에 도움이 될 것임.]
물론 금융위가 모르는 무선 전기는 보고서에 적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