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85화
234장 농부가 삽을 들었으면 (4)
하수영은 F35 구매 계약을 마치고도 한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다.
한국은 국군이고 군수산업이고 금융계고 여의도고 발칵 뒤집어져 있지만, 그런 세속적인 혼돈 위에 고고한 구름을 깔고 아메리카의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했다.
비프스 캘론은 갑자기 농장을 찾아온 하수영을 한껏 반갑게 맞이했다.
"오, 마이 프렌드. 잘 왔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번에도 또 거하게 쇼핑을 하셨다고요?"
"그냥 비행기 몇 대 샀습니다. 가격이 많이 싸졌더라고요."
"F35 300기가 그냥 비행기 몇 대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요, 하하!"
"목장은 별일 없나요?"
"요즘 축산계는 다들 사룟값이 올라서 걱정이죠. 작황이 확실히 줄어들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캘론 목장은 그래도 좀 낫겠군요."
"저야 옥수수, 콩 농장이 있어서 사료 수급은 문제없으니까요. 오히려 사료 판매로 이번에는 마진이 좀 크게 남았습니다."
비프스 캘론은 미국 식료품 시장분위기를 설명했다.
"생선이 귀하다 보니까 육류 소비량이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잡어 취급받는 어종들도 요즘은 참돔 못지않은 취급을 받고 있죠."
"그거 아십니까? 시중에 물고기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민물고기, 해수어가 어느 정도는 유통됩니다."
"아, 들었습니다."
"그래 봐야 평년의 1/100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요. 비결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양식어라고는 하던데. 사료를 어디서 구했으려나……."
비프스 캘론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소고기입니다."
"소고기……?"
"네, 소고기를 갈아서 만든 사료로 양식을 하는 업체들이 늘었습니다."
"오호, 그런 방법이!"
하수영은 조금 감탄했다.
미국이 아무리 소고기 가격이 싸다.
한들, 그래도 사람이 직접 먹는 가격 기준이다.
그걸 생선 사료로 준다면…….
"아주 값비싼 생선이죠. 생선 1kg을 만드는 데 12kg의 소고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하."
"소고기 1kg을 만드는 데도 수십배의 곡물과 물이 필요할 텐데요. 그걸로 다시 양식을 하다니요."
"그러니 매우 사치스러운 생선이죠. 그런데 놀라운 건 이렇게 생산해도 자연산 생선보다는 더 싸다는 겁니다."
"애초에 자연산은 구할 수가 없으니까요. 가격표 자체가 없죠."
소고기를 물고기 사료로 만들어서 생선을 양식하겠다!
과연 천조국 미국다운 스케일에는 하수영도 조금 감탄했다.
"역시 미국은 화끈합니다. 마음에 들어요."
"뭐, 문제는 있죠. 아무래도 같은 무게의 소고기보다 20배 이상 비싸게 팔아야 이문이 남다 보니……."
"상류층만 먹을 수 있는 생선이겠군요. 근데 그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도 미국은 수영양식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선을 공급할 방법을 찾아내긴 했다.
소고기보다 20배 비싼 생선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겠지만…….
"돼지나 닭고기로 하는 게 비용 면에서는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하지만 많은 양의 사료를 한 번에 조달하기에는 아무래도 덩치 큰 소가 좋아서 말입니다."
"흐음."
"그리고 소고기만 먹여 키운 생선이라는 프리미엄이 상류층 구매자들의 입맛을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품질이 예전 양식어들만은 못할 텐데 말입니다."
소고기는 물고기 사료에 적합하지 않다.
물고기들이 평생 먹어볼 일이 없는, 소화기관이 익숙지 않은 먹이이니까.
괜히 양식장에서 덩치 큰 바다 잡어를 갈아 만든 사료로 양식하는 게 아니다.
우유에 익숙하지 않은 동양인이 평생 우유와 소고기만을 먹으면 소화불량을 비롯해 여러 트러블을 겪는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늘 먹던 것을 주식으로 줘야 건강하고 품질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소고기 사료를 먹은 프리미엄 양식 어라지만, 어획대란 이전 시대의 평범한 양식어보다 오히려 못할 것이다.
"세계적 궁핍이 말도 안 되는 프리미엄을 만들었습니다. 뭐, 그래도 부자들은 생선을 아예 못 먹는 것보다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먹고 싶은가 봅니다."
"목장들은 돈을 벌고요. 손해 보는 사람은 없군요."
"생선 구경도 못 하는 사람들이 분노할 수 있겠지만, 뭐 생선이 없으면 소고기를 먹으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비프스 캘론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두가 수영양식장처럼 완벽한 곡물양식사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곡물은 답을 알고 있죠."
"원래 곡물을 먹지 않는 어류한테 그리 완벽한 게 대단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먹이는 쳐다보지도 않는 어류들이 어떻게 수영사료에는 눈이 뒤집혀서 달려드는지 늘 신기합니다."
어획대란.
그러나 어느 나라를 가든 불편한건 결국 생선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평범한 이들.
큰 부자들은 오히려 생선요리를 즐기는 것을 사회적 격차로 삼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아십니까? 요즘 SNS에서 생선요리 게시물 자랑 열풍이 불고 있죠. 소고기 생선들도 그런 식으로 부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트러플, 캐비어의 자리를 평범한 생선구이와 조림, 탕요리가 위협하고 있었다.
세계진미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누구든지 생선의 맛을 이미 안다는 보편성.
'트러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서 잘 모르는데, 저게 맛있나? 난 별로 관심이…….'
'생선! 생선이다! 으아아! 맛있겠다! 저 노릇노릇한 생선구이 한 점발라서 캐첩 찍어서 빵 위에 올려서 꿀떡 삼켰으면!'
'저 활어회 진짜 맛있어 보이네. 아아! 대체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언제 생선을 다시 맛볼 수 있는 거야!'
대충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높은 인지도의 보편적인 재료이기에, 생선 결핍의 시대에서 생선요리 자랑 게시글은 강력한 부러움과 질투를 만들어냈다.
질투하는 것도 그 대상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혀 모르는 대상에 어떻게 질투감을 느낄 수 있을까?
"저야 돈이 잘 벌리니 당장은 좋지만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식료품시장은 너무 기형적이에요."
"이상기후에 무분별한 남획이 너무 오래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머지않아 큰 이자까지 붙어서 부채를 치러야 될 겁니다."
"수영농장은 큰 문제가 없겠죠?"
"그럼요.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비프스 캘론은 이번 생선대란으로 돈을 많이 벌긴 했다.
소고기 수요가 늘어서 목장 수입이 괜찮게 늘었으며, 옥수수와 콩 등 가축사료 가격도 올라서 또 돈을 벌었다.
원래 부유한 데다가 하수영이 콜롬보 패밀리를 짓밟으면서 보상금도 두둑하게 챙겨준 덕분에, 전 세계적 식량 악재에도 오히려 자산이 크게 증식하고 있었다.
"저희 농장에서도 안살린 왕자님의 구루마 비료를 쓰고 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그전 비료보다 생산량이 30% 이상 늘었습니다."
"구루마 비료, 아주 좋죠. 인간이 만든 비료 중 가장 좋다고 자부합니다."
"하하, 그럼 수영농장의 독점비료는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는 겁니까?"
"자연이 만든 천연비료죠. 자연보다 위대한 건 없습니다."
"아아, 그렇지요.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창조자죠."
엘릭서는 주신의 산물이니까, 자연이라는 말도 전혀 틀리지는 않았다.
"메탄 포집 덕분에 우리 목장 고기가 EU의 탄소세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EU는 자기네 목장들만 피해를 보게 돼서 당황하고 있을 겁니다."
"EU 걔네는 맨날 환경규제, 환경보호 타령하는데 정작 우리가 메탄 포집 성공하니까 빗장 잠그기 시전하네요."
"내가 하면 보호무역, 남이 하면 시장교란, 그게 프론티어 자본주의 정신 아니겠습니까? 하하."
하수영도 따라 웃다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EU에서 장사를 안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EU와 직접 거래하시는 게 전혀 없으시군요."
"EU야말로 진정한 갑질쟁이 바이어죠. 이게 얘들이 공동구매를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이상한 버릇이 생겨 버렸어요."
"이상한 버릇이요?"
"그냥 무조건 지들 기준에 모든 걸 맞추려고 하고, 그게 또 당연한 줄 알아요."
"아.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에 하나 또 겪었죠."
하수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끄덕거리며 물었다.
"뭔가요?"
비프스 캘론은 생각만 해도 우스운지 소리 없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메탄 포집 시스템 유럽 도입을 언제 주선해 줄 거냐고 묻더군요."
"당연하다는 듯이? 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요."
심지어 메탄 포집 도입이 비프스캘론의 권한이 아닌데 말이다.
"바베큐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포크부터 찾고 있군요."
"그거 아세요? EU는 지금까지 저한테 컨택이 엄청 왔었어요. 근데 맨날 다 제 주변만 열심히 찌르더군요."
"쯧쯧, 그게 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남자답지가 못해요."
"이번에 F35 사려고 미국 왔을 때 또 어떻게 눈치를 채고 국방부에 연락을 했더군요."
"한국 국방부에 말입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라팔 좋은 조건으로 싸게 팔아준다고 했다네요. 근데 우리 눈치 없는 국방부가 저 연결해 달라는 말인 줄도 모르고, FX사업은 아직이라고 넘어갔다죠."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라팔이 싫었던 게 아닐까요?"
"어? 정말 그랬으려나요?"
***
하수영은 열심히 미국에서 돌아다녔다.
미국 지인들과 사슴 사냥, 곰 사냥을 했고, 장수말벌 피해를 입은 지역을 찾아 홍보도 했다.
"수영농장의 랩터 킬러 서비스를 사용해 보십시오. 더 이상의 랩터말벌 피해는 없을 겁니다."
또 헤슬라 자동차 부사장을 만나 프리덤 자율주행 장기독점을 부탁받기도 했다.
"프리덤이 소비자들 반응이 좋은가 봅니다."
"완벽한 5단계 자율주행이라고 폭발적인 반응입니다. 차량 자율주행에 관해, 어떻게 50년 정도 글로벌독점 사용을……."
"흠. 100% 독점이라……."
"저는 백지수표를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을 받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백지수표라니. 그거 도박빚 보증보다 더 무서운 건데. 헤슬라가 곳간이 그득하긴 한가 봅니다. 제가 '헤슬라 그 자체' 라고 쓰면 어쩌시려고요?"
"그, 그런 수치는……."
"그니까 백지수표 같은 건 넣어두세요. 그거 제 앞에서는 몹시 해로운 참새 같은 겁니다."
'헤슬라 그 자체' 라고 말할 때 부사장은 심장이 뽑히는 줄 알았다.
'노, 농담이겠지?'
하지만 생글거리는 웃음이 너무 무서웠다.
"나중에 한국 시장에서 같이 뭐 한번 할 날이 있을 겁니다. 그때 잘해 봐요."
"네! 기대하겠습니다!"
***
하수영은 짧고 즐거운 미국 쇼핑을 마치고 돌아왔다.
일부러 잠시 자리를 비운 보람이 있었다.
휴민트타워 수영사채 본점에 들어서자 전 직원이 큰 박수로 맞이했다.
"900조 선착순 특판상품 조기완판을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정말 놀라운 기록입니다!"
"금융위고 기재부고 이젠 꼼짝 못하는 외통수에 걸렸습니다!"
박수 세례가 끝나고 하수영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조기 완판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분?"
다들 대답을 못 했고, 하수영이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다음 특판 시작 안 하고 잠이 오냐? 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