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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986화 (986/1,270)

프랜차이즈 갓 986화

234장 농부가 삽을 들었으면 (5)

수영사채는 선착순 900조 원짜리 특판상품을 모두 완판했다.

그 말은 총수신액이 2,500조 원을 거뜬히 넘겼다는 의미다.

또다시 말하자면 시중은행들 파이에서 900조 원이 뱅크런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1위에서 17위까지의 은행들은 총예금이 1,000조 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백조 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은 예금이라고 안전한 충성층도 아니다.

단지 선착순에서 밀려났을 뿐.

수영사채의 고수익 원금보장이라는 아늑한 구름층 문턱에서 아슬아슬하게 밀려난 가여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시중은행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아오! 아까워!"

"진짜 간발의 차이로 놓쳤어! 그게 그렇게 빨리 완판이 될 줄이야!"

"만기 얼마 안 남은 거, 그 쥐꼬리만 한 이자 챙기겠다고 기다리다가 문이 닫혀 버렸네!"

"이게 다 S은행 때문이다!"

기존 거래은행은 잘못한 게 없다.

만기이율 달성을 위해서 며칠 더미루다가 예금주 본인이 때를 놓쳤을 뿐이니까.

하지만 고수익 원금보장 선착순 상품을 놓친 사람들한테 그런 차분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모든 건 만기달성 조건을 융통성없게 설정한 은행 탓이었고, 수영사채에 일반예금 상한액 족쇄를 건 정부 탓이었다.

"아! 세금 잘 내고 고용 잘하고 외화 잘 벌어오고 국방애국 잘하고 환경보호 잘하는 수영그룹, 지원은 못할망정 대체 발목은 왜 붙들고 있는 거냐!"

"수영그룹 좀 그만 괴롭혀라, 이것 들아! 이러다가 수영그룹이 미국으로 본사 옮기겠다!"

"경쟁력 떨어지는 다른 은행들은 이참에 죄다 파산시켜라!"

"그냥 수영사채가 은행들 죄다 인수해 버리면 안 되나?"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

"경제 힘들어서 서민들 죽어 갈 때 지들끼리 억대 보너스 잔치나 해대던 은행들이라서 하나도 안 불쌍하네."

"난 농협, 수협이 아직도 안 망한 게 신기하네. 진작 파산한 줄 알았드만."

"다른 건 몰라도 농수협만큼은 철밥통 대가리들 다 자르고 하수영 농어민 회장님이 싹 인수하셨으면 좋겠다."

특별금융 상품 매진과 상관없이 주거래 은행을 수영사채로 바꾸며, 예금을 몽땅 옮기는 이들도 있었다.

"언제 또 막힐지 모르니 미리미리 다 옮겨주는 게 현명한 짓이야."

"맞아맞아."

"일단 옮겨놓고 다음 특판 열리면 바로 가입한다. 언제 또 해지하고 옮기고 그러고 있어?"

그리고 그런 그들의 기대는 보답받았다.

[수영사채, 특판상품 조기 완판이란 성원에 보답하기로 발표!]

[2차 고금리 고수익 원금보장 특별상품 판매 시작하다!]

[한도는? 아직 미정인 관계로 발표못 해.]

[기대했던 것보다 적을 수 있다?]

-본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수영사채 특판 2차는 모집액이 생각보다 적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정확한 모집 금액을 공개하지 않고 모집 종료를 위해 구체적인 한도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서둘러 기존 예금을 손해 보면서 해지해도 이미 마감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은행 변경은 매우 신중하게 할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ㄴ이게 무슨 개소린지 해석해 줄 사람?

ㄴ기자놈하고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 이번에는 꼭 사야 되니까 천것들은 썩 꺼지라 이거지.

ㄴ흠 잡을 데.없.이.완.벽.한 해석.

ㄴ수영사채 가즈아! 초고수익 원금보장 가즈아!

ㄴ대체 언제적 가즈아임? ㅋㅋㅋㅋ

비판적인 기자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2차 판매가 예상보다 빨리 매진되리라고 대부분 생각했다.

1차 때와 같은 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미리미리 돈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영사채 예적금펀드 마감됨?

-ㄴㄴ 아직임. 아직 안 막혔음.

-휴 다행히도 안 늦었네.

-그러게 미리미리 좀 해두지 그랬어.

-ㅡㅡ구은행 전산 문제로 돈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오는 바람에 이리 됐음.

-요즘 구은행들 전산 오류가 이상 하리만치 잦다. 그래서 돈 찾으러 갔다가 시간만 날리고 낭패 보는 사람들 엄청 늘었어.

생계가 있는 사람들은 은행을 방문할 시간을 내는 것도 일이다.

어렵게 은행을 찾았는데 해결을 못보면 언제 또 업무 시간 안에 은행을 찾을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한다.

-구은행들 대놓고 수작 부리는 거 같은데. 뱅크런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주작질 하는 거 뻔히 보인다.

-진짜 너무 양아치 짓 하네. 이런 식으로 고객 돈 묶어 놓는 건 어떻게 처벌 안 되나?

-근데 자꾸 구은행, 구은행거리는데 왜 그러는 거임?

-수영사채 이전의 모든 은행들은 뒤떨어진 구시대의 산물일 뿐이니까.

-아, 그런 의미였어?

-은행은 수영사채가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뉘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은행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오로지 수영사채일 뿐이다.

-예대마진 0.1%밖에 기대할 수 없는데도 은행이 그거면 충분하다고 하셨지.

-이러다가 수영사채 진짜 3,000조찍겠는데?

-빨리 금융질서가 수영사채로 통합되는 그날이 왔으면.

***

2차 특판상품 역시 불티나게 팔렸고, 수영사채는 다시 2,600조를 돌파했다.

18개 주요은행 통합 기준으로, 전체 수신액의 81%를 차지한 것이다.

큰 은행 나머지 17개를 다 합쳐도 1/4도 안 되는 상황.

시중은행장들은 이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선전포고를 한 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무조건 항복 상황이란 말이냐……."

딱 그랬다.

선전포고를 통지받고 부랴부랴 동맹을 끌어모으고 있는데, 동맹 첫 모임을 가져보니 이미 무조건 항복을 당해 버린 상황.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수영사채가 예전 비율로 돌아가든가, 아니면 금융업 자격을 박탈하든가!"

모 대형은행장이 길길이 화를 냈지만, 본인도 이미 알았다.

이제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예금주란 나그네들은 이미 외투를 벗기로 결정을 했고, 은행들은 더 이상 그들에게 강제로 입힐 외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장 연장자인 백발의 은행장이 겸 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 같이 사이좋게 2금융권으로 떨어지는 거라서 그나마 다행이야. 누구는 남고, 누구는 떨어지고, 그러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저, 저 영감탱이가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 자기는 어차피 곧 은퇴할 몸이었다 이거지?'

'셀프 디스도 적당히 해야 웃어주지, 지금 분위기 심각한 거 전혀 모르나?'

은행끼리 모여서 논의해 봤자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인데, 대통령은 무사안전하게 남은 임기를 마칠 생각뿐이었으니.

범죄 소관이 아니기에 법조계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가장 젊은 은행장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거라도 최대한 얻어내서 당장 닥쳐올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을 만한 게 뭐가 있단 말입니까?"

"지금 우리 처지를 보십시오. 규모는 쪼그라들었는데 규제는 그대롭니다. 일단 당장의 규제라도 풀어야 좀 한숨을 돌릴 거 아닙니까?"

"그 말은 되돌아갈 다리부터 불태워 버리자는 뜻이오. 감당할 수 있겠소?"

"수영사채와 맞붙는 건 감당할 수 있으시고요?"

"……."

"좀 더 일찍 백기를 들던가, 아니면 진작 물어뜯던가 해야 했습니다. 괜히 이도 저도 아니게 돼서 외통수마저도 비참하게 된 겁니다."

"……."

"……."

시중은행들은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수영사채와 정부에 통지했다.

금융위에서는 마치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듯이 서둘러서 마무리를 봉합해 주었다.

-금융위 저것들, 수영사채에서 나중에 제대로 한 자리 약속받은 게 틀림없어.

-개부러운 자식들. 나도 은행이 아니라 금융위에나 들어갈걸 그랬어.

은행 관련령에 따르면 여전히 수영사채는 5:1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조항이 아직 삭제된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현재 수영사채는 총액의 60% 가까이가 일반 예금.

조항이든 돈이든 건드려야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누구도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은 채, 규칙 개정은 다음 정권의 숙제로 미뤄졌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다음 정권에서 알아서 하겠지.'

'내가 알 바 아냐.'

활로가 보였다면 은행들도 좀 더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회피하려고만 하는 정부의 행태에 그만 질려버렸다.

수영사채의 예대금리 0.1% 이하라는 엄청난 공세를 더 버틸 재간도 없었고, 나름대로 현실적인 마지막 카드도 있었다.

'금융 독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한 번 겪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정의로운 금융가? 그런 게 어디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웃기지도 않아.'

'독점은 반드시 타락한다. 금융이라면 더더욱. 그때 돼서야 균형과 분산의 소중함을 알게 되겠지.'

은행들은 태풍에 더 이상 맞서지 않고 잠시 몸을 비키기로 했다.

태풍이 세상을 모두 파괴하고 나면, 다시 자신들이 당당하게 설 자리가 생기게 되리라.

'절대금반지, 아니, 절대금융을 손에 넣은 자는 결국 타락하게 마련이지. 금융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어차피 대항할 수 없다면 차라리 완벽하게 박살이 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래야 다음을…….'

'수영사채는 결국 이 나라 금융의 새로운 독재자가 될 뿐이다.'

그렇게 수영사채의 비율 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철저한 개인은행이지만, 그 어떤 국책은행보다 더 재정이 튼튼하고 영향력이 막강한 은행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그런 세간의 평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탄생이라니까 마치 원래는 안 그랬던 거 같잖아."

"처음 출범했을 때부터 이미 한국은행 따위는 처바르는 조폐제조기나 마찬가지였는데, 뭘."

"우리나라 최대의 달러 보유 주체인데, 정부 보유량보다 몇 배가 더 많은데 무슨……."

"이거 F35C 대금 빠져나가면 일반예금이 60% 이상 찍겠는데?"

"그래도 재정이 티타늄 합금이라는 게 플렉스지, 뭐."

"수영사채 들어가기가 한은 들어가기보다 더 빡쎄다고 하던데."

***

프리덤이 움직이는 자동화 중장비가 짚을 묶어 거대한 곤포더미를 만들고 있었다.

하수영은 뒷짐을 진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임상훈 금융위 사무처장이 그 뒤에서 정중히 전달을 마쳤다.

"……금융계는 이번은 완벽하게 손을 들었습니다."

임상훈은 하수영이 웃음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본 표정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그 말은 설마 다음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건가요?"

"그건……."

"지금 식량을 두고 동아시아가 언제 화약고가 될지 모르는데, 긍정적인 마음이 대단하네요."

뭔가 예측되는 바가 있는 건가?

"불어오고 있네요."

"뭐가 말입니까?"

"선물시장 파동이란 바람이 말입니다."

"……."

***

그리고 며칠 후,

[곡물가 파동!]

[원인은 생선대란?]

[고등어 한 박스를 얻기 위해 돼지 한 마리가 도살되고 있다?]

임상훈은 국제곡물 시장이 해일처럼 출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며칠 전 하수영의 의미심장한 미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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