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89화
234장 농부가 삽을 들었으면 (8)
수영사채와 구 은행들 간에 벌어진 경기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예치금 증가는 무시무시한 판정 점수를 쌓았다.
이제 3라운드도 지나지 않았건만, 수영사채는 이미 뒤집을 수 없는 승리 포인트를 축적했다.
여기에 마침내 펀드 수익 300조원 배당이라는 핵어퍼컷을 꺼내 들었다.
이 필살기는 더 이상의 라운드 연장을 허용치 않았다.
경기를 즉시 종료시켰을 뿐만 아니라, 상대 선수들의 선수 생명마저 빼앗아 버렸다.
이제 상대는 더 이상 금융이라는 리그에서 프로로 활동할 기량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통신사들의 노하우에서 전승받은 해지방어전술을 통해, 멸망의 순간을 아주 약간 늦추는 게 고작이었다.
"뭐, 이제는 더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자멸각 섰네."
-마스터, 그럼 이제 금융 공격을 중단합니까??
"빨리 편안하게 해주는 게 자비로운 은행가의 태도가 아닐까?"
-일반 예금주들의 밥 사 먹을 돈까지 갈취해서 비싸기만 한 불량식품을 사 먹어댄 구태 모피아 놈들을 위해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습니다!
"걔네 말고, 세상 돌아가는 거 잘 모르는 민초들이 빨리 편안한 사채 서비스를 만끽할 수 있게 해줄까 하는 의미였지."
-그런 거라면 전 적극 찬성입니다! 아직도 지점 방문을 인질로 삼아 이체와 해지방어를 하는 사악한 은행들에 모조리 철퇴를 내리쳐야 합니다!
"허허, 지점 방문을 인질로 삼다니. 바쁜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이 한가롭게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어떻게 은행을 방문하라는 거지?"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마스터,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또 어떤 참신한 병신 짓을 고안해냈냐?"
-예적금 등 계좌 해지를 위해서 무려 본사 방문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야, 그건 선 너무 심하게 넘었네. 본사 방문이라고? 그럼 지방에 있는 사람은?"
-그 때문에 제주도에 거주하는 어떤 예금주는 해지를 위해서 서울까지 방문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주 크게 분통을 터뜨렸죠.
"선 제대로 넘었네. 아, 그건 아니구나."
-마스터? 이게 선을 넘은 게 아니면 대체 얼마나 더 악랄한 짓을 해야 선을 넘은 게 되는 겁니까?
"모피아들은 애초에 선 밖에 있었으니까 선을 넘었다고 하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게 되잖아."
-…….
프리덤은 충격을 받았는지 아주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군요. 0이 넘지 말아야 할 실선이라면, 그들은 애초에 마이 너스 영역에 있었으니까 이번에 선을 넘었다고 하면 안 되는군요.
"그래서 버러지들에게 '자꾸 선 넘네.'라는 말은 하면 안 돼. 왜냐면 처음부터 쭉 선 밖에만 있었으니까."
-제가 오늘 마스터 덕분에 또 다른 딥러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무튼 지점, 본사 방문을 해지방패로 삼는다면 나도 선량한 예금주들에게 그걸 뚫을 수 있는 창을 쥐여줘야겠다."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모든 사용자 권한을 쥐고 있어도, 은행 서버에서 허락하지 않는 이상 계좌에는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그야 너는 완벽한 대리인이 될 수 없으니까 그렇지."
프리덤은 '스마트폰 제어에 관해서는 대리인을 넘어서서 본인이나 마찬가지다.
모바일 서비스 제공자는 이게 프리 덤의 행동인지 폰 오너의 행동인지식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영역을 넘어서면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법무법인 대리인을 내세우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법무법인 대리인입니까?
"위임장 받아서 변호사가 지점이든 본사는 방문해서 싹 처리하면 그만이지. 재벌 회장들도 다 그렇게 편하게 집에서 금융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일반 예금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문제는 비용이다.
적게 잡아도 수십에서 백만 원 이상은 들 것이다.
겨우 은행 옮기자고 위임인 고용에 그런 돈을 쓸 사람은 많지 않다.
차라리 시간이 날 때까지 생업에 종사하고 말지.
"우리야 박호진 법무법인 사무실에 일괄적으로 맡기면 돈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을 거고."
-위임장만 전부 모이면 그 후에는 변호사들이 본사를 방문해서 한 번에 처리하면 됩니다. 서류 지옥에 시달리는 건 은행 직원들이 될 겁니다.
서류가 아무리 많아도 프리덤이 끝낼 수 있는 단순 작업이다.
변호사들은 은행 본사에 서류 폭탄을 투척한 후, 그들이 허우적대고 있는 동안 유유자적하게 놀면서 기다리면 그만이다.
"좋아. 박호진 변호사한테 연락해."
-네, 이미 연락했습니다.
"그럼 곧 오겠네."
30분도 채 되지 않아 박호진 변호사가 눈썹을 휘날릴 기세로 찾아왔다.
"위임할 업무 내용은 들었습니다, 의원님."
"아직도 모피아 금고에 갇혀서 탈출을 못 한 가여운 이들이 천만 명은 넘을 겁니다. 그래도 업무가 그렇게 하드하진 않을 거예요."
박호진은 진심으로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도 천만 명이나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건 상상 이상인데요?"
"물론 그 천만 명 모두가 수영사채 미가입자라는 건 아닙니다. 수영사채로 이사 왔지만, 구은행에 아직 남은 돈이 있는 사람들을 전부 포함해서 그 정도라는 거죠."
"아,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됩니다. 저만 해도 S은행에 아직 남아 있는 계좌가 있으니까요. 돈은 2억 정도 밖에 없지만요."
박호진의 재력에 비추면, S은행에 남은 돈은 겨울 패딩에 넣어두고 봄이 되어 깜박 잊은 작은 현찰이나 마찬가지 수준이다.
"본인들을 일일이 찾아가거나 연락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단순사무는 프리덤이 알아서 해줄 겁니다."
"어떤 방향인지 알 거 같습니다.
저희는 서류 챙겨서 은행들 본사에 상주하면 되겠군요. 그나저나 서류양이 상당하겠는데요."
당장 위임장을 1장씩만 받아도 1,000만 장이 훌쩍 넘어 버린다.
"그건 전자문서로 받아서 은행들이 자기들 프린터로 출력하라고 하면 됩니다. 그게 끔찍하면 모바일에서 예적금 옮길 수 있도록 지들이 알아서 조치를 해주겠지요."
"하하, 은행들은 결국 외통수에 몰릴 수밖에 없겠군요. 이것마저 실행되면 은행들은 진짜 KO입니다. 들것에 실려서 나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수영은 비릿하게 웃었다.
"차고에서 이왕 트랙터를 꺼냈으니, 은행밭을 마저 싹 밀어보죠."
***
박호진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위임장을 챙겨서 변호사들이 본사를 찾아가자 은행들은 당황했다.
한 은행마다 열 명 이상의 변호사, 그리고 사무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넥타이 없이, 구두 대신 편안한 운동화에 간식거리까지 챙겼다.
아예 장기전을 작정하고 온 것이다.
"여기 위임장 목록입니다. 이분들이 저희에게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이분들의 계좌를 모두 해지하고 돈을 전부 타행으로 옮기겠습니다."
절대해지 방패를 사정없이 찢어버리고 들어온 절대관통 창 앞에서, 은행들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게 가능한 건지 먼저 내부 규정을 살펴봐야……."
"까놓고 말합시다. 귀사는 지금 결국 시간을 끌고 있는 거 아닙니까?"
50대 변호사는 인자한 표정 밑에 칼을 넣고 말했다.
"얼마든지 시간을 끌어보십시오. 아마 시간은 우리가 훨씬 더 많을테니."
"저어, 고객님."
"뭐 하십니까? 빨리 위임장 목록확인하고 고객 명단 대조하세요. 계좌번호까지 안에 전부 적혀 있으니 나중에 다른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보고를 받은 은행장이 달려 나왔다.
이건 상상을 벗어난 대응이었다.
아예 변호사팀을 고용해 해지 위임을 맡겨 버리다니.
재벌 회장들이나 쓸 법한 방법을 천만 단위의 예금주들에게 적용할 줄이야.
"고객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하지만 이건, 이건……."
"이건? 뭐가요? 돈 못 옮기게 억지 부렸다가 급소 맞으니까 정신이 없지요?"
은행장은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우리 고객님들도 그랬습니다. 돈좀 찾아볼까 하고 뱅킹 들어갔는데 매번 전산 오류, 비번 틀렸다고 지점 방문 요구, 나중에는 은행 서버오류라며 본사로까지 부르더군요."
변호사는 감정 없는 눈으로 직시하며 말했다.
"여기서 마무리합시다. 그럼 해지 방해 관한 소송은 없던 걸로 하죠. 만약 소송을 개시하게 되면, 정말 지저분하고 끈질기게 '개개인'을 물고 늘어지게 될 겁니다."
"개개인이라니요? 설마……."
"우리는 조직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조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공격하죠."
"……!"
은행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우리 클라이언트는 돈과 시간이 아주 많으십니다. 그럼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은행장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 상황까지 와서 더 이상 해지방어에 매달려 봐야 자기 인생만 꼬인다.
이제는 태업을 해봤자 고객 기만의 물증만 만들어줄 뿐이다.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그 대신……."
"위임받은 업무만 잘 처리되면, 우리도 일을 더 크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S은행을 시작으로, 대리인 팀은 은행들이 사수하던 해지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은행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미국발 곡물&생선 쇼크는 국제 금융 시장에 큰 혼란을 주었고, 가뜩이나 수영사채 때문에 체력이 약해져 있던 국내 은행들은 그 쇼크를 버틸 힘이 없었다.
기업이나 일반 예금주들은 거래은행만 바뀌었기에 아무런 타격이 없었고, 은행권 종사자와 이해관계자들에게만 지옥이었던 것이다.
***
제2금융권의 상호신용 관계를 시중 은행들에 유사하게 적용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쪼그라든 규모 보완을 위해 한데 묶어서 덩치를 키운다는 것이지만, 본질은 통폐합이었다.
다만 완전히 하나의 법인으로 묶을 수가 없기에 구색만 맞춘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체급이 바닥까지 떨어진 채로 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1금융권이라 불러줄 수 없는 사이즈.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일단 죽었다가 비루한 좀비 형태로 강제 소생당했다고 봐야 옳으리라.
수신액이나 고객 수나, 차라리 아예 없애는 게 낫다.
법률, 스페어 등의 이유로 정부에서 좀비처럼 살려놓았을 뿐.
수영사채에 반기를 들던 마지막 패잔병까지 완전히 정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제 은행이라고 할만한 곳은 수영사채뿐이지 않나?"
"그렇지. 수신액이 이제 3,000조넘었나? 예전 17대 은행들 예금까지 싹 긁어왔으면 그 정도는 될 텐데."
"아직 실적 발표 안 해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조만간 오피셜 뜨겠지."
"요즘 수영사채가 국제곡물시장에서 엄청 재미 보고 있어서 펀드 가입자들 아주 싱글벙글이잖아."
"수영사채는 다국적 농업법인이니까 곡물시장 자체를 직접 뒤집을 수도 있고, 이야, 이건 절대 망할 일이 없는 투자네."
"근데 밀 농사는 평년이었다던데, 왜 이렇게 값이 오르는 거야?"
"콩 농사 망해서 가축 먹인다고 축산업계에서 너무 많이 사들여서 그래."
"근데 밀은 원래 썩어나지 않아? 밀이 모자랄 수가 있어?"
"전 세계적 비축량이 한 해 소비량의 30%인가 40%가 될걸? 굳이 몇 년 치 밀을 쌓아둘 이유가 없으니까. 물고기가 먹을 소, 돼지 키운다고 그 밀까지 다 쓸어가 버려서 그래. 일시적인 거지."
"그나저나 콩은 갈수록 흉작이네. 꿀벌 피해 때문인가."
"그것도 있고, 콩 농가들이 콩 재배를 포기하는 분위기인 것도 있고, 내년에는 콩이 더 부족해질지 몰라."
"아몬드 가격은 꾸준히 우상향이 네. 이제는 예의상 일시적 보합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