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22화
240장 한 번 해병은 영원한 (5)
해병대 사령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해병대 항공단이라고 해봐야 상륙을 지원하는 헬기 몇 대가 전부다.
상륙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바다로부터 오는 공중 지원.
하지만 해병대의 항공 전력은 부실했고, 해군의 부실한 헬기 공중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제 F35C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일본 동부 지역에 대한 상륙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해군이 무려 F35B 26기, F35C 300기를 운용하게 된다지 않는가.
그런 상황에서, 해병대에서도 또다른 기대감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해군이 덩치가 이제 굉장히 커졌잖아?'
'이 정도면 이제 공군은 비교조차 안 되겠어.'
'이렇게 덩치가 커졌으니 이제 예산 문제로 우리를 붙들고 늘어질 가능성도 줄어들었고…….'
'이거 잘하면 이제는 독립을 할 수 있으려나?'
'독립, 독립이다!'
'대한해병 독립, 만세!'
현재 해병대는 1개 사령부로서 해군 소속이 되어 있다.
줄기차게 해군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지만, 번번이 무산되어 왔다.
특히 해군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분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너희, 그나마 우리 해군에 얹혀살고 있으니까 예산에서 대우받는 거야. 해병대가 독립되면 4군 중에서 가장 덩치 작은 세력이 되는데, 그럼 얼마나 가시밭길이 펼쳐지겠니?'
'그냥 따뜻한 해군 남편의 품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으렴.'
'어허, 어디 마누라가 집을 나가려고, 부부는 일심동체 모르나?'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분가가 실패했다.
하지만 F35B 99기가 배치된다면?
해병대의 전투력은 지금의 공군을 단숨에 뛰어넘게 된다.
더 이상 눈치 보면서 남의 집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원수님, F35B 99기를 정말 해병대에 전량 배치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국방부와는 이미 이야기가 됐습니다. 제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졌어요."
천억 가까이 되는 전투기를 99기나 기부하는 사람의 말인데, 안 들어줄 수가 없었겠지.
"다만, 당장 운용할 파일럿이 없다는 게 문제인데. 이건 뭐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까 대단한 건 아닙니다."
하수영은 태블릿의 화면을 한 장한 장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해병대는 이제 해병군으로 독립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너무 오래 해군에 붙어 있었어요."
사령관은 큰 충격을 받아서 하수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F35B 99기 배치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떠올린 욕심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그런 찔끔함을 꾸짖기라도 하듯이.
마치 다 큰 자식을 이제야 내보내는 듯한 후련함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앞으로 해군은 육상부대 운용보다는 항공모함 같은 걸 도입해서 해상전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상륙작전은 독자적인 상륙부대를 중심으로 해군과 공군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죠."
사령관은 하마터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겁니다!'라고 외칠 뻔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습상륙함인 청담함도 해병대에 배치하고 싶지만, 그러면 해군이 너무 섭섭해할 테니까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네요. 줬다 뺏는 게 원래 가장 나쁜 거잖아요."
사령관은 저도 모르게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운영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모자라는 건 내가 사비로 부담하겠습니다."
"정말 해병대가 해군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겁니까?"
"때가 됐죠. 이제는 해병대가 아니라 해병군입니다."
"해병군……."
"곧 정식으로 국방부 발표도 나고, 편제도 법 개정이 들어갈 겁니다. 다만 사령관님이 참모총장이 될 순없을 겁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애초에 실전부대 지휘관이 더 성격에 맞습니다."
새로운 해병군의 참모총장은 역시 해군에서 나오겠지?
해군참모총장의 임기가 끝나고, 아마 해병군 참모총장으로 전직 오지 않을까?
'아니지, 우리가 육상부대인 점을 생각하면 육군에서 전직을 올 수도 있겠어.'
그간 하수영이 육군을 알게 모르게 푸대접한 것은, 군 내부에서 유명한 이야기였다.
3주간의 군사훈련에서 뭔가 서운한 게 있지 않았나 하고 다들 추측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공군은 그나마 해군과 묶여서 자잘한 선물을 받기도 했는데, 육군은 값싼 헬기 한 대도 지원받지 못했다.
'새로 신설되는 포스타 자리를 육군에 처음으로 배려하면, 돈도 안들이고 육군에 생색을 낼 수 있으니…….'
"공군 참모차장이 진급하면서 새로 해병군 참모총장으로 올 겁니다."
"……!"
공군에서 온다고?
사령관은 순간 당황했지만,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듣고 보니 이 말도 납득이 갔다.
'F35B가 99기나 배치된 이상, 공군 출신의 장성이 초대 참모총장으로 오는 게 낫겠어.'
일단 지금 해병대에는 F35를 아는 장교가 한 명도 없는 수준이니.
참모총장뿐만 아니라 고급 장교들도 공군에서 대거 충원을 받아야 할 판이다.
잠깐, 이렇게 되면?
'공군은 승진과 보직 길이 대거 열리는 셈이로군.'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게 TO 아니던가?
F35B 99기 배치는 해병대의 독립을 끌어내면서, 동시에 공군 장성과장교들에게 보직 창출이라는 효과까지 덤으로 만들어냈다.
"참으로 탁월한 결정이십니다. 공군 장교들도 진급과 보직 발령의 폭과 가능성이 더 넓어지니, 아마 무척 좋아라 할 거 같습니다."
"글쎄요. 그건 너무 해병군 입장이고요."
"……?"
"자기들 게 되어야 할 전투기들을 뺏겼다고 억울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공군 입장에서는 장성 자리가 몇 개 더 생기는 것보다는, 99기의 전 투기가 자기들에게 오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
그렇게 드디어 해병대의 살림살이 분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대대적인 분가였기에 정리해야 할 재산 목록도 상당하고, 또 복잡했다.
늙은 해병들의 바람대로, 해군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상륙정 전부는 상륙함에 실려서 운용되어야 했고, 아직 상륙함 자체를 가져올 수는 없었으니.
-F35B는 해병에게, 배는 해군에게.
의외로 해군의 반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해군 지휘부는 너그럽게 해병의 분가를 승인하며, 국방부가 재촉할 필요 없이 아낌없이 도와주었다.
"원수님이 결정하신 일이다. 이에 누가 감히 따지려 드느냐."
"해병대 3만 명보다는 F35 300기가 훨씬 낫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상륙 작전은 이제 해병군에게 모두 맡기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해군과 해병은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사발령 내부 심사가 완전히 끝나고, 해병군 지휘부 편제가 끝났다.
내부 잔류 인원, 외부 유입 인원간의 조율이 완전히 종료되고, 이제는 정식 임명장을 받는 일만이 남았다.
***
해운대 수영펜션에서 조촐한 축하파티가 열렸다.
하수영의 초대를 받은, 해병군본부 내정자들이 모두 모였다.
그곳에서 장성들은 엄청난 충격을 겪었다.
"이럴 수가. 모두 로봇?"
"로봇이 서빙을 하고 있어?"
수십 기에 달하는 안드로이드들이 돌아다니며 서버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된 파티 구역에는 펜션 측 사람이라고는 하수영밖에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해병군의 분가와 창립을 축하하는 자리니만큼, 서빙은 로봇한테 맡기기로 했습니다. 자리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외부에 유출될 일은 없겠지요."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군본부의 창립 축하 파티이니만큼 너무 기분이 좋아서 진탕 마시다가 제가 실수를 할 수도 있잖아요?"
"……."
"해병군 참모총장님. 제 잔부터 받으시죠."
"예, 원수님."
전 공군 참모차장.
특별한 일이 없다면, 지금 공군참모총장의 임기가 끝난 이후 참모총장으로 진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수영의 러브콜을 받은 그는 주저 없이 신설 해병군 총장으로 옮길 결심을 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지금 해병대가 가진 F35B 99기만 해도 우리 공군을 박살 낼 수 있다고.'
그는 한때 하수영의 해군 사랑에 누구보다 가장 큰 가슴앓이를 했다.
그러나 이제 너그러운 울타리 안으로 온몸을 던짐으로 인해, 그 가슴 앓이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해병군 참모총장 영전, 축하드립니다. 신설 군이니만큼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으실 겁니다."
"국가와 민족의 영달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습니다. 원수님도 저에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아, 해병군에 개인적으로 자그마한 부탁이 있는데요."
"말씀만 해주십시오."
참모총장(진)뿐만 아니라 사령관 등 모든 장성과 장교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작계를 짤 때 남해와 동해 양식장수호, 적 점령 시 상륙탈환 같은 것도 염두에 둬달라, 뭐 이겁니다."
"물론입니다. 최우선사항으로 여기고 작계에 반영하겠습니다."
"그게 어떻게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나라 국민들의 식탁, 아니, 식량 자주권을 수호하는 일입니다."
"5천만 대한민국 국민에 생선을 공급하는 양대 양식장을 지키는 일이니, 당연히 작계에서 최우선으로 여겨질 겁니다."
여기저기서 호언장담이 터져 나왔다.
이미 수영양식장은 일개 개인 사업체가 아니었다.
이 나라의 식량안보를 위한, 중요한 전략자원이었다.
대다수의 자원을 수입해서 사용하는 한국에서, 수영양식장은 유일하게 자원(식량)을 100% 자체 생산하고 있으니.
"자자, 작전사령부 사령관님도 한 잔 받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원수님."
해병대 사령관은 이제 옛 추억으로 사라지는 칭호가 된다.
앞으로는 (해병군) 작전사령부 사령관이라는 직함으로 불릴 것이다.
늙은 해병, 주임원사가 잔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신설 해병군에서 1년 정도 복무를 한 후, 만기 퇴역을 하게 될 예정이었다.
"원수님, 제가 건배사 하나 외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멋진 말로 부탁합시다."
"자, 모두 잔을 들겠습니다!"
늙은 해병이 잔을 높이 들었고, 수십 명의 군인들이 함께 잔을 들었다.
"한 번 해병은!"
"한 번 해병은!"
"영원히 원수님을 명예해군원수로 모신다!"
"영원히 원수님을 명예해군원수로 모신다!"
"건배!"
"건배!"
주임원사가 감개가 무량한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말했다.
"제가 군복을 벗기 전, 해병대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꿈을 이루게 되는군요. 해병의 영원한 소망을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
"F35B는 이제 필요가 없어서 적당히 짬처리를 했을 뿐입니다."
"저희 마음 편하시라고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비록 원수님은 해군원수이지만, 저희 해병들 역시 영원 해병의 원수님으로 받들어 모실 겁니다."
"해병의 명예원수라. 그것도 괜찮네요. 그럼 해병군용 제복도 따로 맞춰야 하나?"
"제가 이미 주문을 해놓았습니다, 원수님."
"역시 주임원사님. 진짜 부대라는 건 주임원사 없이는 돌아가는 게 없다니까요."
"원수님이야말로 군 생활을 바닥부터 수십 년 하면서 장성까지 올라가 신 분 같습니다. 어쩜 그렇게 병, 부사관, 장교, 장성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지……."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흥이 타올랐다.
하수영은 신임 참모총장(전 공군 참모차장)에게 은근슬쩍 말했다.
"공군에서 불만이 많죠? 배신자 취급도 받고 계실 거 같은데."
"하하, 괜찮습니다. 오히려 기수 차이가 좀 나는 후배들은 자기들도 이끌어달라고 난리입니다."
"너무 시끄럽다 싶으면 우주군을 당근으로 슬쩍 던져주세요."
"네? 우주군이라고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