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37화
244장 대륙의 파이프 (1)
기재부 제2차관 나현수는 이동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나를 콕 집어서 불렀지? 불안한데…….'
그는 지금 하수영의 연락을 받고 청담동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물론 하수영이 기재부 차관을 오라 가라 할 만한 권한은 없다.
다만 하수영 의원사무실 보좌관이 정중하게 면담 제안을 했고, 장소가 청담동 휴민트타워로 결정되었을 뿐이다.
-의원님께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세종시로 내려가실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서울로 가겠습니다.
하수영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은 나현수 입장에서도 찜찜했다.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 제일의 부자 아닌가.
그래서 속 편하게 자신이 하수영이 있는 곳으로 오기로 한 것이다.
나현수 입장에서는 하수영을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독하게도 돈 안 쓰기로 유명하다던데.'
기재부에서 하수영은 다른 쪽으로 유명했다.
바로 지독한 구두쇠라는 것.
-내가 살다 살다 공무원한테 그렇게 돈 안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 정도 재벌이면 기재부에 티 안 나게 선물 돌리고 그러기 마련인데, 청담동은 어떻게 된 게 전혀 그런 게 없어.
-제대로 털면 안 털리는 부자 없게 마련인데,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지갑을 닫는 거지?
-뭘 믿겠어. 이 나라에서 자기 건드릴 사람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거지.
-여의도 믿고 지갑 꽉 닫아두는 걸 수도.
기재부 공무원들은 하수영을 두려워하는 쪽, 잘 보이려고 하는 쪽, 반감을 품은 쪽으로 크게 3개의 입장으로 나뉘어 있다.
담배회사 KT&G를 갖다 바치려고 한 1차관 같은 경우는 잘 보이려고 하는 쪽.
그리고 나현수 본인은 두려워하는 쪽이자, 반감을 품은 쪽에도 살짝 발을 걸치고 있었다.
어느덧 청담동 휴민트타워에 도착했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그 유명한 훈민정음 창제일지 전시관과 구경꾼들이 보인다.
중국 부호가 10조 원을 불렀어도 팔지 않았다는 그 전설의 문화재.
'본인은 근대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시 진짜겠지?'
문화재청을 포함하여 세상 모두가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당사자만이 모조품이라고 주장하는 물건.
10조 원짜리 유물을 잠시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뭔가 다른 세상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는 의원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수영이 반갑게 맞이했다.
한가한 노인들이 사방에서 신기한듯이 관찰하는 게 느껴진다.
'청담동 늙은 마왕들…….'
하수영의 극렬 지지자이자 청담동에서 알아주는 부자들.
상당수가 종로 출신이며, 하수영 때문에 아예 청담동으로 주소를 바꾼 이도 제법 많다고 들었다.
그중 아는 얼굴을 발견한 나현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으응? 나 차관? 자네가 여기는 웬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하수영 의원님과 면담이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갑자기 만나니 반갑군. 이야기 끝나면 잠깐 들렀다 가게."
"네, 회장님."
역시 청담동 마왕성.
입장부터 아는 얼굴을 만나서 부담감이 추가된다.
나현수는 의원사무실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하수영의 개인룸에 들어섰다.
하수영이 손수 차를 내주고, 자리에 앉았다.
"국고 관리하느라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시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소명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즘 예산은 넉넉한가요?"
"예산이라는 건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지요.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미국도 예산안을 짤 때면 돈 없다고 아우성일 겁니다."
"가만 있자, 우리나라는 지금 예산이 얼마나 되나요? 한 800조?"
"……약 615조 원입니다."
"어, 아직도 그거밖에 안 돼요? 지금쯤 800조는 돌파했을 줄 알았는데. 이래서 언제 예산 천조 찍나요?"
"……."
"세금 한 푼 안 내는 제가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네요. 아하하."
"세금 한 푼 안 내셨다니요. 청담동 부동산 취등록세로만 이미 수천억을 내셨습니다."
"그거야 거래세니까 당연히 내는 거고, 소득세는 지금까지 안 냈으니까요."
"의원님이 거느리신 자회사들은 상당한 법인소득세를 내고 있습니다."
"에이, 회사와 저 개인이 같나요. 전혀 다른 별개 인격인데."
수영사채 예치금 중 하수영 개인(자회사가 아닌) 명의로 된 것만 수백조 원(대부분 달러).
그 돈은 대부분 농사로 돈이다.
중국 농장과 미국 나노소프트가 10년치 이상의 매출을 미리 긁어다 바친 돈도 포함되어 있다.
제대로 소득세를 매겼다면, 적어도 200조 내지는 300조 원에 달하는 세수를 거뒀을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그 돈에 단 한 푼의 세금도 물리지 못했다.
소득세도, 부가세도, 단 1원도 매기지 못했다.
농산물은 부가세 면제 품목이고, 농업소득 역시 몇백조 원을 벌든 소득세 면제.
심지어 중국 황비버섯농장에서 번 돈은 소득 발생지인 중국에서 세금을 거둬가기에, 이중과세 금지 조약에 따라 국세청이 세금을 못 걷는다.
"……그래도 의원님의 프랜차이즈사업체에서 상당한 세금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미 개인으로서 내시는 세금만 해도 우리나라 1위이십니다."
부동산 거래세.
수영레스토랑 등 요식 사업체에서 발생하는 부가세 등 각종 세금.
그 외 기타 등등만 따져도, 이미 하수영은 개인납세자 1위였다.
심지어 2위부터 10위까지 다 합쳐도 하수영을 못 넘어선다.
그래서 국민들은 하수영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돈 버는, 보기 드문 진정한 부자라고 칭송하지만…….
'그거 세금 얼마나 된다고. 그래봐야 새 발의 피 수준이지.'
다시 말하지만, 그의 '농축수산물'에서 면제되는 부가세, 소득세를 생각하면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다.
'농축수산물 세금 정책만 바로 섰어도 한 해 예산이 50조 원은 더 늘어날 거다.'
하수영뿐만 아니라 그의 지원을 받는 전국의 농어민들을 상대로 세금을 걷는다면?
한 해 예산이 수십조 원이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현수가 여기 오는 내내 찜찜했던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농축수산물 과세법 개정…….'
기재부 내부에서 재원 확보를 위해서 농축수산물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 하수영을 저격하려는 서해그룹의 로비를 받은 국회에서 한 차례 시도했었다.
결국 무산되었고, 오히려 지금은 축수산물까지 면세 범위가 확대된 상황이다.
그러나 수영농장을 중심으로 농축수산물 시장이 눈부시게 커지기 시작하자, 국회는 다시금 과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재부에서는 하수영에 반감을 품은 세력을 중심으로 열심히 카드를 돌리려고 섞는 중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못해도 190% 이상은 될 겁니다. 일부 희소한 기호품목만 제외하면, 당장 수입이 막혀도 식량 공급에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죠."
"그렇습니다. 모두 수영농장 덕분입니다."
"하하, 흙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세금 정책 덕분이죠."
"……."
"남들은 뭐 똑같이 일하는데 누군 왜 세금 면제해 주냐고 불만이 있을 순 있어요. 식량안보, 식량주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나오는 헛소리죠. 당장 2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잠재적인 식량주권 위험국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은근히 뼈가 있는 말에, 나현수 차관은 얼굴을 살짝 굳혔다.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더러 우리 기재부 내부의 식량과세 논의를 건드려 보라는 뜻인가?'
식량 과세 논의에 관한 입장은 굳이 따지자면 5:5 정도로 팽팽하다.
하수영에 감정이 안 좋은 세력은 국회와 손을 잡고 식량 과세를 은밀히 추진했고, 남항순 장관을 중심으로 한 친하수영 세력은 '멀쩡히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왜 건드느냐.' 라며 반대하는 쪽이었다.
'식량 과세 정책이 실행되지 않도록 미리부터 손을 쓰겠다는 건가?'
나현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면 자신의 앞날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지금 나를 떠보는 건가? 내가 먼저 보여줘야 하나? 아예 충성 맹세를 해?'
하수영이 손이 매우 크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당장 해군에 선의로 퍼붓는 돈만 해도 엄청나다.
기재부에서는 '차라리 그 돈으로 세금을 냈으면.' 하고 늘 안타까워하고 있었으니.
경항모, 미사일 순양함, 줌왈트 3척, 세종대왕급 3척, 그 밖에 기타 등등…….
그게 전부 기재부로 들어왔어야 하는 돈들인데!
"최근 싼샤 댐 수위가 대폭 줄었습니다. 알고 계시겠지요?"
"아, 뉴스에서 봤습니다. 주변 환경생태계 변화가 크다고 하더군요."
나현수는 왜 갑자기 주제를 돌리는지 의아해하면서 반응했다.
"차관님은 싼샤 댐 수위 변화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으시나 보군요."
"수위가 높아지는 거라면 몰라도, 낮아지는 건 사소한 문제 아닙니까?"
댐이 무너지면 중국 경제가 박살나고, 대중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도 연쇄 반응에 휩쓸리게 된다.
하지만 낮아진다지 않은가?
"댐 발전량이 줄어들어서 일대 공업지역에 전력 수급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길어야 두세 달 안에 중국정부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기재부는 이미 그 안에 대한 분석, 예측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
중국의 물품 수출 능력이 휘청거릴 순 있겠지만, 일시적일 거라고.
'중국과 거래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은 적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다.'
"차관님, 이 문제를 볼 때 돈만 보시면 안 됩니다. 흙의 노래를 들으셔야 합니다. 일조량과 기온, 수량같은 조건들이 연주하는 교향곡 말입니다."
"흙의 노래요?"
"중국의 해외 곡물 수입량은 작년에 비해 15%나 늘었습니다."
"그거야 중국인들도 경제가 나아짐에 따라 고기 소비가 늘어서 가축사료가 많이 필요하니……."
"늘어난 물량의 대부분은 쌀 같은 사람이 먹는 품목입니다."
"……."
"그리고 중국의 농산물 생산량은 작년에 비해서 오히려 7%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그 전해에는 5%였지요. 해마다 생산량이 줄고 있는 겁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중국의 내수농산물 시장은 오히려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수치로만 봐도……."
"그거 황비버섯은 빼고 계산하신 거죠?"
나현수 차관은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황비버섯! 아! 황비버섯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확실히 뚜렷한 감소세다!'
중국의 곡물 생산량이 꾸준히 줄고 있다?
하수영이 계속 말했다.
"중국 정부는 지금 식량안보를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외수입량을 늘림으로써 무역관계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죠. 농가 보호는 뒷전이다, 이 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의원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장강 수위 때문에 제가 좀 알아봤는데, 지금 중국 전체에 조금씩 담수 고갈 현상이 진행 중인 거 같아요."
"담수 고갈 현상이요?"
"네, 지금 한창 물 댈 시기인데 부족해 봐요. 수확 다 망칩니다. 아무리 중국 정부가 농가는 뒷전이라 해도, 얼굴 구겨질 정도로 식량 생산량이 나빠질걸요?"
장강 수위 변화가 빠른 시일 내에 중국의 식량 사정 악화가 벌어질 것을 예고한다?
나현수는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하수영이 아직도 뭘 원하는지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중국에 신두를 좀 수출하려고 하는데요."
나현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신두는 농산물이 아닌 가공식품, 따라서 세금이 붙는다.
"혹시 세법거래가 가능한지 한 번 실무자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뵙자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