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38화
244장 대륙의 파이프 (2)
'신두 중국 수출이라니. 그리고 세법거래?'
사법거래도 아니고 세법거래라니.
하지만 나현수 차관은 단어에 현혹돼서 당황하지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세청은 종종 체납자와 세금거래를 하기도 한다.
일시불 즉각 납부를 조건으로 어느 정도 깎아주면서 행정력 누수를 방지하는, 타협안을 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재부는 국세청의 상급 기관.
이 정도 건이면 국세청이 아닌, 기재부를 찾아서 딜을 제시해 볼 만하리라.
"구체적인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전 올가을 중국의 곡물 농사가 크게 망할 거라고 봅니다. 알곡의 당도 구축 시기 이전에 물이 부족하면, 뭐 말 다한 거죠."
"그래서 수입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물론 일시적이겠죠. 그 틈을 재빠르게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신두라면 굳이 그런 빈틈을 노리지 않아도 중국 시장을 석권할 거 같습니다만."
하수영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신두는 중국 수출이 막혔어요. 다른 식품들처럼 말이죠."
"예? 그게 무슨……."
"초기에는 얼마 안 되지만 잘 팔렸죠. 보따리 상인들이 와서 열심히 사 갔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습니다."
"……."
기재부 차관이나 되는 사람이, 중국이 한국 농산물과 식품 수입을 틀어막은 것을 모르다니.
그가 무능해서는 아니다. 나현수는 충분히 이름값에 걸맞은 유능한 사람이다.
그럼 뭐가 문제겠는가?
'반도체, 전자기기 같은 무역만 중요하고 먹거리 교역은 신경을 안 쓰는 거지. 쯧쯧…… 이러니까 이 나라에서 농사짓기가 이리 힘든 거고.'
한때 사농공상을 철통같이 수호했던 이 나라가 어찌 이리되었을까?
이제는 사상공농도 아니고, '사상공과 그 외 잡농'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하수영은 내색하지 않고 친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장담합니다. 중국 정부는 인민들이 신두에 중독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신두에 중독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현수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진정되었지만, 신두가 출시된 초기에는 아주 뜨거웠으니까.
간편한 몇 초 식사로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는, 획기적인 식품.
소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중병 환자들도 부담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어, 훌륭한 1등 보양식으로까지 인정받고 있다.
오죽하면 '인간용 만능 배터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프라임컴퍼니에서 몇 번 수출을 알아봤는데 번번이 안 됐다고 하더군요. 알다시피 중국 내에서 장사하려면 현지 파트너를 구해야 하는데, 아무도 안 나서더랍니다."
"류이엔 그룹은 뭐라고 했습니까?"
"처음에 류이엔 그룹에 맡기려고 했는데, 그게 중간에 엎어진 거예요. 아마도 한쪽에 너무 몰아주는 걸 당에서 경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예 식품 자체를 경계한다……."
"네, 기호식품인 황비버섯과 달리 신두는 기초 식량이니까요."
기호식품과 주식량은 엄연히 차이가 크다.
전자는 여차하면 아예 막아버려도 큰 타격은 입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입이 덜 즐거울 뿐이지.
하지만 후자는 국가의 식탁을 지배하고 식량안보까지 침식할 우려가 있다.
"일단 한 번 크게 맛을 보여주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올해 농사를 망치면 그 타이밍을 행사상품 체험기로 잡으시려는 겁니까?"
"네. 지금도 신두를 맛봤던 사람들이 알음알음 한국에 들어와서 신두를 사가고 있습니다. 중국 세관에서 들키면 전부 압수당하긴 하지만요."
"식사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두가 확실히 대단하긴 합니다."
나현수는 몰래 사가는 중국인들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당장 자신도 언제부터인가는 직장식사를 신두로 때운 지 오래되었다.
기재부 일은 행정부서 중에서 가장 바쁘고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야근은 당연하고 주말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다 보니 기재부의 주요부서 직원들은 식사의 대부분을 신두로 때 운다.
"한 번 맛 들이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다음에는 정부도 못 막습니다. 수입 허용 풀어줘야 할 겁니다."
"그럼 의원님께서는……."
"기왕이면 우리나라에서 가공까지다 마치고 완성품으로 팔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금이 문제네요."
당연히 수출품이니까 부가세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현수는 주저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든 가공식품은 과세 대상입니다.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기재부의 권한도 아닙니다."
"재정에 관해서는 기재부의 발언력이 세잖습니까. 충분히 국회를 설득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원하시는 게 신두 수출품에 한한 면세입니까? 아니면 국내유통도 포함입니까?"
"국내유통은 빼고요. 수출만요."
"하지만……."
"그냥 세법거래 논의가 될지 안 될지, 실무자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기재부나 국회에 아예 이야기도 꺼내지 말까요?"
나현수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자칫 특혜로 비칠 수 있어서 논하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아마도 어렵지 않을지……."
"알겠어요. 그럼 우회 루트 타야겠네요."
"예?"
"신두 수출공장은 미국에 지어서 해야죠. 미국은 식품으로 저한테 혜택을 많이 주거든요. 원재료를 미국으로 보내서 거기서 신두 만들어서 해외 수출해야겠어요."
나현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수영은 중국 버섯 농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식품공장을 국내에 두고 있었다.
라면, 과자, 도시락, 통조림, 신두등 모든 식품공장이 국내에 있다.
그런데 신두 공장을 따로 미국에 세우고, 그로 인해 말이 나온다면?
'아, 기재부 나현수 제2차관님이 세법거래고 뭐고 닥치라고 해서요.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공장 세웠죠. 이게 불법은 아니잖아요?'
이러다가 괜히 자신만 국회 청문회장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닌가?
혼자 덮어쓰는 것은 사양이다.
"의원님, 잠시, 잠시만요.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방금 특혜는 곤란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사익을 위한 특혜는 곤란하지만 공익, 그것도 국익을 위한 특별조치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지요."
나현수 차관은 상부에 토스하기로 했다.
절대 혼자 덮어쓸 수는 없었다.
***
나현수는 남항순 장관(부총리)을 찾아갔다.
본래 하수영을 껄끄러워했던 남항순은 언제부터인지 친하수영 파벌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수영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정 정책에서 하수영한테 유리한 쪽으로 입장을 튼 것이다.
-귀한 아들이 골프장에서 부상으로 죽을 뻔했는데, 닥터헬기가 몇 분 만에 와서 골든타임 지킬 수 있었다잖나.
-후유증 없이 완치돼서 그 뒤로는 수영그룹이라면 껌뻑 죽는다는데.
-수영그룹에서 받아주기만 한다면 버선발로 한달음에 달려갈 양반이 바로 우리 부총리님이지.
다시 말하지만, 기재부 역시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하수영을 좋아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꺼려 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수장인 남항순은 가장 좋아하는 쪽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청담수영병원과 가까운 삼성동 지역으로 이사도 했다.
한 번 아들을 잃을 뻔했던 위기 때문인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집을 마련한 것이다.
하수영이 청담동 부동산 콜렉터만 아니었어도, 청담동에 집을 구했을 것이다.
"음, 신두의 중국 수출이라."
"부가세와 관세는 우리가 신경 쓸게 아니고, 소득세 부과를 염려하는거 같았습니다."
"수출 품목이니까 국내에서 낼 세금이라고 해봐야 소득세 정도겠지.
그런데 신두라면 확실히 파괴력이 클 거 같지 않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두는 국내 유통 외에도 유엔, 그리고 미군에 납품되고 있다.
그리고 미군과 국군은 신두의 맛을 단단히 알아버린 상태다.
물론 병사들은 선호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무료한 군대에서 신두는 먹는 즐거움을 채워주지 못하니까.
하지만 훈련 상황에서만큼은 병사들도 신두를 선호한다.
배식 추진 따위를 할 필요 없이, 그냥 병사 개개인한테 신두만 따로 지급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특히 취사병들은 신두야말로 신이 내려준 훈련식이라며 떠받들고 있는 수준.
신두가 가진 식사의 간편함, 영양의 균등함은 다른 식품들이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
환자와 기력이 떨어진 초고령층 노인들한테도 매우 좋고.
"수출에 한해서 비과세 혜택을 주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지. 아니, 외화 벌어오겠다는데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나?"
"……."
남항순이라면 역시 이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
수영농장의 개가 되지 못해 슬픈장관이라는 평까지 있는 사람이니까.
"가만히 놔두면 미국에 뺏길 거 아닌가? 그러니까 과세 혜택을 퍼부어서라도 우리나라가 가져와야지. 이런 문제 해결하라고 기재부가 있는 거라고."
"부총리님. 그러면……."
"이거 추진해. 청와대와 국회 설득할 보고서 만들어. 내가 직접 대통령 찾아뵙고 보고드릴 걸세."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집무실을 나오는데 나현수는 불현듯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 토스를 하긴 했는데…….'
위험을 떠안기 싫어서 토스를 했는 데, 어째 공적까지 함께 토스를 해버린 것 같다?
일이 잘되면 남항순 부총리가 청담동에 쪼르르 달려가서 '제가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의원님.' 하면서 꼬리를 헥헥헥 흔들지 않을까?
***
기재부에서 틔운 물꼬가 국회와 청와대에 흘러 들어갔다.
[대중 수출 농축수산물 등 식품 수출에 대한 비과세 혜택의 긍정성 예측]
말이 길지만, 쉽게 말해 중국에 갖다 파는 먹거리에 세금 물리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명분도 타당하게 갖추고 있었다.
"지금 중국의 무역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는 쌀 한 톨도 갖다 팔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식품규제를 하고 있지 않아, 중국은 당장에라도 김치 수백만 톤을 갖다 팔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건 좀 억지 아니오?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지, 실제로 우리 나라 식탁은 이미……."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대중무역식품 수출망을 뚫기 위해서는, 그만한 비과세 혜택을 줘야 기업들을 적극 장려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결국 이렇게 되면 수영농장만 또 이득 보는 거 아닌가요?"
나왔다, 또 수영농장.
국회는 긴가민가했지만 법 통과를 해줘서 손해 볼 건 없었다.
'맨땅에 헤딩해서 외화 벌어오겠다는데 보호장비 정도는 지원해야 아닙니까!'라는 기재부의 주장에 태클을 걸기는 좀 그랬다.
다만 여당 일부 세력이 법제화하는 것만큼은 강하게 반발했다.
"아무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지만, 이건 한 기업만을 위한 법이오. 이런 법이 통과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가벼운 진통 끝에 결국 여야는 '그냥 장관령이나 대통령령으로 진행하시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대통령령이 발효되었고, 중국에 내다 파는 모든 먹거리는 한 시적이지만 일체의 세금이 면제되었다.
***
프라임컴퍼니는 다시 바빠졌다.
"신두 생산량을 지금보다 10배! 아니 30배로 늘린답니다!"
"팍팍 찍어서 비축해요! 아니, 창고 겨우 이거 가지고 되겠어요?"
"컨테이너 닥치는 대로 모아서 꽉꽉 채워 넣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