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45화
245장 벼를 구하라 (5)
'1,000억 알이면 1,000억 달러.'
엄청난 거래.
하지만 당장은 계약서고 계약금이고 없다.
1,000억 알을 반년 안에 마련해 달라.
다만 당에서 허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엇도 보증해 줄 수 없다.
대신 일이 잘되면 쌀 수출이 가능하도록 추진을 해주겠다.
원래는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이야기이지만, 발머 스틴은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수영농장의 실제 재고량이 얼마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신두 천억 이상이 창고에서 잠자고 있지.'
수영농장에는 쌀이 많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다.
목장의 소들을 먹이기 위해서 대량의 볏짚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 부산물인 쌀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온다.
그 쌀들로 판매용 신두를 만들고, 물고기 사료를 만든다.
그렇게 해도 쌀이 미친 듯이 남아 돈다.
이미 쌀 보관창고는 가득 찬 상태.
정부에서도 수영농장이 대체 얼마만큼의 쌀이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다.
때문에 수영농장은 보관의 편의를 위해서, 남아도는 쌀로 족족 신두를 만들어버린다.
쌀 외에도 다양한 곡물이 들어가는 신두는, 제조 과정에서 부피가 대폭 줄어든다.
칼로리 대 부피의 비율이, 식량으로서 궁극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온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도, 수영농장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신두를 비축하고 있으니.'
"전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약간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문제니까요."
"정말 고맙습니다."
"다만 농업부에서도 당을 설득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주십시오. 이 거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인민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유샹은 조금 감동받은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일이 너무 잘 풀린 것에 조금씩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발머 스틴이 이렇게 선량한 사람이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실리콘밸리의 폭군, 나노소프트의 전 CEO가 아닌가.
비엔지니어 출신으로서 나노소프트의 정체기를 극복하고, 그 거대한 몸집을 더욱 크게 키운 일등공신.
그런 자본가가 이렇듯 순순히 응하는 것은,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건데.
발머 스틴은 느긋하게 음료를 마셨다.
'어차피 우리가 손해 볼 것도 없으니, 크게 선심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겠지. 더 큰 대가를 끌어 내기 위해서라면.'
***
가을 추수가 끝났다.
하수영은 계획한 대로 수렵대회를 열었다.
상금만 무려 1,000억 원이 걸린 엄청난 대회였기에, 전 세계에서 수렵인들이 몰려들었다.
수렵인들뿐만 아니라 사격 선수들도 앞을 다퉈서 한국을 찾았다.
예정한 대로 육군이 일괄적으로 총기를 관리했다.
대회가 진행될 강원도 현장에는 무수한 사람들과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하수영이 대회 축사를 읊었다.
"수렵은 오래전부터 인류가 생존을 위해 식량을 확보하던 방식입니다. 오늘날,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식량확보를 수렵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수렵인들의 눈은 커다란 대형 패널에 떠올라 있는, 금으로 만들어진 라이플에 꽂혀 있었다.
저게 완전 순금이랬지?
그럼 금값만 대체 얼마인 거야?
"하지만 거대한 농경화는 멧돼지 등 유해동물들의 천적을 자연에서 사라지게 했고, 이제 인간이 직접 개체 수 조절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국내의 크고 작은 방송사, 언론사들은 전부 찾아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일개 수렵 대회에 걸린 총상금이 천억이다 보니, 제대로 이슈몰이를 한 것이다.
"수렵은 단순히 살상을 즐기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인류의 생존 방식 근원을 되새겨보는 회상이자, 이제는 자연 스스로가 불가능한 개체 수조절을 인간의 손으로 직접 행해야 하는 책무입니다."
하수영은 공포탄이 장전된 수렵용 라이플의 총구를 하늘에 겨누었다.
"그 뜻을 되짚어보며, 대회를 시작합니다!"
탕!
총상금이 1,000억 원이지만, 하수영이 모두 댄 것은 아니었다.
하수영후원회에서도 십시일반으로 돈을 냈고, 수영그룹 계열사들도 돈을 보탰다.
1등 상금은 50억 원.
그리고 상당한 참가자들이 조금씩이라도 상금을 탈 수 있는 분배 구조로 되어 있었다.
멀리서 찾아온 이들에게는 별도로 참가상을 줘서 여비를 감당할 수 있게 해줬다.
"대회의 권위와 정통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느냐에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덕분에 강원도 상권도 들썩였다.
주최상황실을 찾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모니터가 사방을 메우고, 참가자들을 실시간 비추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곤 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바디캠을 착용했고, 드론 카메라가 따라붙었으며, 총기에는 GPS 추적 칩까지 달고 움직였다.
대회 관람을 위해 잠시 중국에서 넘어온 발머 스틴도 감탄했다.
"이 정도면 총기 분실이나 사고가 날 가능성은 전혀 없겠습니다."
"사고라도 났다가는 다음 대회를 여는 데 지장이 있으니까요. 초반부터 철저히 해야죠."
"이 대회 덕분에 강원도 전체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올림픽 특수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다고 다들 좋아합니다."
예선은 모의표적을 사냥하는 식으로 치러진다.
본선에서부터 실제 유해조수를 추격, 사냥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참가자들은 다들 본선에 들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예선을 치르고 나면, 본선 참가자들이 결정될 것이다.
"추수기 이후의 대대적인 수렵 대회라. 풍년을 자축한다는 의미도 깊겠습니다."
"네, 그런 것도 있지요."
한국은 풍년이지만, 풍년이 아니다.
전국의 농민들은 올해도 농사를 망쳤지만, 금전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을 봤다.
복구도 빠르게 진행되어 내년 농사도 무리 없이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쌀은 수영농장에서 공급하기 때문에 쌀 내수시장도 아무 문제가 없다.
발머 스틴은 1위 선수의 바디캠영상을 보면서 무심히 말했다.
"당에서 신두 1,000억 알을 정식으로 구매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직접 베이징에 와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길 원하더군요."
"그래서요?"
"제가 전권자니 저하고만 이야기하면 된다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역시."
"이번 수렵대회를 꽤나 불편하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자기들은 메뚜기떼로 농사 피해를 크게 봤는데, 수영농장은 일부러 풍년을 과시하는거 아니냐고요."
"직접 그리 말하던가요?"
"당연히 제 앞에서는 그렇게 말을 안 하죠. 직접 서명은 핑계고 수렵대회 관련으로 면전에서 한마디 하고 싶었나 봅니다."
"신두를 1,000억 알이나 구매해 주신 소중한 고객님이신데, 무슨 말씀인들 못 하겠습니까?"
"참, 대금은 딱 1,000억 달러로 받기로 했습니다. 1알당 1달러입니다."
"그걸로 일단 빚 차감할까요?"
"하하, 그걸 왜 빚이라고 하십니까?"
수영사채 설립을 위해서 나노소프트는 3,400억 달러를 대줬다.
식품 프랜차이즈 사업의 약 10년 치 수익금을 미리 지급해준 것이다.
그리고 발머 스틴은 굳이 신두 판돈으로 차감할 생각이 없었다.
'가만히 놔둬도 몇 년 안에 저절로 다 없어질 텐데.'
처음에는 10년을 예상했지만, 냉동식품 등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예상기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원래 나노소프트는 현금이 남아돌아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회사.
굳이 돈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이 기회에 프랜차이즈 본사에 잘 보이는 게 더 중요하지.
"수수료만 제하고 수영사채 미국계 좌에 입금하겠습니다. 한국 금융 시장을 점령하시려면 아무래도 실탄이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음, 딱히 금융 시장을 점령할 생각은 없지만……."
"받아주시죠. 제 성의입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러다가 수신액이 금방 3조 달러 돌파하겠네요."
"그 정도면 월가에 진출해도 다 쓸어버릴 수 있을 듯합니다만."
"월가의 것은 월가에게. 먼저 건드리지 않는데 굳이 레일건 들고 쳐들어갈 필요는 없죠."
먼저 건드린다면 레일건 들고 쳐들어간다는 의미일까?
발머 스틴은 그런 시원시원한 멘트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농사만 짓는 사람이라 호전성이 부족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한국에서만 운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자본이군요."
"그래 봐야 5년 치 국가예산도 안됩니다. 이자놀이 해봤자 유지비나 겨우 건질까 말까 한 수준이죠."
"2.6조 달러가 넘는 돈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는 분은 회장님이 유일할 겁니다."
CVN케이블은 모든 프로그램을 보류하고, 하수영배 수렵대회를 처음부터 줄곧 내보내고 있었다.
생방송 화면을 잠시 보던 발머 스틴이 말했다.
"배합사료 생산은 어떻습니까?"
"음, 중국에 사료도 집어넣게요?"
"예, 보니까 지금 들어가기 좋은 분위기입니다. 다음에 쌀과 같이 묶어서 들어가면 더 자리를 잡기 편할 듯합니다."
"사료까지 팔아준다면야 저야 좋죠.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얼마나 줄 수 있습니까?"
하수영은 잠시 입을 다문 채 발머스틴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살다 보니 제가 그런 말도 다 들어보는군요. 항상 그 말을 하는 쪽이었었는데."
"영광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얼마든지. 필요한 만큼, 상한 없이."
"일 년에 10억 톤도?"
"물론이죠."
그 작은 농장에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발머 스틴은 이제 수영농장의 생산력이 현대 상식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의문이 공론화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다들 자기 차례에 폭탄이 놓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농사가 OS 장사보다 훨씬 더 재밌고, 짜릿하다는 걸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알아가면 되죠."
***
당 고위부에서 드디어 식량 부족가능성을 진지하게 인식했다.
그러나 농업부를 질책하기에는, 가뭄과 메뚜기떼 발발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였다.
그리고 농업부는 신두라는 훌륭한 대안을 이미 준비해 두었다.
"나노소프트는 신두라는 식량 대체 품을 1,000억 인분이나 마련을 해두었습니다. 계약서도, 계약금도 없이 우리 농업부의 구두 약속만을 믿고 말입니다."
"정말 훌륭한 수완이오, 탕젠런 부장."
"감사합니다, 부주석님."
"자칫 모든 것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을 텐데 용기를 내어 대책을 마련해뒀군."
그리하여 발머 스틴은 비밀리에 공산당 고위직을 만나게 되었다.
정식 계약에서 당 간부는 기밀유지 조건을 내밀었다.
"수량과 금액은 물론이고, 계약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비밀로 해주기 바랍니다. 특히 수량과 금액은 철저히 비밀로 지켜져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300억 알만 구매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나머지도 계속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당분간 신두는 우리 공산당 정부 하고만 거래해야 합니다. 이는 국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함이니 협조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중국 정부는 300억 알의 신두를 비밀리에 구매했다.
또한 다른 기업, 개인들과 더 이상 신두 거래를 하지 못하게 금지시켰다.
그리고 자국의 모든 기업들이 신두를 사내식사로 쓰도록 강제로 행정명령을 내렸다.
"3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은 직원들 사내식사 제공용으로 신두를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물론 가격은 나노소프트에 지불한 것에 수수료를 살짝 얹은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