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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065화 (1,065/1,270)

프랜차이즈 갓 1065화

249장 모터가 필요해? (2)

과거 백두자동차와 수영농장은 자율주행 모듈 도입을 놓고 사소한 트러블을 몇 번 겪었다.

백두자동차가 터무니없는 독점권을 요구하는 바람에 거래가 무산된 것.

그런 와중에 헤슬라가 자율주행을 가져갔고, 현재 북미에서만 서비스되고 있다.

하수영이 백두중공업에 화물선 100척을 발주했을 때, 백두자동차는 자동차 운반선이 아닌가 하고 우려를 품기도 했다.

만약 자동차 운반선이라면, 수영농장에서 헤슬라를 끼고 국내 자동차 산업 진출을 고려한다고 볼 수 있으니.

다행히 자동차 운반선은 아니었고, 백두자동차는 국내 점유율은 여전히 사수한다.

다만 북미 판매량이 박살 나고, 그 불이 유럽 등 다른 지역에까지 한창 옮겨붙으려고 워밍을 가지는 상황.

"제 오만과 독선 때문에 우리 백두자동차와 귀사 간에 불협화음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수영을 만난 백동원은 속으로 눈을 질끈 감는 심정으로 말을 이었다.

"결자해지, 제 손으로 쌓은 찌꺼기를 제 손으로 긁어내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백동원은 테이블 위에 등 기권리증과 토지대장 등 부동산 관련 서류들을 올려놓았다.

"우리 백두 전기자동차에 수영모터를 장착하고 싶습니다. 이건 계약금입니다."

주소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수영이 고저 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계약금이면, 부동산 시세만큼 부품 값에서 차감하자는 건가요?"

"아닙니다. 성의입니다. 모터 납품계약은 당연히 별도로 하십시다."

"그래도 3,000억이나 되는 걸 관계 청산 대가랍시고 공짜로 받을 순 없죠. 나중에 탈 납니다. 요즘 어떡하면 돈 뜯어낼까 여기저기서 손바닥 비비는 위정자들이 많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고 백동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큰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뇌물을 노린 정치 수사에 주기적으로 당하게 마련입니다. 저도 구치소 신세는 좀 졌었죠."

"저런, 혹시 실형을 사셨나요?"

"대법관 출신 변호사팀 써서 풀려났습니다. 몇백억 깨졌죠."

"처음부터 노린 거네요."

"뭐, 저희가 서해그룹만큼 열심히 법조인 관리하는 건 아니라서요. 한번씩 큰돈이 나갑니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보험 관리하는 것보다는 싸니까 이 방법을 선호합니다."

"한 번씩 아플 때 나가는 병원비가 매달 내는 보험료보다 더 싸다, 이거네요."

"그렇습니다."

백동원은 대화의 흐름이 좋다고 인식했다.

왠지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공시가로 거래하시죠. 깔끔하게."

백동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모터를 제공해 주시는 겁니까?"

"이런 좋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깟모터가 뭐 대수겠습니까? 저는 백두자동차가 자율주행 독점공급권을 후려쳐서 받으려고 했던 마음의 찌꺼기를 지금 이 순간부로 완전히 잊기로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듣던 대로 호탕하십니다."

하수영이 막내아들보다 어리던가?

비슷했던가?

한참 어린 거리 상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려니, 뭔가 느낌이 어색하다.

'이제는 적응해야지. 그 모터라면…….'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상대가 거래 체결 의사를 밝혔으니,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런데 우리 모터가 전기 먹는 하마인 건 아실 텐데. 그 문제는 해결하셨어요? 50km 달릴 때마다 충전해야 하는 차를 출시하진 않으실 거 같고."

정작 본인이 그런 차를 출시했으면서 괜찮냐고 묻는 상황.

"배터리 문제도 함께 묶어서 해결을 했으면 합니다. 물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배터리? 무인 충전 서비스를 원하시는 건가요? 그거 싸지는 않은데."

분명히 말했다.

무인 충전카가 아니라, 무인 충전이라고.

충전카를 따로 굴리지 않는다는 암시일 거라고, 백동원은 강하게 확신했다.

"위성으로 전기를 뿌려주는 방식 아닙니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마음을 먹고 꺼낸 말에, 하수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위성으로 전기를? 혹시 핵융합 발전소에서 위성을 매개체로 해서 자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위성방송처럼?"

저렇게 바로 튀어나오는 거 봐.

백동원은 더욱 강한 확신을 품었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원시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거기서 더 원시적인 무선 전기 방식을 떠올리실 줄이야. 언젯적 레거시 창의력인지…… 아차차."

하수영은 저 혼자 흥분해서 중얼거리다가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백동원은 혼란이 왔다.

'원시적인 방식? 원시라는 말이 무슨 의미지? 고대적이란 뜻은 아닐 텐데.'

그가 생각을 황급히 정리하는 사이, 하수영이 다시 흐름을 정돈했다.

"그러니까 백두자동차는 위성중계를 통해서 차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데, 그 근거가 뭡니까?"

"일단은 수백 톤 이상이 들어간 그 황금 안테나입니다."

"그거 수백 톤이 아니고 수천 톤인데요. 삼천 톤이 조금 안 돼요."

3,000톤이면 금값만 150조?

백동원은 벌어지려던 입을 가까스로 다물었다.

'수백 톤 단위가 아니었어?'

"아, 아무튼 이유 없이 그런 엄청난 금 안테나를 만들 리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금은 전도율이 아주 높지요. 은, 구리 다음으로 3번째니까요."

그 밖에도 백동원은 자신이 위성 충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수영은 가벼운 추임새를 넣어가면서 듣고만 있었다.

"흐음. 그래도 핵융합 배터리 파벌은 아니시네요. 그 이야기 했으면 좀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하수영이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좋습니다. 모터만 납품해 봐야 반쪽짜리죠. 엘레본 빌딩까지 받은 상황에서 저 유리하다고 그런 반쪽짜리 계약을 덥석 받는 건 상도의가 아니죠."

"엘레본 빌딩?"

"오늘 가져오신 빌딩 이름이요. 설마 모르셨어요?"

"……."

"3,000억이나 하는 빌딩인데 이름도 모르고 계셨다니. 땅에 인격이 있었다면 몹시 서운했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제가 잘 아껴주겠습니다."

"그게, 자동차 청담 지점으로만 기억을 하고 있는지라……."

백동원은 어색한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였다.

"전기료는 제가 소비자들에게 개별청구하는 방식으로 갑시다."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무선 전기 서비스 대가로는 뭘 주실래요?"

"일단 제공할 수 있는 대가로는……."

"백두자동차 청담지점 굳이 방 안 빼실 거죠? 뺄 이유 없잖아요? 토지건물 명의만 바뀌는 거니까."

"그, 그렇습니다. 뺄 이유는 굳이 없죠."

"어디 보자. 거기 월세 수익이 지금 7억 좀 넘을 테니까, 깔끔하게 월세 20억으로 재계약하는 게 어때요? 매매 계약하면서 같이 체결하죠."

모터 납품의 성의는 부동산 조공.

전기 납품의 성의는 월세 인상 조공.

자신이 각오했던 상한선에 훨씬 못 미치는 제안인지라, 백동원은 쾌재를 부르며 얼른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주들 전기료는 한전 빌어먹을 개자식들보다는 싸게 받을 테니, 그 문제로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워낙 합리적인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가급적 윈윈 거래를 추구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계약서를 출력해서 가져왔다.

빼곡한 조항들이 가득한 계약서는, 당장 읽어보는 데만도 몇 시간은 걸릴 듯했다. 법률적 검토는 별개로 하고,

"청담동 표준 계약 양식을 따랐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양자에게 공평한 갑을 하청계약은 없을 겁니다."

한쪽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비서실장의 표정이 안 좋게 변했다.

빅딜을 함에 있어 이런 식으로 사인을 하는 경우는 없다.

큰 틀에서 양자가 합의했으면, 이제 실무진이 본격적으로 세부사항을 만들고, 그 뒤에는 보여주기식으로 사인을 하게 된다.

'회장님, 안 됩니다!'

"천천히 읽어보셔도 됩니다. 아, 첫 페이지에 핵심만 다 정리해 놨으니, 그것만 읽어보시고 사인하셔도 돼요. 뒷장들은 결국 첫 페이지 내용 풀이일 뿐이거든요."

"……."

백동원은 눈을 부릅뜨며, 첫 페이지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여기서 차마 '나중에 법적 검토를 하겠소.'라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순없었다.

당장 백두자동차가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계약을 할 때도, 그 자리에서 즉시 서명할 것을 요구했으니까.

시간을 두고 검토를 하겠다고 빼면?

'넌 계약하기 싫은 하청업체구나.' 하고 계약서를 회수하곤 했다.

하수영 또한 분명히 그렇게 나올것이라 믿은 백동원은 필사적으로 굳은 뇌를 가동하며, 첫 페이지 핵심 요약 조항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이상한 조항을 발견했다.

"모든 위약금은 상호간 설정하지 않는다? 이 조항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위약금이 이행의무 위반시 편하게 손해배상 청구하자고 둔 조항이잖아요? 전 그런 거 별로라서요."

"……."

"아니, 미래에 손해가 얼마나 발생할지 모르는데 미리 정해 두는 게 말이 되나요? 그건 법적 공방을 하든, 히트맨을 보내든, 본사에 미사일 폭격을 하든, 그때 가서 볼 일이죠."

백동원은 두말없이 조용히 서명했다.

하수영이 기꺼워하며 술이 담긴 커다란 오크통을 가져왔다.

"이런 좋은 날에 술이 빠질 순 없죠. 아, 동생분들도 다 같이 부르는 게 어때요?"

"제 동생들을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사장님 3형제분이 모두 우리 농장과 거래관계가 아닌가요? 이제 백두자동차까지 가세했으니, 축하하는 의미에서다 같이 술 한 잔 어때요?"

결국 2남 백서훈은 백동원이, 3남 백진택은 하수영이 부르기로 했다.

둘 다 마침 지방에 있었지만,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올라오겠다고 했다.

그 전에 하수영이 먼저 오크통을 열어서 술을 부었다.

"원하시는 술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웬만한 건 종류별로 다 있습니다."

"저도 이 와인을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백동원은 하수영이 세숫대 야처럼 커다란 대접에 와인을 콸콸 붓고, 단숨에 마시는 걸 보고 속으로 경악해야 했다.

오랜 과거, 야만의 시대에서 전장을 누비던 장수들이 저렇게 호탕하지 않았을까?

세련된 청년 이미지에 야전을 누비는 호걸의 주량이 겹쳐지니, 사람이 더욱 달라 보인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름 열심히 마신 백동원은 어느덧 거하게 취했다.

"그런데 의원님, 청담동 부동산 수집에 공을 들이시는 이유가 특별히 있습니까? 전부터 그게 궁금했었습니다."

사실 별로 궁금해 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억지로 쥐어짜 낸 질문이었다.

"여기가 강을 끼고 있는 대도시라서 입지가 완전히 좋거든요. 청담동다 사모으면 나중에 싹 밀어서 아주 높은 엘리베이터 건물 하나 올릴 겁니다."

"아아, 동 자체를 사저로 만드시려는 거군요. 정말 대단한 발상입니다. 감탄했습니다."

"근데 이게 어느 정도까지는 수집이 가능한데, 일정 선을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물량이 없어요. 웃돈을 엄청 준다고 하지 않으면 안 판단 말입니다."

"그렇겠지요. 청담동 사는 사람들이 어디 돈이 아쉬워서 집이나 자산을 정리하겠습니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고민이에요. 고민. 벌써부터 정체기에 들어서. 한두 채면 웃돈 걍 주고 사버리는 건데, 동 전체를 상대로 그 짓 하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알박기들은 절대로 안 나가려고 하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최후 알박기 세력은 평당 1조 원을 준다고 해도 안 팔고 그냥 영원히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죠. 무조건 힘을 써야 돼요. 제가 그 꼴을 한두 번 본 게 아닌지라……."

백동원은 결국 동생들을 보지 못하고 알콜에 기절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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