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94화
255장 한파 그리고 봄 (3)
국정원 중년 남자는 가슴이 철렁했다.
북한이 보낸 특사는 비밀리에 지금 서울 안가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극비사안이었고, 언론에는 절대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그냥 떠본 걸까? 아니면 말 그대로 특사가 있으면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일까?'
빠른 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한 뒤, 국정원 중년 남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판문점에서 직접 협상을 벌이고 싶으신 겁니까?"
"어느 세월에 판문점까지 갑니까? 그리고 판문점에서 눈 돌아간 북한이 절 납치라도 하면은요?"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왜죠? 다 죽자고 묻지마 핵범죄디데이가 몇 달 안 남은 상황입니다. 염치불문하고 전 세계 유일한 해석꾼을 협상 테이블에서 납치한 다음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
북한 입장에서는 확정적인 최악보다는 확실하게 나은 차악의 선택지가 되는 셈.
듣고 보니 맞는 말인지라 잠시 멍해 있던 중, 중앙기관 공무원이 더듬더듬 물었다.
"그런데 의원님…… 해석꾼이 뭡니까?"
"천석꾼은 알죠? 쌀이 곧 재산이던 옛날에 부의 수준을 가늠하던 기준이요."
"아, 그건 압니다. 아아! 그럼 해석꾼은……."
천석꾼, 만석꾼, 억석꾼, 조석꾼, 경석꾼.
"네, 경석꾼 다음의 해석꾼입니다."
무슨 해석, 분석 따위를 잘하는 그런 두뇌파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단 말인가?
'난 또 무슨 해석 같은 걸 엄청나게 잘한다는 의미인 줄…….'
"그래서 지금 서울에 있어요, 없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국정원 중년 남자는 몇 분간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다.
"서울 안가에서 대면 가능합니다. 그쪽에서는 의원님한테 맞추겠다고,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가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비밀특사가 있는 안가로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의원님? 설마 그 차를 타고 가시려는 겁니까?"
"저는 제 차가 편해서요. 교통사고가 나도 안전하거든요."
"……."
국정원 중년 남자는 난색을 표했다.
하수영의 캠핑카 퍼포먼스는 이미 국내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모델이다.
체급 자체가 이미 웬만한 고속버스에 버금가는 수준의 캠핑카.
국내에서 저렇게 큰 초대형 캠핑카를 굴리는 사람은 하수영과 후원회노인들뿐이다.
하지만 후원회 노인들은 다 같이 공동 나들이를 나갈 때만 캠핑카를 운행한다. 당연히 줄줄이 소시지로 다닌다.
즉, 서울 한복판에서 혼자 다니는 퍼포먼스 캠핑카는 하수영이라는 광고판이나 다름없다.
"너무 눈에 띕니다. 다른 사정을 고려해 주십시오."
"교통사고라도 나면 이게 수습하기 편한데요. 다치고 말고 할 것도 없어서요."
결국 사정사정 끝에 헬기를 타고 이동하기로 합의를 봤다.
말이 끝나자마자 퀸 스텔리온이 빌딩 이착륙장에 내리자 국정원 중년남자는 허탈했다.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끊어졌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신두 60억 알은 뭘 기준으로 잡은 겁니까?"
"60억 알을 보내야 북한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묻지마 핵범죄 우려를 제거할 수 있는 겁니다."
"아쉽네요. 알아서 무너지게 놔둔 다음에 중국과 땅따먹기 싸움해서 승리하는 게 가장 효율 좋은 통일형태일 텐데요."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가진 모든 핵생화학 폭탄을 우리 한국에 퍼부을 겁니다. 지금도 노골적으로 그런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인성 못 갖춘 못된 것들이 꼭 그렇게 미드오픈 미드오픈 거리면서 사방을 위협하죠."
국정원 중년 남자는 미드오픈이 정확히 어떤 의미이고 무슨 유례인지, 나중에 꼭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맥락상 의미는 알지만, 더 확실하고 정확하게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인류 대봉사 차원에서 의원님이 이 거래를 반드시 받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래도 외상거래는 아니죠."
"예?"
"개성 사업권을 주겠다는 게 결국 외상거래가 아니고 뭡니까? 대금은 한참 뒤에 챙길 수 있으니까요. 아니지, 그전에 또 이것저것 초기투자 쏟아 부어야 하니까 외상거래 중에서도 아주 악질 외상거래로군요."
"……."
"외상거래는 받는 거래만 해야 합니다. 주는 외상은 안 돼요."
"그, 중국 버섯농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죠. 아, 나노소프트 요식사업과 서진파운드리도 포함되지만요."
나노소프트, 중국 버섯농장, 반도체 기업들은 아낌없이 외상거래를 해주었다.
이쪽에 돈을 한꺼번에 먼저 주고, 물건은 천천히 달라는 외상거래.
이런 외상거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상거래가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570억 달러라고 해봐야 한·미·중 세 나라가 힘을 합치면 얼마 안 될 텐데. 그거 각출을 못 해서 50%를 개성 사업권 외상으로 퉁 치려고 합니까?"
"북한 식량 지원에 쓸 수 있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570억 달러라는 말에 국정원 중년남자는 아예 체념한 얼굴이었다.
'이미 그냥 개당 9,500원으로 확정을 지어버렸군그래…….'
반응을 보니 가격 협상은 없을 거 같다.
과연 북한의 비밀특사는 하수영과 어떤 협상을 벌일까?
문득 엄청난 궁금증이 치밀었다.
모르긴 몰라도,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회담이 되지 않을까?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재정경리 부부장 리철만이라고 합니다."
비밀특사는 소위 말하는 39호실, 세습왕조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조직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적당한 체격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중년의 남자는 선명한 서울말을 구사했다.
말투만 들어서는 그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절대로 구분하지 못할 만큼.
"하수영입니다. 요즘 북녘은 어떤가요? 북쪽에서는 통 들려오는 소식이 없어서요."
"위대한 수령동지의 영도 하에 모든 것이 순리대로 번영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요즘 이상기후 때문에 전 세계가 식량 문제를 겪거나 겪을 예정인데, 북녘 또한 슬기롭게 이 문제를 헤쳐 나가길 바랍니다."
옆에서 참관 중인 국정원 요원들은다들 미세하게 놀란 눈빛을 띠었다.
그들은 정보기관 소속인 만큼 하수영을 잘 알았다.
그가 얼마나 톡톡 튀다 못해 사방팔방으로 널뛰는 화법을 구사하는지는, 이미 유명한 사실.
정중함과 예의 속에 갖춘 냉소와 일침의 포문에, 꽤 많은 정치인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 지금은 한 명의 외교관처럼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이자도 무차별 불폭탄 자폭 공격만큼은 두렵다는 거로군. 당연히 남조선에 많은 자산을 뿌리내리고 있으니……. 그럼 협상이 조금 더 쉬워질 수 있겠는데.'
그래서 몸소 비밀특사까지 만나러 온 것이 아니겠는가?
리철만은 자신감을 얻었다.
짧은 탐색전이 끝나고, 곧바로 본론이 도마 위에 올라갔다.
"개성 사업권을 준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청사진이 어떻게 됩니까?"
"먼저 목축지와 농지를 무제한으로, 무상에 가깝게 제공할 겁니다. 수영그룹에서는 거기서 거둔 모든 수확물을 가공하는 공장을 만들어서 운영했으면 하는 게 당의 바람입니다."
"지금 멈춰 있는, 다른 회사에서 굴리던 공장들은요?"
"원한다면 그들 회사 역시 다시 들어와도 좋습니다. 수영그룹이 경쟁을 원하지 않고 개성공단 독점사용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수영그룹은 개성 진출 기업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확실한 보증수표가 되어줄 것이다.
100% 식료품 공단으로 돌아가도 좋고, 옛날처럼 경공업을 섞어서 돌아가도 좋다.
"작물이나 가축의 품종, 수량은 당의 통제를 받습니까?"
"그럴 리가요. 허가받은 사업 범위 내에서 생산품을 무엇으로 고를지는, 당연히 그 회사의 재량입니다."
"만약 우리 농장의 북쪽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정이 그렇고 의지가 그렇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다만 모두가 이득이 되는 방향이니만큼,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십사 하고 간청을 드릴 뿐입니다."
대화는 약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리철만이나 국정원 요원들이 보기에, 하수영이 북한 농업 진출에 꽤나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땅을 매매하는 게 아니라면 농업진출은 중간에 잘못되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은 만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리라.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눴습니다. 한국은 언제 떠나십니까? 출국 전에 우리 농장이 자랑하는 관광패키지 코스에 정중히 초청하고 싶습니다만."
"초청해 주신다면 영광입니다. 다만 제가 신분을 대외로 드러낼 수 없는 관계로 한국 정부의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양해를 얻을 수 있도록 제가 힘써 보겠습니다. 식도락 패키지는 분명히 매우 만족하실 겁니다."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비밀 면담이 끝났다.
하수영은 기다리던 퀸 스텔리온 헬기에 올랐다.
동행했던 국정원 중년 남자도 함께 했다.
"북한 농업 진출에 꽤나 긍정적이 신 것 같았습니다. 역시 2,500만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이니만큼……."
"570억 달러 준비하세요. 아, 절반은 반년 뒤에 받겠습니다."
"예? 그 말씀은 ……."
중년 남자는 당황했다.
"지금 아까 그 친구가 분수 파악을 못 해요. 묻지마 자폭핵까지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으면, 그걸 타파하기 위해서 핵 양도는 협상판에 기본으로 깔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북한이 미치지 않고서야 먼저 핵양보를 할 리가 없다.
하지만 하수영은 당연히 그랬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역시 아직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준비가 안 됐네요. 미드오픈으로 지랄한다고 하니까 신두는 넘겨줄게요. 어차피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야 1알을 9,500원에 파니까 좋죠."
미국이야 핵자폭만 막을 수 있으면 상관없다는 스탠스니까 개의치 않으리라.
하지만 내심 북한의 식량주권을 쥐고 싶었던 정부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결정이었다.
'내내 정중하고 격식을 차렸던 이유가 오히려 이런 것 때문이었나…….'
중년 남자는 한 번 더 설득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하수영의 표정에 떠오른 미묘한 짜증이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북한 농업에 진출을 한다고 쳐봐요. 놈들이 개성공단 폐쇄같은 걸 또 안 한단 보장이 없죠? 그럼 F35 300기로 자력구제를 해야 하는데, 핵이 남아 있으면 불편하단 말입니다."
"자, 자력구제요?"
"위험한 땅에 파종하려면 충분한 샷건을 농장에 배치하는 법입니다. 전투기가 샷건인 거죠."
결국 핵 양도는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라, 배신 상황에서 자력구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식도락 패키지는 왜 초청하신 겁니까?"
"내 쩔어주는 농장 시스템을 눈과 귀, 혀로 체험하고 난 다음에 상대 적 박탈감에 한 번 시달려 보라는 거죠."
"……."
"먼 길 왔으니 겸사겸사 밥은 먹이고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북한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진미를 위장에 가득 처넣어서 보내줘야 죠. 그래야 두고두고 후회하고 갈망하죠."
세상은 그것을 티배깅이라고 부르지만, 중년 남자는 거기까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