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17화
260장 1차 반도체 전쟁 (1)
F22 700대 사업은 적어도 매출 900억 달러를 기록해 줄 기대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F22가 다시금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펼치게 해줄 것이다.
700대의 추가 주문이면 연구개발에 매몰된 비용을 건질 수 있고, 상당한 가격 하락을 꾀할 수 있으며, 미 공군이 다시 한번 도입을 추진할 수 있을 테니까.
한때 대당 2억 달러가 넘었던 F22가 9,000만 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나 미 의회가 정작 그 꿈을 산산이 날려 버리고 말았다.
"코즈펠트 부사장, 수영그룹은 정말 F22 도입 사업을 취소한 겁니까?"
동료 임원들의 질문에 코즈펠트는 태연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말은 똑바로 합시다. 수영그룹이 취소한 게 아니라 의회가 나서서 엎어버린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반도체 안보니 뭐니 하면서 외국파운드리 회사도 공격하는 의회가 F22 같은 전략적 전술무기를 외국에 넘기려고 하겠습니까?"
"……."
미 의회의 F22 봉인 정신을 록히 드마틴에서 모르는 이는 없었다.
미국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F22의 해외판매를 허락한 적이 없었다.
너무 강력한 무기이니만큼 반드시 미군의 점유 아래에만 놓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도 수영그룹에는 포드항모도 2척이나 팔곤 했으니,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도체 제재가 벌어진 이상, 다 틀렸지.'
이제는 수영그룹도, 미 의회도 F22를 도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졌으니.
"F22는 무산됐지만, 그래도 너무 체념하지는 맙시다. F35C 300기 수출계약은 여전히 유효하고, 의회도 그걸로 태클을 걸 예정은 없어 보입니다."
"반도체 때문에 온 제조업이 난리인데, 그거 수습부터 매달려야죠."
제조기업들은 국적,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미 의회를 욕하고 있었다.
'의회가 서진파운드리를 털도 안뽑고 삼키려다가 입이 찢어졌다.'
온 세상이 그렇게 의회를 비웃고, 비난하고 있었다.
의회는 서진파운드리를 통째로 삼키려고 한 파렴치한 집단으로 포장돼 있었다.
자세한 정치공학적 구도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게 가장 속 편한 해석이었다.
미국이 서진파운드리를 꿀꺽 삼키려다가 이 사달이 벌어진 것이라고.
서진파운드리의 물량 감소로 인한 피해는 전 세계에 미치고 있었다.
하다못해 커피포트나 토스터에도 반도체가 들어가는 세상이다.
전 세계 제조업체들은 반도체 수급이 딸려서 공장이 멈추거나, 가동률이 줄어들었다.
당분간 반도체가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고, 시중에 유통되는 반도체 물량이 품귀를 빚었다.
그로 인해 경제 총생산량도 줄어들고, 유동성도 단단히 잠겼다.
웃는 곳은 일본의 반도체장비 회사,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 정도뿐이다.
미 의회는 그로 인한 전 세계의원망을 받아내야 하는 악의 축이 되었다.
"코즈펠트 부사장은 하수영 회장님의 신뢰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잘 설득을 해보시면……."
"설득을 하기에 앞서 먼저 미 의회의 통 큰 양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코즈펠트 부사장이 회장님을 만나서 대화를 터보세요. 그래야 그걸 가지고 우리가 의회에 로비를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코즈펠트가 프랑스 낭트에서 수영포도농장을 운영하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키워진 포도농장은 모조리 수영식품그룹이 사들여서 설탕으로 만들 예정.
이건 누가 봐도 하수영이 코즈펠트를 위해 마련한 선물이다.
하지만 횡령이나 배임을 문제 삼는 이는 없다.
고객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받은 팁이었으니까.
그 팁의 규모가 농장이라는 게 대단할 뿐이다.
"제가 록히드마틴과 그분을 연결하는 직통인 건 인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먼저 나설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인사드리러 가는 길에 그럴듯한 선물이라도 마련을 해주셔야죠."
"그것을 코즈펠트 부사장이 골라줬으면 하는 마음에……."
"제가 임의로 고르면 회사를 팔아 먹는 횡령배임 범죄자가 됩니다. 전 양심을 지키고 싶군요."
임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회사를 팔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선물을 고를 거란 이야기인가?
"저는 록히드마틴과 수영농장 사이에서 양쪽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왔습니다. 하수영회장님도 그 점에 만족하셔서 저에게 농장을 선물로 주신 거죠."
"……."
"제가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에 저울추를 올리면, 하수영 회장님은 설령 그게 본인이라 해도 유쾌하게 여기지 않으실 겁니다. 그분은 비겁한 스파이를 경멸하십니다."
"으음……."
임원들은 침음성을 흘리며 고민했다.
"이건 아무래도 우리끼리 좀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군요, 부사장님."
"네, 결정이 되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 뒤에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부사장 말이 맞아요. 선물을 고르는데 부사장이 끼어들면 그건 수영그룹 눈에 공평해 보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점을 일깨워줘서 고맙습니다."
그들의 속내는 말과 달랐다.
록히드마틴이 결심해야 하는 출혈량은 코즈펠트의 입김이 닿지 않아야 한다.
하수영과 친한 코즈펠트가 경영진으로서 모럴 해저드에서 자유롭기 위한 명분이다.
그리고 며칠이 더 흘렀다.
"부사장, 선물이 마련되었습니다. 어서 한국으로 출국하세요."
"음, 알겠습니다."
록히드마틴에서 준비한 선물을 들고, 코즈펠트는 한국으로 떠났다.
***
오랜만에 보는 하수영의 표정은 밝았다.
전 세계 제조산업시장을 뒤집어놓은 인물이라는 것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흐음, 반도체 점유율을 50%로 고정한다는 것은 진심이었는데. 미국이 하도 독점독점 거리니까 불필요한 분쟁은 이제 그만 피하고 싶네요. 농사짓기도 바빠요."
"저도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돈만을 생각하셨다면 그 많은 퀸 스텔리온을 구매하지도 않으셨겠죠."
코즈펠트는 안다.
하수영에게 돈이란,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수단 중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그가 반도체 패권주의에 야심이 있는 인물이라면, 농어촌을 위해 그 많은 지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메탄포집 안테나도 수십 배이상은 받아먹고 제공했겠지.
정치공학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워싱턴 머저리들만 그 사실을 모른다.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나름 정성을 준비했으니, 검토라도 한 번 해주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편안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 코즈펠트 부사장님이 먼 거리를 오셨는데 포장꾸러미도 안 열어볼 순 없겠네요. 어디 한 번 봅시다."
록히드마틴이 줄 수 있는 선물은 한정적이다.
과연 무엇을 준비했을지, 하수영은 조금 궁금한 마음도 생겼다.
"오, F22 무상 라이선스 생산 보장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수영농장에서 비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할 기체는 일체의 로열티 없이 마음껏 생산하실 수 있습니다."
"그 대신 F22 300 대만 주문을 해달라?"
"기술이전 비용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당연히 100% 이전해드립니다."
"의회에서 이 거래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요?"
"그거야 록히드마틴이 감당해야 할 문제죠."
코즈펠트는 마치 남 일을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실제로 그는 이번 거래에 관해서는 로비에 나서지 않을 예정이었다.
하수영과의 친분 때문에 모럴 해저드에 해당할 수 있으니.
"의원님이 허락하실 경우, 록히드마틴은 의회가 이 빅딜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회도 벌써부터 분열됐나 봅니다?"
"네. 제조시장이 박살 나고 있으니까요. 반도체 수급을 서둘러 안정시켜야 한다고 내부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코시든 상원의원은 다음 대선에 나가기 힘들 겁니다."
이 딜은, 늦었지만 화해를 원하는 의회가 넉살 좋게 다가올 수 있는 맞선자리가 될 수 있으리라.
"제가 이 건 받고, 반도체 건은 받지 않으면요?"
"저희야 F22를 온전히 부활시킬 수만 있다면 상관없죠. 저희는 반도체 회사가 아닙니다."
록히드마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F22 거래를 되살리는 것.
700대에서 300대로 줄어드는 게 안타깝지만, 100% 기술이전료를 냉정하게 계량해서 300대라고 잡은 것이다.
하수영은 기분 좋게 한숨을 뱉었다.
"휴, 이러면 구매욕이 다시 살아나는데."
"애초에 저희가 뭔가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디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요. 록히드마틴이 뭐가 잘못이 있겠어요? 이게 다 체력도 안되면서 치킨 레이스 벌인 그 노욕덩어리들 때문이죠. 아니, 530 VS 1도 못 당해낼 거면서 대체 뭔 자신감으로 청문회를 연 건지."
"지금 미국 시민들,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 의원님의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몇 걸음에 삼켜 버리고 격전지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전장의 영웅같았다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사실 나도 그러고 마음이 아팠어요. F22는 전투기의 로망이거든요. 아마 1,000년이 흘러도 두고두고 회자될 겁니다. 마치 거북선처럼 말이죠."
"명성 드높은 이순신 제독께서 손수 만드신 명품에 비유해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그래서 내가 F22에 특별히 애착이 많아요. 아, F35 시리즈도 물론 좋아합니다."
고객께 강매하지 않는다.
거짓으로 팔지 않는다.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저 카탈로그를 보여주고, 설명을 원하면 설명하고, 그리고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고객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서 맞춰준다.
그것이 코즈펠트가 하수영의 신뢰를 얻은 방법.
마침내 하수영이 결심했다.
"100% 기술이전, 무상 라이선스생산권을 얻어 오세요. 그럼 300대가 아니라 원래대로 700대를 사드리죠."
"그렇게 해주실 것 같았습니다."
"700대 정도는 되어야 록히드마틴도 의회에 로비를 해볼 구실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 그리고 기술이전과 라이선스는 저희 제품 누적구매에 대한 답례입니다. 당연히 비용은 지불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의회 설득이 쉽지 않겠네요."
"록히드마틴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조심스러운 조언입니다. 이번 딜만 받으시고, 반도체 건은 그대로 하심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럴 생각입니다. 반도체 안보를 그렇게 외쳐댔으니, 소원대로 해주려고요."
"혹시 저희 회사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무리한 부담을 안으실까 두려워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아닙니다. 고래 싸움에 끼어서 700대 주문취소 당하게 생겼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오히려 내가 그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풀어줘서 고맙네요."
하수영은 작게 웃었다.
"역시 코즈펠트 부사장님은 무기상인이나 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농부를 해도 잘할 거 같은데."
"저는 의원님처럼 전 세계인 목숨을 식량으로 쥐락펴락할 그런 그릇이 못 됩니다."
***
록히드마틴은 거래 내용을 가지고 의회에 적극적으로 로비를 시도했다.
F22 700대 구매가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열심히 설파했다.
"당장 조치가 없어도, 조만간 반도 체 공급이 안정될 수 있으리라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습니다."
"화해와 협상 테이블이 열리고 있다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네, 그렇습니다. 의원님."
코시든은 이미 의회 내에서 입지를 잃은 지 오래였다.
의회는 결국 내부적으로 이 거래를 승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 건네는 선물이, 포장박스 안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