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119화
260장 1차 반도체 전쟁 (3)
마이크론의 내부 분위기는 참담했다.
그동안 미국 내에 흩어진 크고 작은 공장들을 인수하고, 보수하고, 그러면서 파운드리 사업 체제를 가다듬어 왔다.
마이크론 역시 종합반도체 제조사인 만큼 생산과 수율 관리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하지만…….
"남이 설계한 반도체를 주문대로 만들어준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군."
"그 잘 나가던 서해전자가 파운드리에서만큼은 TSMC를 따라잡지 못한 게 다 이유가 있었어."
몇몇 이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통해했고, 몇몇 이들은 황당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니, 그걸 이제 알았어?'
'내가 설계한 거 찍어내는 거랑 남들 주문대로 찍어내 주는 거랑 그럼 다르지 같아?'
'처음에 기술진이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 그때는 한 귀로 흘리더니…….'
똑같이 반도체를 찍어내는 것이지만, 파운드리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는 사뭇 달랐다.
야심 차게 양산 체제를 갖추고 첫 페이즈 라인을 찍어냈지만, 불량률이 높고 성능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연방정부에서 나온 담당자는 터진 속도 모르고 마음 편한 소리만 지껄이고 있었다.
"정확히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겁니까? 서진파운드리를 기준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도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이크론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준비해 준 사람이다.
마이크론 CTO는 애써 웃는 얼굴로, 간결하게 설명했다.
"ADM의 이 CPU는 서진파운드리에서도 현재 찍어내고 있는 모델입니다. 따라서 서진파운드리를 100으로 기준을 잡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 좋아요."
"먼저 우리의 성능은 약 90 정도가 됩니다."
"음, 그렇게 많은 차이는 아니군요."
연방정부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하자 CTO는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욕을 퍼부었다.
'같은 설계에서 뽑아낸 같은 제품인데 성능이 일괄 10% 차이 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군.'
CTO는 욕을 하면서도 떳떳했다.
자신은 분명히 파운드리만큼은 반대했었다.
자사 팹 관리하는 것도 버거운 마이크론이 무슨 파운드리냐고.
강제로 등을 떠민 것은 정부와 의회, 그리고 회장 측이다.
"정상률은 약 65%정도입니다."
그러자 담당자의 안색이 굳어졌다.
"불량률이 아니라 정상률?"
"서진파운드리가 100,000개를 찍어낼 동안 불량제품이 0개라면, 우리는 65,000개의 정상 제품이 나옵니다. 즉 35,000개 정도는 불량으로 나옵니다."
"……그건 아직 첫 페이즈라서 그렇겠지요?"
"아, 네. 그렇습니다. 공정 세팅을 수정하고 경험을 쌓을수록 정상률은 더 올라갈 겁니다. 서진파운드리와 비교하다 보니 불량률보다는 정상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으음……."
"그리고 가격은…… 240% 정도입니다."
담당자는 가볍게 놀라워했다.
"저런. 서진파운드리 동일모델보다 겨우 140%밖에 비싸지 않다는 겁니까? 마이크론의 파운드리 생산은 이게 처음일 텐데, 이 정도면 정말 놀랍군요."
말도 안 되는 생산가격 절감, 그것이 서진파운드리의 강점이었다.
그런데 마이크론의 첫 시제품이 겨우 140% 정도밖에 비싸지 않다면…….
"아, 이번에 서진파운드리에서 올린 가격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 올린 가격 기준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서진파운드리는 예전의 TSMC 전성기 시절 이상으로 생산가격을 새로이 잡았습니다. 그걸 기준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절대 싼 게 아니군요."
CTO는 'NO 마진'을 기준으로 생산원가를 잡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이크론은 파운드리 가격측정을 제로 마진 수준으로 잡았다.
10만 개든 100만 개든, 아무리 남의 반도체를 찍어줘 봐야 남는 것은 0달러. 물론 손해도 0달러.
한편 담당자는 충격에 빠졌다.
'서진파운드리가 가격을 그렇게 올렸는데도, 아직도 240% 수준이라고?'
2.4배에 달하는 가격이라니.
그렇게 공장을 모아주고, 돈을 퍼주고, 각종 지원을 해줬는데도?
CTO는 어깨를 으쓱했다.
"품질, 수율, 가격, 모든 면에서 상대가 안 됩니다. 그리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큰 비교 가치가 있습니다. 부국장님도 아실 겁니다. 바로 환경오염 문제죠."
"으음. 서진파운드리가 환경오염이 없다고는 들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차이가 납니까?"
"글쎄요. 배출되는 오염물질은 워낙 다양해서 간편한 비교는 힘듭니다. 그래도 몇 가지만 꼽자면, 일단 무공해 전기가 있죠."
"핵융합을 말씀하시는군요."
"우리 공장을 돌리는 전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탄소를 배출하면서 생산됩니다. 하지만 서진파운드리는 '전혀' 그렇지 않죠."
"……."
"그밖에도 서진파운드리는 온갖 화학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 굳이 비교하자면 인구 10만의 대도시와 1인 가구가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 차이 정도가 되겠군요."
"10만 배라. 비교 자체가 우습다는 뜻이로군요. 이해했습니다."
"심지어 그 1인 가구는 빵 부스러기조차 전혀 남기지 않아요. 끼니마다 몽땅 다 먹어치워 버리죠. 하하하."
"……."
맥 빠진 웃음소리를 내던 CTO는 이윽고 표정을 무겁게 다듬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부국장님, 연방정부에서 돈까지 퍼 줘가면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건데, 이거 구멍 20개쯤 뚫린 항모를 배수펌프로 안 가라앉게 억지로 유지시키는 겁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안보를 위해서 감당해야 할 손실입니다. 부사장님도 지금 겪고 있지 않습니까?"
"뭐를요? 생산을 독점한 업체가 슈퍼 을질하니까 반도체 산업이 우르르 무너졌다,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깨달았죠. 반도체 생산력을 어느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마비를……."
"그거야 의회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서죠. 서진파운드리는 매우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입니다. 아니, 애초에 미국 기업도 아닌 외국 기업을 가지고 뭘 제재를 한다, 공장을 새로 지어라, 이렇게 난리를 피웁니까?"
"……마이크론의 파운드리에 부정적이신가 봅니다."
"내 실력은 동네 리틀보이 수준인데 메이저리그 최고연봉자 옆에서 같이 야구를 하라고 하니 의욕이 나겠습니까?"
파운드리는 처음이지만, 자사 반도체 팹은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적어도 물을 쓰지 않고, 환경오염없이 반도체를 찍어내는 기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은 잘 안다.
그래서 CTO는 의회의 거대한 삽질을 내심 경멸하고 있었다.
'살살 잘 달래서 모셔 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되지도 않는 견제구나 날려서 다 망쳐 버렸어.'
그로 인해 마이크론 파운드리에 대한 기대만 더욱 커져 버렸으니, 자신만 죽을 맛이었다.
다른 경영진과 주주들은 희희낙락하고 있지만.
D램은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 수준이다.
물론 아직 쓰이는 곳이 있지만, 향후 5년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측했다.
개인 PC를 새로 맞추는 유저들은 D램을 쓸 바에는 옵테인 메모리를 쓴다.
이제는 가격은 별 차이가 없는 데다가, 데이터처리 병목 현상이 없어 더욱 빨라진 속도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D램의 생산점유율은 대부분 마이크론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이크론이 D램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아니고, 미 정부의 요구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생산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옵테인 메모리는 100% 서진파운드리에서 만든다.
-마이크론은 옵테인 메모리를 만들 수 없다. 아직 공정기술이 안 된다.
이런 이유에서 미 정부는 D램에 억지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펌프질을 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장비에는 옵테인이 아닌, D램을 사용하도록 정책을 바꿔 버렸다.
당연히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옵테인 메모리를 놔두고 왜 구닥다리 D램을 쓰라는 건데?"
"반도체 안보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이잖아. 마이크론 D램 사업부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젠장, 정부는 왜 이렇게 마이크론에 퍼주기만 하는 거지? 그 세금의 반의반이라도 헬스케어에 쏟았으면 좋겠네."
시중에서 소요가 없으니, 정부의 대량구매에 유지해서 굴러가는 D램사업부.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캐시카우가 된 셈이라서 좋다.
하지만 시민들과 기관 실무자들입장에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심지어 정부는 마이크론이 만든, 비싸고 수율 낮고 가격도 높은 ADM의 CPU도 대량으로 구매했다.
그 피해자들은 정부 산하의 여러 기관들이었다.
심지어 나사(NASA) 역시 정부의 물량 떠넘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옵테인 메모리 등 차세대 컴퓨터로 체제 전환을 기대했던 나사는, 졸지에 '메이드 인 마이크론' D램과 CPU를 한가득 받고는 좌절에 잠겨야 했다.
미 정부는 마이크론 제품을 최대한 많이 구매했고, 최대한 많이 떠넘겼다.
심지어 이 문제를 가지고 주 정부와 싸우기도 하고, 갈등도 겪고, 소송이 걸리기도 했다.
미 정부는 의회와 달리 서진파운드리에 우호적이었지만, 동시에 마이크론을 알뜰하게 보살펴야 할 입장이었으니.
원래 중간에 끼어서 중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원망을 듣는 법이다.
여기에 한 대 얻어맞고 잠잠해진 줄 알았던 의회가 다시 나섰다.
-앞으로 정부 기관에서 구매하는 모든 컴퓨터의 시스템 및 메모리 반도체는 90% 이상 미국 내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해야 한다.
라는 법안을 올려 버린 것이다.
기껏 조성된 화해 무드에 안심하고 있던 반도체 업계는 의회가 과연 제정신인지를 의심했다.
"서진파운드리와 화해하는 거 아니었어? 이 타이밍에 저런 정신 나간 법안을 통과시킨다고?"
"설마. 블러핑이겠지. 제발 그러기를 빈다."
"이거 가지고 서진파운드리가 또 화나서 생산량 더 줄여 버리는 거 아니야?"
그러나 그런 우려와 달리, 서진파운드리는 점유율 50% 밑으로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오히려 발표를 내놓았다.
기자회견장에서 정서진은 계류 중인 새 법안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정부 기관에서 특정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제가 뭐라고 판단할게 아닙니다. 아무 문제가 없죠. 저는 그저 시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고객사의 주문에 따라 제품을 만들고, 납품을 할 뿐입니다."
정서진은 새 법안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주 쿨한 모습을 보여 줬다.
실제로 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서진파운드리에는 아무런 손해가 안된다.
모자란 공급량을 어떻게든 채워 넣으려는 미 의회의 필사적인 몸부림일 뿐이다.
"다양성은 반도체 생태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죠. 저희가 할 수 없는 일을 타국 정부가 하겠다는 것에 잣대를 들이댈 순 없습니다. 저희는 일개 민간기업일 뿐이니까요."
정서진은 객관적이고 쿨하고 합리적인 모습을 듬뿍 보여줬다.
"아,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전 세계 고객사들께 드리는 중대한 발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설마 또 가격을 인상한다는 것은 아니겠죠?"
"점유율 상승을 재고할 마음은 없으십니까!"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전 세계 반도체 종사자들은 아마 실시간으로 이 기자회견을 보고 있을 것이다.
"1나노 양산 안정화에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반도체 설계하실 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든 설계 도만 주시면 바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1시간 후, 미 의사당 정문에 돌진한 픽업트럭 이야기가 조그맣게 해외토픽에 실렸다.